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문헌
검색 > 문헌 > 기사
민요에 나타난 애화(2)―산유화 노래와 박향랑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민요에 나타난 애화(2)―산유화 노래와 박향랑 民謠에 나타난 哀話 (2)―山有花 노래와 朴香娘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차상찬 車相瓚
출처정보 별건곤 別乾坤
연    도 1932-11 昭和七年十一月
면    수 15 〔15〕
기사
하눌은어이그리 놉핫스며
은어이그리 넓엇든가
하늘이 크다해도
몸하나 의탁할곳업네
찰아리이못에 저죽어
고기밥이 되고지고
『天何高遠 地何曠漠
天地雖大 一身難托
寧投此淵 葬於魚腹』
금오산(金鰲山)에 아지랑이고 낙동강연안(洛東江沿岸)에 고흔 풀이 파릇파릇하게움나오는 봄철 이되면 영남의젊은녀자들은 보구니를엽페고 三三五五을지여 산으로 들로 나물을 드러 갑니다. 여러여자들이 나물을다가 한봄바람에 제흥이 절로나기도하고 혹은 어려운시집사리에 부댁기는스름과 그리운친정어머니의간절한 생각이 복밧처나오면 하염업는 눈물을흘리다가 구술푼 목소리로 우에씨워잇는 메나리(山有花)노래를 부릅니다 봄날에 그여자들의메나리소리를드르면 아모리길을 밧부게가든 행인이라도 발을멈추고 듯다가 한줄기의 눈물을 흘리게됩니다. 이메나리노래는 사설과곡조도 구슬푸거니와 그노래의출처를 들처보면 참으로 눈물겨운애화가 숨어잇습니다
X X
는 지금으로부터 이백삼년전 이조숙종대왕 이십팔년 임오년 (肅宗二十八年壬午年)경입니다 경상도 선산(慶北善山)상형곡(山荊谷) 지금의 귀미면형곡동(龜尾面荊谷洞)이란 동리에는 백자신(白自申)이란 사람의이 하나잇섯스니 그는바로 이 노래의주인공되는 향랑(香娘)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용모가 단정하고 성질이정숙(貞淑)하야 비록 동모들과 놀에도 실엄는말한마듸를 하지안코 남녀칠세 부동석이란 옛습관을 저절로 잘직혀서 다른남자와는 말도서로하지안엇습니다 불행이 어려서 그의모친이도라가고 게모의 몸에서 자라나게되엿습니다 그의게모는 원래성질이 패악한사람인닭에 향랑을심히 학대하야 조그만일에도 항상짓고 욕을하며 렷습니다. 그러나향랑은 조금도 반항을 하지안코 그저승순하엿슬이엿습니다 방년이 열일곱되든해에 그동리에사는 임천순(林天順)의아들 림칠봉(林七奉)에게로 출가를 하엿스니 그칠봉의나히는 겨우열네살의 아모철업는소년으로 그중에성질이 괴패하야 처음부터향랑을 원수와가티 미워하고박대하얏습니다 향랑은 친정에잇서서도게모에게 무한한학대를 밧던사람으로 명색시집을가서 백년을 의탁할남편에게도 그러한학대를밧게되니 그의박명한신세는 참으로 가련하엿습니다 보통사람가트면 그에벌서 이세상을비관하고 자결을하던지 그럿치안으면 다른곳으로 도망이라도 하엿겟지만은 원래천성이양순한향랑은 자긔의남편이 아직 년령이 유치하야 부부의정을 모르는탓으로 그러하려니하고 엇더한고통이잇더라도 다참으며 다만 그남편이 성장하야 지각날만 기다렷섯습니다 그러나 속담에 개리는 삼년을묵어도 황모가 되지못한다고 그남편은자랄사록 향랑에게대한학대가 우심하야 걸핏하면 몽치를드러 함부로리니 연약한 녀자의몸으로 엇지 그학대를견딀수가 잇겟습니 백옥가티곱던얼골은 품푼조각이되고 삼단가티조튼머리는 다복쑥이되여버럿습니다. 날마다날마다 한숨과눈물로 괴로운세월을보내다가 결국에는 구측지당하야 자긔의본집으로 도라가게 되엿습니다
