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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 탈춤 좌담회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봉산 탈춤 좌담회 鳳山탈춤座談會
종    류 좌담 座談
필    자 +++ +++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37-07 昭和十二年七月
면    수 58 58
기사
[사진]-(사진은 座談會光景)-
[사진]-취승-立姿-
[사진]老丈舞의一場面
[사진]獅子舞의一場面
[사진](兩班춤의一場面)
[사진]兩班춤의一場面

出席人士
民俗學會側 宋錫夏, 孫晉泰, 李鍾泰
舞踊團側 李東碧, 韓相健, 羅雲善, 金辰玉, 金景錫, 金確實, 嚴善珠, 金眞淑
一般側 李惠求(放送局) 李相南(照明家)
本社側 咸大勳, 盧子泳, 玄仁圭
時日 五月十九日午後十一時
場所 京城黃金町 金閣園

(咸) 民俗學會主催로 이번鄕土舞踊大會의 公演이 盛况을 일우운것은 매우 기뿐일입니다. 이제 朝鮮日報出版部主催로 여러분을 뫼시고 座談會를 열게된것은 매우 光榮으로 생각함니다. 그리고 鄕土舞踊藝術도 이앞으로 꽃필날이 있을것을 期待함니다. 이제 民俗學會代表 宋錫夏氏에게 委囑하여 座談會는 進行되겠읍니다.
(宋錫) (李東碧氏를 바라보며)李東碧氏! 將來維持方針을 좀 말슴하여주시오.
李東. 十年前부터 내가 責任을지고 五月端午이면 年年이 公演을하여 只今끝 維持하여왔읍니다. 그러든것이 民俗學會의 宋錫夏氏가 우리의事情과 內幕을 調査하여가지고 여러方面으로 紹介하여주시는 同時에 이번에 舞踊會까지 主催하여주신것은 우리에게 넘치는 光榮으로 생각함니다. 이후 어떤方法으로 維持와 普及에 힘쓰겟느냐고요. 勿論 우리의힘은 弱하고 普及하기도 어렵읍니다. 여러先生들의 協力이없고는 不可能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번公演이 盛况을 일운것은 무엇이라 感謝하올넌지 形言키 어렵사오며 故鄕에도라가서 여러人士에게 報告하고 더욱 奮鬪하겠읍니다.
(宋) 이舞踊이 羞恥라고 생각지마시고 낫분것은 버리고 좋은것은 發達시키며 많이 努力하십시오. 그리고 資本家들의 後援도 얻어서 한번 크게活躍하여 보시지오.
(咸) 民俗學會의 後援으로 鳳山탈춤을 發展식히고 改善케하는 方針을 가지는것이 어떠하겠읍니까?
(宋) 글세요 그 舞踊의 文化價値를 檢討中인데 아직 方針을말하기 어렵습니다. (웃으며)그리고 그 基金을 調達하기가 좀어렵읍니다.
(咸) 이번大會로보면 一般의人氣는 대단한모양인데 이후 서로 連結할 意思는 없읍니까?
(宋) 암 있지오 그러나 그舞踊의 時代性을 考慮中입니다. 專門的立場에서 좋다는成案만 얻게되면 서로 連結도하고 이후 그舞踊의進步發展을위하여 協力과援助도 앗기지않으럼니다.
咸. (孫晉泰氏를 바라보며)이번舞踊을보시고 或, 곤칠點이라든가 或 美化할點이라든가 생각하신것은없읍니까?
孫. 두가지 생각이 있읍니다 이舞踊은 鳳山과같이 野外에서 하는것과 이번 서울과같이 舞臺에서하는것 두가지가 있는데 鳳山서 한다고하면 세리」를 곤처야 하겠고 무대에서 한다고하여두 民衆의智識이 높아지는때이면 반드시 세리를 곤처야하겠읍니다. 그세리푸속에 朝鮮情調가 있어야 하지 않읍니까? 그리고 얼골에 쓰는假面두 어찐지 꾀 까다릅두군요. 탈各個에 特色이없으니 그方面의專門家가 나서서 곤첬으면 좋겠읍니다. 그밖에는舞臺經驗이 없으니 別한 意見이 없읍니다.
宋. 假面여들개는 꼭 같아야함니다. 그래서 八目춤이니까요.
孫. 웨 何必같아야할가요. 各個마다 個性이있으면 조치안을가요.
