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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화 문답실―광대란 무슨 뜻인가―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조선 문화 문답실―광대란 무슨 뜻인가― 朝鮮文化問答室―廣大란무슨뜻인가―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송석하 宋錫夏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36-02 昭和十一年二月
면    수 253 253
기사
(問) 우리文化에있어서 알고싶은것이많읍니다마는 爲先『廣大』란것이 무엇인자 알녀주시면 좋겠읍니다. 廣大란字義語義로부터 그 系統發達相까지를들려주시기를바람니다. 咸興 雲晴生

解答……………………宋錫夏

「廣大」란말은 우리가 日常 자조듣은말이요 또한 무엇인지 大略 짐작할수도 있는것이마는 그것을 좀더 깊으게 明白하게 解釋해 볼냐고할때는 그만 輪廓이 模糊해지는것입니다 (다른분은 모르나 나의 經驗으로는 그러합니다)
먼저 文獻上으로 이것을 보면 高麗史卷一百二十四 嬖幸二 全英甫傳에
(前略) 忠肅之留元也 滵王暠謀奪王位 奸臣交構 王遣朴仁平 謂宰相曰 昔有小廣大隨大廣大 渡水無船 謂諸大廣大曰 我短少 難知深淺 君輩身長 宜先測水咸曰然 入水皆溺 獨小廣大免 今有二小廣大在吾國 全英甫 朴虛中是也 置我禍網 晏然坐視 何以異此 國語假面爲戱者謂之廣大 (下略)
라고보이는것이 最初이며 그後 오래동안 廣大라는 文字가 보이지않다가 李朝中宗二十二年(嘉靖六年 西紀一五二七年)四月에 刊刊된崔世珍의 訓蒙字會에 傀字發音을「광대괴」라하고 儡字 發音을「광대뢰」라 하는데에 다시낱아났으며 또그註에「傀儡假面戱 俗呼鬼瞼兒」라고 한것이있읍니다.
그런데 前揭한 高麗史의 그것을 볼것같으면 「廣大」는 假面을쓰고 戱하는者을 指稱한 것이 確實합니다. 그리고 傀儡도 假面戱하고 同一한것이라고 崔世珍은 解釋했읍니다. 그러면 이設이 妥當한말인가하는데 逢着하는데나는 그와같이 解釋한데는 反對하고싶읍니다. 傀儡戱는 어데까지 偶人劇을 指稱하는것으로 崔氏가 訓蒙字會를 發刊하기 約四十年前인 成俔의 虛白堂集 卷之十四 觀傀儡雜戱詩中(이것은大略 世祖七年壬午年作으로 推測됩니다) 에있는
穿線刻木逞神機 宋家郭禿奚專美 漢祖平城可解團 爲敎朝廷陳煽禮 皇華眼大定嘲譏
라는 句節을 보더래도 假面戱와 人形劇을區別하여온것은 明白하다고 하겠읍니다.
그러면 崔氏는 어찌해서 傀儡戱(偶人劇)하고 假面戱하고 混合했는가하는 問題가 생기는데 이에는 大體로 두가지로解釋되는것이라고 하겠읍니다.
其一은 그는 當時相當한 學者이지마는 儒學者인 까닭으로 이方面에對한 智識이 不足해서 如此한 錯誤를 이르켓다고 볼것과,
其二는 그의 單獨錯誤가 않이고 當時一船社會가모다 名稱上의 區別을 아니한까닭으로 그도 그潮流에 따라간것이라고볼수있는데 筆者는 其二의 解釋에 讚意를 表코저합니다.
그것은 非單崔世珍뿐만않이라 그보다 이方面의 智識이 豊富하고 樂學軌範의 編輯時그 主役을 맡은 前記 成俔같은이에도 混同한痕跡이보임을 볼때에(虛白堂集 卷之七 觀儺詩叅照) 그들藝人社會에서는 嚴然한 區別을 하였지마는 一船社會에서는 자못 無關心하였으리라고 推測되는것입니다.
