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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다실 전망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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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표준화 정보 |
원문정보 |
기사제목 |
끽다실 전망대 |
喫茶室 展望臺 |
종 류 |
기사 |
記事 |
필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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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정보 |
여인 |
女人 |
연 도 |
1932-06 |
昭和七年六月 |
면 수 |
72 |
(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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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前에 東亞日報에서, 文壇 是非欄을 設置하엿을는 作家, 文筆家들의 醜惡한罪狀이 만히暴露되엿다. 그러나 그欄이 업서지자 그方面에對한消息이 묘然하드니 月前에 所謂 剽窃問題가 紙上에만 公布된것이아니라 法廷에지 려나왓다.
◇ ◇
그러나, 이問題의 原告 被告가, 다갓치 敎育者이니만큼 展望人의關心도 한큰것이다 原告는 徽文高普의 李尙俊氏요 被告 梨花女專의 安基永氏다. 일의是와非는 展望人의 關與할바못되나 安基永氏가 李氏의 作品을 剽窃한것만은 事實인가십다 그것은 安氏自身이是認한닭이다.
◇ ◇
問題의要點은 李氏作인「朝鮮民謠第一輯의 七篇中, 下記六篇 即 도라지타령 자즌山打令, 二八靑春歌, 방아타령, 漢陽의봄, 梁山道等을, 安氏가剽窃하야, 安基永作으로, 發表하엿을아니라, 梁山道, 자즌山打令, 漢陽의봄三篇은 컬럼비아 레코-드에 吹入지 하엿다는것이다.
◇ ◇
이것이 問題가되여, 安氏는 狼狽하자 某氏를 새에너어 和解를시키기로하엿다니-可及的讓步할듯하다니 더擴大될念慮야 업겟지만은 蓄音機商會에 吹入手當金을 作曲集出版費에 充當햇고 私腹을 채운것이아니라는 安氏의辨明은 올치못하다. 他人의作品을 剽窃해야만, 出版이 될것도 아니려니와, 더욱이 蓄音事業에 쓴다고하면 반듯이 남의作品을 安基永作으로 發表해야만 된다는法도업슬것이다. 用途야 어되엇든 問題의 作者의良心에 잇는것이다. 作曲家을慈善家인 安氏여! 悟이 잇으라.
◇ ◇
賢母良妻主義로 有名한 進明女校大講堂에서는 客年十二月에 同校 卒業生의 結婚式이잇엇다. 新郞은 X高等生X君이요 新婦는 同校卒業生X孃이다. 그런대 主禮가校長이요 來賓祝辭를한 朴XX란親舊는, 中途에 日本말이 막혀서, 에 만, 차젓다한다. 차라리 더들지안을 「鮮語」로햇드면 달속하지안엇을는지?
◇ ◇
三千里社崔貞熙氏의 어엽姿態가 近來에안보이기에 궁금해햇더니 傳하는바에드르면 玉童子를 順産하섯다고 劃時的作品을 順産하실도 멀지안엇을것인데-.
◇ ◇
米國단여온 朴仁德女史가 斷然離婚을 햇다. 男便에게 慰藉料로三千圓을 喜捨한것은 우습지만 三千圓의出處가 基督敎巨物申某요 近者에는 同家에 寄宿하고잇다니 더우습다. 社會로!하고 絶叫한 女史의 目的地가 申氏宅이던가.
◇ ◇
瑞典皇孫은, 一商人의과結婚하엿다. 사랑의힘은크다, 王位도, 黃金도 다던진 그는 確實히勇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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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妻愛夫로 有名하신 金一葉女史夫妻는 便所以外에는 同夫人을하신다더니 요새는 夫君에서 女史의創作室을 設計하느라고 每日골몰하신다고 조히갑도 못밧는朝鮮의文筆家로서는 女史의 創作室이 嚆矢가될것을.
◇ ◇
어날의 安夕影氏. 某君을보고 嘆曰「決코 社會的으로 有名한女子의 男便될것은아니지요」某君이 으아해서 처다보니.
「아무개의 夫人이라고 안하고 아무개의 男便이라니요 그러치안슴니 假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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