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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귀향 감상록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최승희―귀향 감상록 崔承喜―歸鄕感想錄
종    류 대담 對談
필    자 +++ +++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41-04 昭和十六年四月
면    수 148 (148)
기사
[사진] 최승희
朝鮮에돌아온感想
記 者-朝鮮엔 얼마만이지요?
崔承喜-달數로는 三年六個月이지만 東京에 돌아왔을때가 昨年十月初닷샛날이였으니까 歐米에滯留하기는 三個年가량되였어요
記 者-故鄕에 오신 感想을 말씀해 주십시오.
崔承喜-그저 반가워요. 歐米를 巡演하면서도 늘 어릴때 자라던 서울이 더욱이 父母가 계신 서울이 그리워서 鄕愁라고 할까 그러한 무엇을 늘 느끼군 했는데 돌아와서 父母두 對하구 親戚두 對하구 또 親舊들두 對하게 되니 그저 기뻐요. 그리구 歐米에서 생각하던것과는 딴판으로 戰時下의 朝鮮은 戰時답지않게 平和와 秩序를 保持하고 있으며 物資의 乏迫도 생각하던바와는 훨씬 넉넉하군요.

내가만난歐米藝術家群
記 者-今番 歐米行脚에서 相逢한 그곳 有名人士들은 누구누구였나요.
崔承喜-公演때문에 매우 바빠서 私私로이 찾아보고 交際할 時間餘裕는 全혀 없다싶이 되였어요. 그러나 제公演을 본뒤에 찾아주는이가 大部分이여서 만날수있었는데 그것은 人事程度에서 不過할뿐이오 交際라고까지는 할수없어요. 그런데 世界各國을 巡演하면서 各處의 日本大使舘 或은 日本公使舘에서 大端한 好意로 「레세푸숀」을 해서 卽 紹介兼歡迎會를 開催해 주었는데 그때마다 그곳 有名人士와 官界의 高官, 또는 藝術家들까지 청하여서 紹介해 주므로 歡談할 機會를 얻을수있었습니다. 大槪 各大臣을 비롯하여 「엔․몰간」이라든가「헤렌․파카스타-」라든가「마루피나․호포리나」等 諸氏들과 相面했었습니다.
記 者-한나라에서 大體로 얼마나한 人士와 사괴이었습니까.
崔承喜-적은데서는 百名, 많은데서는 二百餘名이였었지만 지금와서 記憶에 남는 이가 別로많지못합니다. 그들은 다 절 記憶할테지만.
記 者-그中에는 歐米藝術家들도 있었을텐데 그들을 만나셨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崔承喜-米國에서는 露西亞音樂指揮者 스토코푸스키-氏를 만났었습니다. 相面하기 前에는 一流音樂家니까 相當히 豪華롭게 生活하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뒷골목 컴컴한 二層에서 老婆하나를두고 혼자서 쓸쓸한 生活을 하고있드군요. 藝術家와 貧困은 떨어질수 없는 가장 親한 벗인양하다고 처량한 웃음을 웃어요.
그外에 喜劇王쨔푸링, 그리고數年前 朝鮮을 거쳐간 일이 있는 映畵監督스탄뻑을 만났으며 男優로는 로버트테라-, 女優로는 루이즈레나孃, 죤고로호-트諸氏였죠. 그밖에도 數많은이들을 만났으나 一一이 말할수없죠
記 者-歐羅巴에서는 누구누굴 만났습니까. 亦是 藝術家들 말입니다.
崔承喜-巴里에서는 世界的美術家 피카소, 그밖에 콕트 마티스, 데고부라 쟝고푸드等諸氏였는데 그분들이 제 舞踊을 熱心히 觀覽해주었습니다.

大統領夫人의印象
記 者-이번 巡演에서 만나보신大統領이나 或은 그 夫人의 印象을 말씀해 주십시오.
崔承喜-그러한 분들은 中南米에서 만났습니다. 中部亞米利加의 멕시코에서는 副大統領을 만났었고, 南亞米利加의 智利國에서는 大統領夫人을 만나 가치 이야기도 하고 寫眞도 가치 박았었죠. 다 親切히 대해주는 품이 全혀 平民的이여서 조금도 내노라 뽑내거나 거만한 態度를 보여주지않아서 퍽 그 印象이 좋아요.

