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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에 피는 꽃들(기6)―전옥 편―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예원에 피는 꽃들(기6)―전옥 편― 藝苑에피는꼿들[其六]―全玉篇―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F기자 F記者
출처정보 중앙 中央
연    도 1934-07 昭和九年七月
면    수 106 106
기사
流浪의花形女俳優 波瀾만흔그의半生記

全玉!
그의일홈은 記者가 지금 새삼스럽게 重言複言 紹介할必要가 없을만큼 朝鮮藝苑에서는 넘어나 有名한 存在가되여잇습니다.
映畵女俳優로 舞臺女俳優로 그리고 最近에 이르러서는 名歌手로 그는 『스크린』과 『스테이지』와『레코-드』를 通하여서 적어도 數十萬의 『』을 가지고잇습니다. 그는 果然 빗나는 朝鮮의 花形俳優요 또 名歌手로서 모르는사람이 없는분입니다. 그는 어째서 이처럼 朝鮮藝苑에서 크나큰 사랑을받는 幸運의女性 이되엿슬가요 그것은 두말할것도없시 그의 타고난 藝術的天分과 그의 고흔姿態와 아름다운목소리等々이 그로하여금 오늘의 그러한結果를 보게한것이 아니겟습니까?
그러나 남보기에는 이와같치 幸運의女主人公인 그에게도 亦是 險難하게 걸어온 過去의 生活이잇섰습니다.
그는 괴로운한숨으로 보내인 몇몇해의 쓰라린 歲月의 記憶을 아직도 그의 머리속에 간직하고 잇슬것입니다. 자-그러면 긴이야기할것업시 그가 오늘날 名俳優名歌手가 되기까지에 걸어온 그의발자최를 잠간 삷혀보기로 하십시다.
× × ×

[사진] 最近의 全玉孃(꿈꾸는듯한그의눈)

그는 元來 故鄕이 咸鏡道엿습니다. 咸鏡道咸興에서 代書業을하든 全英述氏가그의 사랑하는 父親입니다. 그는 그아버지의 셋재딸로 咸興에서 波瀾많은 그生의 첫소리를 울렷습니다. 어렷슬때에 불르든 일홈은 全德禮-그는 雅淡하고도 純眞한 少女로서 學齡이되매 그곳 普通學校에 入學하여 別般 波瀾이없이 그普通學校를卒業하엿습니다.
그는 學校다닐때부터 總明하고도 多感한 少女이엇습니다. 그리고 타고난고흔목소리-그것은 마치 꾀꼬리의 그것과같치 듯는사람들을 恍惚케하기에 充分하엿습니다. 그는 普通學校를 마치고나서는 곧上級學校에 가려고하엿스나 家庭의事情이 이를許諾하지 않어서 機會오기만 기다리고 잇스면서 오직 書籍을 唯一한벗을 삼어 그鬱々한 心思를 스스로 慰勞하엿습니다. 그리는 일변 그는 그곳 淑明學院이란조고마한 敎育機關에 뜻을두고 그곳에서어린 少女들에게 글가르키는것으로 唯一한樂을삼엇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姑息的인 生活이 언제까지나 그에게 滿足을 주지는 못햇습니다. 그는 마츰내 불붓는듯한 希望과 情熱을 그고흔가슴속에품고 앞날의幸福을꿈꾸면서 故鄕 咸興을뒤로두고 繁華한 서울의거리를 찾어 上京하엿습니다.
그가 그때나이 不過十六歲의少女로 그렇게 大膽하게 上京하게 까지된 背景에는 그의 오라버니되는 全斗玉이라는이가 잇섯스니 그는 그오라버니를 믿고서 上京하엿든것입니다. 그 오라버니 全斗玉氏는 그의 藝術的天分을 누구보다도 더잘 알고 더잘 認定하엿기때문에 그를 當時新劇運動團體로 지금까지 朝鮮新劇運動史上에 그일홈이 빗나는 土月會에 紹介하여 土月會의 女俳優로 入會케하엿습니다. (土月會에 入會하기前에 그는 羅雲奎푸로덕숀에 들어가서 映畵俳優로의 그첫거름을 띄어노핫섯다. 그러나 그期間은 그다지 길지못하고 다음으로 入會한곳이 土月會이엇다) 그는 土月會女俳優로서 『五男妹』라는 演劇에 그處女出演을하여 그藝術的才分을 遺憾없이 發揮하여 滿都의演劇『』들을 놀래엿스니 그때부터 『女俳優全玉孃』의일홈은『』들의 입위를 오르나리게되고 그가 舞臺에 나올때마다 雨雷같은 拍手聲이 恒常 그의뒤를 따르기始作하엿든것입니다. 그後 그는 또 『月曜日』이란 演劇에도 出演하여 그의 劇才를더욱 分明히 認識식히엿습니다. 그리하야 그때는 임이『女俳優全玉孃』은 朝鮮劇界에 없지못할 한개의 큰存在가 되엿습니다.
이때의 한 揷話로서 지금까지이처지지 않는것은 그의 出演한演劇『月曜日』때문에 그가 一週日동안이나 警察署留置場生活을 한 事實입니다.
그는 그 『月曜日』이란 演劇에 잇서서 ××主義排擊을 가장 煽情的으로 演出하엿다는 理由로 그같치 留置場구경을 한것이엇습니다.

