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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예술 부흥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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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표준화 정보 |
원문정보 |
기사제목 |
향토예술 부흥운동 |
鄕土藝術復興運動 |
종 류 |
비평 |
批評 |
필 자 |
조윤제 |
趙潤濟 |
출처정보 |
신흥 |
新興 |
연 도 |
1929-12 |
昭和四年十二月 |
면 수 |
88 |
(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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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民族主義와社會主義가싸우고「쥬아」文藝와「푸로레타리아」文藝와싸우는朝鮮의現狀에잇서서, 새로이鄕土藝術이라는題目을걸어, 論述코자하는것이果然穩當할가. 或은일로因하야, 그論爭은一層더複雜하야지고, 그紛紏는더욱多端하야지지안을가. 果然疑心치안을수없다. 그러나紛紏, 鬪爭, 暗鬪가社會進步過程上免치못할現象이라하면, 내가역에鄕土藝術이라는한異彩의題目을걸어, 世人의耳目을번그럽게하는것도, 一理가업지는안할듯하다. 그럼으로나는躊躇치안이하고, 鄕土藝術復興運動이라는題目을세워, 이에對하야 조그만치나의意見을말하야보고자한다.
二
大軆藝術이라하는것은엇더한것인가. 이에對한意義를生覺하야보는것도, 滋味잇는일일것이다. 그러나역에서그를論하는것이, 本意가안일더러, 時間의餘裕조차업스니, 그는고만두고, 다만그發生이如何한가를, 極히簡單한말로말하야보자. 이도사람에라, 는보는見地에라, 自然히幾多의異說이잇는것을免치 못할것이나. 그가장根本될條件은, 아모래도, 사람의美的衝動이라할것이다. 이美的衝動도, 或은理智的으로或은感情的으로, 보는바에라서解釋이달을지는몰으나, 이亦是그詳細함을廢하고, 다만漠然히美的衝動이라하야두자. 即다시말하면, 藝術은美的衝動으로서, 發生하엿다고하자는것이다. 그러면사람에美的衝動이라는것이업다면은그는모르겟것니와, 사람에게는누구에게든지, 츨보면조와하고, 달을보면날는美的衝動이잇는以上, 어느社會에서도, 藝術의存在를認識치안을수업슬것이다. 實로우리는저野蠻未開人에게도藝術이잇다는報道를듯고잇다.
三
그러나社會에는, 自然히智識程度의差異와風俗習慣의相違가잇고, 民族的國民性과地方的特色이잇슬것이다. 라서甲의社會의藝術과乙의社會의藝術사이에는, 얼마만큼區別이잇슬것도勿論일것이다. 이것이곳原始的藝術과文明的藝術로난호아지는것이오, 西洋藝術과東洋藝術로區別되는것이다. 갓흔西洋藝術의部門에도, 英國藝術, 獨逸藝術, 或은佛蘭西藝術等으로細別할수잇고, 갓흔東洋藝術部門에도, 朝鮮日本支那等의 各々特色잇는藝術을分別할수잇다. 만안이라, 嚴格히말한다면, 갓흔民族藝術에도, 다시地方의色彩를 달니한것이잇슬것이오, 갓흔地方色에도各個人의區別이잇슬것이다.
이와갓치細別하야본다면, 限定이업슬것이나, 한民族이라는덩어리를들고보면, 비록個人의差異가잇고, 地方의特色이잇다할지라도, 한民族으로서는, 어데인지共通된點이잇슬것이다. 一例를들어말하면, 朝鮮民族이라는한民族에도, 北道사람과南道사람, 西道사람과東道사람과의사이에는, 風俗習慣이달으고, 生活樣式이달으며, 性質조차달은배가잇다할지라도, 이를日本이나或은支那民族과比較하야보면, 顯著히달니보이든그들差異도, 全軆의一部分에지내지못하고, 完然히朝鮮民族이라는한共通性를發見할수잇슬것이다. 이것이곳다른民族과區別할수잇는, 朝鮮國民性이라는것이니, 이國民性이發揮한藝術은, 곳鄕土藝術이라할것이다.
四
이와갓치, 鄕土藝術이라는것은, 다른어느나라와도다른, 그나라民族의國民性이發揮한藝術이니, 한나라의 鄕土藝術과, 다른나라의鄕土藝術과의사이에는, 석지못할判然한區別이잇슬것이다. 비록그것이, 外來思想의影響을밧지못한, 素朴한原始的藝術이라할지라도, 그藝術은그民族의先祖代々의遺傳한精神的産物이요, 外面으로보이지안이한內的生活의具現일것이다. 그럼으로이를나서그民族을生覺할수업고, 그藝術을나서그民族을그릴수업슬만치그民族과그의鄕土藝術사이에는密接한關係가잇는것이다.