歐米에서만난朝鮮人
記 者-朝鮮同胞로는 누구누구를 만났었나요.
崔承喜-歐羅巴에서는 戰亂때문에모두 避難가서 세분밖에 못만났어요. 獨逸에도 北部에는 못갔고 南部에만 갔었기때문에 別로 만날수가 없었으며 英國엔 도모지 가지못했고, 그러니까 巴里에서 만나뵈였지요.
中南米에서는 單한사람을 만나뵈였고, 第一 많이 만난데가米國이었습니다. 米國에서는 到處에서 만났는데 모두 반가이 對해주드군요.

舞踊行脚十萬哩
記 者-歐米舞踊公演行脚談이나들려주십시오.
崔承喜-그 얘기는「三千里」誌上에도 여러번 發表된거니까 머 되푸리할껀 없지만 처음 가기는米國이 였었는데 그땐 支那事變勃發後이여서 對日感情이 나뺏던 關係로 생각했던바대로 일이 順調롭게 進行되지못해서 二十回의 公演을 하고는 그만 歐羅巴로 건너갔지요. 佛蘭西巴里에서 二十三回, 和蘭에서 十一回, 白義耳에서 九回, 南部獨逸과 波蘭에서 昨年五月까지 四十餘回의 公演을 하여서 自畵自讚하는 感이 없지않으나 매우好評을 博했습니다. 이것이 모두 봄씨-슨이였는데 가을씨-슨에 南歐빨칸諸國(유고, 흥가리, 루마니아, 첵코, 오스트리, 불가리아, 希臘等)과, 伊太利, 英國等 여러나라와의 六十回의公演과 또 北獨逸에서 四十回의 公演을 하기로 契約까지 했었으나 九月三日날 英佛이 宣戰布告를 發하자 그만 모두 斷念하고 西班牙舞踊의 本山인 西班牙마트릿트에 갈까 그렇잖으면 伊太利로 갈까 망서리면서 動亂의 巴里를 脫出했지요. 脫出해서 서너달동안 避難民속에 끼어 쫓겨다니다가 昭和十四年十二月에 米國으로 다시 건너가서 三個月間 公演했으며 昭和十五年五月頃부터 中米의 멕시코와 南米의 알젠진, 부라질 智利-, 페르, 코스타리카, 콜럼비아, 에콰돌等諸國에서 公演해서 分에넘는 激讚을 받었습니다.
記 者-모두 合하면 몇回의 公演을 하셨던가요.
崔承喜-百五十回가 넘습니다. 그리고 今番 巡演行脚의 里數는 十萬마일(哩)의 긴 旅行이였어요.

世界第一의美人國은
記 者-巡演하시면서 各國의 女子를 다 보셨을텐데, 어느나라女子가 第一 美人이든가요?
崔承喜-그럭 저럭 各國女子를 다보았는데 제가 본 世界一의 美女國은 南亞米利加諸國의 女子들이였어요. 中米의 墨西哥의 女子도 매우 아름다웠지만 南米의 智利國女子라든가 알젠진國의 女子들은 참 이뻐요. 어쩌면 그렇게도 아름다운지 嘆服했어요. 本來 南米의 女子들은그 祖上이 西班牙人이였었기때문에 모두 混血族들이지요.
記 者-都市의 美로는?
崔承喜-亦是 巴里얘요. 米國뉴-욕같은 곳은 雄壯하지만 美를찾자면 巴里가 아주 째웠어요.

家庭․趣味․讀書
記 者-이렇게 늘 돌아다니시는 몸이니 家庭에 對한 愛着은 적으시겠군요.
崔承喜-웨요. 애기들과 가치 있어서 가치 웃고, 가치 놀고, 또 어머니로서의 敎育을 시킬 機會를 자주 놓지게 되는것을슬퍼해요. 그렇다고 全혀 家庭을 떠나있는 몸은 아니기때문에 家庭에 들어가면 누구에게 못지지 않는 家庭에 對한 愛着을 가집니다. 安漢氏(夫君)와는 늘 가치 다니니까 가는곳마다 家庭일수는 있으나 이번과 같이 歐羅巴에 가서 三個年間이나 있게될때는 實로 아이들에게 對한 그리움을 禁키어려웠습니다.
記 者-趣味로는 무엇무엇인가요.
崔承喜-좋은 映畵를 즐기며 그 外에는 適當한 運動을 즐깁니다.
記 者-讀書는?
崔承喜-文學書籍을 늘 손에서 뗄수없습니다. 그리구 제가 舞踊에 關係하니까 舞踊에 關한 書籍도 늘 들여다보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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