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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음악 연구소 방문기―약진하는 조선문화의 이채를 찾아서(1)―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코리아 음악 연구소 방문기―약진하는 조선문화의 이채를 찾아서(1)― 코리아音樂硏究所訪問記―躍進하는朝鮮文化의異彩를찾어서(1)―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K기자 K記者
출처정보 사해공론 四海公論
연    도 1935-10 昭和十年十月
면    수 131 131
기사
太陽이 빛을 보지못한지 오래다, 陰欝하다, 窒息할것같으다.
그리하여- 여기서 새로운 拍車를 글니는者있으니-(잠간만-무슨天氣무당 (豫報)이 않이다)
그를일너, 코리아 音樂硏究所라한다.
오늘의 朝鮮音樂界는 한개의 完全한 學校는故捨하고 한개의 硏究團體도 없지안는가, 天才的으로, 音樂의 素質을 豊富히갖었건만! 그素質을 完全히發輝할만한 찬쓰를얻지못하여 헛되히 野에서 슬어지는, 맨, 옾 뮤직 이 얼마나, 많었든가 이와같은 現像은 돈없어 가난한 우리社會에있어서 理由를 뭇지않어도 뻔년한 歸結的事實같기도 하나 어느한편 우리의 樂壇은 꾸준한-미덤직한 일꾼이 없었든것도 公的으로 歎할 事實이라하겠다.
-이약이는 딴方向같기도하나 前前號에 本誌는 某樂隊에 視務中인 李園仁氏의 「朝鮮音樂人列傳」을 揭載하였든바 京城市內某處에서 다음과같은 投書가 드러왔다.
「-前略 水嚁會라는 것도 인찌기 야마시 音樂團體요 뿐만않이라, 그구락부나 강습소라는것도 全뚜쟁이판이오 조××라는者는 아모힘도없는者다, 밤낮童妓들을 모여다놓고××하는것으로일삼는다……中略!-」
얼마나 寒心한판인가.
朝鮮에는 音樂을 한다는자 許多하여도 人物이없다하면過한말 같기도하나, 우리는 只今眼前에서이와같은 추태를 뚜럿이보고 있지않는가!
節操있는樂人, 참다운노래朝鮮의 建設者는 흐리터분한하늘에 별보기보다, 어렵다, 이모-든 알음답지 못한事情에서 痛感한바있어 百萬의 敵을 물니치고 싸우겠다는 코리아 音樂硏究所의 玄關을 두들겨보자.
×
붉은벽돌 二層洋舘이바로 硏究所이다.
事務室에 來意를 말하고 二層에올으니!
하기도 그렇지 알음다운 멜로듸-가 이방저방에서 새여흘은다.
그야말로 딴世上이다.
大體어느門에 녹크해야 失王없을가하고 記者는 한참망서리다가.
「總務課」라 패가달닌 또어 에 노크를 하였드니 아마 크게 잡어서한메틀 (三尺三寸) 이나 될가말가의 어린친구가.
「누구세요?」
記者는 일부로 帽子를 버서들고 잔뜩九十度敬禮를한담에.
「네-코리아 音樂硏究所所長朴榮根先生님을 찾어뵈려왔습니다.」
쪼그만한 친구는 나의 이런態度에 좀의아한눈치를 보이드니 應接室에 記者를 잡어넣고 퉁탕거리며 딴방으로 가버린다, 記者 本是 어린친구를
퍽 조와 하든터에 그렇게 귀엽게 생긴 아이꼬- 돈부리를 맞내니 막상 그럴밖에……
맞나 주실朴氏가 들어오시기 前 記者는 職業的의가장純眞한觀察로 應接室房안을살펴보니.
한편구석에는 야마시다 올갠이 놓였고 한편벽장위에는 철을 지나 休息中인 선풍기가 여덜개놓였다, 이윽고 朴氏가 들어오섰다.
「더우신데 찾어와주시니 감사함니다 記者가 하여야할말을 氏 먽어 하여주신다.
