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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음악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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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동서양 음악의 비교 東西洋音樂의比較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홍난파 洪蘭坡
출처정보 신동아 新東亞
연    도 1936-06 昭和十一年六月
면    수 64 64
기사
東西洋音樂의比較
洪蘭坡

人類란 本是 母胎로부터 이미 音樂的素質을 타고나온만큼 人類가 있기始作한때부터 거기 相應한 幼稚한 音樂이있었으리란것은 누구나 다 같이 말하는것이다. 그러면 音樂의 歷史가 人類의 歷史와함께 久遠하다 할진대 原始時代人類가 가젔던 音樂은 오늘날 우리가 가진 그것처럼 洋의東西에 따라서 懸隔한 差異가 없었을것이 明白하며 事實에 있어서 歷史가 證明하는바에 依하면 音樂의 起源은 한나이라는것이다. 처음 印度에서 發祥하야 한줄기는 中國,朝鮮을 거처서 日本內地로 건너가고 다른한줄기는 埃及, 希臘의 文明의 洗禮를 받은後 西南歐로 들어갔다고한다.
이같이 東西로 갈리인 音樂은 數三千年 지나는 동안에 人類社會의 進步와함께 한껏 發達되였을것은 勿論이겠는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東洋에서 發祥하야 西洋으로 移出했던 音樂을 다시 東洋으로 逆輸入해다가 우리가 工夫하고 硏究한다는것은 우수운 일같지마는 그러나 音樂이란 社會文化의 背景을 떠나서는 存在할수 없는만큼 西歐의 文明을 輸入하기에 無暇한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音樂에 있어서도 또한 文明의 一要素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以上 西洋音樂을 輸入해온다는것도 決코 不可解의일도 아니요 無意味한 일도아니라고 생각한다.
東洋에는 東洋으로서의 獨特한 文明이있고 道德이나 倫理가 있지마는 오늘날 우리生活에는 오히려 西歐의 그것中에서 어느優秀한 點이나 生活에 適合한點을 더많이 찾을수 있으므로써 西歐의 文明을 輸入해 오는것이라면 그와꼭같은 理由下에서 東洋에는 東洋人獨特의 音樂이있고美術이있지만도 또한西洋의 그것을 輸入해올 必要를 느끼는것이라고 할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가지 생각해볼일은 우리가 西洋樂을 輸入한다는 理由로써 東洋樂은 音樂으로서의價値 다시말하면 藝術的價値가 없다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藝術의 香氣가 높은 古代文化의 遺物이 骨董品으로서나 藝術的價値로서는 最高最上으로 評價된다더라도 그것이 오늘날 우리네의 實生活에는 適應되지않음과 마찬가지로 東洋의 音樂이 藝術的으로는 最高의 地位에 있다하더라도 오늘날 우리의 實生活에나 感情에 適應되지않는다면 그것은 또한 骨董品에 가까웁다고 할수밖에 없을것이다.
그러면 大體오늘날의 東西洋音樂間에는 어느程度의 差異가 있으며 兩者間에는 얼마나한 長處와 短点이 있는가? 이것이지금 내가 여기서 論究해 보랴는것이다.
大凡音樂에는 반듯이 세가지의 要素가있다. 그러나 이세가지要素를 具備하지 않었다고 音樂을 形成할수 없는것은아니다. 세가지要素란 Rhythum(節奏, 韻律, 或은律動)과 Melody(旋律, 俗稱曲調)와 Harmony(和聲)이다. 그리하야 勿論 이세要素가 融合하야 三位一體가 된것이라야 完全한것이라하겠지마는 때로는 旋律과 律動만의 音樂도있고 또原始的形態로는 律動만의 音樂도 있는것이다. 今日西洋의 音樂이란 이세가지 要素가 具備치 않고는 成立되지 않지마는 그러나 上古時代의 未開한 人種間에는 律動만의 音樂도 있었던것이다. 律動만의 音樂이란 旋律이나 和聲을 奏하는 樂器가없이 但只打聲樂器만의 合奏를 말함이니 이것은 마치 朝鮮의『매구』와 같은것이다. 그러나 東西를 通하야 이種類의 音樂은 極히 原始的이오 地方的 인까닭에 여기에 論及하지않거니와 가장進步된 藝術的音樂에 있어서 東西洋樂을 比較한다면 그形式에있어서 西洋樂은 立體的임에 反하야 東洋樂은 平面的이다. 이것은 오직 音樂에만 局限된 差異點이아니라 文學에서나 美術에서나 建築에있어서도 共通되는 最大差異点일것이다. 다시말하면 東洋樂은 어떤 一定한 律動에依하야 各種雜多한 樂器가 旋律을 平面的으로 齊奏하지마는 西洋樂은 律動이나 旋律以外에 和聲이란 音의 一群이 立體的으로 連續流出되는것이다. 그結果는 自然히 東洋樂은 單調에 흐르기 쉬움에反하야 西洋樂은 變化性이 豊富하고 하나는 靜的이요 保守的임에 反하야 하나는動的이요 進取的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比較的이요 絶對的은 아님을 말해둔다) 그뿐만아니라 音樂의 土臺를 이루는 그律動에 있어서도 東洋의 音樂(特히 朝鮮音樂)은 大部分이 極히 遲緩하야 解弛하고 退嬰的氣分에 쌓여있지마는 西洋의 音樂은 特殊한 例外를 除하고는 擧皆 輕快壯重하다. 뿐만아니라 東洋樂은 그感情表現에 있어서 몹시도 迂廻的이요 表面的임에 反하야 西洋樂은 單刀直入的이요 深刻味가있다. 다시말하면 東洋樂에는 哀愁는 있을망정 悲痛한맛이 적고 長閑은 있을망정 鄭重한 맛은 西洋樂에 不及하는感이있다. 또作曲上技巧로 말하더라도 自然이나 人生의 描寫에있어서 旋律만으로는 不足之歎을 免할수없으니 그러므로 東洋樂은 듣고난後에 別로히깊은 印象을 얻을수없음이 이또한平面的이오 表面的인 音의흐름(流)에 끝이는 까닭일것이다.
