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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영 김현순 탈출 방랑기―북평·상해·동경 등지를 전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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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안기영 김현순 탈출 방랑기―북평·상해·동경 등지를 전전하여― 安基永金顯順脫出放浪記―北平·上海·東京等地를轉轉하야―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 +++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36-04 昭和十一年四月
면    수 256 256
기사
江南갓든제비가도라오면은
이땅에도봄빗이퍼저오른다

哀傷의 두歌人 悲戀四年에歸鄕
[사진] 안기영 김현순
사년전봄도 일은사월! 싹트는 한양의춘색을 등지고 불타는 사랑의정렬을 그대로안은채 표면히떠나간 정렬의가인(情熱歌人)안기영 김현순양씨는 지난 삼월십이일 특급으로 다시정드린고토로 표연히 돌아왔다.
한때는 말성도 많었고 비란도 많었든 그들이 종달새같이 귀여운 딸하나를 낳아가지고 다시 춘색이 바야흐로 익어가는 이땅에 원앙새처럼짝지어돌아온 그들의 감회는 과연어떨까?
기자는 그들의 오랜방랑의 피로가 깃뜨린 야왼얼굴을 대하여벅차오르는 감회가운데 가지가지로 체험한열애고행(熱愛苦行)의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고토에 돌아올 면목도 없읍니다만 사년이란세월이흘으는동안 고생한 우리의 생활이 그리고 그동안 꾸준히 고생속에서 성악을 연구한것이 우리들의 속죄의만분지일이 된다면 다시 고토에 돌아와조선 음악문화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가하야 돌아왔읍니다 연애만을위하야눈물과 피와정으로 떠나간우리는 다시눈물과 정과끓는피로써 조선 음악문화에 노력하렵니다 다만 이한가 단성(丹誠)과 원염(願念)을 가지고허물진 우리들의 앞길을 개척하렵니다 오즉여러분의 뼈저린 채쭉질과지도그것을 기다릴뿐입니다」
그들의말에는 피끊른 양심의 고백이있었다 예술가다운 정렬이 있었다 그것은 오즉그들이 다시 결심한 빛나는 금후의 맹서가아닐까?
그러면 이제 그들이거러온 고란의 가시길을더듬어보자!
안기영과김현순! 그들이 떠나 간건 벌서 사년전옛봄! 달수로도 사십개월이란 세월이 흘너갔다 그러나 그들의 떠나갔을땐 한양복판엔 오는춘색을 따러퍼지는 연애방랑의 소문이날이갈사록 더해갔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드른체만체 하르빈으로 북평(北平)으로 혹은상해로 전전방랑하며 애닲은 망향의 노래를 부르면서 달콤한연애에 꿈속같은 날을 보내였다.

一路하르빈까지 單獨으로脫出

「두분이 떠나시게된 동긔를 말슴해주시죠?」
기자의뭇는말에 안기영씨는
「그렇게들 일반이 오해한 모양인데 기실은 저혼자다러났어요 기실 현순이와 그때 사랑이 깊어젔든것은사실이지만 현순이는 이태리를 가게됐고해서 나도오래그 수도원같은 곳에서기계적인 교편을잡는것 보담두 좀더예술가의 감정을 자유로히 살리면서 공부해볼길이 없을가 하야나도 어느곳으로나 떠나려고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그리다가 문득 내머리에 떠올는것이 하르빈에 있는 내 옛날벗 최××씨였읍니다 아! 그이를찾어가자! 그이를 찾어가면로시아방면으로 혹시들어갈수가있지않을까 거길가면 돈없는 사람도 공부할수있다하니. 이런생각으로 나는 단연결심을하고 트렁크하나를 든채 경의선을잡아타고 북행철리 먼길을 떠나게되였읍니다 이리하야나는 다시 신경서하르빈까지 가게되었읍니다나는오래간만에 지기를 이역객창에서 맞나게되매 반가운마음에 나는 어쩔줄을 몰랐읍니다.
그러나 그때 내마음은괴로워밤잠을 못잤읍니다 외로운기럭이같이 짝잃은 현순이는 어떻게지내나 또내가떠남으로써 나를 경모하고 나를충배하는 내제자들은어찌됐나? 이리하여 송구한 맘속의 가시바눌은 때때로 내심장을 요리조리 찔러 견딀수가 없었읍니다 그리든가운데 사흘이지나든날 현순이게서 돌연히 전보가 왔읍니다 하르빈으로 온다는것이였읍니다, 나는더욱고민하게 되였읍니다 남의애지중지 길은딸! 장내가 촉망되든 조선의 소프라노가 나때문에 혹시 장내가 그리치게된다면 어쩌나 하는생각에 나는 눈물솓고 참회를했읍니다 그러나 끄러오르는 사랑의 정렬은 참을길이없어 신경으로 아주가려고 최씨에게말했드니 진심으로 나를붙들면서 가정불화는 이해하지만 연애방랑이야 어듸말이되오? 하고 못가게 만류하는것입니다 그러나나의가슴속엔 사랑그것이 벅차올라 수철리먼길을 날따러온다는 현순이를 맞으러가지않을수는 없었읍니다 그리하여나는 벗에 간곡한 말에
「자네는 목사요 나는예술가일세」
하는 한마듸말을 던지고 표연히 하르빈을떠나 신경까지가게됐읍니다 기다리는 현순이 북만의 봄빛이 아즉 오지도 않은 찬바람치는 이역에서 그를맞날때 우리는 서로붓들고 포옹하고 눈물속에 정신을 못차렸읍니다.