X X
향랑은 할수업시친정으로도라왓스나 전날에도 학대를하던게모가엇지 고맙게굴리가 잇겟습니 오든그날부터 형언할수업는학대를하여 결핏하면 시집사리도못하고 겨온년이 무슨낫작으로친정으로왓느냐고 욕을 하고 렷습니다 그의부친은 비록 향랑의신세를 불상이녁이나 후처에게혹하고 눈이먼닭에 그것을능히 억제하지못하고 향랑을 그의삼촌의 집으로보냇섯습니다 향랑은 그의 삼촌의집에가서 수삭동안을 안심하고 지내섯습니다 그러나 팔자그른 향랑은 갈사록곤난한일만생겻습니다 하로는 박개그의삼촌이 향랑을부르더니 이러한말을 하엿습니다
『이애 향랑아-너의남편이 너를한번버렷슨즉 다시차즐리도만무하고 우리집이한빈한하야 너를장구하게 먹여줄수가업슬아니라 너역청춘에 앗가운세월을 헛되이보낼필요가 업슨즉 내말을 드러서 맛당한곳으로 다시시집을가거라·········』
원래에 정결하기 이업는향랑은 천만박게 그러한말을드르니 엇지 분하고 가슴이 아푸지안햇겟습니 한참동안기가막혀서 아모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숙이고묵묵히안젓다가 다시머리를들며 엄격한어조로
『여봅쇼 자근아버님! 제가아모리상놈의집이기로 한번남에게 시집을갓다가 엇지남편이 불량하다고 개가를하겟습니 저는 차라리죽을지라도 그러한말슴은 듯지못하겟습니다』하고 단번에 거절하얏습니다 자긔의삼촌은그지 향랑을동정하야 불상히녁이더니 이말을거절한뒤로부터는 한향랑을냉대하니 향랑은몸과 마음을부칠곳이업서서 할수업시 다시 시집으로갓섯습니다 그러나 자긔의남편은 전보다 더욱학대를하니 향랑은잠시도 견딀수가업섯습니다 향랑의시부는 향랑을 불상히녁여서 다른곳으로 개가하기를 권유하고 이혼승낙서지 하여 주엇습니다 그러나 향랑은 절대로듯지안코 그시부에게 다시청하기를 일간의 초옥이라도 조흐니 집 한간만 그 근처에다 작만하여주면 어한고생을할지라도정절을직히고 잘살겟다고하엿습니다 그의시부는 그말을듯지안을아니라 항상 향랑에게가문을드럽히지말나고 말을하얏습니다 그것은 물론향랑에게 자결하야 죽으라는것을암시한것입니다
X X
향랑은 아모리생각하야도 그대로 사러갈도리가업섯습니다 최후에 물에저죽기로결심을하고 오태산 (吳泰山-洛東江下流에잇는山입니다) 밋틀향하야갓섯스니는바로초구월초육일이엿습니다 만산의단풍닙은 서리로 물을드려 향랑의피눈물과 빗을전주우고 청천에 기럭의소리소리 을불너 향랑의외롭고 슬푼간장을 구비구비 어냇습니다 향랑은 그곳에서 바루저죽으랴고하다가 다시돕으켜생각키를「내가죽더라도남이 모르게죽는다면 내양심에는 아모리 정결하야 아모허물이업더라도 시부모나 다른사람들이나를어듸로 개가하야간줄로알기쉬울 것이니 엇지억울치아니하랴』하고 길가에주저안저서 을치며 통곡을하다가 나무하러온 이웃집소녀(그소녀는 그열두살된 녀자입니다) 를맛나 자긔의진정을말하고 그소녀와가티 지주못 (지주연이니옛날길야은 (吉冶隱) 선생의비각이잇는곳입니다) 가에가서 자긔의다리지(月子)와 치마 짚신등을묵거서 소녀를주며『이애 미안하지만은 이것을 갓다가 우리시부모에게 드려서 내가죽은것을 알게하고  내시체를 찻게하야다구 내가이러케 죽는것은 부모에게죄인이니 죽은들 무슨면목으로 부모를  보겟느냐 내가비록죽드라도 시부모는 보지안코 장차지하에가서 우리친어머니를 