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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림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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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백림유기 伯林遊記
종    류 수필 隨筆
필    자 안병소 安柄玿
출처정보 사해공론 四海公論
연    도 1938-10 昭和十三年十月
면    수 102 102
기사
세상에서는 獨逸留學이라면 相當히 華麗한것인줄 생각한다.
내가 소위 留學이라는 名色을가지고 伯林에 처음나린것은 지금부터 五年인八月下旬이다 보름동안이나 汽車를탄것도처음이요! 西歐의都市를본것도 처음이매 모든것이 뒤숭숭하기 그지업섯다
더욱이 獨逸語는 좀안다지만 서투르기짝이없엇고 目的하고왓든바 國立音樂大學에 入學試驗을생각하느라 정신없엇다.
멫일뒤 試驗을치룬것이 多幸이랄가! 合格通知는 바덧스나 딱한일은學費가업는것이였다.
집에서 떠날때 若干準備는잇섯스나 伯林에와서보니 생각하든바와는 딴판이엇다.
物價는 엇지 빗싼지 가난한 苦學生울니기에 가장 적당하엿다.
學資로因하여 入學은 取消되엇고 아는이 別노엄는 異域에서 暗淡한날을멫일보내고잇슬때 우연히도길까에서 바이올링으로 有名한 田中英太郞氏를맛나게되어 그분의紹介로 世界三大提琴家의一人인 빌닌헤쓰敎授를찻게되엇다.
첫번에 거절당하고 二번 三번………個人敎授밧기를願하엿스나 잘드러주지않엇섯다 그러나하도 여러번가서졸느니까 한번은 (그대의뜻이 정 그렇커든나보는 앞에서 한번 試奏해보라) 는것이빌닌헤쓰敎授의 말슴이엇고 그뒤 눌너師弟의 誼를 맺은 첫契機엇섯다.
그뒤로는 一週日에 두번씩 빌닌헤쓰敎授를 차저가서指導를밧는것과 不宿에도라와 밤낫練習, 其他멫사람外國音樂學徒에게個人敎授하는겄이日課엿섯다.
今世에樂聖이랄수잇는(빌닌헤쓰)恩師의弟子는 되엇스나 物質的苦痛은 如前하엿다 敎授料는 한時間에 百마-크(邦貨百圓가량)식되니 울며겨자먹는 格으로 처음얼마동안 그대로支拂하엿스나 나의 形便으로서 게속하기는可望이없엇다 先生에게 사정을이야기하여 百마-크가五○마-크가되고 그뒤엔 더 내려가서二○마-크 나종에는 一日에 五○마-크되엇섯다
自然먹을것과 學費를 벌자니 한가한틈이라고는別노업섯고 유유히市街를漫步할 마음의 여유도 업섯다
문화都市 伯林이라고해도 亞細亞一靑年에잇서서는 無色한都市엇슬따름이다 변화업는생활 順調롭지못한 가운데 順調로운 二年의歲月은흘너갓다
그러나 이때에는 恩師빌닌헤쓰敎授와訣別할 運命에이르럿다 心臟衰弱으로呻吟하든恩師夫人이 病勢가 惡化되어 부득이 轉地療養을떠나개 된때믄이다 빌닌헤쓰恩師는 나도함께旅行을하며 工夫하라고 親切이말슴하여주섯스나 이것저것 未安한게만어서 그만두겟다는말밧게할수없엇다.
떠날림시에 先生은 친절히 말슴하섯다 (君은넉넉이 自力으로도 大成할것이나落心말고工夫하다)고 나는 이말슴을듯고 눈물이뺨우로 흘너나림을禁치 못하였다
빌린헤쓰恩師와 헤여진뒤 나는 伯林의處世知識을 어느정도 까지 배웟고 個人敎授 演奏 放送等을하여 伯林生活하여갈 自信이 생겻섯다
이때에는 맨처음 伯林에왓슬때入學試驗치럿든 伯林國立音樂大學에다시 入學하여 正式으로 生徒가되여硏究하여 二年後에 卒業하엿다.
