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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음악 특집―음악의 발전과 교회의 관계―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종교 음악 특집―음악의 발전과 교회의 관계― 宗敎音樂特輯―音樂의發展과敎會의關係―
종    류 비평 批評
필    자 길진경 吉鎭京
출처정보 신학지남 神學指南
연    도 1937-11 昭和十二年十一月
면    수 59 (59)
기사
沙里院東部 吉鎭京
『宗敎音樂 特輯에 對하야』
지난 八月은 母校 學友會 音樂部가 태여난지 五個年을 맞이하는 달입니다. 이적은部이나마난날 그의存在를 아울러 紀念키 爲하야 이特輯페지를 내이게 되였읍니다.
우리 學校가 朝鮮敎會에 寶貝인同時에 學校안에있는 學友會 音樂部도 한적은 存在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것입니다. 여기에서敎會音樂이 어떻다고 認識됨을 따라 敎會內 音樂도 어떤方向으로 흐르며 左右될것이라고 믿는것입니다.
우리는 前日의 얼마나한 役割이 있었다는것을 探求하여 보기전에 앞으로어떻게 動하여야 하겠다는 具體的論을 세워야하겠읍니다.
이제在學當時에 本部에서 힘쓰고 애쓰시던 歷代音樂部長의 (지금은敎界에서 活躍하시난 牧師님두분)글을 실림으로 여기에서 새로운힘과 우리敎會의노래가 어떻게나아가여야하겠다는 方法論에 나아가 이적은部에 紀念을自祝하난바입니다
十月一日 學友會 音樂部에서 趙順天

音樂이라면 器樂과 聲樂에區分으로서 各己 그效果를 發揮하는性能을 所有한것이다. 그러나 맨처음에는 個別的區別이없이 聲樂에 器樂이 伴奏하는役割을했었고 器樂에聲樂이 加擔이되였었다. 오직便宜上二分을하는것으로서 그性能과 效果에 있어서는 藝術의하나로서 人間生活에 多大한影響과 衝動을 주고있었던것이다.
器樂이라면 우리의聖書를 通해서보더래도 아조 옛날부터 存在해있던것이지마는 音樂史上에서는 普通으로 印度에서爲始해서 器樂다운 樂器가되였다고하는데 器樂의第一步의完成을 보게된것은 十六世紀에서라고한다. 主前四百年頃에와서는 現著히興盛했었고 오림피아盛行에 多大한힘을 받었다고 보는同時에 當時器樂으로서는 튜라笛, 喇叭, 手風琴等其他의樂器가 漸次로 創作이되였다고한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스라엘民族이 애급에서나와서 가람福地를向하는 그無限한 喜樂의衝動은 器樂과聲樂의 아름다운産物을 낳게됨으로부터 宗敎儀式이發展됨을 따라서 長足의氣勢로 今日에 이르렀다고生覺한다.
그리하야 美術이 基督敎의 專屬이되였든것처럼 音樂도亦是 宗敎와의結託으로서 그發達을 내게된것으로 中世에와서는音樂이라면 純全히敎會의것이되고말었었다. 그리하야 그發展이現著하게되는同時에 民間에流行하고있는 民謠를 壓倒하고있었다. 그러나 器樂도發展을 도모지보지못한바는아니나 敎會에서는 特別히聲樂이 氣勢를 얻어 이렇다할만치의 器樂의發達은 보지못하였다. 或時 얼만치의 改良과 發明이 없지않었으나 特別히 複音式音樂의勃興은 敎會의 賜物이라아니할수없다. 그리하야 單音式의 노래가流行하는同時에 器樂은 그曲에伴奏로 使用하게됨으로부터 樂器는聲樂의 附屬物인것처럼의 感을 엿보게되였다. 如何間 器樂과 聲樂의 嚴格한區別을 볼수는 없었으나 當時音樂과 宗敎와의關係만은 別斷할수없는 關係를 가지고 宗敎儀式에多大한 影響을 주고있었던것은事實이다.