文藝運動도역에서, 發足하여야될것이고, 敎育運動도역에서, 出發치안으면안이될것이다. 一見關係가 大端히머러보이는社會運動도, 이를等閑히하여서는, 그運動의徹底를期치못할것이다. 웨그러냐하면鄕土藝術은그民族의國民性의發揮이기문이다. 萬一社會運動이, 그나라國民性에土臺를두지안이하고, 그나라風俗習慣을돌보지안이하고, 盲目的으로外來思想에쏠여, 運動그自軆에好奇心이나서, 運動을하여보겟다하면 모르겟거니와, 그러치안이하고, 塗炭에진民衆을건지고, 腐敗하여가는社會를, 理想의社會로引導하고자 하는참된運動을, 企謀한다면, 암만하야도, 그나라風俗習慣이며, 人情民性의發揮인鄕土藝術을, 到底히남보듯이던저두지못할것이다. 社會運動이그리될에야, 文藝運動, 敎育運動은, 더말할것도업시, 關係를치지못할것이다.
이갓치말하면, 或어느사람에게, 國粹主義者라는誹謗을바들지는모르나, 設令그러한誹謗을밧는다하드래도, 하는수업다. 나는그사람에게誹謗을바드면바들수록, 그사람에게反省을促하고자한다. 그네들이熱々히 부르지즛는그運動의目標는어데잇는가. 現實를버서나서, 空中에理想의機關을짓는空想家가안이라하면, 반다시現實問題에着觀치안을수업슬것이다. 萬一現實에着觀한點이잇다하면, 그對象인民衆은한엇던民衆인가. 그民衆은갓흔雰圍氣中에서, 呼吸을하고잇는한祖上의子孫이안인가, 그러타하면, 그民衆은갓흔血系을바든 同民族인同時에, 한갓흔性格을先祖에게서난호아바든, 共通의國民性을가진民衆일것이다. 만안니라, 그들은過去數千年동안, 갓치나려오면서, 同一의環境에서同一한苦樂을바다나려온民衆일것이다. 그러면그들의손으로, 그들의精神으로産出한鄕土藝術이라는것을, 等閑히할수가잇슬가. 그들의鄕土藝術은, 다시率直한말로말한다면, 그들의主軆的平面的生活의縮圖일것이다. 우리는이鄕土藝術로써, 그들의心情을通察할수잇고, 그들의生活을窺視할수잇다. 엇지이鄕土藝術을나서, 모든運動이活躍할수잇슬가. 이것이내가압헤말한바 모든運動이鄕土藝術에基礎를두지안으면안이된다는것이다.
五
그러면한번눈를돌여, 朝鮮現狀을살펴보자. 朝鮮에는아직, 多幸히日本의明治維新當時와갓치, 國語를廢止하고英語를쓰자는, 無謀之輩는업섯스나, 그에밋치지안는自己沒覺을, 鄕土藝術를等閑히하는곳에서볼수잇다. 只今一例를들어그一般을살펴본다면, 저男사당패들이들고노는, 산두노리, 두각씨, 紅同知(素朴한民衆의劇?) 갓흔것이다. 여긔에내가본바感想을말하야본다면, 今番朝鮮博覽會塲內에, 日本鄕土藝術의演藝가잇다는말을듯고, 그를차자가보앗다. 前에雜誌로서, 만흔紹介를들엇슬에, 大端히宏壯한것으로만生覺하엿드니 實際로보니, 그다지大端치는안하엿다. 그러나素朴한아무裝飾이업는服裝을하고, 笛소리에마차북도치고, 춤도추며, 돌아단이는것을볼에, 特別한技巧가업는그것이나마, 素朴한그것이, 엇전지, 平和한氣象이잇고 自然的音律이잇는듯하야, 죡곰한興이업지도안이하얏다. 만안이라, 그鄕土藝術로써, 日本의國民性지 잘들어나는것이잇는듯하엿다. 이를보고난數日後에, 다시敦義洞悅賓樓後廣塲에서, 朝鮮廣大들이, 劇塲을 버려노코논다는말을들엇다. 數年前에는흔히보든것이나, 近者에와서는조곰보기두문것이라함으로, 忽忙한일도잇섯스나, 百事를除廢하고, 밤일곱時하야, 그劇塲을차잣다. 아직時間이덜된듯하야, 廣告의호적소리는듯는사람의귀를갑게하고, 劇塲入口가직히는, 勞働者와不良者빗슷한사람들의패가, 여긔저긔뭉처서, 들고잇다. 洋服을입고이劇塲을들어가는것은, 조곰창피한點도업지안엇스나, 오날저녁은求景하러온것이目的이니 이것저것볼것업다하고, 二十錢의入塲料를주고塲內에들어섯다. 塲內는勿論■劇塲이니, 손님이편안히안자 보도록며논座席갓흔것도업섯다. 그저바닥에멱서리를고, 손님이안도록한粗雜한設備이엇섯다. 이것도 한, 하루밤의快樂을엇자는, 娛樂的氣分으로온것이안인故로, 모든것을참고, 한구석족곰잘보이는자리를차지하고안젓다. 四方을돌아보니觀覽客의大部分은, 아해들과勞働者階級들이고, 若干의女子도한便座席을차지하고잇섯다. 中間舞臺라하는것은, 아모設備가업는맨바닥이다. 俳優와갓치보이는, 머리지달닌아해들이作亂을치면서도라단니는寂寞한劇塲안이다. 족곰잇스니, 차々時間이각가와젓는지, 하나식둘식들어오는 觀覽客도, 거의滿員이되다십히되엿다. 勿論그觀覽客들은, 前과다름이업는階級의人物들이엇섯다.
