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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에 미국서 초연한 정열의 세계적 제금가―미샤 엘만 회견기―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70세에 미국서 초연한 정열의 세계적 제금가―미샤 엘만 회견기― 七十歲에米國서初演한情熱의世界的提琴家―미·엘만會見記―
종    류 대담 對談
필    자 함대훈 咸大勳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37-04 昭和十二年四月
면    수 152 152
기사
로시아가낳은 世界的提琴家 「엘만」의 獨奏會ㅅ날밤 나는 休憇時間을 利用하야 舞台뒤로 그를 찾었다. 그것은 봄비가구슬픈情調를 몹시 도아주는 밤이였건만 그는 明朗한態度로 베-토벤의소나타練習에 沒頭하고있다. 暫間來意를 告하니 只今은 舞台에나갈時間이 急하니 來日 午前十一時에 朝鮮호텔서맞나자고한다.
그리하야 나는 다시 客席으로 도라와 그날밤을 感激속에 그의 바이올린쏠로를 듣고 其翌日인 二月二十四日 午前十一時半 그를 朝鮮호텔로 찾었다 市內求景을 떠났다하야 暫間 기다리고있노라니 正午가되여 엘만의 적은 體軀가 玄關에 나타난다.
나는 곧 來意를 告하고 그를 붓드러 寫眞을박고나서 이야기를 始作하였다.

感激된엘만의心情
『어제ㅅ밤은 나는 감격속에 당신의 바이올린을들었오. 나뿐않이라 수많은 청중이 모-도 도취가 되였섰오』
하고 입을 떼니
『나도 감격하였오. 어떻게 청중이 내게 호이를가지는지 나도 다시 조선오고싶은생각에 가슴이뛰였오』
하고 그편에서도 감격된표정을 짓는다.
[사진] 엘만과 함대훈의 사진으로 추정
『그럼 언제 다시오시겠오?』
하니
『구미각지에 약속이 있으니 어디 어는때오겠다고 단정은 못하겠오만 기회있는대로 오렵니다』
한다.
『그리면 우리 조선일보에서 초빙하면 꼭 오시겠오?』
하고 한번 다지니
『오구말구요』
하며 맹서라고 할것처럼 몸을 도사린다 나는 그의 긴장된 표정을 바라보며 다시
『그런데 어제 청중가운데 특히 여자들이 더 많이 감격이 되였오. 한번 조선여자들을 맞나 이야기할생각은 없오?』
하였더니
『있다뿐이겠오. 그러나 나는 오늘 오후세시에 꼭떠나야 하니 어떻게하면 좋읍니까…하하하 웨미리 준비를 해두었다 보혀주시지 않고……』
하며 퍽 애석한듯이 입맛을 다신다. 그는 한참이나 그 적은체구에 로시아ㅅ사람 독특한 제스츄어를 하고웃는데 나는 다시 화제를돌려

朝鮮의印象
『조선에 어떻게 오게되였오?』
하고 물었다.
『일본에는 세게적 제금가로는 내가 맨몬저 찾어왔오. 그것이 십칠년전이였오. 그래 한번 다시오고싶어서 왔었오. 그런데 그때왔을때는 조선을그저 통과했기때문에 꼭 이번은 조선서 연주를하고싶어 나리게되였오』
그의대답은 여전히 조리정연하다.
『그럼 조선서의 인상은 어떠하오?』
『첫째 아름답고 장엄하고 또 관대해보히고 휼륭합니다. 참말 조선서 느낀감상은 이로 말할수없이 감격되였오』
『조선사람의 의복은?』
『특히 여자의 의복이 좋왔오 그러나 그제도가다르니만큼 미에대한 감상은 말하기 곤난하오. 그저 편리해보히는것같소』
『조선여자의 표정은?』
『퍽 유순해보히었오』
『그것은 조선여성이 오랜 유교도덕으로 자기의표정을 마음대로 이성에게 표시하지를 못하였오. 그렇기때문에 그 표정에 있어서도 적극성이 없고 소극적이오』
『아-그렀오? 어떠튼 퍽 온순하고 우아해보히었오. 여하간 나는 그렇게 느낄뿐이오. 더 긴말을 할수는 없는것이슲으오 나는 안해있는 사람이니 더 길게 말하단 큰일이 날것않이오 허허……』
퍽 사람이 명쾌한게 또 유모러스하여좋다.

家族은몇분?
『가족은 몇이오?』
하고 다시 나는 화제를 돌리었다.
『안해와 딸하나 아들하나!』
『그럼 웨 안해는 더리고오지 않었오?』
『더리고 오고싶어찌만 내안해는 아조 현모양처(賢母良妻)요 아들딸 교육식히기에 몸과마음을 다쓰기때문에 같이 올마음을 내지못하였오』
그는 안해의 자랑을 한참이나 느려놓는다. 이때마츰 무용가 최승희(崔承喜)여사가 자기오빠 최승일씨와 우리앉은 건넌빡스로 와 앉는다. 나는 그들이 와앉으며 인사하기에 답례를하고나서
『저이가 조선의 무용가 최승희요 당신이 연주하기전 삼일동안 대인기를 끄렀오』
하였드니
『아-그런가』
하고 머리를 끄덕인다. 잠간 말이 끊어젔다가 우리는 다시 책상우에 향그런 꽃내음새를마트며 이야기는 게속되였다.

