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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예술적 가치와 신앙생활의 관계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음악의 예술적 가치와 신앙생활의 관계 音樂의藝術的價値와信仰生活의關係
종    류 논설 論說
필    자 길진경 吉鎭京
출처정보 신학지남 神學指南
연    도 1937-09 昭和十二年九月
면    수 42 (42)
기사

人間은 感覺과 情緖에 訴하는 藝術을 떠나서는 生의眞味를 맛볼수없다. 黃金의 짠듸발헤 靑玉같은 엄이돗고 종달의 노래하는 金방울소래가 銀盤같은 空中에 사모친 陽春이 암으리 좋타해도 自然의 에네르기의躍動하고 모-든現像이 或은 形象藝術노 感覺에 接하고 音樂으로 情緖에 訴함이없다면 生에眞味를 차저볼수없는 同時에 오직 人間이란 無意味한 肉塊에 不過할것이다. 그러타고 嘯嘯한 金風에 울니는 梧桐에 枝葉소래가 다만 感傷的으로서 生의幻滅을 招來하는것이아니고 드높고 맑은 하늘에 붓그러운듯이 一點의 黑雲을 낫체가리우고 솟아 오른 가을달이 亦是 哀喪的으로서 生의破滅을 북도두어주는 것이아니다. 環景에서 感觸되는 모든生의 苦, 樂, 喜, 悲, 淚, 笑는 生命藝術이다. 그리하야 「苦盡甘來」란 格言은 生에對한 藝術의 價値를 힘것禮讚한 一句라고 生角한다. 勿論生을 激勵한金言이지만두 그一句를 불너놓은 그사람이야말노 人間生活의 藝術的價値를 절실히 늣기였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테레스는 「藝術은 自然의 模倣이라」고하면서「自然을 떠나서는 藝術이 存在할수없는 同時에 自然을 內容으로 하는것이기때문에 自然은 어떠한 藝術보다도 優越하다. 에기서 模倣은 생긴다 그런데 其實은 自然의形을 비는것뿐으로서 心情上으로는 模倣的이라고 할수가 없다. 도리혀 自然의 缺한것을 補充하는것이 藝術이다」라고햇다. 自然을 버서나서는 人間을 볼수가없다. 그러나 人間은 自然을 超越치않코서는 生의 靈域을 發見할수가 또한없다. 그리하야 獨逸에 렛싱구는「藝術은自然의 完成이라」고했다. 그것은 情緖에 感觸된 自然이 奇妙한 藝術노 表現될때에 도리혀 自然을 超越한神秘를 늣김이있는 까닭이다. 세링구는 「藝術은 有限의材料(自然)中에서 無限의精神을 捕宿하는것이라고」햇다. 自然을 超越해서 超自然의 靈域을 征服하려는 人間存在의 眞意를 喪失한것이라 아니할수없는 同時에 生의 窮極的要求는 人間完成到達 途中에 眞, 善, 美, 聖의極致된 「藝術의 表現을 보려함에있다. 萬一 人間이 藝術的本能을 所有햇다고하면 우리의生의 모-든動作이 또한 藝術노 表現되지않을수가 없는것이다. 그런고로 라틘格言에 「藝術은 길고 人生은 젊다」고 함에서 생각한다면 藝術은 圓大하다. 이를 좀더 아름답게 表現하려면 相當히長久한 時日과 努力이 必要하다. 그러나 이에應하기에는 人間은 넘우 젊고 體力은 貧弱하다. 그리하야 人間은 좀더 잘살고 좀더 아름다운 藝術을만들도록하지 아니할수없는 同時에 우리의 生은 模倣, 遊戱, 表現, 裝飾等 여러가지의 衝動으로서 實際에서좀더 努力을加해서 藝術的本能을 表現하는것이다. 이에서 人間은 웃고 울고 탄식하고 즐기는것이다. 人間은 存在하고 藝術은 人間의 本能的인 만큼 이처름 不可分離의關係를 가진 藝術가운데 하나인 音樂은 우리의信仰生活에 또한 不可缺의 하나이다.

