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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악단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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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여류 악단 총평 女流樂壇總評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ZYX ZYX
출처정보 신가정 新家庭
연    도 1934-02 昭和九年二月
면    수 44 44
기사
여자와 음악(音樂)이란것을 생각하면, 여자는 음악을 꽤 가까이 할 기회도많고 또 공부하면 상당히 득달할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내가 내머리 속으로 생각해 내인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첫재, 여자는 그음성(音聲)이 보드럽고 곱기가 남자에 비할것이 아니다 그러고, 성격에 찬찬하고 또 모방성(模倣性)이 많아, 어렸을때부터 노래를 잘 배울수있다. 둘재로는 여학교에서는 음악―창가, 풍금, 피아노를 몹시 세운다. 보통학교때에도 남자측보다 숭상하거니와, 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가서도, 음악시간이 꽤많다. 그뿐인가, 조선내의 예를든다면 음악학교로 이화전문학교 음악과(梨花女專音樂科) 가있어서 벌서 오래전부터 매해 성악과 피아노의 두과를 통하여 몇사람씩 졸업생을 내이고 있고, 또외국에서도 음악을 전공하여가지고 돌아오는이가 결코, 남자수에 못하지않을 정도이다. 이런사정을 생각하다면 조선 악단에는 여자음악가가, 좀더 있어야할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사실은 어딘가 결코, 사실은 그렇지못하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사정이 있을것이다. 그이유로는 음악을 공부하는 분들이 음악에대한 예술적 감격 또는 정열 학문적가치 또는 자신의 천분등, 이런것을 정당히 생각지 못하고 일시적 취미, 혹은 호기심에서 공부를 시작하였다가, 실패한 사람도 있을것이다. 또는좋은지도자를 잘만나지 못하였든 관계로 좋은 재주가 그대로 썩은것도 있을것이고, 또는 조선의 가정이 여자들의 천재를 발휘시킬만콤 그긔회를 주지않는관계도 많을것이다. 물론 보는 눈과, 말하기에 따라서 여러가지로 말할수 있을것이다. 이상에 말한것을 다시 한입에 말한다면, 예술가의 생명은 예술가로서의 천재적 정열에있다고 볼때, 이왕 음악공부를 시작한사람으로 어느정도까지의 천재를 발휘치못한다는것은 전혀 당자의열심과 노력여하에 따르는 때가 태반이라고 말할수있을것이다.
그런데 조선에 음악하는 여자들을 보면, 그수효는 적지않다. 그러나 그중에서, 음악가―과연 음악가라고 이름불일분이 멫분이나 있는가 하고 물으면, 글세 몇손가락을 꼽아야 좋을지, 의문이다. 거기에는 음악공부를 한 사람중에, 음악가될 소질을 타고 못난 사람이 적지않은것도 사실이겠고, 우리의 악단이란것이, 음악가될 소질을 가진분들로 하여금, 음악가적출세를 할만한 기회를 주지않은것도 사실이겠으나, 실력있는 음악가, 활동이있는 음악가를 헤이자면, 그리 많지 못한것은 더유감이다. 결국 여류악계는 빈약하다 할수밖에 없을것이다.



이제「신가정」의 주문에 의하여 많지 못한 음악가중에서나마 몇분―「이분들만은」하고 우리의 기억에 남는분으로, 현대 조선에있는 몇분을 여기에 적어보기로하련다.