一再次이것을 詳言하면 本來 假面劇俳優만을 廣大라고하는것이 正當하나 當時 社會狀態가 藝人의 分業을 容許하지않이하는 關係上 自然 各種의 演藝를 同一人이하게 됨에 社會에서는 그것을 區別하여줄만한 親切이없어서 훌미러 廣大라고 한것같읍니다.
그러면 그後로부터 現在까지는 어찌되였나하면 人形劇은 主로 社堂(사당패)의 손으로 演出하게되고 假面劇은 社堂의 손으로서도演出되였지마는 다른一派는 政府의 都監에 隸屬이되야 外國使臣等이 올때에 그들의 觀賞에供함을 目的으로 한것도있었다 (以上은모다 職業的藝人에局限해서論함)
이때부터 人形劇은 사당에 屬하고 (大略으로) 假面劇俳優는「탈군」이라고 指稱했으며 後述하는 才人으로부터는 편놈이라고 呼稱함)
倡劇을 主로한것을 「才人」이라고 부르게 되였으며 이들藝人 全般을 廣大라고 總稱한感이있읍니다. 만 才人만은 前記 崔世珍의 訓蒙字會에 「노랬밧치」라고 大略區別을 한것갔읍니다마는 그것도 廣大中의 노랬밧치라는程度인것갔읍니다.
그러든것이 좀더 後期가되면 廣大는 줄타기 땅才操等을曲藝하는 藝人을 指稱하고 才人은 依然히 倡劇優를 가리켰으며 才人의노래又는 소리에 伴奏하는사람을 북잽이 杖鼓잽이 라고했읍니다.
이와같이하야 最後에 와서는 줄타기 땅才操하는사람이 그림자를 감초자 世上은 才人을 廣大라고 부러며 才人이라는 稱號는 어느듯 북잽이 杖鼓잽이에게로 넘긴 觀을呈했읍니다. 그러나 나亦時 今後좀더 硏究해야될것이 많음으로 將次에 詳述할機會를約束하고 不備한것은 其時에 補訂하겠나이다.
倡劇優-現在廣大의인것을 才人이라고 한것은 文獻으로는 現在한 名唱의 巨頭인 宋萬甲의 祖父인 宋興錄時代에 左捕廳에 等狀한 것에도 明白히 八道才人等이라고 하였으며烏山에는 아즉까지 才人廳이있는데 이에對한詳細한 調査는 前에 城大秋葉敎授가 한적도있읍니다.
廣大와 傀儡子하고의 關係를 若干前述했으나 이에關한 考證은 今後에 屬할問題라고생각합니다. 다만 參考로 몇마디말할것은 平安朝當時의 日本傀儡子에 關해서 大江匡房은其著「日本傀儡子記」에 「傀儡子, 無定居無常家, 穹廬氈帳, 逐水草以移徙, 頗類北狄之俗, 男則皆便弓馬, 以狩獵爲事, 或跳雙劍弄七丸, 或舞木人
女則爲愁眉, 啼粧折腰步醜慈朱, 施朱傳粉, 倡歌淫樂, 以求妖媚, 父母夫胥不誠, 口函雖逢行人旅客, 不嫌一宵之佳會, 徵嬖女之餘, 自獻千金繡服錦衣, 金釵細匧之具, 莫不悉有之, 不耕一畝田, 不採一枝桑, 故不屬餘官, 皆非土民, 自限浪人, 上限浪人, 上不知三公, 傍不怕牧宰, 以無課役, 爲一爲之樂, 夜則祭百神, 鼓舞喧嘩, 以祈福助, 東國, 美濃,--云云」 이라고하였는데 朝鮮의 사당하고 酷似한것을 發見합니다. 그리고 傀儡子의 日本發音이 久久豆(クグッ)라는데서 多數의 設이있으나 朝鮮에 關聯된것만말하면 다음과 같읍다. 安藤正次氏의「古代國語の硏究」에 大略다음과같은 말을하였읍니다
「崔世珍의 訓蒙字會에 依하면 傀儡의 朝鮮語는 Koang-tai다. 朝鮮語에ng로 맛치는말은 國語에는 Gu로轉用되는 데가많타. 그러므로 Koang이 Kugu로되고 다시 クグッ라는 國語가되였으리라」고하고 이어 高麗史이 揚水尺의 風俗을 所引하야 그系統에 才人廣大가있다고하고 「廣大」의音이 Koang-tai이니 傀儡하고같고 그는支那에서 朝鮮을 것처 日本에갓다고하였읍니다.