音樂은 情的表現의 最重要한 役割을하는 藝術中에하나로서 人의感情을 傳達하는 手段의 第一의것이라고할수있다. 音樂이 藝術의 하나로서 獨立의存在를 認定하게된때는 第十七世紀이였다. 發展식히려고 努力하였으나 第十七世紀에 들어서는 其硏究方式을 一變해서 이태리에서는 오페라, 오라토리오, 소나타三形式으로서의 創生됨을 따라서 英國, 獨逸에서도 前世紀의 器樂이 다시금 發達이 되였다. 이로붙어 第十七世紀末에 와서는 올닌, 피아노의 優秀한 作曲家와 演奏家가 나서 普遍化가되는同時에 從前에는 音樂이라면 敎會樂으로 其存在가 알니워젓던것이 바츠하와 핸델 같은 樂聖의 남으로붙어 獨立的으로 藝術의 價値를 높히였다. 이點을미리워본다면 聖經에 나타난대로 音樂은 얼마나 人間의 靈性에 接觸하구 있는것으로 認定하구있었던것을 알수가있는同時에 音樂은 決코 一種의 娛樂이 아닌것을알어야할것이다. 그래서 聲樂의 波動으로 나오는 노래가다- 音樂이아니오 器樂의音響이 또한音樂이아니다. 이즘所謂 쨔즈같은것이나 흔히 레코드로 流行하구있는 모든 流行曲이 音樂이아니다. 音樂은 리즘과 할모니를 基礎로서 音의 强弱, 高低, 音色으로 旋律을 構成하는 同時에 人間이 眞正으로 要求하는 情的表現의 藝術노서 生에對한 절실한 늣김에서 울어나오는 生命의 힘이 潛在한藝術品이 아니고서는 一種의娛樂에 不過하는것이다. 베도벤은 音樂으로서 人間의靈性을 高尙偉大하게 할수있은것을 確信하고서 眞摯과 雄大, 熱烈노서 樂風을 成就식히는 同時에 九篇의 심니는 그야말노 一聞에 文字그대로 人間의靈性을 있끄러 無限大의境에 올니는感을 얻을수있은것이다. 바츠하같은 樂聖의 그리스도의 受難의 情景을 描寫한 樂曲은 참으로 人間의 情緖를 깨끝하고도 거륵하게하는 없지못할 아들다운藝術品의 하나인名曲이다. 人間生活의 모든表現은 動作과 努作의 造成品에있다고 할것이지만두 情緖에 깊이 늣긴 바에서 터저나오는 音樂이야말노 人間의 아름다운 藝術品이다. 사람이 살어스며 藝術이 없을수없고 情이있으며 詩歌를 읊는 音樂이없을수없는 同時에 信仰을基礎로生活하는 信者로서 音樂을 除外할수도없고 輕視할바도못된다. 人間은 神을 차저슬제 깃븐노래하고 神을 떠나 暗膽해질때 또한哀歌의 읊음이있는것이다. 主님은 其一生을 落淚하섯으니 즐거운 노래없었어도 마즈막유월절에 聖禮막음에 노래하섯고 十宇架上 運命에 노래하섯다. 勿論 이에對한 種種의 推想的解釋이 있지만서두 人間으로서 當面한 喜, 悲, 極致에 울어나오는 情緖의表現은 노래인것을 엿볼수있다. 勿論 더러워지고感覺을 喪失한 火印마진 心靈을 所有한 人間이 무슨眞正純潔한 藝術品을 造成할것이랴만은 神의 恩寵으로서 感鳴된 情緖는 和答하는 노래의 音樂을 짜아낼수있는 것이다. 구약을 通해서모든 聖徒들을 보던지 신약에서 聖徒들의 書信을 읽던지 노래를 듯지않을수없다. 하늘에 榮光의樂의 極致를 說明한 聖經의 記錄을 보건대 和答의노래가 우러젓고 地上에 聖徒들의 信仰의 豊富함을 表現함에도 詩와 찬미와 노래로 互相和答함에있다구함을 읽건대 藝術的本能을 所有한 人間의게서 音樂은 不可缺의것인 同時에 信仰生活에있어 더욱이 其表現이 音樂이 아니구서는 우리의 情緖에 滿足한 感을 얻을수없는것이다.