記 「世間에서는 先生께서 主幹하시는 이音樂硏究所를 將次우리 朝鮮에 생겨질 唯一한 最初의音樂學校의 出發이라고들 하든데요!」
하고 記者는 입을 열었드니 朴氏는 천천히 다음과같은 抱負를들여 주신다.
朴 「감사함니다, 그렇게 봐 주신다면 우리들은 그以上光榮될배 없겠읍니다, 世界 어느나라에 지지않을만한 音樂의 歷史를갖이고 있으면서도 우리에게는 學校하나 없다는것이 여간한 수치가않임니다 東京에는 百三四十名의 젊은 이들이 各其音樂學校에 난이워있읍니다 그의泰半이 聲樂을 專攻하고있는 現象이니 이것을 보드라도 조선사람의 성대가 얼마나 좋다는 것은 알수가 있지않슴니까 器樂같은것은 그-性質上 幼小한때부터손에 쥐어야할것이나, 그렇지않어도 남들의 말하는대로 山水가 좋은 朝鮮이라 그랬든지 朝鮮에는 音樂家!그中에도 聲樂家가 많웁니다, 天然的으로 樀切한 風土이라 어느程度의 變聲過程을지나면 大自然의 하늘아래 꽃을따며 흥타령을 불느는…… (듯고있는 記者亦是 어렷을때 北朝鮮의故鄕의 푸른벌판에서 늘마당 키를 재여보며 싸우든 웃집게집애하고 손에 손목을잡고 불느든 일흠도 성도없는노래……그것을 생각한다) 그속에서 우리의 音樂家는 몰으고 몰으는새이에 자리는것임니다.
그럼으로 東京에 오고가는 指名한 音樂人들은 朝鮮人의 목청을 音樂의 허리웃인 伊太利에 比하여決코 捐色이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天性的성대를 갗이고도 뛰여 나지못하는 原因은 두말할것도없이 經濟問題인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때 까지든지 배나무밑에 갓(笠)을 물고기대려야 할가요!그러니까 우리도 專門家의 靑年도靑年이지만 그들에게 活躍할 土臺를주자 即!率直하게 말하자면 專門家다운 節操를버리지않고 安心하고 나갈수있는 빵을 주자는것이겠음니다.
듯고 있는 記者果然 그렇다고 생각하였다.
記 「그러면 그푸랜은?」
朴 「네!그것을 爲하여 우리는 코리아레코-드會社와提携하여 코리아音樂硏究所를設立하였읍니다
記 「그러면 코리아, 레코-드會社와는 提携뿐이라는 말슴임니까?
朴 그렇슴니다 硏究所自體만은 有機的關係뿐이지直接關係는 없다고하겠읍니다」
記 그러면 今後의 方針을 말슴해 주시기 바람니다.
朴 한마듸로 끈어말하자면 오페라의前夜가 이硏究所라고하고 싶슴니다, 또한이제부터는 音樂人이漸次 토 키의 從業員이 되어간다는 것도 알어야 하겠읍니다.