이學校生徒를어라해도 一家를이룬이들이 만엇스며 敎室에서演奏를하다失手를 한다든지하면 수치로생각하는 風習이 잇섯다.
바이올링製作에興味를늣기고「아르미노이만」이란先生밑에서 製作法을배운것도 이때엇섯다.
獨 逸 人 氣 質
내가 伯林으로처음 가는해 나치스政權이 드러섯스며 그때는아즉 유태인축출문제가 이러나기前이엇다.
나는 그때猶太人이 경영하는下宿에들어있게되엇다 人種的으로 아무憎惡를 가질必要업는나로서는 그저 平凡하게 對할수밧게업섯다 그런데 外國人이라 보아서 그런지 不當하리만큼탐욕을부리는데는 閉口하엿다.
이때에 當한이야기는 지금생각해도 유쾌치못하다 먼저온先輩某氏에 이야기를하엿드니 우스면서秘訣을 傳授하여주신다 卽 이곳에서는一錢一厘를 가지고닷톨것 가장령악하게뵐것等
多大數의獨逸國民性은 大戰後의窮乏으로 말미아마 性格까지도 變化하엿다 옛날에는 겸손과 양보라는것을美德의한아로아럿스나 敗戰後生存의危機에 直面하매虛禮라는것을一掃하고마럿다.
大戰直後에 貨價値가亦是참혹하게低落되엿섯스나 四五年前부터는 다시復舊狀態로되어 物價昻揚은 歐羅파에 어느都市와比肩하여도 遜色없이되엇다 그런까닭으로한동안은 外國留學生들이 굉장이 만엇섯스나 지금은閑散한感이업지않이하다.
이전에 몹씨 低廉하든生活費가 지금留學生은 一箇月에 三百圓을가저도넉넉하기는새려 不足한편이다.
伯林留學이라면 말만드러도 화려한것같으나 朝鮮人의 형편으로 三百圓式學費支出할가정은 그리만치 못할것이다.
그러니만치 東洋留學生들은工夫를道樂으로 生覺하는분이업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獨逸國民은 實際的이요 經濟觀念이 類型化하엿다 처음볼적에는 해괴하게도 생각하엿스나 오래보아나면 그것도 當然하게뵈엿다.
가령 그네들은 친한친구 끼리라도 어디求景가자면 「나는돈이없소」하고 말하면 「그것은걱정말어 내게있으니」하여야 따라가게된다 友人의집엘가서라도 茶한잔을 마시드라도 茶갑밧는가안밧는가를 따진뒤에야 마시는것이常事다 異性間에서도 友人과愛人을確然히區別하는것도 여기特色일것이다.
이런것을처음 目격할적에는 人心이 너므 야박한 것같애서 不快하엿스나 무슨일에든지 自主自立하는 精神에는 敬意를若干表할수도잇섯스니 사람은環境에따라意識이 左右되는탓일가!
올 림 픽 과
孫 基 禎 南 昇 龍 氏
再昨年伯林올림픽大會에는 伯林훨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란데쓰오케스트라 大學生오케스트라 聯合한大오케스트라의一圓으로 나역시 末席에參加하는光榮을 가젓섯다 그때비록 잠간이나마 孫, 南, 兩氏를 맛나게되엇섯다.
世界制覇를 우리半島出身의選手가 最後의꼴을 倒着할순간伯林市街는 歡呼의聲으로充滿하엿다.
그때 에피소트로, 獨逸語를通하지못하는 南氏멫哩멫哩부르는 꼴 地點이 먼줄만아럿섯다 천천이뛰여 三着을하고하느말이(거리가이럿케 갓가운줄을몰낫지)이 話題가한동안 伯林을明朗하게하였다.
孫氏와 나는같은母校養正에잇섯든때가잇섯다 團體로온 孫南其外半島選手들을별노 相從하지못하고 分手한것은 지금생각해도 섭섭하기 짝이업다.