그리자時間이되엿는지, 俳優들이나서면서觀覽客압헤서, 여러가지燦爛한衣裝을집어내입고演藝가始作되엿다. 그들이입고나선衣裝은或처음에는, 華麗하엿섯는지모르나, 모도가러지고가무든, 더럽은衣裝이엇섯다. 처음演出되는塲面은, 산두노리라하는것인데, 비록假裝이되지못하엿스나, 엄참이긴時間동안三十餘名俳優들이, 매구, 징, 강기, 북을드려가며날고도라단니는光景이며, 々로가다가북든俳優十餘名이, 中間에들어서고노는북노름이며, 音律에마추어춤추는舞童의容態에는, 可히봄직한點이만히잇섯다. 그 音樂이라야勿論高尙한讃美를바들만한, 훌융한音樂는안니엇섯다. 그러나그特別한技巧가업는自然的音律도, 能히보는者듯는者의興을도들만한것은되엿다. 역에나는한참동안우두컨이, 이演藝를보고잇슬에, 머릿속에博覽會塲에서보든, 日本鄕土藝術의光景이올라왓다. 여러가지로比較도하여보앗다. 樂器를치며돌아다니는그것, 手足을되난대로놀니는舞踊의形式, 아무것도다를點이업섯다. 그러고그와이와사이에는, 석지못할 무슨區別이잇는듯하엿다. 兩便이素朴한點에잇서々는, 다른點이업스나, 外面上에들어나는差異를말하면, 그는퍽單純한데잇섯고, 이는좀複雜한點에잇섯다. 그것이或은兩者를區別하는大境界가되고, 藝術上에낫타난 兩國民性의一端이라할지는모르겟스나, 그는何如튼이비록無賴賤輩의노는노름이라할지라도, 이것을잘琢磨만하면, 훌융한價値잇는朝鮮鄕土藝術이될것갓하얏다.
그러고그다음에猾稽劇이라할만한탈춤이잇섯다. 이것도亦是그衣服等節이보잘것업는襤褸한것이엇섯스나, 그들의놀음은々로觀覽客의喝采를바덧다. 이喝采!, 이素朴한演藝를보고이러나는無識階級의喝采!, 이것이야말로鄕土藝術의價値를露骨化한것이다. 萬一外國사람이본다면츰을뱃고돌아설襤褸한假裝, 外國人이보면코우슴을할이演藝, 어느곳에讃美할點이잇서서喝采를하는가. 이喝采야말로朝鮮사람이안니면하지못할貴重한喝采이다. 달밝은밤窓밋헤서들녀오는「피아노」소리를듯고, 생각업시지내는사람이, 거리에서하는호적소리장기소리를듯고, 억개를읏쓱이는朝鮮사람의喝采이다. 나는다시觀覽座席을돌아보앗다. 道是여긔에는낫빗치햇숙한勞働者階級이다. 모다이演藝에熱中하고잇다. 나는여게서달은배가잇섯다. 이素朴한演藝도한朝鮮國民性의發揮인鄕土藝術이라는것을달앗다. 그리고이鄕土藝術은모든朝鮮사람과갓흔 皷動을치며, 사라잇는生命軆임을달앗다.
그러나이生命軆인朝鮮의鄕土藝術은, 바닥에짓밟히여서下流階級의末梢生覺에힘업시, 皷動을울니고잇다. 萬一이貴重한鄕土藝術이저下流階級의손조차붓드지못할에는, 永遠히그生命을維持치못하지안을가. 오늘날現代人의主張하는理想의王國에到達한다면, 이鄕土藝術의갈곳은어데인고. 그鄕土藝術과갓흔皷動을치며사라가는朝鮮民族의갈곳은어데인고. 나는역에한참동안疑惑치안을수업다.