新京서서로맞나 다시北平으로
그러나 우리들은 신경에 오래있을수는없었읍니다. 그리하여 나는 작고만 현순이더러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강권했으나 그는 고토를 떠나면서 누가내 가는길을뭇거든 「사랑을찾어 사랑때문에떠나간다」고말해라 하고온들이 다시사랑하는이를두고 조선으로 갈수야있오하고흐득기며내가슴에 안길때 나는 가슴이 터지는 것같었읍니다.
「그럼 어데를가든지 같이가자! 죽든살든 먹든굶든연애고행의 이길을 익이고가자!」하고 맹서를 다시금한뒤에 우리는 신경을 떠났읍니다 아-모런 준비도없이 떠난우리들이때 창피는하지만위선 북평 현순이옵바있는곳으로 가서 려비라도넉넉이 얻어가지고어데로든지 가자 함이었읍니다.
이리하여 우리의 원앙같은 한쌍의 사랑의반여자는다시 발길을돌려 북평으로 가게되였읍니다 그러나 나는 북평갈 아-모런 면목도 없었읍니다 그이는 골육을난눈형제니 아무러튼 상관이없겠지만 내가 무슨면목으로 그를대하릿까? 그러나 사랑으로 위해선 그런모-든 것도 다잊어버리고 북평까지 가서 그이는 그의오빠댁으로가고 나는 「애스터하우스 호텔」에 묵게되였읍니다

七圓짜리貰房에서 九旬一食의上海生活

북평있는동안 나는현순이 오빠와도 맞났읍니다 그이는 「나는 안선생을 믿었는데……」할뿐 별말이 없었으나나종알고보니」 「너참으로 그이를 사랑하냐?」 「해여질수는없냐하고?」 이리저리 갈러질것을 강권했다 고합니다그러나 현순이는 끗내 반대를 하였답니다.
나는 그래 오래ㅅ동안 북평에 있을수도없어 무작정하고 상해로 가려고 생각했읍니다 현순이는 거기다두고나는 상해로떠나가 어떻게 생활방도를 구해가지고현순이와 다시맞나물샐틈 없는 사랑의 보금자리를 기뜨리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상해! 상해는 그전에도 갔는일이있으므로 서툴진않었으나 그러나 아-모런 기반이없는몸이라 막々하든가운데 다행히 신국권(申■權)씨를 맞나 그부인께음악개인교수를하게되고 또 그이소개로 중국여배우에게 음악교수를하게되어 어느정도까지 생활이 될것같었읍니다 그리하여 상사의 안타까. 운꿈을싫고 오가는우리의 연정을풀 기회가왔구나 하고 나는 그이게 곧장편지를했읍니다 「그이는곧달려왔읍니다 그러나 드러보십시오 그이오빠는 그를못가도록 붓들고 놓지를않어 기차깐에서 차가떠나는 그순간까지 내려라 못내려요하고 승강이까지 하다가 겨우 이곳을왔답니다 오빠가누이를생각하는 그충정! 고란의길을것는 누이의 가시길같은 장래를우려하는 그마음을 생각하니 꿈속에서라도 잊이못하든사랑하는이를 맞나는기쁨도 한갔봄안개같이 살아지고 다만 「내가 웨 이렇게도 남의행복을 깨첬을까?」하는회오의 눈물때문에 가슴 답답하였읍니다 그러나 나는마음을굳게가지고 대양(大洋)七원을주고 방하나를 얻어가지고 기구를사드려 자취생활을하기시작했읍니다 피아노의「키-」를 더듬든 그보드러운손길이 도마에 칼질을하는 그이를 나려다보는 내눈에는 다시금 이슬이 맻었읍니다.
「현순이 이게 내죄요!」
하고 눈물어린눈으로 바라보면 현순인
「아-니오 사랑의죄지오!」
하고 방그레 웃음을 지읍니다 곱듸곻게 자란그가 그것이얼마나 괴로운일이겠읍니까? 더구나 돈이궁해 찬도없는밥을지어먹고 거츠른 침대에 누어자는 그보드런 몸이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그러나 현순인참으로 그고란을 달게받고 꾸준히 나를 위무하면서 우리의앞날을 개척하기에 노력했읍니다,
그러나 우리의생활은 날이갈사록궁했읍니다 개인교수 받든 네배우들이 몇달을해야 진보가 안되는데 비관을하고 그들은 하나둘씩떠러저나갑니다. 그들은 사개월만하면 훌륭한 가수가되어 바야흐로왕성해가는 「토-키」배우로 출연하여 천하인끼를 다뫃으려든 그들의 야심은 여지없이 깨여진모양! 목소리가원체 배에서나지를않고 목우에서 나는그들은참말 유치하기짝이없었읍니다 그리하야그들은그들이히망없음을각오 하고다시오질않으니 그들의 장래도그뿐이였지만우리들의 생활도 궁도에 빠지게되였읍니다 그리든가운데 六월십일! 우리에게호운이 돌아와독창회를열게되였읍니다 그것은 물론 신씨의 소개로 열게된것인제 이것마저 우리의장래를망치려고 음악회를앞둔 우리두사람은 못을병마에 살으잡혀 병상에서 신음하게 되였읍니다 하는수없이 열흘을 연기하여 겨우음악회를 했으나우리의 커듸슌도납뻐지만 도대체중국사람은 서양음악에대해선 너무도 유치하서 성공은 못했읍니다 여하간 이것이 동기가되여 국립음악원 선교강사로 피임이 되였으나 생활은 여전히궁하 였읍니다 이렇게되니 하는수없이 나는 현순이를 북평으로다시보내고 나혼자 고 닯은생활을 하고 있었읍니다.
× ×
[사진] 안기영 김현순 가족사진
顯順이가보내주는 눈물겨운돈四圓