宋. 個性이 必要치안치오 다 같은役이니.
孫. 獅子춤에 獅子面이 유치하두군요.
宋. 그點엔 同感입니다. 獅子面이 事實的이 아니고 實感이없어요. 좀 造形美術的으로 곤첬으면 좋겠두군요.
咸. 좀 俗된것같두군요.
宋. 거기는 原料關係도 만치오. 獨逸물깜을 쓰기때문에 外形으로는 찬란하나 俗되게되엿지오. 그리고 金紙銀紙도 最近것이라 滋味가 없어요. 百年前것이라는것을 얼마前 北靑에서 보앗는데 아주彩色이 좋두군요. 그런데(李相南氏를 바라보며)假面과 照明關係는 어덧읍니까?
李相南. 글세요. 假面과 照明의關係에 對하여 前부터 생각한바이 없어서 좀 애를 썻읍니다.
咸. 野外가 原則的이니 將來는 野外에서만 할것인가요. 或은 舞臺에서도 關係가 없겠읍디까?
李相. 照明에 對하여 意見이 많었읍니다. 스테지型의照明을 써달라고 말이 만었으나 나로서는 野外에서도 舞臺의氣分을 내려고 애를 만히썻읍니다
宋. 觀衆에도 層이많어서 勞人도있고 인테리層도있고 學生層도있으니 그래서 照明에도 意見이만었지오.
李惠求. 이번에도 京城『그라운드』같은 野外에서 하려다가 舞臺로 가저왔지오.
咸. 그런데 세리를 잘 알도록 하게할수는 없을가요.
羅雲善. 假面을 얼골에대면 이마가 앞어서 수건을 대고 하는데 옛날보다는 적어젔입니다.
盧子泳. 大體 鳳山탈춤이란 언제부터생긴것았니까.
宋. 글세요 그年代는 仔細히 알수없으나 文獻에나타난것은 明나라 董越이라는 사람이 朝鮮에 使臣으로와서 「朝鮮賦」라는글을 썻는데 그中에 鳳山탈춤이 記錄되여있읍니다.
盧. 이번여러가지 춤을 求景하여보았으나 그中의한가지로 八目춤같은것은 그춤가운데 무었을 意味한것입니까?
宋. 글세요. 八目춤이나民俗舞踊은 憎惡와 特殊階級에對한 모욕과 三脚戀愛의 葛藤等을 主潮로한것입니다. 新羅때의 舞踊은 隋唐의系統을 받고 高麗때의 舞踊은 元나라系統을 받었는데 朝鮮의舞踊은 高麗末에와서 完成을 본셈이지오.
羅雲善. 松都王建時代에 신돈이라는중이 王后를 겁탈한일이 있는데 그래서 그때에 중들을 迫害하고 멸시하였지오 李朝때에 일으러서는 그복수로 중들을 욕하는춤이 생겻다고함니다.
咸. 兩班들을 下人이따리고 反抗하는 춤이있는데 이에대한 民俗學者의考證을 말슴하여주시오.
孫. 그런事實은 李朝中葉에서 볼수있는데 兩班階級과 僧侶階級에대하여 一般이 憎惡를 늣겻는바이것이 一般民衆의 心理로써 表現된것이 그춤이라하겠읍니다.
盧. 朝鮮各地의 朝鮮춤으로 大槪 어떤것이 있읍니까?
宋. 춤에는 初中終의 세가지가 있는데 鳳山탈춤은 그中의 終이라고함니다. 그래서 춤에는 異端이라는사람이있지오. 그리고 南鮮에는 춤이 센데 密陽에는 덕백이 춤이있고 統營固城에도 춤이있읍니다
李鍾泰. 춤이란 音樂의 伴奏가 없고는 신명이 아니나는데 도도리 국거리 염불등만 반복하니 單調하지안을가요. 좀 進步시켜서 民謠와 其他노래를 伴奏했으면 좋을듯함니다. 좀 改良하는것이 어떻겠읍니까?
孫. 原來農民의 舞踊과 音樂이니만치 單調해도 좋지안을가요.
宋. 單純한가운데 農民의 眞實이 있음니다. 鳳山춤을 좋다는것은 單純과 野趣와 農民냄새가 나는까닭입니다. 리이 복잡하면 貴族的이니까요.