六
이와갓치朝鮮의鄕土藝術은民衆의等閑에잇다. 그러면이等閑의原因은어데잇는고. 우리는暫時틈을빌어이을살펴볼必要가잇다. 勿論그原因은, 이를詳細히考察한다면, 여러가지로볼수잇슬것이나, 大略以下두가지에잇슬듯하다. 即其一은自己盲目이요, 其二는外來思想의擡頭라는것이다. 以下이에對하야내가生覺하고잇는바를말하야보고자한다.
1, 自己盲目
아즉도朝鮮사람은, 참되게朝鮮을사랑하야보지못하고, 사랑하지못하는듯하다. 오래동안支那의覇絆을 버서나지못하야, 그를大國이라하고이를一個鄕이라하야, 스스로滿足하얏다. 이를터이면自國의國語를方言이라하고, 自國의노래를鄕歌라하는것은, 모도그思想의表現이다. 만안이라自國의固有文化를, 發展助長식힐줄은모르고, 다만支那文化의模倣에汲々하야, 小中華가되기를一大理想으로만生覺하얏다. 일로因하야 朝鮮固有文化는, 그거의가破滅을當하고, 支那儒敎의理想國은, 朝鮮에와서그實施를보게되엿다. 우수운일이다. 支那固有의思想이, 朝鮮民族과무슨關係가잇서, 朝鮮民族의心血을蠶食하야(버렷는고. 或은이것이朝鮮의原始文化에서, 一層놉흔高等文化로引導하얏는지는모른다. 勿論그功蹟도認定하야주지안으면안이될것도事實이다. 그러나그反面에自己喪失이라는, 一大缺陷이잇다는것을이저서는안될것이다. 이런것을生覺할 에는, 새삼스리오늘날우리들의環境이여사히보이지안는다.
우리들은일로부터, 힘잇게달은배가잇서야될것이다. 過去를돌아보고압흐로스스로警戒하는배가잇서야될것갓다. 그러나그思想이過去에만맛치고말앗는가. 나는엇전지只今그思想이그양繼續하고잇는듯하다. 힘잇고意味잇는甲午革新도表面運動이안이엇섯든가십흐다. 입으로支那思想을驅逐하고, 自己를차젓다한들 事實이그럿치안이하얏슬에는, 무슨所用이잇는가. 自己에理想을두지안이하고, 남에게理想을두는民族은 어느든지남에게養子갈素質을가지고잇는것이다. 우리는조금冷靜히生覺하여보자. 甲午革新以後의朝鮮사람의精神이엇더하엿는가. 只今지남의집에서 雇用을살고잇든어멈이, 급작히겨나와서, 갈곳을모르고, 역에적에漂浪하고잇는것갓치되지안엇는가. 그러다가그럭저럭十數年을지내, 己未運動이이러난後에는, 새로이한理想의大國이생기지안엇는가. 可히自嘆치안을수업다. 이것이弱한者의根性인지도모른다. 自立生活을經營치못하는弱者의根性일지도모른다. 이한支那歷代史蹟에는밝아도, 自國歷史에눈이먼녯사람과다를배가어데잇겟는가. 精神的皷吹와社會的變動인革命運動도, 한時代的革新에지내지못하얏고, 自己沒覺의精神의물결은, 依然히긋침업시흐르고잇다. 라서朝鮮鄕土藝術도, 民衆의注意를지못하게되엿다.
2, 外來思想擡頭
以上의薄弱한國民性을가진朝鮮民族은, 물미듯들어오는外來思想에對하야, 抵抗力이업섯다. 抵抗力이업섯다는것보다, 그를잘咀嚙하야自己思想에同化식힐힘이업섯다. 무엇이든지들어오는대로조곰好奇心을만한것이면, 批判의餘裕도업시그냥당기어들어마시고말앗다. 이를過去에지올나가, 史的으로考察할必要도 업거니와, 現代만두고보드래도, 歐羅巴의새文化가들어오자, 東洋의社會에는, 왼통물틋어올낫다. 朝鮮에도大院君時代에, 仁川黑船事件이잇슨後로, 나날이擾動이甚하야저서, 이지의支那儒敎政治에서, 甲午革新이라는朝鮮歷史科程上一大變動을일으키엇다. 其他敎育方面宗敎方面, 實業方面에도적지안은刺㦸을 밧게되야, 붓을드는者는모다歐米文化를謳歌하엿다. 여게서歐米文化는나날이그讃美를더하야가고, 朝鮮의 文化는머리를들사이도업시납작하야지고말앗다. 이렷케되고보니, 절문靑年사이에는外國學問을하지안으면, 社交界에面目을세울수업고, 自國學問을云々하면, 時代에뒤러진캐々묵은녯世紀를彷徨이는듯십헛다. 라서靑年과老年과의사이에는, 新舊思想의衝突이생기어, 政界에서는守舊派와新進派의싸움이되고, 宗敎界에서는儒敎와耶穌敎의鬪爭이되엿다.