북평을간뒤의 현순이는 혹은 十圓도 보내주고 사원도 보내주었읍니다 나종에안일이지만 자기오빠한테 구두산다고십원을타서는 육원짜리를 사고사원을 내게붙었다고하니 이눈물겨운돈을 받어쓴 내가슴도 아퍼뜬게사실입니다.
그런데무슨일을해도 궁도에 들었는지 페이지를않읍니다 혹은방송국에도가고 혹은 개인교수도했으나 아모래도 생애가안되였읍니다 거기방송국은 대개가 연예는 레코트를 쓰는데 혹시 유명한 사람은 큰상점에서 사가지고노래한뒤에 광고방송을 하는일이 거이전부인데 내가그이들귀에 익도록하려면 까마아독 하였읍니다 그리하여그것도 그만두고 이리저리두 류하는가운데 또현순이가왔읍니다나는 참아 생활이 이러니 오라할수는 없었으나그는푼푼히 어떻게 뫃은돈을 가지고다시 날찾어 왔읍니다.
나는 마츰그때 방송국서양사람의 소개로교회에를 다니게되여 거기서 찬양대에드러 코-러스를 하기도하고 또지도도 했읍니다 한번은 교회에 독창회를 현순이반주로 했는데 거기서야 비로소 내실력을 알어주어 자미있게일을하고 있었읍니다 거기는 미국 게통이라영어나 음악이나 모-두 잘통하야 일에도 자미를 붙이고 이럭저럭 생활방도 도서 게되였읍니다.
그러나 우리게는 항상 가시길이 가로질러게되였읍니다 그것은 서울있는 어떤목사가 그교회목사게로 우리들의행적을 써보낸것입니다 그런데 그목사는 조선있는 목사들과는달리 우리를 이해하고 동정하야 문제를 어떻게 좋도록 해결하자는것이었읍니다.
「미스터안 목사라는건 사람의괴로움을 돕는것이 그사명이 않이오염려말고 우리교회ㅅ일을보시오」
이렇게 말하는 그의부드러운 음성! 온후한성정에나는 눈물속에 그이손을붓들고 잘조처해주기를 바라고 있었읍니다 그는 정식으로 본부인과 이혼하고 우리들이정식결혼하도록 조선있는목사게부탁 했으나조선있는 그이는 「너히들 잘살라고 해줄터냐?」하고 서슬이푸른독기있는 소리로끝내고집을해 그것이 완전이 해결되지못하게되자 우리는 그교회에갈 면목도없어 그만다시우중충한 방안에두사람이 앉어구슲은 노래도 부르고 화투도 치고 때로는 산보도다니었읍니다.
나는 조선의 이혼제도 결혼제도에 커-다란 불만을 갖은것이 그때더욱적실히 느겠읍니다 자기가사랑하는이와 정식으로 결혼할수없는비애! 싫은안해를 이혼할수없는고민! 이때문에 젊은 조선청년 남녀의고민이그얼마나컸을까요!