맛나고 이런원통한사정이나 말하겟다하고 여광여취하야 혹은통곡도하고혹은노래도하다가 물로여드려가랴하니 그광경을보든소녀는 그만놀나서 도망을하엿습니다 향랑은 그 소녀를차가서손목을잡고 다시못으(淵上) 로와서 이럿케말하엿습니다『내가너에게 노래한곡조를 가르처 줄터이니 네가 부대잘긔억하엿다가 이다음에 이곳으로나물을 드러오든지 나무를하러오거든 나를위하야 이노래를불러다구 그러면 나의죽은 고혼이라도 너온줄을알것이고 그에만일 물속에서 파도가이러나거든 나의고혼이 그노래를 깃버하야 노는줄로알어다고』하엿습니다 그향랑이 그소녀에게 가르처준 노래가 바로우에이야기한 유명한산유화 (山有花) 노래입니다 이말을맛친다음에 향랑은 물로여드러가랴다가 다시소녀의손을잡고  이런말을 하엿습니다
『이애 인생이란 참으로 불상하고 드러운것이로구나 내가암만죽기로결심하엿지만은 실상 물을드려다보니 무서워서 참아드러갈수가업구나 나는참가련한 인생이다 드러운목숨을 그러케액기는구나·········』하고 말을 마주막치자마자 자긔의적삼을버서서 눈을가리우고여서 물로드러갓습니다 이가련한향랑은 방년二十을 일긔로하고 비참한최후를맛추고 그만 어복의고혼이되엿습니다 그얼마나 불상하고 가련합니 이향랑이 죽을에 소녀에게하던말은 비록 몃백년후 오늘에잇서서도 누구나 한줄기의 눈물을 금할수업는것입니다
X X
그 그소녀는 그비참한광경을보고 동리로급히도라가서 향랑의부친에게 그사실을말하엿습니다 향랑의부친은 그시체를차즈랴고 강가로다니며 무릇열나흘동안을두고 애을썻스나 종시 그거처를알지못하고 할수업시 집으로 도라갓더니 그부친이간뒤에야 비로서 시체가물우로 올으고 그지 적삼이 그의얼골을 가리운채로 그대로 잇섯더랍니다 그것은 그가죽기전에 소녀에게 하던말과가티 죽은고혼이라도 자긔 아버지를 보지안흐려고 그러한지도 알수업는 것입니다 그에 선산부올조귀상(善山府使趙龜祥)은 그사실을듯고 조정에보고하야 그무덤에비석을 해세워주고 향랑전(香娘傳)과 의렬도(義烈圖)를만드러서 그의정렬을 표창하엿습니다 향랑의 죽은곳은지금지 향랑연(香娘淵)이라하고 그의지은노래 산유화(山有花)는 몃 백년후 지금지전하야부릅니다. 그 뒤 영종대왕(英宗大王)에 최두긔선생성대(崔杜機先生成大, 字는士集이니 全州崔氏로大司諫벼슬지하엿습니다)는 산유화곡(山有花曲)한편을지여 그사실을자세히서술하고 신청천유한(申靑泉維翰)선생은 한나라의악부(漢樂府)의미무편구장(薇蕪篇九章)을모방하야산유화곡구편을 지엿습니다 나는 몃해전에 선산을갓슬에 향랑의저죽엇다는 향랑연(香娘淵)을보고  그곳사람들의 산유화노래 (지금 그노래의 사실은 물론말이변하고 곡조만남은것입니다) 를듯고 감동된바가잇서서 변변치못한것이나마 한시두수를 지엿습니다 이 글을쓰는에 문득 그시생각이나서 긔렴삼어 여긔긔록합니다
香娘淵
巖花落盡水空流 萬古蛾眉怨恨悠
唱斷哀歌人不見 春山黯黯暮雲愁
바위이 다러지고 물만덧업시 흐르니
만고에어엽분사람 원한이 길엇네
슯흔노래를다불너도 그리운님볼수업고
봄산은암암한데 저녁구름만수심을네

聞山有歌
江蘺漠漠渚雲多 何處佳人唱怨歌
一囘未終先下淚 洛東春水欲生波
申靑泉山有花歌 有江蘺草不可茹之
句故로 初章引用
강풀은아득하고 강구름갸욱한데
어듸서미인이 노래를부르나뇨
한곡조하기전에 눈물먼저흐르니
낙동강봄물이 물결을 치랴하네
이메일주소 무단 수집거부 권리침해신고 문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