宗敎는 藝術이라고함은 지나친말이다. 그러나 一便에 眞理도 없는바는아니다. 今日의 敎會는 形象藝術에 넘우도 等閑視하는 感이없지안타. 建築에 無關心하고 彫刻에 無理解며 繪畵에 無趣味는 宗敎線上에 선나로서는 理解할수없는일이다. 더구나 音樂에對해서 念頭붙어 動함이없으니 참으로 可嘆할바이다. 公義의 아래서 死亡苦를 격그며 永滅의 그때를 기다리며 울던 人間이 神의恩寵으로 永生의特許을 얻음에서 그無比의 快樂은 더할데없는 아름다운 노래로 表現되는것이며 노래없이 喜樂의 表現이 어듸있으며 其表現이없이 快感을 엍어케 맛볼수있을것인가! 나의生이 神恩에 잠길스록 感謝의祈禱는 하늘에 音樂이오 나의노래는 하늘의 즐거움인것이다. 天과地의 聯結은 和答하는 노래에 있는것이아닌가! 하늘의 모든榮光은 極致된 形象藝術이오. 和答하는 노래는 完成된 거륵한 音樂이다. 담장밑헤이슬을 한입물고있는 黃菊의꽃을 볼때에가는 歲月을앗겨 맻인 눈물방울노 詩를 읊는것이나 꽃우헤 날구있는나뷔를 볼때에 우서반기는 꽃을 춤추는것이라고 노래함은 藝術의 情趣의 表現은 各異하나 感覺으로 부터의 接觸된 情緖는 一種의 表現된 아름다운藝術이다. 生의 窮極的 要求인永生을 目標로 向進하는 人間이 神의攝理에 順應하는 心靈이 받어드리는 神의 아름다운 속살임은 其人間自體에서 神恩에 무르녹은 情緖가 아름다운 音樂으로서 表現됨이 없을수없다. 文盲의 老婆가 예수를 自己의救主로 받는때에 表現된 藝術은 文字도 아니오 彫刻도아니다. 價値로 보아서도 批判의 餘地도 없거니와 벌어진 그입에서 나오는 音響은 其自身에있어서 가장 完全히 表現된 藝術이다. 보다도 우리의찬송가에 아름다운 不朽의 歌曲들은 옛날의 信者로부터 危險에서 救出됨에서나 平和의啓示를 봄에서나 其心靈을 通해서 觸感된 情緖에서 表現된 優雅한 音樂이다. 우리의信仰이 情緖를 除外하고서는 未完의感이 있다고할것이면 無限大의 神恩을 노래하지 않을수없는 우리의 情緖는 藝術의하나인 音樂을 等閑視할수없는것이다.

音樂은羅列된 音符를 따라서 聲帶를 波動식힘에있는 單純한것이아니다. 人間이 其情緖에 自然으로부터의 感鳴된 自然以上의 神秘境을 其樂法을따라 秩序있게 音符를 排列할뿐아니라 몬저 리-즘에 마저야한다. 이것은 音樂上에 있어서 拍子라고 하는것으로서 線, 形, 音等의 規則的反復을 意味한것이다. 다시말하면 所定의 時間的循環과 變化의規律이 있는同時에 變化에는 반드시 如何한目標의 統一이 있어야하는것이다. 우리의 恒用부르는 찬송가라도 이 리즘에 맛지아니면 도리혀우리의 情調는 感傷的이되구만다.
