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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음악가 안기영과 김현순의 비연 비곡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천재음악가 안기영과 김현순의 비연 비곡 天才音樂家 安基永과金顯順의悲戀悲曲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BB생기 BB生記
출처정보 신인문학 新人文學
연    도 1934-12 昭和九年十二月
면    수 46 46
기사
天才音樂家
安基永과金顯順의悲戀悲曲

歲月은 빨라서 벌서昨年봄이었다. 半島樂壇의 花形으로 그일흠이높은 安基永氏가 突然이 京城에서 자최를 감추자 梨花專門을 中心으로 一般社會에는 異常한所聞이 떠돌게되었다.
그러지 않어도 남의말하기를 좋아하는世上이라 말은 말을나어서 所聞은 꼬리에꼬리를 물게 되었든것이다.
安基永氏가 梨專學生을다리고 逃亡을하였다―이러한所聞은 심심한 사람들에게 좋은이야기材料를 提供하게되었다. 事實에있어서 安基永氏는 自己手下에있는 弟子 金顯順孃과 相思의사이가되고 金孃은 自然의法則을 免할수가없어서 姙娠하는 몸이 되게된것이다. 아직處女인 女學生이 더구나 自己先生과 情을通하야 애를배였다는것은 實로 靑天의 벼락이었다. 學校, 社會, 體面― 이무서운 눈을 避할수없는 그들은 마츰내 最後의 決心을하고 後悔와 눈물로써 京城을 떠나게되었으니 그들의 悲戀行脚은 여기서부터 始作이된것이다.
師弟의사이로 넘지못할 墻壁을넘고 뚜루지못할 길을뚫은 그네들은 한동안은『큐핏』의 화살을 기쁨으로마지하였으나 마츰내 最後의날이 오게되매 金孃은 金剛山이나 其他 사람몰을곳으로 가서 죽어버리자고 哀願하였다고 한다.
『난 살기싫여요 꼭죽어요』
하고 金孃이 야단을치면
『죽긴 웨죽어요 그래도 살어야지오, 朝鮮서못살면 中國으로가고 게서도못살면 南洋이라도 가서 살어야지오』
하고 慰勞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들이 情死하자는 議論도 있었으나 그議論은 마츰내 解消가되고 昨年四月九日인가 十日인가 날자는 仔細치않으나 두분은 秘密裡에 行具를 수습하여가지고 京城을 떠났다는 것이다.
京城을 떠나는 두분의마음― 아모리, 사랑의 逃避라하지마는 安氏는 안해와 子女가있고 金孃은 父母가게신터이라 어찌 즐거움만에 旅行이라고만 하였으랴! 더욱이 그들은 주머니에 旅費라도 튼튼이 넣어가지고 出發한것이 아니고 다못주먹만쥐고 京城을 떠났음에랴
無心한車이라 汽車는 그들을 싫고 鴨綠江을건너 奉天까지 가게되었다. 여기서 두분은 生活의자리를 할빈으로 찾을가? 上海도 찾을가하고 생각을 하였다고한다. 그러나『할빈』은 安氏에게는 生疎한곳이오 上海는 일즉이 安氏가 가본곳이라 이에두분은 上海行을 斷行하였으니 거기는 悲戀의 黑手가 그들을 기다리고있었음을 그들인들 어찌 그리짐작하였으랴! 兩氏는 途中에서 警官들에게 甚한 調査를 받으며 上海에 到着하였으나 上海는 그들에게 그리 多情하였다고는 못할것이다. 上海到着卽時로 몇일동안은 旅舘에 편이留하였으나 주머니에 돈이없는 그들은 生活을 위하여 苦海에 서지않으면 그날그날의 밥조차 먹지못하게된것이다. 더욱이 金孃으로는 이같은生活의 急轉廻에는 놀라지 아니치못하였을것이다. 世上이 따스하고 아름다운줄만알고 그反面에 쓰고 맵고 눈물나는 검은帳幕이 있는줄을 아지못하든 그이는 비로소 苦海의 첫洗禮를 받지아니치못하게되었다.
아름다운노래, 어여쁜춤, 그리고 사랑과 名譽― 京城있을때 梨專의 오로지 하나인 花形歌手로써 가슴에이러한꿈을 가득이 그렸든 그는 다시 苦海를 헤염치는 選手로는 極히어린 一年生이었다. 두분께서는 가장 값싸고 모양적은 세집 한간을 上海의 어떤郊外에 얻어가지고 비로소 홈을 이루웠으니 이것이 悲戀의홈이오 그홈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는 悲戀悲曲일것이다. 그홈이란 文字그대로 신접살림이니 수까락 두개, 남비 하나, 공기둘 이렇게 간단이 차려가지고 苦海의選手로써 勇敢히 첫出發을 시작한것이다.
