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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단 시화―악단의 신인 구인―신추 음악계에 대한 기대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악단 시화―악단의 신인 구인―신추 음악계에 대한 기대 樂壇時話―樂壇의新人舊人―新秋音樂界에대한期待
종    류 비평 批評
필    자 홍종인 洪鍾仁
출처정보 동광 東光
연    도 1932-09 昭和七年九月
면    수 71 71
기사
하늘 높고 바람 성그러운 가을, 가을의 爽凉, 이것은 事物의 正視, 反省, 批判에서다시 한거름나아가 힘의 躍動과 成長을 意味하는 季節이다. 이제 거둠의 가을節을 앞두고 生活의 어떤 무거운 壓力을 깊히 느끼며 過渡期的 混沌狀態에서 한거름씩 두거름씩 새길을 찾어 나아가는 우리樂壇을 생각할때 우리는 會心의 微笑가 입가에 떠오름을 스서로 感하는바잇다. 여기에 나는 가을樂壇의 조그마한 展望을 試驗하야 우리 樂壇이 새자국을 남김즉한 몇가지와 그外 總括的 이야기를 簡單히 草하려 한다.

興盛한近者의 樂壇

그런데 近者의 우리 樂壇은 興盛하다. 그것은 音樂會 內容도 나아가고 잇으나 그보다는 音樂會의 모둠이 興行的으로 成功하는 點이 樂壇의 興盛을 말하게 하는 바가 많엇다. 簡單히 모둠의 盛況, 則 興行的 成功을 가르처, 樂壇의 興盛과 進步를 말하고 藝術의 眞價를 자(尺)질한다면 거기에는 論理의 妥當性을 잃을 危險도 많기는하나 그러나 첫째 모이는것도 會의 內容에 크게 따라가려니와 모이는이 없고는 演出의 効果를 얻을수없는 同時에 樂壇의 興衰은 여기에 달리게 되므로 어느程度까지는 音樂會가 자주 열리는것, 사람많히 보인다는것을 樂壇의 進步와 聯結시키어 쉽게「樂壇의 興盛」이라말할수도 잇다. 돌아보건댄 再昨年가을도 相當하엿거니와 昨年가을의 樂壇은 놀랄만큼 興盛하엿다. 이같이 자주 音樂會가 열리는가운데 樂人들의 活動도 새面目을 찾을수 잇고 또한 一般으로 音樂藝術의 需要가 넓어진다는 點이 樂壇을 爲하여 반가운 일이엇다. 그러나 昨年가을의 樂壇을 생각할때 우리는 다음해에 올樂壇에 무엇을 企待케 하엿든가? 昨年가을은 一言으로 말하면 單純히 量的이엇다. 特別히 새맛을 찾을것은 거이 없엇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하엿섯다-今年도 音樂會는 많을 것이나 그것도 亦是 昨年과 다름없이 量으로만 흥성거리고 質로 어떤 變遷을 보지 못한 다면 樂壇은 沈滯, 苦憫에 빠지는것이 되고 말것이라고. 今年 上半期를 돌볼때에 事實 그러치 않엇든가. 겨우 安柄昭君의 提琴獨奏會만이 近來 稀有의 異彩를 나타냇섯다. 그러고 이것은 곳 樂壇의 일이라고는 할수없엇으나 朝鮮에서는 첫 試驗으로 열리엇든 延專主催의 男女中等學生音樂大會는 一般 樂界또는 音樂敎育에 至大한 好影響을 준것으로 記錄에 남을바잇엇다. 이것으로써 一般學生界에 健全한 音樂思想을 普及 시키어 情操의堅實을 企待할바도 적지않을것이다. 그리고이것이 回를 거듭할사록 學生音樂 (特히 樂隊等)의 顯著한 發達을 보리라고 생각하며 나가서는 우리樂壇에도 큰힘을북도두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러고 春期에우리를 크게 失望 시킨것은 音樂協會의 定期公演이 昨秋에도 건너뛰고 다시 今番에까지 여러가지 作定까지 하고 그대로 넘겻다는 것이다. 協會는 자는지 깻는지.

桂貞植氏의音樂博士

우리는 이러케 지난 봄節을 보아 올때 몇차레의 音樂會는 열리엇섯으나 이러타 할만한것이 記憶에 남음이 없음을 섭섭히 여기고 가을 樂壇에도 저윽히 疑問을 感하고 잇엇다. 그랫더니 이제 몇가지 반가운 消息을 傳하게 된것을 반가워한다. 몬저 한 가지는 이것은 現在 우리 半島樂壇에 直接 關係된것은 아니나 벌서 十年前 獨逸건너갓든 提琴家 桂貞植氏가 그 母校인「우르쯔붉」國立音樂學校에서 榮譽로운 音樂博士의 學位를 받앗다는 快報다. 벌서 三年前엔가 그곳 學校에서 優秀한 成績으로 學校를 卒業하고 各地로 단니며 獨奏會를 開催하야 많은 稱讚을 받고 잇엇다는 것은 그곳에서 오는 新聞의 評으로도 그의 技術이 非凡한것을 알수잇엇다. 其間 그는 그곳 恩師들의 指導下에 새로 發布된 學制에 依한 學位論文을 起草中이라는 消息을 듣고 우리는 반드시 今日의 榮光이 잇을것을 믿어 왓든 바이엇다. 實로 近代音樂의 모든 基礎를 完成한 音樂國, 獨逸에서 그地位를 얻엇다는 것은 將次 世界的聲價를 넓히 함으로써 우리로하여금 民族的 天才人의 所有를 자랑한 날이 잇을것을 企待케하는 첫걸음일것이다. 그간 故國에 돌아온다니 그 時日은 아직 約할수 없는 모양이나 어쨋던 今日의 그의 成功을 기뻐하는 同時에 그 前途를 더욱 祝願하야 마지 않는 바이다.