이리하야 歲月의 흐름을 따라서 十七世紀以後로 樂聖 바츠하와 핸델의 出生으로서 器樂의 獨立性을發揮해서 完全히 聲樂과 器樂의 嚴格한 區別을그은同時에 風琴洋琴樂을爲始해서 種種의 錯雜한 樂器의大曲을 創作하야 婉轉의限度가없이 自由로히樂聖을 驅使하고 따라서 森嚴한 宗敎的威儀를 表明함에極을 올리였다. 이로부터 十八世紀中葉으로 十九世紀初葉에 이르러서하이든, 모츠알트, 베도벤의三巨匠이 輩出하야 宗敎的部門에 幽閉되여있던 音樂은一個의 아름다운 藝術의性能을 發揮하야 器樂界에 一大革命을이르키여 그藝術로서의 獨立的存在를 알리우게된것이다. 勿論바츠하와 헨델같은 樂聖은 音樂의 獨立的存在의 큼을 찾었지만서도 그作曲의 崇高함과 森嚴한것은 宗敎的信仰의情調를 굳게붓잡어서 人間心靈이 神을向하는 崇嚴한儀式의 一大供獻한바가적지않다 그리하야樂器의 新發達을보게됨에따라서 여러가지의器樂이 發明되고보니 創作되는 樂曲은人의心靈에 神秘感을 주는 幽妙한樂趣의發展으로 管絃樂合奏曲等이 비로소音樂의 極을보려고努力했었다. 管絃樂이란 管樂과絃樂의合成된것으로서 하이튼때에와서는 各樂器의 使用法과 그特色을硏究해서 各己適所에使用하야 全曲에調和를시키여 놀낸만치의靈域을 밟게되였고 따라서 樂曲의生命인 그深底에 潛在한 思想의表現은 참으로 藝術的極致를 자랑하게되였다. 器樂의 巨頭람보다 創設者인 바츠하와 핸델로부터베도벤에 이르기까지의 其器樂의 變轉은 劃期的革命의 新紀元이創設되여音樂으로 一個의獨立的藝術의 世界에 誘導하였고 音樂硏究에非常한發達은 器樂의 職能을如實히 考究함에서 美感表現의成果와 作曲의 苦心으로서 感情을 움직일수있는 表情構成에 置重하게됨은 當時의偉大한 産物이였다. 그런中에도 모츠알트가死去後千古의天才樂人베토벤은 音樂史上의 功勞와 樂界全般에 一大革命을 이르키여 聲樂과 器樂에 一新時代를 그음은 다시말할것도없거니와 하이튼과 모츠알트의 到達한 頂點을 다시大成할뿐아니라 內容忠實과 思想情趣를吹入함에 힘을다했었다. 그리하야 古典音樂을完成하고 鬱勃한思想과 神秘的情調를띈 로만틕音樂의 創設者로서 이제 音樂은 絶頂에達한感을주고있다.
器樂의 發展을따라서 이러나는作曲의 精神的傾向이또한 現代的이였다. 슈-만이나 쇼판같은사람은 現代的色彩를띄고 織細敏感한 感情派의特色을 發揮하고 音樂에 詩的情調를 띄여 作曲의內容의思想은 詩歌의世界에接近한 抒情的傾向에 흐름이現著했었다. 十九世紀後半에 와구넬같은 樂家는劇作家로서 文藝宗敎에 偉大한抱負를가지고 綜合藝術의唱導者로서 管絃樂의組織上에 一新機軸를劃한사람이다.
이처럼器樂의 發展이 있어나려오는 今日에있어서 가장著名한 代表人物은 독일의 스트라우스 러시아의 챠이고부스키- 너위의 구리-그 프란스의 맛스네 잉글랜드의 엘가-로꼽을수있지만 그들의傾向을본다면 外形보다도 內容을 置重하야 詩歌的情趣를中心으로서 抒情的傾向에흐름에따라 標題音樂이이러나고 音樂的詩歌主義의主張과 音樂은 音樂인同時에 詩歌라는主張이 대두하게되였다. 사로메같은劇曲을 一個의作曲化하고 哲學的思想까지를 曲으로서表現하려고함에서 로메오와 쥬리엣트를 作曲化해서 純全히管絃의音響으로서 그精神을 表現하기에沒頭하였다.
