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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남녀 영화배우 인물평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조선 남녀 영화배우 인물평 朝鮮男女映畵排優人物評
종    류 비평 批評
필    자 박기채 朴基采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41-06 昭和十六年六月
면    수 230 (230)
기사
[사진] 3인의 여배우 1매
[사진] 李錦龍氏 ,池京順, 金信哉氏, 韓銀珍孃, 金蓮實孃, 金素英孃 총 6매
內地에서 우리나라最初의 文化立法으로서 映畵令을 實施한 뒤를이어 昨年八月一日에 朝鮮에서도 朝鮮映畵令의 實施를 보게된것은 周知의事實이다.
이와同時에 主務當局에서는 全映畵人에게(監督, 撮影, 俳優)登錄制를 實施하야 그第一回로 登錄된사람들이 去一月三十一日附로發表되었다
國家에 登錄이된다는것은 그 任務를 새삼스럽게말할必要가 없거니와 卽國家非常時엔어느때나銃을 들고戰線에 나갈수있는 精神과 또한 文化的立場에서 銃後國民을 指導하는 役割을가젔다는것을 말함일것이다.
그러하므로 映畵로서 銃後國民을 指導하는데 俳優의役割은 重大하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말하려하는것은 俳優의任務에對한것이 本意가아니라 本紙編輯部員의 附託대로 이번 登錄이된 俳優들의 俳優로서의 내가본 印象을 적음에 不過하다.

李錦龍
三月號本紙에실닌 이분의手記를 읽다가 나도 생각한일이였으나 朝鮮映畵界에 相當히 오래된歷史를 가진분이다. 허기야 내가「벙어리三龍」이란無聲映畵를 본記憶이 아슬하니 오랜時日을 朝鮮映畵를 위하야 싸워온것이다.
平素의李綿龍氏를 누구가 보든지 映畵俳優로 보는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만큼氏는 謙遜하고 溫厚하고 無言主義로 實質的이다. 最近에이분의 出演한映畵로 나의印象에 남은 映畵는「水仙花」다, 分裝으로든지 演技로든지 能히 完成된演技者로 頭角을 뚜렸이 나타내였다. 嗚呼라 朝鮮映畵界! 이런有爲의演技者가 每日 讀書로 閑暇히 時日을 보낸다는것은될말인가.

徐月影
月影氏는 朝鮮映畵界에 없지못할 存在다. 氏가 出演한映畵로는 아즉 나의記憶에 남은것이「새出發」이다. 品이있고 무게가있는 演技는 能히 다른사람이 따를수없었다. 氏는 언제나 眞實性이 있어보이고 平素에 있어서도 말이없는것이 그人品을 代辯하고있다. 氏가 映畵界에 나온지가 朝鮮映畵歷史가 생기면서부터라면 오늘날 氏가 가진存在는 그리쉽게 다른사람은 가질수없는 存在일것이다.
아무러한名優라도 役을選擇 잘못하면 반다시 失敗하는 法이다. 月影氏에게 이러한 우려가 없지않다. 氏인들 어찌 銀幕에서 靑春을 驅歌하고십지 않으랴마는 이러한役을 맞는다는것은 氏에게는 絶大禁物이다.

金漢
이분은 東京某美術學校를 나온 인테리다. 朝鮮映畵界에 金漢氏만큼 熱誠을 가진분도없을것이다. 公私를 莫論하고 映畵界일이란 압장을 서는분이 金漢氏다. 그만큼 氏는 朝鮮映畵界일이라면 獻身努力을한다. 氏가 出演한 映畵로는 아즉 未封切된映畵도있으나 나의 記憶에 남은映畵로는「새出發」이다. 새出發에있어서는 演技로서 큰 成功이라고는 말할수없으나 演技者의 態度로서 氏의 眞實性과 情熱을 사줄수있었다.
氏가 努力한 結晶으로서 氏가出演한 映畵가 나의期待에 어그러짐이 없기를바란다.

金一海
氏는 內地에서 帝키네時節에 俳優生活을 오래한분이다. 性格이溫順하고 오래동안 싼 經驗으로서 自己가 맡은役에 充實하려고 무척 애를쓰는분이다. 그反面에 氏의演技에있어서는 도리여 그 效果를 喪失하는 點이없지않다. 最近의 氏가出演한映畵「水仙花」와 「집없는天使」를보드라도 俗談에 自己꾀에 自己가 넘어간다는셈으로 스나오해야할 演技가 큰效果를 喪失하야 버린演技를 窺知할수있다.
金一海氏에게 附記하고싶은 말은 나의말이 氏에게 헛되지말고 나의 期待에어그러지지말기를 바란다.

