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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예술과 농촌 오락의 진흥책―향토 예술과 그 진흥―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향토 예술과 농촌 오락의 진흥책―향토 예술과 그 진흥― 鄕土藝術과農村娛樂의振興策―鄕土藝術과그振興―
종    류 논문 論文
필    자 황의돈 黃義敦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41-04 昭和十六年四月
면    수 232 (232)
기사
海園 黃義敦

鄕土藝術이라함은 여러가지種類가 있어셔 一例로들러 말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의內容에對하여서는 各各專門的으로 硏究한知識이 있어야 말할만한것이다. 나는 그에對하여는 全然이 白紙로서 平素에 아무硏究와素養이 없어온同時에 무엇이라고 말할만한 權利가 없는사람이다. 만은三千里社의 여러번 要求하고 督促하는命令에 服從치아니할수없게되였다. 그럼으로 마지못하여 여러가지題目中에서 가장쉬읍고 아는대 갓가울듯한바를 가려낸것이 곳 윳노리(擲柶戱)이다.
이로부터 윳노리에對한 沿革과內容이며 그의必要와振興策을 좀 써볼까하는바이다. 이 윳노리가 朝鮮各地方에 다있는바이로되 그中에도 忠淸道에서 가장 盛行하여왔다. 忠淸道사람이 다른點으로는 남의道에比하여 나은것이 別로 없으나 오즉 윳노리에對하여서뿐 特長을 가젔었다. 그래서 京城에서 윳노리를 開催할ㅅ제마다 優勝의氣勢를 올릴때가 만핬었다. 나도 또한 忠淸洞에서 生長한것만큼 윳노리에對하여 趣味를 가저 왔었다. 世俗에流行하는 여러가지 娛樂的遊戱에對하여 한아도 알지못하고 趣味를붓치지못한 나로서도 이윳노리에對하여서뿐 趣味와氣癖을 가저왔었다. 지금으로부터四十年, 五十年前만보아도 忠淸道에서는 舊曆歲初이면 舍廊舍廊마다 밤을새워가며 소리를치고 윳노리함은勿論이어니와 이동리와 저동리가 相對로 總動員하여 놀거나 或은 이골(郡)對저골(郡)의 便싸움으로 數百名式動員하여 몇칠式밤낮없이 윳판을 버려노았었다. 그러고 兩郡에 가장名望있는人物을推戴하여 兩便의便長으로 내세우며 擲柶의技術이 第一能熟한猛將과, 運馬의知慧가 아즉 拔群한策士가 雲集하여 優勝의榮冠을 얻어보랴고 奮鬪하였었다.

이윳노리가 忠淸道에서 만히流行하여온만치 그의歷史를 溯求하여보면 아마도百濟時代에 發生한遊戱인듯하다. 冒險的인 水石戰(唐書高麗傳叅照)과 武勇的인樂浪會獵(三國史記溫達傳叅照)이 尙武의精神이넘치는 北方民族 高句麗에서 專尙함과同時에平和的遊戱인 윳노리가 悠長하고快活한 南方民族 百濟에서 流行하였던듯하다.
이 윳노리를 漢字로「擲柶」라 翻譯함으로 或은支那에서 輸入된것이안인가 疑心하시는분도 없지안할것이다. 만은 支那에서는 元來로 이러한遊戱가 없었을뿐안이라, 柵字의字義를차저보면 最古의漢字典인「說文엔」
「柶匕也」
라하여 柶字가「수까락」의 뜻으로 씀을 말하였고 周禮漿人註엔
「飮醴用柶者, 糟也, 不用柶者, 漿也」
라하여 단술(醴)을먹음에 건지(糟)는 나무수까락곳 柶로먹고 그의멀국(漿)엔 수까락을 쓰지않는다하였으며 禮記註엔
「柶, 以角爲之 長六寸, 兩頭屈曲」
이라하여 츠음原始時代엔 나무로 맨들었던 수까락(柶)이 차차로進步되여 뿔(角)로 맨들게되였음을 말한것이다. 그래서支那에서는 柶를 수까락사ㅅ字로 알어왔을뿐 윳노리와는 비슷한意味도 없어왔었다. 윳이 나무넷쪽으로 맨들었음으로 나무목(木)변에 넉사(四)한 柶字를 끄러서 朝鮮사람이 翻譯한것인듯하다. 이로보아서 윳노리는確實이 支那에서輸入한것이안이오 朝鮮에서創作한 士俗的遊戱인듯하다.

윳노리가 朝鮮文獻上에 나타난바를 차저보면三百年前 李晬光의지은 芝峯類說에 簡單이 빛었으되 柶는 곳攤戱와같다하였고 柳得恭의지은 京都雜誌엔
「赤荆二條, 剖作四隻, 長可三寸許, 或小如半菽, 擲之號爲柶戱」
라하여 윳中에 큰長윳과 적은 밤윳이 있음을 말하였고 이어서 윳노는法을 자세이說明하여 다음과같이 써있다.
「四俯曰牡(네가락이 다 엎허진것을 모)
四仰曰忸(네가락이 다 잣처진것을 윳)
三俯一仰曰徒(셋 엎허지고 하나잣처진것을 도)
二俯二仰曰介(둘이 엎치고 둘 잣처진것을 개)
一俯三仰曰傑(한아 엎치고 셋 잣처진것을 걸)
이라하여 윳의 여러가지로 變遷하는 일름이 써있고 이어서
「局畵二十九圈. 二人對擲. 各用四馬, 徒行一圈」
介行二圈
傑行三圈
忸行四圈
牡行五圈
圈有迃捷, 馬有遲疾, 以決輸嬴, 元日此戲最盛」
이라하여 말판을써서 勝負를내기하는法을 說明하였으며 正月초하롯날에 이遊戱가 가장盛하게 流行됨을 말하였다.

위에말한바와같이 윳노리는 正初부터十五日까지
(一七五頁에繼續)
二三四頁에서繼續 (鄕土藝術의계속)
豪遊하는娛樂的遊戱로서 兼하여趣味가津津하고 動作이活潑한 平和的運動이다. 東洋在來에 많이流行하여오던 여러가지 遊戱와運動中에서도 가장鄕土色이 나타나는 藝術的競技이다. 될수있는대로 이러한競技는 保存하고永續하여둘必要가있는것이다.
만은時移事變하여 가장 윳노리의本鄕이던 忠淸道에서도 차차로 衰退가되고沒落이되여가랴한다. 예와같이 一時的으로 業務를廢止하고 그것만 專向할必要는 없을것이다. 만은 特定한時期곳, 新年初頭에 局限하여 一種의遊戱와運動으로 獎勵하고實行할만한 社會的競技의 한科目으로定하여도 조흘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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