人間은 單純한創造物이아니다. 生活을爲해서헴치는 場所가다르고 그心靈的活動의 方向이 또한 다른 人間은 오직單純한 하나로서 生에對한滿足을 갖지아니한다. 우리의生은 無限境을 밟으려하고 우리의 生命은 神秘의 힘을 잡으려함에서 이를成就하기에는 여러가지의 手段과方法이 要求되는것이다. 生活에 있어서 먹는것이 必要하다면 웃음도 또한없지못할것이다. 肉의要求가있다면 心靈的必需條件이 또한 따르는것이다. 聖經이要求된다면 노래가또한 불러질것이고 祈禱가있다면 손벽소래가 있을것이다. 人間의肉的生活에 實際에反面에 情的藝術이또한要求됨을 拒否할수없다. 우리의器樂이 衰敗해서 其踪跡을 보기어렵게된 今日에있어서 우리의 遺憾中에 큰 遺憾이다. 더구나 器樂의 必然的要求가 우리心靈에 살어짐은참말로 可嘆할바로서 그要求의衝動을 또한消滅하려고 애쓰는 基督信仰의人의 心事를또한 理解못할일이다. 더구나靑年들의 美的感鳴에서要求되는 音樂的發作을 한낱信仰線外視하는 所謂指導者의 靑年指導方針은 그무엇을 가라침인가! 信仰의人의生活의 途上을밟게함에 唯一한方便을 스스로버림은 信仰을 鼓吹하면서 一便으로 心靈의火를 재우는格이다. 기름없는 發動機가 억지로輸轉한다면 그機械自體는 어찌될것인가! 指導方針을 아지못하고 또거기에對한 能이없거든 차라리 有才의人을 善導해서使用할지언정 個人의 心軸을기름도안치고 억지로輸轉시킬것은아니다. 今日의 信者의 信仰은 여러가지로區別하는이도 있겠지마는 音樂上에서본다면 病的狀態의信仰이 今日의 우리의信仰이아닌가한다. 아희들의興은 막대들고 나무조각을침에서 自家의 音樂을 演奏하는것으로서 그情的本能의 必然的活動現象이아닌가!
이제聲樂이란 如何한것인가! 大端히 單純하고도 平易한것이다. 聲樂엔 二大種類로서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로서 器樂보다도 훨신前이람보다도 有史以前부터있었다고해도 過言은아닐것이다. 그러나한藝術로서 認識되기는 몬저 기리시아에서 爲始했다고한다. 에덴東山에 樂을누리던 아담과 해와는 時時로 나타나시는 하느님을 어떻게 기뻐했을것이며 모든自然의美의 즐김을 무엇으로 表現시켰을것인가! 情緖에서 터저나오는 노래였을것이다. 그리하야 傳來하는人種은 感情에 부닥기는 모든情緖를 幻景을따라서 읊은것은事實이다. 그리시아의 英雄譚같은것은 日本에古事記처럼 地方에서地方을 遍歷하면서 朗詠한一種의 樂團으로서爲始한것으로서 時代時代의 要求를 鼓吹한 一種의文化運動이다. 이것이 人間生活의 如何한方便을 取하기爲해서 必然的要求를 應한것으로서 音樂의存在即聲樂의存在는 高遠하지만서도 可想的의것이다. 그런데 異常한것이라고 할는지모르나 聲樂의 發達을본다면 基督敎가 盛行하는當時에 있음을보아서 人間生活에 가장 不可缺의것인것을 알수가있다. 보다도 心靈의要求인 信仰生活에있어서 聲樂은 不可缺의것이다. 中世紀에있어서 器樂과마찬가지로 聲樂은全혀宗敎를 爲해서의것이라한다. 그러나敎會에서詩歌 或讚美歌를 單純히읊던것이 漸漸繁銷한規則과錯雜한 規律에 支配가되여서 一般民衆과에는 何等交涉이없었다. 다시말하면 神의 感應에서 울어나오는 心靈的音樂이 神恩을 기뻐노래하고 救援의道를 받음에 뛰는心靈의 즐김이 聲樂으로 主를 노래할뿐아니라 聖靈의 感應을 招來하기爲한 音樂은 儀式과 暴嚴한規律로서 皮穀에 不過하는 幽閉의枯器와 生命없는갱고와리의 것이 된것은 로마敎의 腐敗相을 如實히 示現하는것이다. 이로서 內的으로 枯渴한 同時에 外的으로 疲廢乾燥해서 信仰上으로 靈的和氣를 喪失한同時에 生命藝術의 自由로운 和氣를俎喪嚴閉해서 敎會는 一種敎權階級의 遊弄物이되였었다. 그리하야 神의 주신自由의心靈이 惡搾한儀式에 蹂躙되고보니 信仰的退敗는 再論도할것없이 敎會의腐敗에 惡臭를加味하였다. 바야흐로 信仰의 一大革命이 必要했었고 藝術의 革新的勇斷行이 必要했었다. 루터는 宗敎改革의 勇士요 聖雄이였다. 그러나 繁鎻한 音樂에 革命者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하야 루터는 一切의形式을 打破하는同時에 形式主義의 聖樂에對해서 破壞의 鐵根를나리여서 淸新할뿐아니라 個人的思想을 尊重하는 산民衆的聲樂의 棋織을들어 勃興되여 敎會에서 들을수없었던 一般民衆의 和樂한 聲音을 듣게됨으로부터산信仰의 躍動이 있는反面에 心靈的恩賜의 感鳴된藝術의 아름다운姿態가 自然의神秘美를 裝飾하고 나타나서 民衆個人個人心靈에 神秘的快美를 주게되였다. 그리하야 敎權과 錯雜한無用의 儀式에一大鞭撻을 加하는同時에 幽閉되였던 自然美의情調는活氣를 띄고敎會에 찾어들어 神을 만나니 그들의 靈感에 얻은바 情緖의 衝動으로서 日常生活에서 感美를 보든 民謠는 讚頌化하여 音樂은人生에게 보다도宗敎에 없지못할藝術은 長足의勢로 日興月長케됨에따라서 敎會는 좀더 生氣를띄게되였고 信仰은좀더自由롭게 神과接觸感의快味를 얻게되였다.