[사진] 團欒한그의家庭(右로부터 姜弘植·全玉·그들의貴童과 姜君의母堂)

그後 그는 朝鮮硏劇舍가 創立되매 그곳에 女俳優로 入舍하여 昨年까지 硏劇舍의 花刑俳優로서 滿都 演劇『』들의 人氣를 獨占하다십히 하엿습니다. 그가 舞臺에서 한번 우스면 觀衆이 따러서 웃다가도 그가 다시 눈물지우면 觀衆이또한 그들의 손수건을 그눈에서떼이지못할만콤그入神한妙技는 『떼리께잇트』하게까지 觀衆의心琴을울리여 不知中에『참잘한다!』하는 感嘆聲을 發하게하엿든것입니다. 例를들면 眞情으로 사랑하는 自己愛人 그愛人의 前途를 光明잇게하기爲하야 거즛 그를 잠시 排斥하는 態度를갓는 女主人公』으로 扮裝한 全玉孃! 그는 舞臺에서 그愛人을 向하여서는 『무엇하러 왓서요! 가주서요! 당신은 이집에 올필요가 없는 사람이야요!』하고 노한얼골로 소리를 질르다가도 곧 도라서서는 가슴속에서 복바처오르는 슲음을익이지 못하는듯 흙흙 늣껴우는 表情 그二重表情의 妙技에는 누구나 嘆服치 않은사람이 없엇든것입니다.
그의 女俳優生活은 이러틋 꽤오래 繼續되엿습니다. 그동안 그는 어떤때는 幕間에나와 그 明朗한목소리로『붉은사랑』을 노래하기도하엿고 또 어떤때는 얼골과몸을 치장하고서 거즛웃고 거즛우는 자긔자신의 가이없는 생활을 스스로 노래불르기도하엿습니다.
그런데 여긔에한가지 事件이닐어낫습니다. 이것은 記者도 確實히 그런지 아닌지 지금도 잘알지못하는 일입니다. 만은世上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에 그는 어느 男子와 戀愛를 하엿다합니다. 情熱의女性인 그인만콤 그는반드시 모든것을 태워노코야말듯한 熱々한 戀愛를 하엿슬것임에 틀림이없음니다. 그러나 어떠한 事情이잇섯든지 그들은 그들의 過去를 깨긋이淸算하여버리고 그後 그의사랑은 朝鮮硏劇舍의 指導部의한사람인 姜弘植君을 相對로 불붓기 始作하엿습니다. 이리하야 全玉孃은 姜弘植君과 熱々히 사랑하는 사이가되여 두사람은 마츰내 結婚을 하엿고 그들의사이에는 사랑의 結晶까지 생기게 되엿습니다. 그러나 好事에 多魔라는 녯말과같치 『파라다이스』갓같 그들의 즐거운 家庭에는 또다시 한風波가 일엇스니 그는卽 姜弘植君에게 本妻가잇다는 事實을 全玉孃이 發見한것입니다.
이리하야 全玉孃은 다시금 悲劇의 女主人公같은 슲으고 苦痛되는 歲月을 보내지아니할수 없게되엿습니다. 그는 마츰내 그悲哀 그苦痛을 잇기爲하야 朝鮮땅을버리고 멀리流恨의길을 떠나기로 決心하고 中國의 上海로 그의 슲은발길을 옴겨노핫습니다.