다음으로는 할모니가되야한다. 이것은 調和란意味인데 高低와性質이 各異한 二個音調以上의 調和를 意味하는것이다. 그러므로 찬송가에 音符를보면 普通으로 一個以上 四個의音符表가 間隔한 同位置에 記錄되어있는것을본다. 이音符는 各其音響이 다른것으로 調和되게 되어있다. 이것을 四部樂曲이라고 하는데 흔히 讚揚隊가 女子와 男子가 混合이되어 노래를하는것으로서 이것은 音樂上으로 어떻게 아름다운지 알수없는것이다. 獨唱도 참 아름답다. 其樂曲에 무르녹은 情的表現은 聽衆으로 하여금 陶醉케한다. 그러나 男女의合唱則 混合코러스의 其藝術的情趣는 참 아름다울뿐더러 情緖의 陶醉되는바는 神妙함이있는것이다. 다윗의 合唱隊라던지 하늘의코러스라던지의 文句는 其藝術的 情趣의價値를 그대로表現하는 말이라구생각한다.
따라서 音의 强弱과, 高低, 音色에또한 注意가있어야한다. 높이만한다고 잘하는것이아니고 熱情的이아니다 힘껏 고함지른다고 聲帶가좋구 잘하는것이아니다. 音色에主義가 있어야한다. 우리는 恒常熱心이란말에 音樂의 價値를 沒却하구서 音樂의 情趣를 喪失하구만다. 强弱 高低에 調節을하는 同時에 音을 아름답게해야 하는것이다. 차라리 音樂의 專工이없고 聲帶의 修鍊이없다면 熱心으로 고함이라도 지르는것이났다구 할넌지모르나이것은 音樂上 아주 惡性의障碍이다. 고요히 神의啓示를 받아 其心靈의노래가 참아름답게 그입으로 表現될때에 옆에서 갑작이 고함을 지른다면 그얼마나 그의神秘한 情趣에 물을 타는것이될것이랴! 勿論 普通禮拜時間에나 特別會集에 心靈的感化와 役事를 보기爲해서 音樂은 必需의 準備工作으로서의 없지못할것이다. 그러므로 靈的如何한 感觸이 되기까지의 熱이있어야하겠다. 노래는 神恩을 招來하는 情緖의 言語이다. 枯木속에 업데인 새의첫노래는 陽春을 부르고 花堺에 웃는꽃은 綠陰이 욱어진 여름을부르고 시내가에 丹楓옷을 입은나무가지에 맴이는 가을을 부르고 마당귀에 붉은 숫닭은 누른 조를 쪼으며 겨울을 부른다. 自然은 其成長을따라 生의適合한 時節을 불너 各己 아름다운 藝術品을 남기만만이 아름다운 藝術속에 뭋이여 사는 人間의 남기는것은 무엇이랴! 다- 例擧치 못하지마는 적어도 敎役者로서는 音樂이 如何한것인가만이라도 아는同時에 조금의 鍊達이라도 있어야할것이다. 神의 無限大 愛가 우리心靈을 慰撫하고 예수의 無比의恩惠가 우리의 情緖에 가배얍게 나려덮일때에 쏟아저나오는其表現이 무엇이랴! 神人의調和된 表現은 互相의 즐길수있는 노래가아닌가! 人生의 第一되는 目的은 하나님을 永遠히 즐거워하며 그를 깃겁게함에있다면 우리의 心靈에서 울어나오는 表現은 音樂이 아니될수없는것이다. 노래는 感謝의表現이오 感謝는 心靈이 神恩을 느낌에서 나오는것으로 하나님을 노래하고 그의恩惠를 永遠히 찬송하는 우리의 信仰生活은 音樂을決코 等閑視할수없는 가장 아름답고 不可缺의 藝術이다. 信仰의 表現은 무엇이냐 死亡할人間의 生이要求하는 神恩이其情緖에 調和됨에서나오는 感謝의 노래가아닌가! 그리하야 우리가 互相形言할수없는 神恩의生活을 노래로和答해서 滿天下에 우리의알고 받은바 無限大의 恩寵을 가장 아름답고 微妙하게 表現하는同時에 音樂이 우리의 會合에서나 個人의生活에서 끈처지지않키를 바라는바이다.