獨銀麒
獨氏는 朝鮮映畵製作을 爲하야 무척 努力을 하여온분이다. 아마 내가보기에는 朝鮮映畵界에 이만한 紳士的인人物도 드물다. 이분의 처음映畵를 내가對한것은「나그내」다. 그 스나오한 演技가 平素의 獨氏그대로 只今까지 나의印象에나머있다.
참으로 獨氏에게 期待를갖는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것이다.

田澤二
田氏의 前身을 알수없이 말할수없으나 氏의 映畵界進出은 다른 분들에게比하야 그리오랜歷史를 갖지못한상싶다. 歷史가 오래고 쩌르고가 무슨相關이리오 氏의 最近出演한 映畵로서 「授業料」가 印象이새롭게 記憶에남는다. 授業料에出演한役이 비록 端役이였으나마 氏에게는 큰成功이 아닐수없다.
氏는 좋은 마스크를가젔다. 참으로 무럭무럭成長하야 나가는분중에 한사람이다.

沈影
氏는 요즘 映畵界를 아조떠난것은 아니겠지마는 最近의 狀態로는 映畵보다 演劇에 더 힘찬 魅力을 느끼는 모양이다. 劇團高協의總務로 猛活動을하고있는것을 볼때는 옆에있는 사람들도 힘이 돋는다. 그러나 氏도 아조映畵는 斷念을안한모양, 映畵의機會를 엿보고있는것같다. 映畵俳優로서 沈影氏는 自己의情熱이 식지안는限 그 演技도 그 情熱의所産이라고 말할수있다.

朱仁奎
朱仁奎氏라고하면 요새 靑年들에게는 記憶이 없을는지도 몰은다. 그러나 朝鮮映畵初期때 映畵를 본사람들은 記憶이 있을것이다. 그朱氏가 오래간만에「福地萬里」에 出演을하였다. 果然 이번 朱氏의 演技는 貫錄이있는 演技이였다. 한가지 朝鮮映畵를爲하야 섭섭한것은 高協의 公演寸暇를 얻지못하면 任意로 映畵에 出演할수없게된것이다.
朱氏와같은 性格的俳優가 暫時라도 멀리한다는것은 朝鮮映畵를 위하야서 큰損失이다.

秦薰
秦薰氏라면 얼굴을 안보면 몰을사람들이 많을것이다. 姜弘植氏라야 더잘알지? 하여간 姜弘植氏가 改名을 해서 秦薰이가 되었다. 秦氏는 日活에있을때부터 퍽囑望을 받었든분이다.
벌써 俳優로서 그마스크부터 하나의뚜렸한 性格을 갖인분이나 不幸이 朝鮮에서는 아즉 이분은 適役을 演하야보지못한모양이다「福地萬里」에서 演한演技는 너머消極的이였기때문에 成功이없는대신 큰失敗는 免하였으나「집없는天使」에 있어서는 너머 얼토당토않은役을 演하였기때문에 失敗에 歸하고 말었다.
朝鮮映畵界에 보기 드문性格의所有者 秦薰氏게는 무엇보다도 먼저適役을 마낄일인同時에 氏도 역 自己가 演할수 있는役을擇하야 演하여야 할것이다.

崔雲峰
이분이 映畵界에進出하기는 아마 내가 알기에 技術家로서 一家를 세울決心이 였든 모양인데 아지못한 사이에 俳優로 轉向을하야 只今은 中堅俳優로서 一家를 세운셈이다.
崔氏가 出演한映畵가 많으나 이가운데서 나의印象에 남은映畵는「城隍堂」이다. 城隍堂에서 崔氏가 演한役은 現朝鮮俳優가운데서 崔氏가 아니고는 演할수없는 崔氏에게 適役이였었다. 崔氏는좋은演出者를 맞나면 반다시成功할 演技者다.