이에對하야 平野亥一氏는 大體로 讚意를表하고 一步進하야 피쉘敎授(PsotRichla Pschl)著「人形劇의故鄕」에나타나는Ziyeuner語Kuki Kukli(人形) Kuki-engero. Khelepen(人形劇)Kukiengero. Khelepaskero(人形놀니는사람)와 唐, 段安節의 樂府雜錄에였는郭郞) Kno rong) 과 顔氏家訓에잇는 郭禿(Kuotu)와 クグッ等을相互聯絡하야 注意을 喚起하였읍니다.
脫線이 甚하나 傀儡子의 말이난김이니 參考도 中國文獻 두었을 擧하겠읍니다. 杜氏通典 卷四十六散樂에 「大抵散樂雜戲多幻術, 皆出西城 又有弄椀珠技丹珠技歌戱, 有大面撥頭踏搖娘窟礧子戱 窟礧子亦魅礧子, 作偶人, 以戱善歌舞, 本喪家樂也, 漠末始用之於嘉會, 北齊後主高緯尤所好, 高麗之國亦有之, 今閭市盛行焉, 」이라는것과 唐, 段安節의樂府雜錄에 「傀儡子-自昔云起於漢高祖在平城, 爲昌頓所圍其城, 一面卽昌頓妻關氏, 兵强於三面, 壘中絶食, 陳平訪知閼氏妬忌, 卽造木偶人, 運機關舞於牌, 間閼氏望見謂是生人, 慮下其城, 昌頓必納妓女, 遂退軍, 但云陳平以秘計免, 蓋鄙其策下 「爾後樂家飜爲戱具引歌舞, 有郭郞者, 髮正禿, 善優笑, 閭里呼郭郞, 凡戱物必在, 俳兒知首也」라고하는 것이있읍니다.
말이 岐路에서 徜徉했으나 廣大라는 言源은 무엇이냐하는 問題를 삺여볼必要가 있을줄노믿읍니다. 前記 安藤氏設대로할것같으면 廣大는 中國語 傀儡에서 나왔다고도 理論上말할수있읍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것은 너무 大膽한 論斷같이생각합니다.
나의 愚見으로는 廣大는 本是 演劇學上의 所謂 「隈取」(낯에환칠하는것)를 가리키는 말이든것이 漸次 「假面」을 부르게되고 따라 假面」을쓰고 演劇을하는사람까지 廣大라고 呼稱하게된것인가합니다. 이것은 文獻上으로는證明할 方法이없어나 民俗學上이나 言語學上으로는 거이證明이 되는것입니다. 假面을 廣大라고하는例는 許多합니다. 開城, 德物山의 巫現의 神堂에 모서둔 假面을 全部 ○○廣大라고하는例라든지 또는 安東의 河回에있는 洞里守護의 假面을 모다 ○○廣大라고하는것을(例초란이광대 말둑이광대)본다든지 南鮮의五廣大劇에서假面을 廣大라고하는것을(例할미광대보면 假面을 廣大라고함은 거진 털임없는 말이라고하겠읍니다. 그리고 假面劇俳優를 廣大라고하게된것은 能히 推測할수있는일인가하노이다.
그리하고 「隈取」를 광대라고한것은 우리의 말에 (咸鏡道, 平安道, 京畿道의말에서採取)같(顔面)에 울굿붉굿하게 환칠하는것을 「낯에광대칠을한다고」합니다. 이것을 보면 大略그痕跡을 斟酌하겠읍니다. 그리고 一步 더나안가 顔面의 우리古語가「광대」않인가하는 疑心도 납니다. (或은顔面全部가않이고 그 一部分만이라도)即 관골을 우리말노서 「광대뼈」라고하는 것을 생각할데에 그런疑心도납니다마는 아즉 一種의 億設이겠지요.
以上이나의 부질없는 答이온대 나亦是方今 硏究中에 屬하니 江湖僉位의 敎示를 기다리고 마지않는바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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