밥을 먹어야한다─ 이것은 極히 간단하고도 重大하였든 모양이다. 그때는 이만하고 살수가있겠다고 기뻐도하였으나 그것도 暫間동안이오 中國의 排外思想은 朝鮮人도 日本人이라하야 그조차 몇푼버리도 떠러지게되었다고한다.
그후에는 비오는아침 달밝은저녁― 一貫한 生活苦를 繼續하야 참담한 살림을한 모양이었다. 이번 여름朝鮮語學會의 全善琪氏가 上海에 들렸을때에 東亞日報特派員 申彥俊氏집에서 安氏를만났다고 하는데 그의紀行文을 읽어보면 房한간 살림사리는 참담하기 가련하고 安氏는 파리하든 얼골이 더욱 파리하였으며 金婦人도 그快活하든 性格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얼골이 죽은想이오 表情이 없드라고 말한다. 이로보아 그들의 悲戀을 짐작할수가 있다.
그럭저럭 사라오는동안에 두분은 싸홈도 많이하였고 婦人으로는 박아지도 많이글고 짜증도 많이내였으며 네탔이니 내탔이니 하고 다투기도 많이하였으나 그것은 千萬번하여도 所用없는 일이었다. 한번쏜 화살은 다시거두기 어렵고 한번업친물을 다시 담기어려운일이 한問題이다. 밥먹고 살기가 이렇게 어려운가하고 金孃 비로소 痛感치않을수가 없었다.
일자리를 찾자― 이것은 두분의 그때「모트」이었다. 安氏와 金孃은 全上海를 뒤지기 始作하였다. 오페라, 劇場,『딴스홀』무엇이나 손이 다을만한곳은 모다뒤지게되었다. 오페라歌手로써 劇場의 노래파는 사람으로써 또는 딴스홀의 歌手로써 或은 放送局歌手로써 그들의 그림자는 서지않은곳이 없었다고한다. 그러나 이러한臨時的收入으로는 그날의 生活을 지탕하기가 極히어려웠고 다라서 金孃은 몇달이 되지아니하여 玉같은아들을 出産하였음에랴!
安氏는 夫人의解産을보아주고 돈을 벌러나가고 文字 그대로 苦役의 生活을 繼續하였다고 한다. 朝鮮같으면 多少間 同情하는사람도 있었으련만 모든것이낯설고 물설은 外地이라 그들에게 同情과 慰安을주는사람은 別로없었다고한다. 金夫人도 次次 몸이튼튼하게되고 두분이 손을合하여 生活戰線에 活躍을하야 一時는 南京放送局에까지 손을 뻐치게되여 多少 收入이있게되다. 過去의 功罪를 말하야 더구나 夫婦間에 말하야 무슨所用이 있을것이냐?
世上에 사랑이란 무엇이냐? 이사랑이란 무엇이기때문에 暫間 지나는瞬間的失手로 그들에게 그처럼 많은 苦役을 어깨에질머주는가? 運命이란 심술이 굳다하지마는 당하는 사람으로는 여간이 아닐것이다. 더구나사랑이란 처음에는 따뜻하나 그뒤에 오는것은 大槪머치지안는 길고긴 苦杯의連繼인것이다.
安氏와 金氏도亦是 이사랑의 神에飜弄되게도니것이다. 그들은 생각다못하야 上海生活을 中止하고 但하나의 보배로 가지고있든『피아노』를 팔아 旅費를 하여가지고 두살된 아들의어골을 기뿌게 바라보며 辛酸하든 上海를 떠나게되였다. 가는곳은 東京이라 安氏는 前日 빅터와 其他『레코―드』會社와 關係가있었는데 이번가는뜻은 레코―드吹込을 主로하고 其他東京의 樂壇을舞臺로하야 私生活의 길을 열고저함이니 某消息通의말을들어보면 이미 上海에서 빅터와 其他會社와 契約이있어가지고 東京으로 갔다는말이있다. 그들의 悲戀悲曲을 레코―트에 吹込하면 반다시 잘팔릴것이니 여기 着目한 某 레코―트會社도 先見之的이있다 할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更生의 意氣를가지고 音樂界에 活躍하여 新生의 길을 밟기를 바라는바이다.
지난十七日에 東京에있는 朝鮮人音樂同好者로 組織된『音樂同志會』에서 두분을위하야 歡迎慰安會를 열었다하니 듣기에 반가운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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