정훈모씨
성악가, 쏘프라노 정훈모(鄭勳謨)씨는 꾀꼬리와같은 보드럽고 여무진 아름다운 노래를하는 분이다. 우리악단의 보배라고 할만한 훌륭한 성악가이다. 일즉이 들어본이들은 잘알려니와 여기에 내가 그를 가르쳐「꾀꼬리」같은 노래를 한다고 했다고 불복을 말할이가 없을것이다. 혹 이런반문(反問)을 할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사람이 새소리를 해서야 말이되느냐? 고, 그렇다 사람은 사람의 목소리중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아름답게 부르는 노래라야 옳다. 그러나, 사람의목소리로, 그 아름다움이 비범할 때에 우리는, 그형용을 자연(自然)에 비긴다. 그러고 자연의소리가 그아름다움의 극(極)에 달하였을때에 우리는 그형용을, 인공(人工)의 극치(極致)에 비기는수가있다.
정훈모씨는 참말 자연의 노래에 비길만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분이다. 동경 제국음악학원(東京帝國音樂學院)을졸업하면서 곧 그학교에 강사로 눌러있었든 것으로 보아도 그이가 얼마나, 훌륭했겠다는것을 짐작할수가있다.
그런데 성악에는 무엇보다도 좋은 목을 타고나지않으면 아무리 공부해도 별도리가 없다. 나는 먼저「꾀꼬리」와 같다고 비겨말했지마는 이분의 목소리는 그보드럽고 여무진 점은 과연「꾀꼬리」에 비길수있다. 그러나 그의노래하는법, 그태도는 봄날의「꾀꼬리」가 자긔를 잊고 노래를 부르고는 이자리 저자리로 가벼이 날러다니는듯한 단조한것은 아니다. 그의 노래에는 깊이가 있다. 특히 그는 독일 가요곡(歌謠曲)의, 연구가 깊은만큼,「쓔벨트」나「슈만」의「리―드」를 들으면, 어데까지던지, 인생의 심각한 번민과, 오노를 느껴 노래하는것을 엿볼수있다. 그것은, 부르는 노래의 말과곡조에따라 그부르는바도 다를것이나 그이는 노래를 부르되 가슴에 깊이 잠겨있는 자긔의 감정을 노래하는듯이 속에서 울어나오는 노래를 부른다. 여기에 노래의 생명이 있고, 그의 성악가적 천재도 여기에 나타난것은 더말할것없다. 예술가의 천품과 기량을 함부로 여기저기에 비길것은 아니나, 생각컨던, 우리가 들은 범위안에서는, 일본의 여류 성악가 누구누구에게 비하여 그리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까운것은, 음악가로서 활동할 기회를 많이 갖지못하고 시골에 묻혀있다는것이다.

김원복씨
김원복(金元福)씨의 피아노는 어느점으로보면 귀신같다.「베―벨」이나「리스트」의것같은 가장 어려운 기교(技巧)를 필요하는 난곡을 연주할때보면, 그의 열손가락이 피아노 건반(鍵盤)우으로, 기계같이 날어다니는것은 도저히 우리의 로둔한 필재로 형용할 정도가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피아노 연주를 듣지않고, 손가락놀리는것만 구경하고 다닌친고의 수작이라고 비웃는 말을 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나, 일체 연주란것은 귀로 듣고 동시에 눈으로 보는것이다. 듣는 얘기를한다면, 그의연주가, 그처럼 손가락이 빨리 동하고도, 그음이 자봉침 바눌 소리같이 한음, 한음이 모다 또렸또렸이 들리니까, 또 놀렬일이 아니야.
이렇게 말을 늘어 놓으니 말이너무 비속(卑俗)해서 푼수없이 말하는것같으나 그렇지않다. 피아노 음악이란것을 말한다면, 그역 노래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음(音)과, 또 기교를 같이 말하여야하고, 또 동시에 연주자의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마음을 말하여야 한다. 그러나 피아노는 기교를 더많이 말하게 된다. 그러고 기교를 말하자면 이역시 범위가 넓은것이나, 쉽게 말하자면, 어려운 곡조를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쉬히 연주하느냐 하는문제에 속한다. 그러고 피아노 음악에 들어가면, 또 상당히 난곡에들어가야, 피아노음악의 깊은방면을 맛볼수가있다. 따라서 기교가 성숙해야 난곡을 연주할수있고, 난곡을 어느정도까지 연주해야 피아노 음악의 깊은 맛을알수있다. 따라서 기교가 성숙하여 난곡을 연주할 정도가되면, 음악의 진미를 리해할수있고 동시에 그 피아노 음(音)의 본질적 아름다운음도 어느정도까지는 따라오게 되는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김원복씨의 기교는 피아노음악의 연주가로서 훌륭한 천분과 훈련이 가추어진 분이라고할수있다. 그의 연주는 여러가지의 형용사로 설명하는것보다, 한입으로 말한다면,「쇼팡」보다는,「리스트」의 작품에서, 고전악(古典樂)에서보다, 근대악(近代樂)에서 그의 연기는 십이분 나타난다. 또 그것이 그의 음악적성격에 가장 잘맞는것같다.