귀 ㅅ 도 리 울 지 안 는
伯 林 의 가 을 달 밤
달밤 더욱이 가을달밤이란 얼마나싀원하고 多情한일홈이냐
허나 四年너머 伯林에묵엇서도 鄕愁에저진밤 귀ㅅ돌이소리 드른적업섯고 中天에날르는 기럭이소리 드른적업다,
고요한달밤 귀ㅅ돌이소리 들창너머로들녀와 허둥지둥 마당가를 달녀가보면아무소리 들니지안코파란 달빛만點點히흐르고잇다.
幻覺 錯覺 異鄕의달밤의哀愁로서幕을닷친다.
入口 四百萬 밤이면 이르미네슛과 五色네온으로 인하야 月色이無光하니額椽속에 잠자는달이 훨신아름답다.
다-늄이나 라인江우에 빛인달 내 보지 못하였고 영-제네슌의 憧憬의象徵은 무엇으로表하는지 드른적업다 文明의洗禮를받은뒤에 自然은 餘地없이 零落하였으며 矛盾과질곡에彷徨하는 森羅萬象의調化는 어듸가서 一致될것인가?
伯 林 에 사 는 半 島 人
多 才 多 技 한 面 貌 들
伯林에오래산이로는 安鳳根氏가잇다 지금으로부터 約 二十餘年前에와서잇섯스면서 年歲도五十以上된분이다.
일즉이 어느中學校歷史講師로多年게섯스며 뒤에國立博物館 東洋미術部主任으로잇다가 지금은實業에從事하신다 先生은能笑能泣하시는 偉丈夫로語學에 天分은 支那語 國語 獨逸語等을 能通하신다 故鄕은 黃海道海州夫人은 獨逸人이다 夫人은 上流家庭의敎養잇는분으로서 安氏를도와오늘에는 生活에도 비교的 여유잇게 지난다 나의 下宿과는 거리가 멀지않은관계상 우거지국만끄리드라도 安氏夫婦는電話로 어서먹으러 오라고星火같이 독촉을하시는데는 감격以上으로가슴이막막하였다.
異域하늘아레 땃뜻한말한마디앗기는世態에 親足下나對하듯늘身邊을보살펴주는 厚誼는 永遠히이줄수없는 記憶의하나다
正初같은때는 客窓에지나는 지나는사이나마 한집에 모혀食事갓흔것을나눌때 安氏는 말한마듸 끄내놋코눈물이압흘서 語尾를이루지못하고만다.
누구나다 이럴때는 자연 비창한 회포에 마음이 언싼어진다.
이럴때면 安氏夫人은열심으로 座席氣分을 도리키키에努力하여 유快하게시간을 보낼수잇게하여주군하였다
伯林에 아름다움은하나둘이아닐것이나 그중이 安氏夫婦의마음도하나의훌융한伯林의 아름다움이다
安氏와같이 海州出身의 莊源林이란이가잇다十餘年前에渡獨하여 出戰水戰人生의荒波는다격거온이로 일즉映畵界의두角을내엿다 多年間 우파社에잇다 近年에는 토-비쓰 映畵에잇스며 그의出演한映畵가 몇번故土를밟엇서도 아는이가업다.
莊氏年歲는三十七八가량이며 몇해전伯林社交땐-쓰경연大會에서 一等을차지하였다.
金伯■氏는 動物學硏究로博士가되섯스며 近來에는醫學을 다시硏究하여 博士學位어들날도 不遠한將來의일이다.
金成功氏는工大卒業後엔 지니야로서 伯林서著名한분이며 夫人은독일人이다 原來이분은 哈爾賓出生의半島人어며 지금醫學을硏究하시는 嚴相敏氏와같이 朝鮮을아즉못본분이다.
韓在男氏는 法學 金준엽氏는 醫學 以外未知의분이二三人이잇다
張極氏라는이는 工大卒業後飛行機製作所에重要한 技術家로勤務中이시며 國立音樂大學을맛치고 歸國備準中에있는이로 피아니스트 李愛內氏가잇다 半島出身의女子로서는 伯林留學간이로가氏효矢라할것이다
내가 伯林을 떠나온지도 발서五個月이나되였다
安氏夫婦를爲始其外백림여려 同胞들의 健强을비러마지안는다 떠나올臨時安氏夫婦의섭섭하여하심에는感泣하지안흘수업섯다.

文靑在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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