그러나 聲樂도文學美術及器樂과 마찬가지로 宗敎를 奪離해서 一種藝術로서의 獨立을 告하게된것은 近世史의 開幕인 文藝復興期였다. 常時社會相은 各方面에 腐敗를 極함에 人間은 憎惡를 느끼는同時에 옛날의學術과 藝術을 硏究하게되고 또한憧憬感을 가지게됨을 따라서 基督敎에囚閉되였던 音樂도 亦是 쓸데없는繁鎖한規則과 形式에抱泥되고 枯淡無常에 厭憎이 남에서 心情그대로를 表現하는 無修飾의 古代音樂의情趣를 恩慕하게되였다. 그리하야 이에結果는 歌劇과 神事劇의 隆盛을 보게됨을따라서 聲樂은 宗敎를 離奪해서 그性能을 獨立的으로서 表現하는同時에 人의思想과情緖를 調和하는 道具가된것이다.
이리하야漸次로 오페라의勃興을 보게됨으로부터 樂劇이 創設되여 種種의 標題를가진 樂曲이 産出되였다. 十六世紀頃에 야곱, 에리라는사람의 音樂悲劇의 樂曲은 當時世界를 風靡하는同時에 이태리를 비롯해서 獨佛英等各國에서 相當한 代表的作家들이 이러났다. 이처럼 音樂이 獨立的氣勢를 떨치매 中世의宗敎家와 慈善家들은 一醒해서 오페라와 마찬가지로서 神事劇이라는것을 創作해서 養老院或은 老幼病者들을爲해서 그리스도의事蹟을 一種音樂으로서 劇風을 만들어 勿論不完全한것이였지만도들려주었었다. 핸델같은 樂人이 이러나서 오라토리오의 傑作을 내여서 宗敎役割에 多大한 供獻을 주었다. 그作品은 無比의 珍品으로서 材料는 聖經에서 取入해서 端嚴莊重하고도 宗敎的情調가 넘치는 樂曲으로서 管絃樂의 伴奏를 添付한 獨唱, 合唱曲이였다. 이야말로千古不變의逸品으로 今日에 및음은 이렇듯 아름다운 音樂을 腐敗로 놓진今日의敎會에 저윽이慰勞가되는 바이다. 따라서 바츠하의 基督受難樂같은 것은참으로 神恩을 渴求하는 心靈들에 新鮮한 한잔의물이아닌가! 따라서베도벤의 宗敎聲樂 「감남山의그리스도」란樂曲이야말로 그얼마나 우리의信仰에 도움이있는것인가! 이렇듯 發展하는 聲樂도 器樂처럼 詩的表情의縹渺한 情趣를 等閒히할수없는同時에 詩와 劇과의 調和를보게되였다. 勿論聲樂은 입으로 노래하는것이매 歌辭가 必要하고보니 詩와의 끊을수없는 관계가있지만서도 또한歌劇을 버릴수없음에서 發展된 聲樂은 音樂劇을 産出케된것이다. 이로서單純한 歌謠曲은 漸次로 廣大한思想을 넣어서 諧律로서 表現시키기에 不絶한努力은 베도벤에게서 一轉期를 劃한 同時에 樂曲과 詩歌를倂合시키여 詩情을 聲樂에서 圓滿히 發揮시켰다. 그리하야 音樂과 詩歌가握手되는同時에 슈만같은 樂人은 近代的傾向을 띄여서 器樂의伴奏로서 聲樂의 詩的表現을 補助함에 새로운 成功을하였다. 따라서 뒤를이여 나타난 와그넬은 樂劇의 巨匠으로서 音樂家의 任務만을 다한것이아니라 저의音樂은 哲學的思想을 表現시키는 機關이였었다. 그리하야 音樂은 單純히 音樂的藝術만이아니라 內的思想表現의 한道具인同時에 音樂은 저의 詩요 哲學이오 宗敎였었다 그러므로 詩人과 樂人의 握手가있을뿐아니라 멘델손같은 樂家는 詩聖케데와의 友人이였었다. 