이와갓흔모든方面의鬪爭은, 四方에서불닐듯일어낫스니, 要컨댄그鬪爭은, 自己를찻기爲하야外來思想을 騶從하자는鬪爭도안이고, 固有思想을排擊하고, 外來思想을收入하자는鬪爭도안이다. 이를테면이것은, 外來思想과外來思想의鬪爭에지내지못하엿다. 即다시말하면, 支那思想과歐米思想과의鬪爭에지내지못하엿고 그中間에든或은그밋테든, 朝鮮固有思想은, 아무힘업시時代思潮의影響을밧지못하고, 그양侵息하고말앗다. 勿論支那思想의驅進은, 純全히自己覺醒에잇다할수업고, 歐米文化流入의影響이라하겟스나, 設令自己覺醒에잇다하야도, 到底히大勢力을가지고들어오는, 新外來思想에는, 抵抗力이업섯다. 萬一그에, 固有思想이外來思想보다以上의程度, 或은적어도同等程度의勢力을가지고잇섯다하면, 固有思想과外來思想과의사이에는, 적지안은鬪爭이잇섯슬지도모를것이다. 鬪爭이업섯다하드래도, 얼마만곰同化力을가지고, 그를對하엿슬것이다. 그러나朝鮮의固有思想은, 到底히그를敵할힘이업섯다. 라서外來思想은, 破竹의勢를가지고 들어와서, 舊外來思想을驅進하고, 乘勝長驅의勢力을, 다시固有思想으로돌녀, 餘地업시그를掃蕩하야버리고자하얏다. 이리하야鄕土藝術은, 世人의耳目에들어갈餘裕가업섯다.
七
이와갓치朝鮮의鄕土藝術은, 以上의二大原因으로因하야, 世人의興味를떠나漸々衰退의길을밟고잇다. 料理집갓흔데서부르는妓生의소리갓흔것도, 漸々興味를닐코, 日本소리나流行唱歌가안이면, 손님의好感을바들수업는狀態에일으럿다. 그리하야妓生券番갓흔데서는, 손님의需要에라, 日本노래와流行唱歌를한課程으로너허서, 가리치게된다한다. 大軆이朝鮮노래即田問에부르는民謠, 妓生이불으는俗謠는, 專門家의말을 들으면, 特別히發達된것이라할수업스나, 다른어느나라와도다른微妙한點이잇서서「바이올린」으로도그調階를表할수업고「피아노」로라도그整確함을表할수업다한다. 이것은特別히, 音樂에對한豐富한智識을가지고 細密히硏究하야보지안으면알지못하겟스나, 우리들門外漢으로보드래도, 外國의그것과는석지못할區別이잇는것은事實이다. 이것이朝鮮鄕土藝術의한特徵이라하면, 朝鮮으로서는期於히이를保存하지안으면안이될것이다. 그러나이朝鮮의固有音樂도, 나만흔廣大나늘근退妓에서가안이면드를수업다. 或그을田間牧童이나 妓生에서볼수잇스나, 只今狀態로나간다면, 二十年이못되여서, 朝鮮固有의音樂曲調는볼수업게될지도모를것이다.
只今만히流行이되는, 羅雲奎푸로덕슌의「아리랑」曲調갓흔것을보드래도, 얼마만콤朝鮮의固有調子를脫退한것이안인가. 音樂에對하야素養이업는나로서, 입을연다는것은, 或專門家의嘲弄을바들지는모르나, 只今流行하는아리랑曲調는, 朝鮮노래를, 西洋樂器에맛추어, 낸것이안인지도모른다. 勿論이와갓흔形式을 밟아, 舊調를新調로改良하는것도, 一理가잇는事業일지도모르나, 그로因하여서朝鮮情緖를永々히버린다는 것은, 조금注意할點이잇슬듯하다. 언제인가新聞紙上에報道한바에依하면, 京城有志諸氏가, 朝鮮노래몃츨 아, 現代曲調로改作하야, 第一會鑑常會를鍾路靑年會舘에서, 열엇다는말을들엇다. 그것이엇더케改作이 되엿는가, 直接가보지못하고, 그後消息을듯지못하얏스니, 아지못하겟스나, 우리는改作도조흐나, 그中에잇는朝鮮의固有情緖는일치마기를바란다.