김영의씨
너무 온순하다, 너무 잠잠하다. 원래 음악가의 음악가적 경향이란것은 타고난 성격에 좌우되는바 크다하지마는 평소 생활과 환경에 좌우되는바 또 크다. 이렇게 말하면 취측의 범위밖에있는 그의 공사간의 생활을 말하려는것 같지마는, 그런것은 아니다. 다만 이말을 하게된 동기는 이러하다. 즉 그의 연주는 너무 온순하고 잠잠하야, 한걸음 더나갈곳에 나가지 못하고 생각에 망서리고 있는듯한 느낌이있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는, 그의연주에 한줄기 댓쪽같은 정기(精氣)가뻗히어 있었으면 하는 히망이 있다. 이것은 너무도 지나친 독단적인 주관적 인상을 말하는것이되나 솔직한말을한다면 그의 독주나 반주나 연주를 들을때마다 이런느낌을 가지게된다. 그래서 이런 느낌을 가질때마다 그의 평소생활이 너무 정적(靜的) 아닌가 하는 취측이간다.
이렇게 말한다고 그의 음악가적 소질 여하를 시비하는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실로 피아노연주가로 많은 재간을 닦었다. 그의 섬세한 기교와 보드러운 음을 들을때, 그의 특이한 재질에 십분경의를 표하게된다. 보통의 열심으로나 성력만 가지고는 도저히 따를수없다는것을 잘알수가 있다. 그런데 우에 말하기를 그는 너무 잠잠하다는것을 말하였지마는, 그의 현재의연주가적 생명을 찾는다면, 그는 끝까지 고요하고 침착한곳에 그의 섬세한 해석적두뢰가 나타나고 있는것을 엿볼수있다. 그러나 그의 가진 천품과, 기량은 결코, 그것에 그치지 않을줄 믿는다. 좀더 정열적 호흡을그의 연주에 부어 넣는다면 좀더 넓은 이미의 다각적인 연주가로서 놀라운 다른방면의 재질이 발휘될줄안다. 이것은 부질없는 억측같으나 반듯이 억측만이 아닐줄안다, 확실히 그의천품이 그럴수 있으리라고 믿어진다.

조은경씨
이화(梨花)출신의 피아노연주가로 조은경(曺恩卿)씨를 꼽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작년에「카나다」에서 돌아와 단한번, 연희전문학교 음악회에 출연하였을 뿐으로, 그연주를 널리 보지못하였으므로 장황히 그의 음악가적방면을 말하기는 어려우나 이화에서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다시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앞으로 연주가로서 활동이 기대되는만큼 여기에 그의 이름을 꼽지않을수없다. 이자리에서 그의 연주가적 성가를 평하기는 극히 거북하나, 작년 가을의 짧은 연주를 통하여서본다면, 극히 침착한 균형된 연주의솜씨가 충분히나타났었다고 할것이다. 물론 그것만을 가지고, 그의 전부를 취측하려함은 극히 위험한일아나, 그때「부람쓰」의 장하고 건즉적인곡을 택하여 연주한것만으로 보아도 그의연구경향은 좀더 깊은것이 있으리라는 취측이간바있었다. 하여튼 우리악단에서 피아노연주가로 활동이있을것을 기대하여 좋을것이다.

채선엽씨
피아노를 전공하였다는 채선엽(蔡善葉)씨가 언제부터 성악가로서 촉망을 받게되었는지 그경계가 극히 미상하다. 그만콤 그의 성악 공부에대한 노력이 적지않엇으므로 짐작할수있다. 물론 어느음악을 하던지, 노래를 어느정도까지 하던가, 하지는 못한대도 노래에대한 이해만은 상당한 정도까지 가져야한다. 또 다른 기악이나 성악을 공부하는 사람이라해도, 될수있는 대로는, 피아노에대한 상식적 소양만은 가져야한다. 이런점으로보아 피아노 공부하는분 특히 여자편으로서는 어느정도까지 성악을 한다는것이 당연한것이라고도 할수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 그대로 되기는 힘든 모양이다. 여기에 채선엽씨는, 피아노음악에서 아주 성악으로 방향을 고치었는지는 단언키 어려우나, 이미 성악가로서의 토대를, 상당히 닦어 놓은분으로 간주함이라타당할것같다. 아직 일가를 일우은분이라고 하기까지에는 좀더발전의 여지가 있다고 보겠으나, 우리는 오늘의 그의노래를 들을때에 성악가로서의 빛나는 향내를 멀지않어가질수있는분으로 기대된다.
그의 노래는 맑고 강하다. 맑고 강한 특성을 가진 그의 노래에 우리는 이따큼 고요히 귀를 기우리게하는것이있다. 그것은 그의 노래에 줄기찬 정신이 슬어있음이라고 본다. 만일 한마디 주문을 붙인다면 그창법(唱法)에「발부라―토」와, 어음(語音)과 곡(曲)의 조리가 한곱이 넘어 선다면, 훌륭하리라고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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