朝鮮에게는 아직도 토-키-藝術의 發達되지않었지만 日本內地로만보아도 P, O, L, 같은 映畵製作社에서 한번撮影하는데 얼마나한音樂人이主役으로 或은 엑스투러로 動員된다는것도 그의 큰實例라 할수있을것임니다, 時代는 바야흐로 움지겨서 마이큰론의 時代라하겠읍니다, 우리조선에도 한때는 꼭올것이니까요 그때에 損色없는 役軍을 倍養하는것이 우리硏究所의 任務라면任務이겠지요」
記 「코리아레코-드와의 關係 即 有機的이란 그點을 좀더 仔細히이약이하여주십시오」
朴 「레코-드文化가 民間에게 얼마만큼한 힘을준다는것은 두말할것도 없지않읍니까 多幸히 코리아레코-드는 이事業을 純然한 朝鮮사람의 손으로 그리고 社會的良心에 立却하여 레코-드藝術의文化企業的妥當性을 充分히 發輝하겠다는데 그趣旨가있는 貌樣이니 거기에 協力하야 會社는 會社를爲하여 우리硏究所는 우리를爲하여 나아갈것으로 좋은樂人을 만드러會社의 레코-드를 通하여 世上에 보낼것임니다」
記 「아까 硏究所의 未來는 오페라의 前夜라하섯는데」
朴 「그이약이는 또달은機會에 仔細히말슴드리겠으나 原體經濟問題이니까 興行的으로 하드라도 少女歌劇같은 常說機關을 하나갓고싶읍니다 敎育의 本位는職業人의 製造에있지않으니까 좀 우수운 이약이같지만 오늘날에있어서는 音樂學校를卒業하였다하여도街頭의 룬펜으로돌아가는이가퍽많읍니다, 假令레코-드歌手라처도 한장吹込하면 그만버려두게되지않습니까 그러니까 아까도말슴드린바와같이 빵을 그들에게 주어야 무슨일을 하지않겠읍니까 이少女歌劇같은 것은 朝鮮서도 相當한收入이있을 줄아는데 理解가적은 世上이라 돈내는이가없어서 야단임니다,」
-文化的企業의 一部分으로 開拓할分野가 廣濶한 이事業에나설 분이 게시지않읍니까!-
記 「只今生徒가 맺분이 게심니까」
朴 「志願은 地方까지 合하여 三百餘名쯤있으나 처음인만큼 추리고 추려서 지금 二十餘 이 工夫하고 있읍니다」
때에 한분의 젊은어른이 들어오시는데 朴氏의 紹介로 人事를하니 講師로게신 李升學氏이시다 각금 J. O, D, K 의 마이크를 通하여 曲解說과伴奏, 또는 獨唱을하시는 분이라한다, 또조금있다가왼 妓生한분이들어왔는데 十月新譜에 吹込한會社의歌手 金山紅이다 구석에 놓인올갠에 李氏가 앉으시드니 吹込練習인모양으로 노래를始作한다.
이때에 별안간.
「그게뭐야! 그렇게하여가지고 어떻게 그소리가 들어간단말이야!」
하고 李氏가꽥!소리치신다 外方사람들에게 가장 華麗스럽게역여지는 이歌手들에게 이처럼 벼락같은 남으람이 있는줄을 記者좇아몰낫다.
朴榮根氏 또한 사진으로 보는바와같이 얼골은 아조音樂家타입이신데 어덴가 訓長맟이있는 양반이시다 그도 그럴밖에……이분은 일즉이 光州公立普校에서 訓導노릇을 하다가 師範學校時代부터늘-뜻두시었든 音樂의情熱을 끝내 살리려고 斷然, 職을 덙인후渡東하여 硏究하시기 무릇 六年이신분이다 이말은記者 일즉이 留學時代 어떤친구에게서 들은말이지만 氏는 音樂뿐않이라 現論에까지 相當한力量을 갖이신분으로 氏가 音樂學校 在學當時各小學校를 放學동안에 巡廻하며 健實한農民舞踊과 音樂의 實際實習까지 식인일이 있으며 音樂學을 生理的으로 硏究하신분으로 有名하다.
이분의 한가지 逸語는 氏가音樂學校를 苦學으로 修業하실때아침 五時에 起床하여 나또行商을하는데 그때 장사式으로 「나또-」하고 소리를 치자면 일것 수양 하는성대가 변성될같고 하여 아무튼 音樂的으로 장사도되며 성대도 發達되는 一擧兩得式으로 이상한 소리를 첫드니 왼동리 사람들의 「キチカィ納豆やさん」이라고 한이약이거리가 된일이있다고 한다.
-이硏究所에 끝내 榮譽로운 躍進 躍進이있기를 마음속으로 빌면서 밖에 나왔을때는 아직도 記者의귀에는 피아노 바이오린등의 멜로듸가각가히딸고있었다.
끝 (八月二十八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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