一年半의上海生活 다시東京으로

우리는 상해의 일년반동안! 이와같이 고민하는가운데 그날그날을 보냈읍니다. 오!사랑이란 이렇게도 괴롭든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의 사랑은 점점굳어저 아모런고생이라도 뚫고나갈 용기는 나날히 더굳어지게 되였읍니다.
한때는 오페나라의 「라, 트라비아타」중에나타나는 말그리트와 「알프레트」를 생각하기도하고 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연(悲戀)도 생각 하면서 사랑의가시길을 더듬는 우리의 괴로운심경을 위로도 했읍니다.
「현순이! 미안하오 나때문에 이고생을혀구?」
이렇게 때때로 내가 말하면
「또 저러시네 그러시지 말래두!」
하고 그열정적인 눈이 새ㅅ별같이 빛나는것이었읍니다
그러면 나는 그를다시얼사안고
「내사랑이어!」
하고 다시 그의뺨을 부비고 으스러 질듯 뜨거운표옹에내 온정열은 불타올랐읍니다.
그리는동안 더운여름도 가고 남국의 가을바람이 산산히 창틈으로 숨어드는 가을이오게 되였을때 우리는 상해의 애틋한 로맨쓰를 남기고 동경(東京)으로 떠났읍니다, 그건 첫재로 상해가 이제는실증이 나고 또앞길이 캄캄한 때문이었읍니다 이리하야 황포탄 검프른 물결에 구슲은 갈매기소리를 들으면서 일로 우리는일본을 향해 떠나갔읍니다.
× ×
× ×
東京音樂家들의 熱있는歡迎받고
동경에나리니 뜻밖에 재동경조선음악가협회 여러분이 기뿌게환영해 주었읍니다 어떤분은 집을 얻어준다 어떤분은개인교수 자리를 구해준다 그뜨거운 동포의정이눈물이 날이만치깊었읍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기분이일신되여 새살림을 시작하게 되였읍니다.
가을바람이 우수수 낙엽을 몰어다따리는 십월의동경 끝없는 향수는 우리의꿈을싫고 끄님없이 조선으로 날러갔으나 그러나 우리는 동경온것을 기회로 항상부족하든 어학공부도하고 또 음악회도 다니고 또 「오-케스트라」 지휘법등을 연구하게되였읍니다 노래도같이하고 혹은 반주도해주며 명랑한 새살림이 시작된지 얼마않되여 현순인 몸이 이상해젔읍니다.
입맛을잃고 혹은 구역질을 하고혹은 열열 알른사람처럼 몸이달떠하기도하야 나는 혹시병이 나지않었나걱정했는데 그것이 얼마뒤에 알고 보니어린애가 있는것이였읍니다 암아상해서벌서들 었든모양이드군요.
「아! 이제는「사랑의 결정」이 생기나무다!」
이렇게생각하니 끝없이 우리는 기뻣읍니다······없는돈을 털어그이 식성에맞는 음식도 사주고 혹은 그의정신적위안을주기위해서 시외로 산보도 다니었읍니다 이리저리 날이가어는듯 지난봄일월 어린애를 낳었읍니다 그것이 귀여운 미래의 쏘프래노 남식(南植)이였 읍니다.
우리는 남식 이란 이름을 짓는데 또여러 가지생각을했읍니다. 그리다가 결국 남해서 얻은것이라하여 남식이라고했읍니다.

愛女南植을낳고 다시故國으로!
어린애낳은소식을 현순이본가로 알리자 그후른 그의 아버님도 어느정도까지 양해를 하시고
「그놈들 소항은 나뿌지만 굶어죽일수야있나!」
하고 매월 약간의 보조도있고 또 나종엔 피아노꺼정 월부로 사주어 우리는 행복된그날그날을 보내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밤마다 그리는 고원의꿈은 하로도 살아지지 않었읍니다. 어떻거면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수가있나? 어떻거면 조선으로가서 다시 우리두몸이 속죄를 하고 조선악단에 한줌흙 이라도 보탬이 될까? 이런생각이 우리의 가슴에불타고있었읍니다 이리하야일년의 세월이 흘러간오늘! 우리는 다시 이조선땅으로 돌아올것을결심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짐을정돈하여가지고 다시 옛날 미안스러히 떠나갔든 이서 울을 다시 조심스러히 돌아왔읍니다.
사년이되는 이봄이오는 삼월달에 우리도 봄따러다시 이한양을 찾어 왔읍니다. 오즉여러분의 편달과 지도그것을 바라고 있을뿐! 그저 혹 개인교수나 하면서조선 악단에 진력해을까 합니다.
그들의 얼굴을 비록 여읬으나 어덴지 그침통한 결심의 빛이 떠돌았다. (끝)
(寫眞처음것은 北京서박힌것, 다음것은 서울도라와서박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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