그러면 藝術이란 如何한것이냐? 「헬나語의 arein인데 聯結한다. 適合하다는 意味로서 이로부터 어떤 目的을 達成하기爲해서 要具, 手段, 方法을 利用한다는것을 藝術의 主要한 意味로하는것이다」따라서 心情을쓰는것도 元來藝術이다」 이것을 미리워본다면 藝術은 動的이다. 人間이 其目的을 達成키爲해서 使用하는 手段과 方法이 生命의 活動으로서 表現되는것인데 이는 五官을通해서 感觸되는것이 內在한 生의要求의 感鳴된바가 精力과 努力을加해서 再現되어 人의情緖에 評함이될때에 비로소表現된 藝術이라고 하는同時에 藝術은 언제나動的이오 生의製作品이다. 카-스레-쿠는 藝術의 尋求하는바 그것은 製作이라고했다」 信仰生活을 主로하는 敎役者로서는 藝術的作物을 創作하거나 或은 再現식히는 役割을하는 藝術家가 되어야할것이다. 그래서 敎役者는 神人의聯結과 神의意志와 人의要求에 適合하는點의 如何한 創作的藝術의 表現이있어서 每日같이 뭇信徒들의게 뵈여주지 않을수없다. 그리하야 우리의 산心靈의活動은 信仰의標的인 救援의道를 完得하기에 努力하는要求되는 必需의것과 手段 方法은 人의 心靈과 情緖에 깊이 感鳴되는 優秀한 藝術的作品의 表現이되야하겠다 敎役者의 任務는 그의羊을 치고 기름에있다. 그의羊의게는 먹을 꼴이없는것이아니오 있을 집이없는것이 아니다. 聖經도있고 祈禱할집도있다. 그러나 파피니의 『基督의 生涯』를 描寫한 作品은 人人에 心靈에 訴함이되고 바츠하의 그리스도의 受難情樂을 描寫한樂曲은 人人에 情緖에感鳴됨이 있는 아름다운 創作的藝術品으로서 길이 人間에 如何한 觸感을 주구있는것이다. 그리하야敎役者는 時間時間에서 超自然의 神秘的經驗을 얻는同時에 其經驗的事實의 美가 그들의 要求하구있는 不朽의 藝術品으로 表現되지않으면 안되겠다. 그러므로 今日의 朝鮮敎會를본다면 小說, 詩, 造形美術의 作品이 必要하다 그러나 이보다도 今日의 敎會에있어서는 音樂은우리의 宗敎上儀式에있어 重要한 順序의位置를 點有한만치 우리의 急先務의것의 하나이라구 생각한다. 그것은 人間의情緖를 捕捉하는 唯一의것은 音樂이기때문에 人間의心靈을 神恩에 結聯식히려는 敎役者로서는 其生活이 몬저 神恩의調和된 和答하는 노래와 詩와 찬미가 되는同時에 其表現되는 音樂은 人心에 부듸칠수있는創作的藝術이 되야할것이다. 이러므로서 우리는 個人生活에있어서 可及的完全에 잊이않을수없다. 그것은 其表現되는作品이 個人의心靈과 情緖의것임으로 그個性과 人格이表現되는 까닭이다. 故로 敎役者個人에 있어서 官能을通해서나 理得으로서나 神과의調和된 生活의表現이 될뿐아니라 心情이神恩에 무르녹은 感謝의 音樂的表現은 創作的藝術品은 아니라도 俳優와 演奏者처름 再現的藝術家의表現일망정 되야할것이다. 우리는 神의 일너주시고 보여주시는 그대로 웨처노래하자 今日 우리의 生活은 넘우도乾燥하다. 生命없는 枯木이다. 藝術的表現이없으면 其人間은죽었다. 敎役者의게서 感謝의表現이끊어지고 그입에 노래가 살어지면 其心靈은 잠을자거나 죽었을것이다. 그래서 敎役者의 信仰生活에서 藝術的價値가 圓滿한 音樂的表現이있는 同時에 이를 重視장려하야 生의 움즉임이있는 산敎會가되기바라 마지아니하는바이다. 七月 中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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