朴氏歸國과中央管弦

最近 우리 音樂會에서 크게 寂寞을 느끼는 것은 管絃樂이 없다는 것이엇다. 事實은 그러한 樂團이 全혀 없는것은아니다. 中央樂友會의 그것이 잇고 延專의 그것이 잇다. 그中에도 社會의 것으로 적을 지언정 堅實한 基礎 잇는것이 하나만 이라도 크게 必要하다. 管絃樂은 實로 近代音樂의 表現形態로는 最高의 地位를 占領하는 것으로 그런대로 우리 樂壇의 歷史가 그만 하다면 하나쯤은 잇어야 햇을것이다. 그러나 中央樂友會 조차 最近에는 極히 微弱한 곳에 빠저잇엇다. 그歷史는 벌서 六十年前 朴慶鎬氏의 奔走로 組織을 보고 其後「뿌쓰」夫人의 指揮와 鄭聖采氏 等의 盡力으로 끌어 왓엇으나 隊員의 不足, 其他로 昨今에는거이힘을 나타내지 못하고 잇엇다. 그러든것이 今秋에 活氣를 띠우게된다. 그것은 同樂團의 産母인 朴慶鎬氏가 米國에서 業을 마치고 돌아온다는데서 同會의 幹部들은 많은 企待를 가지고 벌서부터 가을 準備를 하려는中이라 한다.
朴慶鎬氏 그는 多才 多能한 분이다.
「피아니스트」로 일쯕부터 非凡한 天品을 가지엇섯을 뿐아니라 그외에도 여러 가지로 文才와 樂才를 兼備한이다. 그가 돌아오면 梨專音樂科에서 敎鞭을 잡게된다니 梨專에도 큰힘이 될것이고 樂壇에서도 한「피아니스트」로의 活躍도 크려니와 中央樂友會의 指揮者로 樂壇에 黑住가 될것이다. 氏의 歸國은 各方面으로 企待가 크다.

合唱團聲友會의活躍

管絃樂團의 必要도 말하엿거니와 우리는 充實한合唱團의 出現이 또한 그와 한가지로 企待되어 오든바이엇다. 特히 合唱團으로는 社會의 것은 玄濟明氏가 指揮하든 中友樂友會 合唱團과 安基永氏가 指揮하든 聲友會가 잇엇으나 中央은 그간 解散하고 聲友會만은 一時 中斷狀態에 잇다가 去春에 다시 會員을 널리모아 이제前보다 훨신合唱團다운 面目을 가추어 今秋期에는 合唱으로 主로한 聲樂뿐으로 되는 朝鮮서는 最初의 試驗될 公演을 하려고 힘쓰는中이니 이亦우리 樂壇을 構成하는 有力한 團體가될것이다.
器樂보다 理解하기 쉬운 聲樂은 普遍性을 많이 가지어 初期의 樂壇에서는 特히 聲樂의 發達이 必要되는바 많다. 그러는 가운데는 獨唱에 優秀한 분의 輩出도 많이 必要되거니와 同時에 混聲合唱團은 器樂의 管絃樂團과 한가지로 並行하여 잇어야 할 者다. 그러므로 何必 聲友會에 限할것이 아니라 樂團에 關係하는 者는 모름 즉이 그 樂團의 樂團的, 社會的存在意義를 充分히 料諒하야 健全히 힘쓸바다. 그것은 明日의 樂壇을 築成하려는 今日의 樂壇人들에게 賦與된 큰 任務일 것이다.

蔡崔氏等 重奏團

우리 樂團에서 普及된 器樂으로는 亦是 絃樂이다. 圓熟한 境에 이르러 一家를 일우은 바이오리니스트로는 現在朝鮮 잇는 이로 蔡東鮮, 崔虎永, 安柄玿氏等, 其他 어느程度까지의 演技를 가진이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비오라」나「첼로」를 하는이가 적어서 四重奏團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하나 뜻같지않어 그 方面의 樂人들은 퍽 애쓰든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에 蔡東鮮氏와 崔虎永氏가 盡力하야 今秋期에는 반드시 어떤 方法으로던지 弦樂四重奏團을 만들겟다고 案을 세우고 잇음으로 이亦 반가운 消息의 하나 일것이다.