그다음音樂의 內容에 있어서는 더욱이나 東洋樂의 貧弱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을수 없으니 古來로 東洋樂이란 民間에 流行되는 童民謠나 俗謠舞踊調等을 除하고는 모다 이것이 仙人道士의 天援의 秘法으로나 된것으로 알어서 거기에다 種種의 因果와 宿命論같은 憶說을 附하기도하고 때로는 大同小異한物件에다 虛構의 훌륭한 表題만을 걸어놓았을뿐이다. 그러므로 東洋樂은 그表題에 나타난것만 볼때에는 몹시도 內容的인것 같지마는 其實 何等의 具體的內容을 갖지못했다. 그뿐아니라 形式에 있어서는 더구나 漠然하야 西洋樂에서 보는바 所謂樂曲의 形式이란 찾을수가없다. 그러므로 東洋樂에 있어서는 그作曲된 時代를 推究해보지않고는 이것에서 古典이니 浪漫이니 近代니하는 派別을할수가 到底히 不可能하다. 勿論 今日에남어있는 雅樂類는 그作曲된 年代로 보아서나 外形에나타난 形式으로보아서 擧皆古典에屬함이 當然할것이려니와 人智가 發達하고 風習思想感情生活等이 모다 變遷해진오늘에 니르기까지 音樂上에있어서는 何等變遷이나 發達된 形跡을 찾을수없으며 또 새로히 作曲되는것도 없으니 이事實만 가지고 생각하더라도 今日의東洋樂은 東洋獨特의 思想이나 情操나 乃至文化史的 價値를 가진者로 우리가世界에 紹介하고 자랑할수는 있다드라도 이것이 곧 우리의實際生活에 適應符化되는것은 아닌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가저야할 音樂은 果然어떠한것인가? 하는것을 잠간말하련다. 在來의 音樂그대로를 家庭이나 或은學校에 들여온다는것이 理想으로 좋을넌지 알수없어도 實際 可能한일이아니요 그렇다고 西洋音樂그대로를 移植해놓아도 亦是 全部가 우리네의 感情에 適應될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西樂과東樂을 勿論하고 彼此의 長點을取하야 우리네의 思想과 感情을 土臺로하고 그우에 새로운音樂을 創設하지않으면 아니될것이다. 널리말하면 新東洋音樂이 될것이요 民族的으로본다면 新朝鮮音樂이생겨야 될것이다.
數年前부터 一二樂家의손에서 古來의 朝鮮民謠를 西洋樂化하는 運動이 일어났으나 아직까지 所期의 結果를 보지못하였음은 오히려 當然한일이 아닐가한다. 우에서도 말한바와같이 西洋樂은 立體的이요 東洋樂은 平面的이다. 다시말하면 西洋樂은 마치 西洋의 高層建築과같고 東洋樂은 平面的인 單層建築과 같음으로써이다 비록 時代가 變遷되였다고한들 單層建築物을 허러서 高層建築物로 改造함이 얼마만큼이나 可能할것이가. 勿論 音樂의素材되는 音階에는 共通點이 있는것과같이 建築의 素材로는 同一物이라 하더라도 이미 다듬어놓고 지어놓은後에 이것을 根本的으로 改築하지 못함과 一般으로 몇千몇百年 傳來하던 自家의 音樂에다 一種異樣의(차라리異端的의)和聲이란 材料를 加한다고 決코 平面的建物이 立體化할수는 없는것이다. 이것이야말로 眞所謂 浴猴而冠의感이 없지않을지니 理論보다 實際가잘證明하는것은 西洋樂式으로 編曲한 在來의 朝鮮樂을 多少洋樂의 素養을 가진이가드를때는 東洋的色彩가 濃厚하다고 할딘지 모르지만은 西洋樂이란 드러보지도못하던 朝鮮의 律客이나 歌客에게 이것을들려볼때에 그네들은 여기서 秋毫만치도 朝鮮의 情操는 찾을수없다고 말함을드를때에 비로소 우리는 朝鮮樂의 西洋式編曲이란 似而非의 混血兒라는것을 깨닫게 되는것이다.
東洋樂을 比較하던 끝에 編曲問題에까지 言及함은 저윽이 脫線된感이 不無하나 早晩間 우리는 新時代 新文化人으로서의 새로운 音樂을가저야 될것이요 이것을 가지랴면 어떠한 方途를 取할까가 무엇보다도 先決問題인 까닭에 이問題에 對한 두어마듸 愚見을말한것이다. 十八世紀末까지도 先進諸國에게 野蠻視되던 露西亞가 十九世紀初에 이르러 所謂 國民樂派의손에서 新露西亞音樂 創設運動에 努力한結果 一世紀를 不出하야 世界의樂權을 掌中에 쥐이다싶이 된것을보거나 「빡흐」以前의 獨逸民族이 佛伊等에게 亦是 野蠻視되다가 十七世紀初에이르러「빡흐 「헨델」 「모차-ㄹ트」 「하이든」같은 不出世의 大樂家의 衆出과 그들의偉業으로 말미암아 또한 世界的으로 音樂國이되고 音樂的國民이된것을 보더라도 우리들中에는 하로바삐 朝鮮의「빡흐』와 朝鮮의「뻬-토」이 나서 가장 잘 우리의 心情을 描出하고 가장잘우리의 感情에 符化되는 新朝鮮音樂을 創設하지않고는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가 가저야될 참音樂은 찾을수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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