그러면노래에對하여서는그러하고, 舞踊이나田間音樂에對하여서는엇더한가. 노래는그래도그活用의範圍가넓고, 直覺的으로사람의興을도드는힘이잇서, 얼마콤衰退하얏다할지라도, 아직골목へ이들녀오는, 녯曲調를들을수잇다. 그러나舞踊이나田間音樂은, 말할수업는衰域에잇다하겟다. 只今부터十餘年前만하여도 시골은, 正初만되면어느洞里에서든지, 風物(樂器)소리안들니는곳이업고, 農事철이되면, 덜々이豐年놀음이잇섯다. 正初와六七月農事철안이라, 八月秋夕놀음갓흔것도, 繁華한것이잇섯다. 그러나차々衰退하여저서, 오늘날와서는좀하여서보기어렵게되엿다.
大軆로朝鮮은李朝에들어와서, 佛敎를排斥하고儒敎를崇拜하야, 五百年間完全히儒敎로써思想을統一하야 왓다. 儒者라하면, 朝鮮이안이라어느나라이든지다그러하거니와, 學問을하는者에게는, 硏究心을阻止한다하야, 小說지도이르지못하게한頑固者들이다. 라서그들의눈으로본鄕土藝術은, 田夫野人의弄樂物이라하야, 한발로차버리고, 敢히이것을보고이것을입에올니기를, 一大羞恥로生覺하야왓다. 그리하야鄕土藝術은, 純全히無識한下流階級의專用物이되고말앗스나, 儒敎學者間에賤待를바든그것이, 그리盛興할理는업섯다. 차々그들의智識이놉하가고, 自己를覺醒하게될에는, 自然히그와因緣을멀니할것은勿論이다. 朝鮮의現狀은이러한處地에잇다. 나날이불어가는것은智識의階級이요, 하루へ줄어가는것은文盲한無識階級이라할것이다. 普通學校를卒業하고, 田園에광이를들는者가잇다하면, 그들은自然히無識한農民과는다를것이다. 이제와서는完全히, 支那儒敎思想을버서나고, 新敎育을바든그네들이라도, 아직나만흔父兄이잇고, 녯風俗習慣의雰圍氣中에서살고잇다. 그들의生活樣式을形成하고잇는思想의어는구석에는, 아직도녯習慣이 부터잇서, 그들의生覺에는그軆面을維持하자니, 될수잇스면일어나는興도抑制하고, 農民들의놀음을멀니하고, 身分을삼가치안으면안이될것이다.
萬若이러한사람이單한사람이엇슬에는, 大衆에對하야, 何等의影響을주지안을지는모르나, 社會의變遷이今日과갓치甚할에는, 決코그影響이적은것이안이다. 본대鄕土舞樂이라는것은, 어느한사람이, 科學的 理智的으로粉心考思하야創作된것이안이고, 깁분것을보면웃고, 슬푼것을보면눈물을기는, 自然的團軆的 感情의發露이다. 그럼으로한두사람이하는것보다, 사람이만흐면만흘수록, 그興은더욱올나가고, 그本色은 一層더發揮되는것이된다. 即다시말하면, 이것은一個人의것이안이고大衆의것이라하야可하다. 라서漸々 그同類가적어질에는, 藝術그自体에잇서서얼마만콤價値를일는同時에, 大衆의興味는차차식어저갈것이다. 만안이라, 素朴한鄕土藝術은, 암만하야도, 華麗한것을조화하는現代人의興味를기는어렵다. 그럼으로田園의舞樂은나날이變하야저가고, 이를職業으로하는廣大의놀음은, 下流社會밧게를나지못한다.
八
이와갓치, 朝鮮의鄕土藝術은, 文化가進步하야가는反面에, 나날이衰退하야가고잇다. 鄕土藝術이라하면 어느나라를勿論하고, 新文化와新生活樣式에對하야, 抵抗力이적은듯하야, 그은自滅하기쉽다. 더욱이今日의朝鮮과갓치, 急劇한文化過渡期에잇는곳에서는, 非常한勢力을가지고, 그形跡을감추고자한다. 萬一이를當해서, 何等의用心이업고, 自然의勢力에버려둔다면, 머지안는將來에그을보기어렵다.