鄭女史獨唱과安氏獨奏

다음에 우리가 恒常 企待는 하고잇으나 우리 企待에 벗어나는 것은 樂壇人의 硏究發表卽 獨奏會, 獨唱會(으리싸이톨) 等이 적은 것이다. 이것에는 經濟問題가 붙고 또 硏究의 時間等 여러가지 괴로운 條件이 附隨되므로 簡單히 우리의要求만 말할수없는 點이 잇으나 그中 몇분쯤은 年一回나 二會는 반듯시 새 硏究를 發表함이 잇어야 할줄안다. 우리는 이러케 所望을 크게 부치고 잇다.
그런데 今秋의「으리싸이톨」로 全樂壇的 衝動을줄만한 獨奏會는「쏘프라노」鄭模薰女史의것일것이다. 겨우 女高普 卒業 前後에 舞臺에 나섯든일이 잇엇을 뿐으로 아직 朝鮮에서는 舞臺에섯든 일이 업엇든 이므로 世上에알리워 지지 않엇으나 鄭女史는 平壤女高普卒業當時에도 그 豊醇한 音色과 量의 非凡하야 將來가 많이 囑望되엇 든이다. 其後 東京에 가서 帝國音樂學校를 卒業할 當時 (二年前)에는 그해의 全東京의 音樂學校 卒業生中에서 첫손을 꼽을 者라고 名望이 赫赫하엿섯다 한다. 그러고는 卒業하면서 곳 母校의 講師로 잇게까지 되엇든 것이다. 그後 昨年에 結婚하면서 朝鮮에 돌아와 잇엇으나 周圍의 그를 아는이로 그의 天品을 아끼어 勸도 많고 그이도 亦是 뜻하는바 잇어 今秋에는 上京하게될 모양이고 따라서 첫번으로 獨唱等도 열게 될모양이다. 아직 女流歌手가 稀少한 우리樂壇에서 鄭女史같은 이가 나오게 되는 것은 實로 반가운 일이다.
提琴家 安柄昭氏, 年少하나 그 熱과 才質에 感限않을수 없다. 靑春에도「-쓰」夫人의 伴奏로 獨奏會를 열어 그의 非凡한 技術을 보여준바 잇엇다. 그는 다시 뒤를 이어 今秋에 다시 獨奏會를 열기로 하고 方今 苦熱을 무릅 쓰고 熱心히 練習中이다. 이번에는 다시 새 曲으로 擇한것 中에는「멘델쓴의」「콘체르트」其他 흔히 듣지못하든 大曲에 손을대이는 모양이다. 지난봄에도 音樂會 마다 불리워 나오든 그가 번번히 人氣의 焦點이 되군하엿거니와 秋期의 獨奏會는 倍前의 技術的 進步도 뵈여주고 또한 人氣도 높을 것은 지금부터 豫測할수 잇을 것이다.
獨奏와 獨唱會의 計劃은 아직 들은것이 이것뿐이나 이외에도 蔡東鮮, 崔虎永氏며 피아노에 金永福, 金永氏들도 年에 한번式이라도 그 硏究를 發表함이 옳지않을까 생각하며 마음으로企待하는 바이다.

企待되는新人과其他

그러고 이밖에 가을 樂壇에 活躍할 분을 들면 聲樂에 安基永, 玄濟明氏며 女性으로는 崔永順氏며 알토 朴慶姬氏도 聲友會에 나온 것을 契機로 앞으로 자주 舞臺에 나서게 될 줄안다. 피아노에는 金元福, 金永義氏等의 大小 音樂會에 그림자 같이 따라단닐것이고 다음에 新人이라고할 昨今 學校 出身으로는 梨專今年生으로 出衆한 演技를 가진 朴賢淑氏며 地方에 가잇으나 同期로 金聖南氏도 卓越才能을 가진「피아니스트」다. 同梨專出身쏘프라노의林娍淑氏며 在學中의 金顯順氏도 音樂會에 자조끌리워 나오게 될것이고 日本出身으로「피아니스트」劉壽萬, 安榮子, 金禎洵氏들도 相當히 活躍할것으로 企待된다.
그러고 이밖에 梨專, 延傳, 中央保育, 等의 學校關係, 中央樂友會, 聲友會, 其他 數를 헤인다면 今秋期의 樂壇은 量으로나 質로나 格別한 發展으로 보여주리라고 믿고 이붓을 놓는다.
그러나 繁昌할 가을의 樂壇을 豫想하는樂人諸氏, 一般聽衆은 반드시 華麗한것만을 꿈굴바 아님을말하려한다. 成熟하고잇는 우리 樂壇의 앞길은 社會의 實情에則하야 潮流를 짓기에 힘쓰는바 없이 單純히 華麗한 樂壇, 安逸의 音樂이라는 等의 從來觀念의 捕虜가되어잇다면 아무리 훌융한 技術의 所有者라도 그는 한 奴隸化한 藝人에 지나지 못하게 될것이다. 끝으로 蛇足인 것을 알면서 一言 부치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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