이처럼 音樂과 詩는握手ㅗ디여 人의生活에 多大한 衝動과 影響을 주게되였고 따라서 在來의 遊戱作風을離奪해서 藝術을 爲한 藝術의 境으로부터 人生을爲한藝術의 境까지에進展되여 「音樂은 時間에 아루삭인 全人格의刹那的燃燒」라고까지의 眞摯한 思想과 態度로서 製作된樂家들의 多大한 作品이 産出되였다. 勿論 各人의作品이 各異한 情趣의 區別은 있을것이나 何如間音樂은 우리의生活과에 密接한關係를 가저 人生의詩, 哲學을 表現시키는 한藝術로서 決코 「音樂은 音響으로서 組織된建築物」이라는 枯廢物이아닌同時에 音響을形式的 排列노任務를 다한다는時代는 지나가고말었다. 이처럼 人間生活과의 密接한 關係를가진 音樂을 나自體生活에서 어찌 뽑어버릴수가 있을것인가! 더구나 信仰生活을 基礎로하는 信者로서는 때로는 落淚가있고 或은 웃음이있고 또는 神恩의 感激함이 넘처질때에 其生活의表現은 무엇이랴? 아름다운 藝術의 하나로서 情緖와 思想과의調和된 音樂이나타날것이다.
그러하면 現代基督敎人으로서의 보다도 敎職者로서의 任務는 무엇인가! 衆生의 心靈을 이끌어 神의接觸을 시키려하고 自由의個格心靈에 感應된 恩賜의 情調그대로 表現시키여 信仰生活보다도 한층더나아가서 그의完全하심에 到達하려는 眞正聖潔한 生活에導入하고 또一人格을養成시키려는 敎職者의 깊이알어야할것이고 覺醒해야할것이다. 藝術은 人生에게 뗄수없는同時에 音樂은 神恩을 感受할수록 없이할수는 到底히 不可能한事實의 存在이다. 前號에 잠간技術한人格이 되여야할것이다. 나의經驗으로본다면 靑年들의 信仰을 讚揚隊에서 얻음을보았다. 따라서 神學校時代에 音樂을 가라쳐보았다. 그때에 神學生들은 敎役者요 또는 여러方面의 指導者들로서 歌訟에對한 趣味가없는것을 볼뿐아니라 도리혀그必要感을 가지려고도 아니함을보았다. 그러나 한번은 復興會를 지난뒤에 神恩에 무르녹은 感激에 넘치는 心靈의熱은 그들을이끌에 讚頌敎援時間을 찾어드러오는것을보았다. 特別한 恩感이 있은때마다 그뒤로는 音樂時間에 學生數가 增加됨을 三年을繼續해서보았다. 따라서 찬송배흘때에樂曲의性質과 그精神을 說明하고 單只敎援에만 힘을 다치않고 靈感의 情緖的表現에 힘을 傾注할때마다에서 그들의 靈的感受를 엿보았었다. 나自身의經驗을 읽어보건댄 音樂은 우리信仰生活에서 뗄수없는 最重要必需의 存在인것을 再論할 必要쫓아없는바이다. 그러므로 今日의 내敎會에서 神을 찾는 뭇心靈들의 情緖를 無限大에 끄러올릴수있는 音樂은 廢할수없을뿐만아니라 장려치않을수없는 存在의것이다. 이제 나의神學友人들의 音樂에對한 徹底한 理解로서 여러敎役者諸位와 敎會에 던지는 本部의 音樂記念號는 多大한衝動과 結果가 今日의 나의敎會에 있어지기를바라는同時에 아름다운 生命이 뛰며 神恩을 맛볼수있는 不朽의 藝術的音樂의 象牙塔이 높어지기를 빌어맞이아니하는바이다. 拙筆을 내못부끄러워하며 나의感想과 音樂史의 一小局面을 읽어紹介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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