羅雄
羅雄氏는 아마 映畵보다도 演劇에 因緣이 깊은모양이다. 요즘은 高協의演出家로서 麻衣太子와같은 意義있는 演劇을우리에게 보혀준同時에 映畵에도꾸준히 努力을 해온다. 最近氏가 出演한映畵가 아즉 未封切대로 있으므로말할수없으나 이분의 映畵歷史도 相當히깊다. 無聲映畵『約婚』以後로도 많은 映畵가 있었으나 아즉 나의記憶에 남은映畵로서 여기에 羅氏가出演한映畵의 俳優로서의 名譽를 들수없는것이 遺憾이다.
이만큼 朝鮮映畵界는 羅氏에게도 多幸이없었으나 封切을앞둔 羅氏의 出演한映畵가 보고싶다.

李白水
옛날 土月會全盛時代의 李白水氏라면 이즌사람들도 記憶이 새로울것이다. 그만큼 李氏는 한때演劇俳優로서 絶大的인人氣의保持者이였다. 요즘은 放送局에서 演藝編成을하며 映畵界의隆盛을 苦待하고 게신모양이다. 이분이 近間出演한映畵가 몇作品있었으나 도大體 李氏에게不當한役이였음으로 여기에서 李氏의演技를 말할수없다.
만일朝鮮에 映畵俳優養成所가 생긴다면 나는 서슴치않고 李氏를 養成所長으로 추천하고싶다. 그만큼 李氏는 謙遜하고 溫厚하고 무게가있는 人格者이다.
「演劇보다도 映畵를!」하고 第一線에나서려는 李氏에게 어서좋은機會가 있기를 바란다.

朴齊行
이분은 演劇人으로도오래였지만 映畵로도 내가 알기에 相當히 오래다. 映畵나 演劇에있어서 老役이라면 朴齊行氏의 獨舞臺였으리만큼 朴氏는 活躍을 했다. 그러나 여기에 朴氏가 出演한映畵의 印象을말하라면 생각컨대「나그내」를 드는수밖에없다. 朴氏의演技는 한편구도이한感이 없지않다. 「나그내」에 있어서도 스나오를 일은 演技였다. 그러므로 朴氏는 自己의 演技力으로서 新境地를 目標로 開拓하야 나가야할것이다.

李源鎔
無聲映畵時代에 猛活躍을하든분이다. 發聯映畵로되면서부터는 氏의 그림자를 볼수없는것이 섭섭한일이나 氏는自他가 모다認證하는 映畵排優다. 氏가 出演한映畵로 가장가까운 映畵라면「人生航路」일것이다. 그後沈黙을지키고 있는셈이나 氏인들 어찌 苦憫이 없을것이리요 모다가 朝鮮映畵界가 不健全한罪일것이다. 어서 氏에게 옛날과같은 힘찬活躍의 機會가오기를 바란다.

朴昌煥
이분은 映畵排優라기보다 演劇俳優라고 하는것이 더適切한것이다. 지금 高協陣營에 없을수없는氏이다. 앞으로는 映畵에도 進出을하실모양이다. 銀幕에서 氏를對하기는「福地萬里」다. 「福地萬里」에서 내가본氏의 演技에對해선 割愛하려고하거니와 氏는 自己의 演技를볼때 演劇과映畵의 거리가 얼마나 먼것을 잘알었을것이다.
그러므로 氏에對한 하고싶은 이야기는 이다음機會로미룬다.

朴昌赫
이분은 映畵排優보다도 撮影進行에 名手腕을 가진모양이다. 그러므로 지금高麗映畵社에서 進行을 마터보는한편 俳優로서도 活躍을하고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분의 出演한映畵를드러 말을하려고보니 축겨들만한 映畵가없다. 이분은그만큼 映畵排優로서 無形의存在였든것이다. 앞으로도 朴氏는 꾸준이 努力을하면 반듯이 代償이 있는것을 잊지말일이다.

朴孤松
演劇生活을 깨끗히淸算하고 映畵로進出하겠다는 이야기를 드른일이 있는데 요즘은 아무消息이없다. 相當한 지반을잡은演劇을 버리고 映畵로 進出을하려고 氏는 굳은 決心을가젔을것이나 그대로 沈黙을 지키고있는것을보면 이분 朝鮮映畵界를 恨嘆하는것이 적지않을것이다.
그러나 落望은禁物. 꾸준히 努力하면서 機會를 기다리라.

崔南鏞
映畵排優로보다도 歌手로서 崔氏를아는사람이 더많을것이다. 이분의 歌手生活은 내알배아니나 나의見聞한바에依하면 가장 眞實性을 많이가진분이다. 最初映畵에뜻을 두게된것도 獨特한自己의 才能을 이方面에 開拓하여보려고한데 있었을가이다. 그러므로 氏는 앞으로 우리의 期待에 어그러짐이 없어야한것이다.