李東碧. 鳳山탈춤은 생긴지가 五六百年이 되였다고함니다. 假面도 前에는 木탈이었는데 二百五十年前에 紙탈로 곤첬읍니다. 이鳳山탈춤에 造詣가깊은 안초목이라는 사람이 南道로정배를 갓다가 도라와서 紙탈로 곤첫다고하지오. 그런데 八目춤中첫목을 출때에 누어서 추는것은 安초목이 첫목을 추려나가다가 사람이 많은까닭에 그만 넘어젓지오 그래서 너머진것이 싱거워서 그 근경을 그리느라고 누어서 추는척했다고함니다. 鳳山탈춤은 그때 郡當局에서 主催하여 每年五月端午마다 盛大히 擧行하였는데「아히들아 南窓西窓이다밝는다」하는 노래도 있거니와 춤을 아침까지 춘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러한費用은 郡에서 各面으로 徵收하여 補充하였읍니다. 그때는 舞踊一團이 四月初旬에 白雲庵이라는 절로 올라가서 一個月동안 밤낮 춤추고 놀고 술먹고하다가 五月端午前날에 나려와 밤이새도록 춤을 추었지오. 그러나 大正十五年부터는 내가 責任을지고 妓生組合에서 늘擧行하였읍니다. 우리一行은 모다 鳳山에서 出生한 사람입니다.
盧. 그러면 先生이 도라가신후에는 누가 後繼하시겠읍니까?
李東碧. 宋先生과도 議論하였읍니다만은 매우 痛嘆하는바이지오. 이번 나려가서 여러사람에게 춤을 배워주고 어떻게나 계속할方法을 講究하겠읍니다
李惠. 沙里院탈춤의 保存方法으로 모었이 없을는지 放送같은것으로 임이 세상에 알리어젓으니 이제는 이것을 좀더 앞으로 保存하는對策이 없을가요 每年端午같은때 출수없을지요 그것은 모두가 다要望하는것임니다.
李東. 우리一行에는 六十歲되는 老丈이있는데 이런이가 中心이되여있고 어떤이이는 八十餘歲가되는데 귀도먹고 不遠間 아마도라가실것임니다 이런이들八九名이 세상떠나면 어떻게될지 압길이茫茫함니다.
李鍾. 어떻게 獎勵할수없을는지요.
李東. 이번上京하게된것도 우리로서 榮光은 말할것없고 鳳山탈춤이 이렇다는것을 認識하여주신것을 더욱 고맙게생각함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沙里院에가서報告하고 좀더 社會的으로 問題를 이르키려고함니다. 그러면 좀더 우리地方에서도 相當히問題가되여서 保存될方策이 서지않을가함니다. 더구나 우리가 없어지면 이鄕土舞踊이 없어질테니 憂慮되는것은 말할수없고 어떻게하던지 다시있도록 하야할것임니다.
李惠. 이춤을 代代孫孫이 繼承되도록하는데 意義가 있지않을런지요?
宋. 그것은 準世襲的으로는 되여있다 할수있음니다
咸. 우리가 全鮮的으로 떠들면 鳳山에서 빼앗길것을 알고 좀더 進興할具體的對策을 생각하게도 될것이고 何如間 言論機關其他에서 먼저그것을 떠들어 認識식힐必要가있을줄암니다.
宋. 鳳山에서 이것의 文化史的意義를알고 自己地方의조흔것에對한 自信과 價値를 먼저알어야겟지요.
咸. 保存할財政的基礎가없음니까.
宋. 이것을 爲한일은 李東碧氏個人이 모든것을 애쓸뿐이고 다른사람은 다各自의 職業으로 散在하여있음니다.
羅. 이춤을출때는 會費가없어서 멫番이라도 損害를 보게됨니다.
宋. 멫萬名式觀衆이 있어도 入場料가없었음니다.
李東. 收入이라고는 다락을 지는데 商人들이 내는것박게 다만群衆이많어도 돈은안냄니다 數百年내려오는 習慣으로 그이들의 心理는 긋게 뿌리백혓다고 할수있음니다.
咸. 그러면 會의 形態를 고칠必要가 있지않을가요. 宋先生. 民俗學會의 생각은-.
宋. 學會에서는 十年할 材料는있지오 即 各地方에 다니여보아서 「시굴가구라」처름 自然히 많은사람이보도록 그리고 今日 選擧에利用하는것같이 이會의組織을 다시고처야 될줄암니다.
咸. 現存해있는 사람이 얼마나 됨니까.
