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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가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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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삼국시대의 가무희 三國時代의歌舞戱
종    류 논문 論文
필    자 조윤제 趙潤濟
출처정보 신흥 新興
연    도 1929-07 昭和四年七月
면    수 56 (56)
기사
古今을勿論하고, 사람의感情이, 엇더한衝動을바다, 박그로表現이될에는, 여긔에歌謠가생기고, 舞踊이낫타나며, 그것이, 一步를進하야, 다른사람과 갓치, 同樂하고자할에는, 劇이라는것이, 發生할 것이다. 그러면, 엇더한民族이든지, 그社會가成立되는同時에, 自然히, 歌舞戱라는것은, 러지지못할關係로發生하는것이니, 朝鮮三國時代에도, 亦是 갓흔法則에依하야, 歌舞戱의發生을, 보게되엿다. 世人은흔히, 그에關한文獻이, 缺乏하얏다하야버리는, 傾向이잇스나, 잘硏究하야보면, 그런것도안이다. 업는文獻어나마, 이를어모아, 些細히硏究하야보면, 그時代의歌舞戱槪念을, 잡지못할배도안이다.
그런대, 나는여긔에, 歌舞戱란말을썻스나, 古代에잇서서는, 歌·舞․戱三者는러지지못할關係를 가지고잇섯는것이다. 歌는노래니, 노래인以上에는 一定한音律이잇슬것이오, 이音律이, 自然的波動에 適合할에는, 不知不識間, 手足이運動될것이니, 이것이, 곳노래에른舞即춤이라는것이될것이다. 이歌舞가, 한個人의自己的興奮에, 맛친다면모르겟스나, 그것이, 한集團性을고, 與他人으로同樂할에는, 여긔에, 原始的劇이, 發生될것이다. 太古扶餘에는, 迎鼓라는것이잇서, 臘月祭天大會에는 連日飮食歌舞를, 하엿다하고, 濊에는, 儛天이라는 것이잇서, 常用十月祭天에는, 晝夜飮酒歌舞하얏다 하며, 三韓亦是同一한歌舞가잇서, 連日飮酒歌舞란 말이보이니, 이歌舞라는것은, 곳내가말하는, 歌舞戱일것이다.
이와갓치 上古原始時代에는, 歌舞戱三者는, 러지지못할, 一軆三面의한藝術이엇섯다. 그럼으로 나는여게, 歌舞戱라는, 題目을걸어, 三國時代의그것을, 좀, 槪觀하야보고자하나, 三國時代라하면, 널니아는바와갓치, 新羅·高句麗·百濟의三國이, 鼎立하엿든時代를, 말하는것이다. 高句麗·百濟는 나종에, 新羅에倂呑되야, 新羅單獨의時代가, 얼마만치, 繼續한가, 잇섯스나, 使宜上여긔는, 그時代도包含하야, 三國時代라한것을먼저, 말하여둔다. 그러면, 三國時代의歌舞戱는, 엇더하엿든가, 이는 只今, 將次以下에, 論하고자하는배나, 오늘날傳하는, 이時代의歌曲은, 大槪이름만傳할이요, 그內容은, 傳하지못하엿다. 이것이, 곳, 그를表現할文字가, 업섯는탓이엇섯고, 一方, 그것이, 支那의 影響을, 比較的밧지안흔時代의所作, 即朝鮮色을, 比較的만히, 내엇섯는것을, 보히는것이라할것이다 이點으로, 보아서, 三國時代의歌舞戱를, 論하는것은, 朝鮮文學上大端히, 意味잇는問題이겟스나, 그 內容을엇지못하고, 폴만들어서, 그의槪念밧게엇지못하게되니, 크게遺憾으로生覺하는바이나, 그럿타하야, 永々버려두는것도, 愛惜한일이니, 이것저것모아서, 可及的잇섯는그대로를, 紹介하야, 그萬端의一이라도, 어더보자.