金德心
映畵俳優로서 金氏의 出演한映畵도 相當히많은 모양이나 나의印象에남는映畵는 아슬한記憶이기때문에 비저낼수가 없으나「純情情海峽」에서 이분의 演技를 더듬어볼수가있다. 俳優는 그演技力이生命이랄수있다. 充實한 演技를가지랴면 남달리 더욱 硏究를 가저야한다. 機會를 갖지못한것이 비단金氏뿐만아니리라만 어서 金氏에게 좋은 機會를 주고싶다.

金原廣
아닌게아니라 金原廣氏라고해서 나도누구인지 알길이없었다. 그러나 옛날을더듬어본다면 普成專門學校商科出身으로서 어느郡의 判任官을거처서 某會社出張所所長까지되었든분이 옛날부터 映畵에 뜻을 두었든지라 잊지못하고 다시映畵排優로서 登場을하게되었다한다. 이분의 映畵界經歷으로는 內地帝키네에서 오래동안 硏究를 해오다가 朝鮮에와서는「黑과白」이란 映畵를 챠푸링이하듯이 혼자서 모든것을해치웠든것이다. 映畵排優로서 金原氏를 말할수는없으나 이분의 再壯舉에 後悔가없도록 앞으로 이분에게 榮光이있도록 바라마지안는다.

南承民
南氏는 지금까지 내가말한 俳優가운대서 가장 時日이 열분 新進俳優다. 이분이 出演한 映畵로서는 아즉「水仙花」가 있을뿐이나 新人으로서는 그演技態度가 能히앞날을 囑望할수있는분이다. 앞으로 더욱 硏究하면 누구에게도 지지않을줄안다. 自重과努力으로서 앞날의希望을 노래하시라.

文藝峰
文藝峰氏라면 내가 말치않어도 朝鮮에貴한存在다. 朝鮮映畵界에 만일 制度가있는일이라고하면 文藝峰氏에게 演技賞쯤은 주어야할일이다. 내가 알기에도 文氏의 初期時代는 貧困과싸우든일이눈앞에선하다. 말이면 쉬운일이다 實際로當하는일이면 女性으로서는 到底히 用易한일이아니다. 남의안해로서 어머니로서 女俳優로서 文氏만 하면 오날의文氏의 地位와榮光이 當然한일이아닐수없다. 文氏는 언젠가 映畵에 出演을하면 出演을할수록 작고어려워진다고 말을한것을 드른 記憶이있다. 이가文氏에對한 文氏스스로의좋은 敎訓이다.
文氏가 演한 演技를對한땐 큰變化가없는것이 하나의遺憾이나 이는 文氏에게만 責任이있는것이아니다. 文氏는아즉 젊다. 앞으로 이러한 演技校訂은 文氏스스로 開拓해나갈줄로 믿는다.
바라건대 먼 將來까지 지금의 文氏의地盤이 變함이없기를 바란다.

金素英
金素英氏는 藝峯氏에게比하면 아무런 苦難도 격지않고 現朝鮮映畵界에 貴한存在가 된분이다.
그러나 이분인들 어찌 苦難이 없었을가부냐. 精神的苦憫은 藝峯氏보다 더하였을지도 몰은다.
이분의 出演한映畵로는 옛날「방아타령」이 있었든 모양인데 이는 내 보지못했으니 말할수없고 最近映畵로는「沈淸」과「國境」이있다. 素英氏가 沈淸에서 보여준演技는 可히 다른女俳優로서는 따를수없는 神奇한演技였었다. 그리고 素英氏만이 가진 女性的魅力은 오날의素英氏의 驅歌가 아닐수없다.
女俳優에게 淸礎와魅力은 女俳優로서 그生命이아닐수가없다. 素英氏에게 이모-든 點이具備되었다. 앞날이 期待되는 金素英氏 精進하고 努力하면 반듯이 朝鮮映畵女俳優의 星座가 素英氏에게 갈것은의심치 안는다.