업는것이라도차즐려고하는朝鮮의現狀에잇서서, 잇는것이업서진다는것이야, 얼마나愛惜한일이냐. 더욱이 그것이朝鮮魂의侵伏處로, 朝鮮情緖의露骨化인鄕土藝術일에, 그것이얼마나愛惜한일이냐. 우리는역에서 엇더한手段을쓰드래도, 그對策을講究하지안으면안이될것이다. 歐米諸國에서는, 벌서이方面에着目하야, 或은國家의힘으로, 或은團体의힘으로, 이鄕土藝術의保存機關을세워, 널니이를蒐集하는同時에, 定期報告物갓흔것이잇서서, 그紹介와侏存에적지안은힘을쓰고잇스나, 朝鮮에서는, 이이러한機關이업섯다. 機關이업섯다는것보담, 그價値를알지못하엿다. 朝鮮의歌謠라하면, 「詞■不裁」란말로措置하야내여버리는古漢學者에잇서서는, 다시말할必要도업거니와, 所謂新進靑年學徒의사이에도, 無意識한가운데지내온다. 이것이永遠不變의것이고, 新朝鮮建設에何等의必要가업다면은모르겟거니와, 나날이衰退하야가는것이그本性이오, 朝鮮을朝鮮사람의朝鮮으로맨들고저하는데에는, 到底히, 鄕土藝術이라는것을度外視할수업다. 그러면우리는엇더케하야, 숨어가는鄕土藝術을붓들고, 이를압흐로復興식힐수잇슬가. 나는只今부터이方面에들어가서좀生覺하야보고자한다. 그러나이것을具体的으로하고저하면, 決코容易한일이안일더러, 紙面의容認할배가안이다. 그럼으로나는이小論에잇서서, 다만이에對한몃가지必要한條件을들어, 有志諸氏의參考에 들이고저하는데마치려고한다.
1, 民族的意識의皷吹
내가여긔말하는民族的意識이라는것은, 社會主義에對한民族主義를말하는것이안이다. 다만朝鮮의鄕土藝術을復興식히는前提로, 民衆에對하야, 朝鮮을사랑하는마음을鼓吹하려는것이다. 萬一民衆에民族的意識이업고, 朝鮮의것이라하면무어이든지價値업는것이라하야돌보지안니한다면, 到底히朝鮮鄕土藝術은復興되지못할것이다. 더욱이只今과갓치, 急劇한過渡期에잇는朝鮮에서는, 모든點이다른나라에比하야, 뒷러진것이 만히잇다. 라서잘못하면, 自己를妄覺하고남을崇拜하는마음이나기쉽다. 多幸히그러치안이하다하드래도 그輸入과模倣에熱中할에는, 鄕土藝術갓흔데에念頭를둘餘暇가업는것이다. 그럼으로, 鄕土藝術을復興식히자면, 가장먼저그根本되는條件으로, 民衆에對하야, 民族的意識을皷吹하지안으면안이될것이다.
2, 鄕土藝術硏究協會
前에도잠간말한바와갓치, 鄕土藝術은新文化에對하야, 微弱한抵抗力을가지고잇서서, 文化가前進하는反比例로, 나날이衰退하야지는것이그特徵이다. 그럼으로이것을復興식히자면은, 이에對한學術的硏究協會갓흔것이잇서서, 그를採集하야硏究하는同時에, 그保存에힘쓰지안으면안될것이다. 定期로나는機關雜誌갓흔것이 잇서서그를採集하는널니紹介도하고, 그에對한硏究論文갓흔것을發表하는것도, 勿論조흔일이다.
3, 時々로民衆에公開하야興味를일킬것
硏究協會가成立된다하드래도, 그事業이協會안에긋친다면, 大衆에對하야, 何等의利益이업슬것이다. 利益이라하니, 恰似무슨功利的打算과갓치보이나, 그러한은안이다. 이를少數個人에맛치지말고, 全大衆으로引導하자는것이다. 萬一그럿치못하고, 一部同好者間의硏究에마치고, 冊床우를나지못한다면, 그는한硏究材料에지나지못하엿지, 決코大衆의鄕土藝術이되지는못할것이다. 그럼으로, 硏究協會에서할일은, 반다시, 硏究에만긋치지말고, 々로그硏究를發表하는同時에, 直接그鄕土藝術을民衆에公開하야, 그에對한 興味를도두지안으면안이될것이다.