李東. 七八名박게 없음니다.
咸. 그리고 女子는요?
李東. 상자舞하는 女子는 四五名박게 없음니다.
咸. 그것은 누구임니까.
李東. 鄭日仙, 嚴善珠, 金彩仙, 金眞淑, 金蘭心(病中)임니다.
宋. 後繼者養成하는方法으로는 무었이조켓음니가.
李東. 아까도 말슴했지만 여러先生님이 盡力하시는 힘과 또 地方靑年들이 新聞을보고 깨달으며 回心이나서 이러나야될줄암니다. 或妓生들은 내部下에있서 배와줄수있으나 그外에는 自發的으로 깨닷기前에는 할수없음니다. 그리고 또 脚本이없고 音譜가없어서 그性質에 따라 취발 老丈춤같은것을 배와서 繼續식히는것임니다.
李鍾. 妓生들도 다 배우면 살림을드러가게되니 靑年들을 가르치는것이 죠치않어요.
李東. 靑年들이 歡迎치않음니다. 世上의所聞과 또는 沙里院에 도라가 人氣도보고 말슴들을들어서 하야겠음니다. 먼저 硏究家 文筆者들이 떠들어서줘야겠음니다.(金景錫氏가參席하신다)
孫. 그것도 신통한效果가없을줄압니다 엇더케 이것을 職業化하도록 하는것이 죠흘듯함니다. 엇던舞踊硏究家가있어서 東京가서 이것을 興行하여보겠다고하나 춤을보기만하고는 안되겠으니 八目老丈춤을 直接배우도록 해달라고하는이가 있다고. 다만 尹兢榮氏말슴을 드렀음니다.
宋. 그러케해서는 안됨니다. 鄕土劇의 價値라든가그美風이 墮落함니다.
咸. 여러분 처음배우든動機를 말슴하여주십시요.
金景. 前에甲午前四月八日에는 妓生아이들을 골라서 춤工夫를시켰음니다. 그리고 七月二十五日 舊皇帝誕日을爲하야 三四個月式 춤準備를하야 宴會에서 추게하고 헤여젓는데 그때는 골에서식혀서 父母들도춤工夫하는것을 죠화하였지요 그때에나도 工夫하기 始作하였음니다. 그래서 三四年式 工夫하였음다.
咸. 至今까지 추시는것은?
金景. 老丈춤임니다. 배우는 順序는 첫目취발 兩班탈 墨僧임니다.
玄. 언제부터입니까.
金景. 十二三歲부터 했는데 先生은 葛釜仙先生입니다. 第一始祖는 安初탈 그담이 裴學林氏인데 이이들이할始祖임니다. 安初目氏는 限二百年前사람임니다나는 限三十年可量 이러케 추워옴니다.
韓. 그러나 거이 한사람이 다할줄암니다. 그런데 상자춤도 前에는 男子가추웟고 탈도 近年에야생겼음니다.
咸. 或춤추다가 고생한이약이 실수한이약이같은 滋味있는 이약이는없습니까.
李東. 탈춤은 다 그골에서 뽑아서하고 또年代도 있는사람들이함으로 보는사람도 있고 보고 또탈을 쓰고하니깐 실수는없있음니다. 우리집은 鳳山서二十四代채 사러오는舊家인데 祖父는 戶長 父親은文官으로 父親도 첫目을해왔으며 그다음에는 내가첫目을써왔음니다. 그래서 工夫할때는 通仁들을 몽치로 때려가며 工夫를 식켰음니다 그리다가 第一 잘추는사람을 四五名뽑아서 추웟는데 그後상자춤을출 어린사람이 없어서 妓生을식히게 된것임니다.
孫. 탈이라는것은 宗敎的意味가 있는것으로 생각합니다.
李. 이것은 한劇을이루어서 되였음니다. 상자, 八目 老丈취말 신장사 獅子舞와까지 한連絡이되고 兩班춤 또 미얄탈 南江老人와서 또그러케 되였음니다 簡單히 말하면 상자춤은 序舞인데 상자가 八目을시켜 老丈을 誘惑케하야 취발이와 신장사로世相을 諷刺하고 獅子舞에 獅子가 나와서 老丈을 잡아먹는다는 勸善懲惡의 內容을 台詞를석거 춤으로 한것이고 그다음은 三兄弟病身 兩班을식혀그때의 兩班의罪惡을 暴露하고 諷刺한것임니다.
