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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을 콧노래 하는 박호진 여사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아리랑을 콧노래 하는 박호진 여사 아리랑을코노래하는朴昊辰女史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 +++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35-12 昭和十年十二月
면    수 261 261
기사
일석이조(一石二鳥)란말이있다. 한개의돌을던저서 두마리의새를 잡었다는말이다.
요컨대 노력은적게드리고 수확은 노력보다 배나얻는다는소리다.
내가 정종명여사를 찾어왔든김이다 그의있는곳이 바로 박호진여사의댁이다. 박씨도 내가 찾으려든 목적의 인간이다. 왔든김에 한자리에서 만나보기로했다.
정종명씨가 신경질이오 기민한사람이라면 박호진씨는 늘어질대로 늘어져서 히비애락(喜悲哀樂)의표정이 용이하게 얼굴에 나타나지안는 성격이다. 취미가 동일한부부 그두사람사이에 조화(調和)가 잘되지않고 단조로워서 곧 권태가온다. 정종명, 박호진 양씨는 두분이 여성이오 벌서오래전부터 친구요 동지이건만 기회가있는대로 동거(同居)하야왔다. 그리면서도 그동안감정에 충돌이 없이 시종이 여일하게 우의관계를 직혀왔다는 거기에는 이러한 상반적 성격이 오히려 조화가되어 권태를 물리처 주는지모른다.
문 앞으로 조선의 부인운동이 어떻게 전개(展開)될것이라고 봅니까
답 그것도 모릅니다. 나는병으로 치료에전심하고 있는사람이라 그런것을 생각해볼때가없읍니다.
문 그러면 매일무엇으로 그날을 보냅니까
답 이지막은 병이좀나어서 틈있으면 도서관에갑니다. 그렇지않으면 집에서 찾어오는동무와 한담이나하고요.
문 다시 금후에있어 부인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는때에는 나오실생각이 있는가요.
답 언제나 나슬만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다고할까요.
그는 평양태생으로 평양에서 숭의여학교를마치고 그후상해(上海)에갔다가 다시광동(廣東)에가서 광동대학문과(文科)에다니었으며 그때에 이황씨를만나서 부부생활을 하다가 그것도 뜻하지않은 사정으로 그만헤여지게되고 지금은독신으로 있는것같다. 말에 조리가있고 태도가무겁고 동무간에 신임이많었으며 근우회 경성지회위원장(槿友會京城支會委員長)으로 활약하든바 감옥에서 삼년을 보내고나왔다.
정종명, 박호진두분은 수송동 남의집뒷채 단간방에 누어서 그저 세상의 모든것을 다몰른다는듯이 아이랑타령만 부르고있다. 그리고 그순간 그들의태도와 언어가 완연히세사(世事)를 초탈한듯하다.
아리랑의 작자가 누구일까? 돌아오는길에 정악전습소에서도 가야금소리가흘러나온다. 역시아리랑이었다. 나는 수송동에서 청진동으로 빠져나오면서 이런생각을하였다.
조선사람에게 노소와 계급을 초월하고 널리알려진 민요(民謠)가 아리랑이다. 괴로운사람의 입에서도아리랑이 흘러나오고 슬픈사람에도 즐거운사람에도 우리는 아리랑을부른다. 더욱이 조선인의 가는곳에는 반듯이 아리랑이 따라가고있나니 북만(北滿)한촌에서도 서백리아의 오지(奧地)에서도 조선인의 발자취가는곳에는 반듯이 아리랑이 따라다닌다.
대중적으로 불려지는 노래 중에도 유행가(流行歌)는 생명이짜르다. 한때가지면 또다른것이나온다. 그러나 민요는 그것이 시대를따라서 가사나 음부에 약간 변동이생기드라도 그대로 시대와 민중과함께 그민족의 정신에 담겨서 후세후세에 흐르고있다 아리랑의 작자가누구일까 어떤종류의것은 그작자를 모르는것이특색이다. 그저 그시대생활 환경에서 어떤아지못할 무명의 예술가의 입에서 자기의 신세타령비슷이 불러진것이 이사람입에서 교정되고 저사람입에서 교정되어서 그시대 그민족의 혼(魂)이 담기게된것일것이다. 영국인은 셱스피어를 자랑한다. 우리는 웨 아리랑을 무시하여야할까 나는이러한 생각을하면서 종로서(鐘路署)뒷골로 더듬어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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