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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오락―그들의 회고담(3) 조선성악회 정정렬―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취미 오락―그들의 회고담(3) 조선성악회 정정렬― 趣味 娛樂―그들의 懷古談③ 朝鮮聲樂會 丁貞烈―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 +++
출처정보 매일신보 每日新報
연    도 1937-05-05 昭和十二年五月五日
면    수 8 (八)
기사
그들의 懷古談③
十時間餘를 繼續하야
春香傳을 불너
錦衣花童도 여러 번
朝鮮聲樂會 丁貞烈
노래하는 사람이 거위다 南쪽 사람이지만은 내 故鄕 역시 全羅道 金堤올시다 노래공부를 일곱 살 부터 시작하엿스니가 금년드러 벌서 쉬흔 다섯해 입니다 처음에는 丁創業이란 분에게 노래를 배호기 시작하야 집에서 몃 해 배호다가 그 後에는 鴻山 無量寺 益山 미륵山 等地로 단이며 몃 달식 혼자 드러안저 목소리를 가다듬엇고 그 外에 이리저리 □□一□를 두루 도라단이며 공부에 힘섯습니다 아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노래 공부라는 것이 우수운 일인 듯 하지마는 本格的으로 공부를 하자며는 實노 피이 나는 일노 죽을 힘을 다하야 죽는 날지 공부를 계속해도 滿足치 못합니다 예전에는 노래하는 사람이면 一年에 적어도 한 번식은 깁흔 山 속 절에 드러가 百日 공부를 하엿는데 목소리를 한참 고 나면 배가 히 부어 을으고 얼골과 손발이 부으며 목에서 피를 택택 배앗습니다 이러케 全身이 붓고 목이 말너 부을 에는 참으로  죽을 것만 갓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히고 그대로 목소리를 내아야지 그러치 안코 고만 氣絶해 나잣버지면 목이  잠겨 그 후부터는 노래를 도모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케 百日 동안 목을 가다듬으면 그야말노 皮骨이 相接하게 되어 무슨 重病을 알코난 사람가티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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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소리를 한 뱃자 고작해야 三十分 쯤 繼續하지만 그에는 한 번 소리를 시작하면 계속하야 몃 時間식 내는 것이 普通이엇습니다 가장 긴 노래인 春香歌가튼 것을 지금가치 中間을 어 토막토막 부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 부르는 닭에 몃 시간은 잔뜩 걸넛습니다
그러나 지금 소리 부르는 사람이야 어듸 그럿습니가 한 三十분 동안 淸雅한 목허로 곱게 넘길 줄만 알면 벌서 出世들을 하고 듯는 사람 역시 그런 노래를 歡迎하지만 예전에는 그러치 안습니다 융숭깁히 배속에서 우러나오는 우렁찬 소리, 큰 방안이 히 차는 것 갓흔 늣김을 주는 배속으로부터 는 소리라야 名唱이란 소리를 들엇습니다 그러기에 공력이 만히 든 목소리일수록 소리는 맑지 못한 法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이러한 소리는 歡迎을 밧지 못하니 노래를 드를 줄 아는 사람도 업서젓다고 해도 過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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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이들이 歲月이 조을 는 甲午 以前입니다 甲午年의 봄 科擧지 科擧가 繼續햇고 그 後에는 科擧가 업서젓스나 우리는 그 가 조앗습니다 科擧에 及第를 하면 압헤다 錦衣花童을 세우고 긴 行列을 지어 還鄕하는 法이엇섯는데 唱夫들이 錦衣花童 노릇을 하엿습니다 집에 도라가서는 도문잔치를 베풀고 몃 칠식 잔체를 繼續하엿슴으로 으레히 잔치가 계속하는 날지 노래를 불넛습니다 그리고 唱夫가 먼저 사당門을 열고 사당잔치부터 始作하엿는데 그 닭에 唱夫의 待接도 相當하엿고 잔치가 난 뒤에도 射禮도 퍽 厚하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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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外에 예전에는 봄이면 花童노래 여름이면 풀노래 射亭노래 생일잔치 還甲잔치 等에 으레히 唱夫를 請해다 노래를 불으게 햇섯슴으로 一年내내 밧부게 지냇습니다 科擧가 업서진 뒤에는 우리에게도 華麗한 노름은 업섯스나 시골 大家집들의 이러한 노리들이엿서 심심치 안엇습니다 그러나 큰 料理집이 생기면서부터 노름도 變해젓고 극장이 생기면서 우리도 舞臺에 스게되여 演興社와 團成社 舞臺를 발게 되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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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生을 노래길에 바처온 過去를 더듬으면 참으로 感懷가 깁습니다 지금은 예전과 가치 十數時間을 계속하야 노래부를 機會도 업고 눈이 튀여 나오고 피를 吐하도록 공부를 하는 사람도 업스니 지금 사러잇는 늙은이 몃몃만 죽으면 우리 노래도 이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안할 수 업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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