卜惠淑
朝鮮映畵女俳優의 오래된歷史를 갖인분이 누구냐고하면 서슴치않고 卜惠淑氏를 말할수있다. 卜氏는 朝鮮藝苑界에 物心으로 아름다운 犧牲을하여가면서 自己의情熱을 映畵나演劇을 爲해쏘다온분이다. 내가 卜氏를 映畵에서 첫번對하기는 아마「落花流水」인것같다. 나는卜氏의 印象이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없다. 卜氏는 그만큼 그靑春紅顔에對한 變함이없다는것이다. 그대신 女俳優로서의演技도 큰變化가없는분이다.
卜氏가 最近出演한「授業料」를 보드라도 貧困에 쪼드른늙은이의맛이 그演技에없었든것은 말할수있다. 그러나 이는 卜氏의 責任만이 아니이라. 卜氏가 朝鮮映畵界에 받친 功勞는 크다. 이卜氏를爲한 씨나리오로서 卜氏의 功德을 披露하는映畵를 製作하고 싶은마음도 없지않다. 이는 비단 卜氏를 위한일일뿐만아니라. 朝鮮映畵界의新發足으로서도 當然한일일것이다.

金信哉
朝鮮映畵女俳優로서 가장 짧은歷史를 갖인金信哉氏는 무럭무럭자라서 藝峯氏며素英氏와 같이 어깨를 견우고있다. 그만큼 信哉氏는 女俳優로서 條件이 具備한분이다.
허기야 內地의어떤映畵人이와서 信哉氏를 朝鮮의 水谷八重者라고 稱號까지 나리고갔으니 朝鮮映畵界로서는 貴한存在를 또한분 갖인배이다.
信哉氏는 映畵에 처음出演하기는「沈淸」이였고 그후「圖生錄」 「授業料」「집없는天使」等 여러作品이있으나 이분의演技를드러말하라고하면 잠간躊躇아니할수없다. 그러나 이번은 信哉氏에게 對한個人批判을 하려하는것이 내本意가 아니므로 이런이야기는 다음機會로 미루려하거니와 硏究過程에있는 信哉氏에게 附託하고싶은말은 한컷트의 映畵에도「タマシイ」가 있어야 한다는것을 銘心하여주기바란다. 나의 이附託이 헛되지않으면 信哉氏는 朝鮮映畵女俳優로서의 榮光을한몸에 안을날이 머지않을것을 믿는다.

韓銀珍
韓銀珍氏는 映畵女俳優로서보다도 演劇女俳優로서 말하는것이 氏를 위하야 더有利할것같으나 이는 여기서 내말함바아니므로 붓끝을 돌니겠으나 韓氏가 映畵界에나오게된 動機는 나하고도 全然因緣이 없는것이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氏가 自己手記에 여러가지 말한바도있지마는 氏에겐 華麗한門이 넓었서야할것인데 너머나도 華麗한門이 좁았든가싶다. 이분이 映畵界를 떠나서 다시 演劇을 하게되면서부터는 그消息을 알길이 없으니 映畵出演에 機會를 기다리고 있는것만은 事實인것같다. 韓氏를映畵女俳優로서의 要素를 말한다는것은 아즉은 時期尙早다. 좀더 이분의 活躍을본後에 女俳優로서 韓氏를 말하기로하고 여기서는 割愛하려하거니와 어쨋든映畵를對한 이분의 精誠만은大端하다. 어서韓氏에게 그精誠이 헛되지않도록 좋은機會가 있기를바란다. 그리고 韓氏는精誠도좋으려니와 健康도絶對的인것을 잊지마서야 할것이다.

池京順
나는 아무리해도 池氏는 映畵보다도 좋은演劇을 했으면 大成을 할분이라고 생각을한다. 그렇다고 이분의演劇을 많이보았느냐하면 그도아니다. 映畵나演劇에 많이 出演을했다고 반듯이 女俳優로서 그분의 素質을 말할수있는것만도 아닌것이다. 단한번 한컷트만 出演하드라도 말할수있는것이다. 내가 池氏의 演劇을보기는 단한번 年前映畵展覽會때의映畵劇이다. 그때부터의印象이 지금도 池氏를생각할때마다 좋은演劇을하는분이다하고 말을씹게된다. 池氏의 出演한映畵「장화홍년전」에比하야 얼마만한成果가 있었느냐 하는것은 池氏도 알지몰은다. 그렇다고 決코 池氏는 映畵가 不當하다는것이아니다. 다만 限界를떠난 나의慾望일게다. 앞으로 池氏의 活躍은注目된다.
以上으로서 거의印象을 말한셈이다. 이外에도 登錄이된분이 있을것이오나 나의 記憶이 거기까지 및이지못한것을 깊이謝過하고 다음機會에 또 붓을 드리려한다. (끝)
四月六日京釜線車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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