4, 學校敎育에侵入식힐것
只今지, 鄕土藝術이라하면, 無識한下流階級의專用物이엇섯든것을, 급작히學校敎育에侵入식히자하면 或은敎育家의중을바들지도모르나, 그갓치甚한態度를取하게지는업슬듯하다. 只今지賤者의所用이되엇섯다는것은, 그에對한意識이업섯다는것이지, 그藝術自体의價値가업섯다는것은안이다. 그價値야말로속에파무친玉과갓치, 永遠히그光彩를빗낼것이다. 그럼으로나는이것을學生界에지延長을식히드래도, 조곰도敎育의價値를어틀인다던지, 는學生自己를卑賤케할理는업슬듯하다. 차라리이일로因하야, 그思想은, 훨신美化되고, 卒業後社會에奉公할有意한靑年이養成될듯하다. 더욱이學生이라하면, 未進한地方에서는, 늘社會的指導階級이되야, 그들의하는일은, 곳世人의注目거리가되고, 社會의模範이된다. 그럼으로 鄕土藝術의復興을企謀하자면, 암만하야도, 學校敎育에지侵入식히지안으면안니될것이다. 學校敎育에지侵入식힌다하야, 正課에지너허서, 直接敎授指導치안이한다하드라도, 적어도이것이, 學生의興味點이 되도록은, 되여야할것이다.
5, 農村에잇서鄕土藝術을獎勵할것
只今이라도, 比較的鄕土藝術을만히保存한곳은農村이다. 그러나朝鮮의農村은, 날々이經濟的破滅을當하야, 漸々衰退하고잇다. 라서年前지盛行되든正月놀이, 豊年놀이, 秋夕놀이, 푹구놀이갓흔것도, 年々이그흔적을감추어가는形便이다. 農村이打破하야저가니, 이런것이衰退하야저가는지, 는이런것이衰退하야지니, 農村이打破하는지모르겟스나, 何如튼차々업서저가는것은事實이다. 업서젓다가도, 다시잇게된다면, 그는모르겟거니와, 記錄이업는鄕土藝藝은, 한번업서지면, 다시엇기어려울것이니, 우리는역에아직 족곰만치라도남아잇슬에, 그興行을獎勵하야, 消失을防備치안으면안이될것이다. 그리하야一方農村의士氣를, 振興식힌다면, 얼마만치, 經濟的方面에도影響이잇지안을가生覺된다.
九
以上나는몃가지의條日을들엇다. 이것이勿論具体的論述은되지못하엿스나, 얼마만콤鄕土藝術의必要條件은될듯하다. 그리하야, 우리는朝鮮鄕土藝術을復興하자, 文化가뒤러진朝鮮에잇서서, 外國을硏究하는것도업지못할것이다. 그러나外國만을硏究하고朝鮮을버려둔다는것이, 한穩當할가. 外國을硏究하는것도, 結局은朝鮮의文化를, 向上식히는데에잇다면, 朝鮮硏究도決코等閑히할수업슬것이다. 그러나不幸히, 現今朝鮮靑年學徒의學風은, 그런것갓지안타. 外國것을모르면그는羞恥로알아도, 朝鮮것을아지못하는것은, 조금도羞恥로生覺하지안는듯하다. 이것이한, 우리들의咀呪의眼目으로흘겨보는녯朝鮮學者와다를배가어데잇는가. 或은이것은, 文化的過渡期에잇서서는, 할수업는일이라하야, 容恕할點이잇슬지는모르겟스나, 世上은언제든지, 朝鮮을이處地에두지안는다. 先進諸國에서는, 벌서文化의成熟期를넘어, 그硏究의勢力은國境을넘어, 朝鮮에지波及하야왓다. 그리하야, 날카로운學者의眼光은朝鮮이라는新天地의구석へ에번적거려, 로그들의硏究는, 우리들의가슴을놀내게하는것이잇다. 歷史가그러하고, 文學이그러하고, 藝術에잇서서그러하다. 아々이것이, 얼마나朝鮮사람의羞恥이냐. 朝鮮을朝鮮사람이모르고, 外國人의손을빌어 朝鮮을아는것이얼마나羞恥냐. 더욱이, 自己나라歷史를外國人에배우고, 自己나라文學藝術을남에게듯는다는것이, 엇지朝鮮사람의羞恥가안이냐.
우리는힘잇게달아야될것이다. 그리하야, 自己라는것을覺醒하여야될것이다. 팔둑을아, 가장힘잇는듯이, 社會主義를부르지지고, ××主義를宣傳하는것이, 二十世紀靑年의氣象이며, 붓을들면은「테」를 부르고, 쉑스피아를부르고, 「칸트」를찻는것이, 文學家답고, 學者답을지는모른다. 그러나朝鮮을忘覺한運動, 朝鮮을 忘覺한學問의意義는어데잇는고, 우리는늘目標를朝鮮에두고, 外國의文化를輸入하야, 自國文化를發達向上식히는同時에, 쉬지안는努力을가지고, 自國文化를硏究하지안으면안이될것이다. 나는이러한表意에서朝鮮에鄕土藝術復興運動을促進코자한다. 多幸히, 多數의參同者가잇서, 하루밧비쓸어저가는朝鮮의 鄕土藝術이復興되여, 世界에特色잇는朝鮮文化가建設되기를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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