米國에移住케된動機
『로시아는 언제 떠났오?』
『一九○四년이니 이제 삼십삼년이 되였오』
『어째서 로시아를 떠났오?』
『미국서 독주회를하고 거기 퍽 기분이좋아서 살었오. 이제는 아-주 미국에 영주할작정이오』
『스턴벍을 아오? 영화감독말이오』
『잘 몰으오』
『그이도 조선와서 퍽 좋은인상을 갖고갔오』
『며츨이나 있었오?』
그는 흥미있게 내게 뭇는다.
『이삼일 있었오. 그땐 조선기생도 보고 다른여자들도 맞나보고 또 다른영화관게자들도 많이맞나 여러가지로 많은 이야기를 하였오』
『나도 시간이 있었으면 당신에게 괴롬을 끼칠것을………』
『어째 더있을순 없오?』
하고 나는 진심으로 그를 말류했드니
『약속이있으니 어디 그럴수 있오?』
하며 그는 유감스럽게 내얼굴을 멍하니 바라본다

朝鮮音樂家에게보내는말
『그런데 당신의팬이 조선에도 상당히 많소. 레코-드를 통해 당신의 예술에 감화된 사람이 많소. 어떻게 그들을위해 멧세지를 보낼수없소?』
하니
『고맙소 그러나 나는 특별히 말할것은 없고 다만 한가지 부탁은 인류의 력사는 흥망성쇠의역사이니까요. 오늘 조선음악게가 보잘것이없어도 다시 왕성할때가 있을터이니 그저 열심히 낙심말고 노력만하라는것을 말하고싶소』
하며 힘찬어조로 똑똑히 말을한다. 그래 기자도
『고맙소 나는 이 것을 당신의말로온조선음악팬에게 말하여 격려하겠오』
하고 그를 다시바라보왔다.
『당신의 호의를 무한감사하오』
그도 내개 데사의 의를 표하였다.
『그런데 조선음악을 들어보았오? 리왕직 아악부에 갔었다고 들었오?』
하니
『참 유감이오 시간관게로 악기구경만하고 그것을 연주하는것은 듣지를 못했구려. 그래 무어라 말할수 없소. 참말 미안하기 끝이없소』
하며 진심으로 유감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서양음악의 경향은 어떳소?』
나는 시간관게로 어조를 빨리하야 일문일답을 시작하였다.
『서양음악은 고전음악으로 복귀하는 경향이 많소 그런데 이것이 또 장내음악의 기초가 될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쨔즈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오?』
『그것이 장내는 낙관할수 없지만은 어떠튼 쨔즈라는것이 현대정조를 표현한것이라고 말할수있을것이오. 그리므로 특히 이것이 미국에있어서 많은것이라 생각하오』

映畵와娛樂
『영화는 좋아하오? 그리고 영화가 가지는 특성을 어떻게 생각하오』
『영화에 대해서 많이 생각은 못해봐찌만나는그것이 후대(後代)자손으로 위해 좋은도덕을 길러줄만한것이 되는 영화면 좋다고 생각하오』
『이제는 어디로가오?』
『만주를 들러 구라파를 들러서 내가족있는 미주로 가겠오』
『취미는 무엇이오?』
『시간있는대로 장기를 두지오 장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락이오』
『바이올린은 하로 몇시간식이나 연습을하오?』
나는 질문을 무궤도적으로 하였다.
『그건 기분나는대로 하오. 그러나 열심히 나는노력하고있오. 결국 성공이라는건 자기노력에 있다 생각하오』
이때 최승희 여사가 일어서 도라가려고 내게인사를한다. 그리하야 이건 좋은기회라고 나는 최여사를 「엘만」에게 소개하였다.

崔承喜와의會見
『이분은 조선이낳은 무용가 최승희여사요 몬저도 말했지만 당신이 연주하기전 사흘동안 주야로공연을 하여 최대인끼를 끄렀소』
하였뜨니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승희여사와 악수를한다.
『영어를 아십니까?』
엘만씨의 뭇는말에 최승희여사는 『잘 몰읍니다』 하며 애교있는 우슴을 띠운다.
『언제쯤 미국가십니까?』
엘만씨 다시 최승희여사와 이야기가 버러진다.
『금년 년말쯤에나 갈것갔읍니다. 미국을 가면 많이 주선해주십시오」
하고 경쾌하게 말을하자
『녜 오시면 되도록 많이 알선하겠읍니다 꼭 오십시오. 나도 이제떠나 당신이 미국올 때쯤 미국에 갈런지 몰으겠읍니다. 그리면 그때 다시뵙지요』
한다. 이것은 우연한 회견으로 세게적 제금가 엘만씨와 조선이낳은 세게적무용가 최승희여사와의회견은 기자로써의 내게 커다란 수확을 얻게하였다 후릿한 여사의 키가 엘만을 압두하는듯 잠간 인사를하고 그들은 다시 나아간다. 우리는 그들을보내고나서 다시 자리에 앉었다.
그때 그는 목이말렀든지 「이태리벨모트」를 청한다.
한잔을 잠간 마시고나서 입을 열려는데 한시부터(한시정각이다) 유지의 송별감담회가 있다하여그의 「매네이졔-」가 인터-뷰의 중지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더 뭇고싶은것을 말하지못하고
『그럼 가시면 편지나 보내주오』
하였드니
『고맙소 곧쓰겠오』
하면서 흥분된어조로 내손을 잡는다.
그의 털많은 손으로 굳게 악수할때 나도 예술가로써의 그의 장내행복을 빌고 그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진은 필자와 기렴으로 박힌것. 그아레 필적은 엘만씨의 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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