[사진] 東京松竹키네마를訪問햇슬때의寫眞(×표가全玉孃)
[사진] 그들夫婦의多情한 포—스

上海! 華麗한 近代物質文明의 꼿이 필대로 픠여잇는上海! 그곳에서 그는 그의 流浪의 한때 보금자리를 『땐쓰·홀·꼴덴·이글』에다 두고 異國의 男性들을 相對로 밤이깁도록 마음에도없는 춤을추는 것으로 그의 生活의 一部를 補助하면서 괴로운 스스로의 마음을 慰勞하려하엿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浮萍草같치뜬生活이 어찌 그의괴로운 心中을 慰勞할수잇섯겟습니까? 그는마츰내 上海의 『땐서-』의生活을 집어던지고 또다시故國에 도라와 녯愛人 姜弘植君을 찾어 지금은 府內鍾路三丁目에서 姜君으로더부러 녯날과 다름없는 團欒한 家庭을일우고 잇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이에는 今年에 세살된 귀여운 아기가 잇고 또지금全玉孃아니 全女史의 배속에는 第二世姜君이 들어앉어잇서 그들의 새로운 사랑의 結晶은 나날이 生長하고 잇다합니다.
사랑의 勝利者인 兩人은 現在『콜럼비아』蓄音機會社의 專屬歌手로서 그人氣높은 노래들을 『레코-드』에 吹込하기에 餘念이없으며따러서 그들은 專屬歌手인만콤 會社의報酬만으로도 넉넉히 安定된 生活을할수잇슬만한 豐足한 待遇를 받고잇다 합니다.
『콜럼비아·레코-드』에吹込된 數多한全玉孃의 노래中에도 『섬밤』(島夜)같은 것은 大段한 好評中에 『레코-드』가 賣盡되다십히되엿고 그夫君姜弘植君의 『봄이왓네봄이와』하는 『처녀총각』의『레코-드』도 京鄕에 非常히流行하야 近來에없는 大好評을博하엿다하니 그들 幸福스러운夫婦의앞길은 더욱 빗나갈뿐이 아니겟습니다. 記者는 어느날저녁에 이 名俳優·名땐서-名歌手인 全玉孃을 그의 宿所인 鐘路三丁目一◯七番地 京原旅館으로 찾어갓섯습니다.
마츰 그夫君인 姜氏가外出하지않고잇서房으로 引導하여 들어가 그들과 人事를 한後에 記者는 全玉孃의 過去의經歷談을 請하엿습니다.
그러나 수집은處女와같치 賢淑한全孃은 오직 微笑를할뿐 입을담을고말을하지않음니다. 그리고 斷片的인 問答만이 그와 記者사이를 往來하엿습니다.
『失禮 올시다만은 올에년세가 어떠게되섯지요?』
『네 올에 스물셋이올시다』
『姜弘植氏 허구는 언제 처음結婚을하섯든가요?』
『지금으로부터 七年前이야요』
『요새는 어째 舞臺에 않나오십니까』
『네『콜럼비아』專屬이된後에는 吹込하느라고 못나갓습니다』
옆에잇든 姜弘植君이
『그리고 지금 姙娠中이되여서요』
하는말에 그를보니 果然 그는배가 좀 불르고 또갓브고 疲勞한빗이 보엿습니다.
『近日은 대개 어떠한生活을 하심니까』
[사진] 淸楚한全玉孃의맵시
『네 요새 吹込을 하는中이랍니다. 南大門밧 日華『삘딍』에가서 每日 吹込 때문에 늣게야 집에 돌어오지요』
『아기는 지금 어듸 갓숨니까?』
『咸興 제할머니(姜弘植君의 母堂)한테 갓담니다』
『두분이 結婚하시게까지된『로–맨스』가 듯고 십습니다』
일말에 姜弘植君은
『글세요 로–맨스니 무에니 할것없이그저 師弟間의사랑이 이처럼되엿지요』하면서 우슬뿐이엇습니다.
全孃은 最後까지 寡黙하엿습니다. 그는 쓰라린 過去를 말하고 십지않은듯 입을 열지않고 오직 쓸쓸한 微笑로 對할뿐 그後는 姜弘植君과의 雜談으로 들어갓습니다.
約한時間後에 京原旅館을 나온記者는 그들의 앞길에 幸福이잇기를 빌면서 繁華한 鐘路通으로 나왓습니다.
어듸선지 멀리서『레코–드』소리가 들려왓습니다 記者는 그들이 吹込한『레코-드』나아닌가하고 귀를 귀우렷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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