玄. 兩班이 病身이된것은 무엇때문임니가.
李東. 그때兩班들은 났분일을 만이하야 남의婦女를 姦通한다든가 富者를搾取한다 하였음으로 自然梅毒같은것도 있었을것이요 天罰이 있을것이라고하야 病身을 만들었음니다.
孫. 果然그때 世態를諷刺한 反映으로 滋味있는것임니다
李. 그다음은 미야탈이라는 令監이 멀니다니다가 娶妻해가지고 家事쌈을하다가 老海女는죽엇는데 그래서 南江老人(丈人)이와서 다리긋을하는것임니다 그때에 마즈막南江老人춤에는 죽은넉을불너내는데 假令安初目先生의 遺族이와있으면 安初目先生넉이와서그家族을불너내임니다. 그러케되면 家族이안나올수없지요 뛰여나서는 울엇음 다. 이러케하야저녁에시작하면 밤을새워서 해떠올때까지하였음니다. 놀양사거리는춤이없고 才談이많어서 이것은빼였음니다
咸. 첫날 居士社黨舞를빼고 둘재날 끝에 몇가지를 뺐다해서 觀衆가운데 不滿한분이 많은모양인데 어찌된事情인가요.
宋. 첫날은 居士社黨舞를 뺀것은아니고 그춤은「놀양사거리」(立唱)를하는데 特殊한 가마를(轎)탄 女社黨이 立場하여 춤을추어야 本格인데 어찌된 事故인지 沙里院서 그가마가 到着되지아니하야 不得已「女사당」이 步行으로 立場한것인데 나도 觀衆席에서 暫間보니 恰似히 妓生演奏會갔읍디다. 이것은 地方에서 衣裝을 操心안한탔도있읍니다. 둘재날은 以上의 事情이기로 그것을빼고 다른것을하기로하고 李鍾泰君이 「마이크 를通하야 觀衆에게 諒解를求하고 「미얄과令監」(翁嫗舞)를 추고 「南江老人」의 白杖頭 넉두리가 있을것인데 저도 마츰 二層에있는동안 李君이 錯覺을이렇게 다했다고 안나운스한모양입니다. 어쨌든 觀衆에게는 罪悚하기짝이없읍니다.
(李鍾泰) 참말 罪悚합니다. 저도 舞臺面은 못보고 있었는데 누구인지 다끝났다고 일러주기에 無意識하게 물귀신에게 홀렸다고 할는지 夢遊病者처럼 演出맡은분에게 물어보지도아니하고 안나운스를하야 大失策을했읍니다. 그러는데 뛰여오는 宋君과 李惠求氏의 얼골이 變色됨을보고 비로소精神이나서 다시 繼續한다는 안나운스를 하였으나 唐慌해진 出演者가精神없이 미얄, 영감, 南江老人의뭇동춤을 춘모양입니다. 거저罪悚합니다.
(宋) 미얄, 令監, 南江은實際에있어도 내리꼬리를물고 出場하는故로 저드 처음볼때에는 갈피를 잡지못하였읍니다.
(孫) 李君은 그날까지 準備하노라고 連三日밤을새웠고 宋君은 身熱로呻吟하였는데 舞臺뒤에는 쓸데없는 사람들이 空然히 들락날락하였으니 李君이 錯誤를 이르킨것도 無理가아니나 그러나 저러나 大失手였읍니다.
(宋) 그저 容恕를 社會에 빌밖에있읍니까.
(咸) 收支는 맞었읍니까.
(宋) 元來收支問題보다 公開하야 一般大衆及專門家의 認識과 批判을받고저하든것이 主眼이였지요 孫君李君어찌되였나요 收支가
(孫, 李鍾泰兩氏收支를 對照하야보고)
約二百圓程度의 缺損이아닐가합니다. 費用이 八百餘圓인데 觀衆의殆半이二十錢짜리學生團體이니까요
(咸) 文化史的으로 큰事業을하섰으나 돈에 因緣없는 學者團體에게는 過重하신 負擔이겠읍니다.
(孫宋) 알아나주시는 분이있으면 그로서 自慰나할 따름이지오.
咸. 大端히 感謝합니다 이처럼 밤늦도록 말슴해주서서 크게 이座談會가 빛나게된것은 오로지 여러분의丹誠에 因한것입니다.-(때는正히午前一時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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