一 新羅의歌舞戱
新羅는, 支那와멀니러저, 南方한구석辰韓에서부터닐어나, 比較的支那文化에, 接觸하지못하고 前半期를지내와, 法興王八年에, 비로소, 百濟의紹介로, 처음支那와交通하게되엿다. 라, 어느나라보다도, 그文化가뒤러저, 發達하얏는만콤, 固有文化를, 어느程度지, 保藏하야나왓다. 이것이 곳, 新羅에는, 獨特한, 鄕歌라는形式文學이, 自然發生된原因이다. 新羅는, 比較的南方溫和한地帶에잇서, 自然의恩을, 만히, 바든나라이엿섯고, 外國의侵略이적어서, 文學으로發達할素質이, 充分히 잇섯든것이다. 그럼으로, 只今내가말하고자하는, 歌舞戱方面도, 그풀이나마, 가장, 만히, 遺傳하야잇스니, 이것은, 三國中最後의勝利者인, 政治的 背景이잇섯는탓도잇스나, 그本來, 文學的方面이 다른나라보다, 優秀히, 發達되엿섯다는, 關係도, 잇슬것이다. 何如튼, 新羅의歌舞戱에對한記錄이, 只今傳한것은, 三國中에, 가장, 만흔것은, 文獻이 證明하는배나, 이것이, 얼마만치, 朝鮮固有性을, 것이며, 얼마만치, 支那의影響을, 바닷섯는것은, 오늘날, 그內容을어더볼수업스니, 자못, 斷言하기어렵으나, 나는只今以下에, 記錄에낫타난그대로를, 論하야, 幾分이라도, 그內容을, 차자보고자 한다.
三國史記에依하면, 新羅樂器에는, 幾多種類가, 잇섯스나, 그中玄琴·加耶琴·三竹에對하야, 紹介하야보면, 玄琴은, 本是支那의樂器이엇든것이, 高句麗에, 傳하야왓슬에, 처음에는, 樂器인줄은알앗스나, 聲音과皷法을아지못하얏다. 第二相王山岳이라는이가, 그本樣을, 알아, 百餘曲을, 創製하야서탓드니, 玄鶴이와서, 춤을추엇슴으로, 이름을, 玄鶴琴이라하고, 後에다만, 玄琴이라하얏다한다. 이것이, 新羅에, 들어와, 沙飡恭永子玉寶高가, 地理山雲上院에, 들어가, 이를學習하기五十年에, 新調五十曲을지어, 續命得에傳하고, 得은, 貴金先生에傳하얏드니, 先生이한, 地理山에들어가, 나오지안이하엿다. 이에, 新羅王이, 琴道가, 斷絶할가 두려하야, 使者를보내, 그傳授를懇請하야서, 所秘의三曲을, 安長·淸長二少年에傳하얏다. 安長은其後이를, 그아들克相·克宗에게傳하고, 克宗은, 別로三曲을지엇섯다. 克宗後에는, 琴道로, 自業하는 者가, 續々輩出하야, 平調·羽調合하야, 一百八十七曲이, 잇섯다하나, 그餘聲遺曲은, 거의散逸하야, 具載할수업다하얏고, 다만玉寶高所製의三十曲만, 그曲名을記載하얏스니, 이를引用하면
上院曲一, 中院曲一, 下院曲一, 南海曲二, 倚品曲一, 老人曲七, 竹庵曲二, 玄合曲一, 春朝曲一 秋夕曲一, 吾沙息曲一, 鴛鴦曲一, 遠岾曲六, 比目曲一, 入寶相曲一, 幽谷淸聲曲一, 降天聲曲一
合하야三十曲이다. 그러나, 이것은, 曲名만을傳할 름이요, 그內容이, 傳하지못하얏스니, 엇더한것이, 잇섯는것은, 아지못한다.
加耶琴은, 加耶國嘉實王이, 唐나라樂器를模倣하야맨들어, 諸國方言이달나, 音이一致치못함을, 慨嘆하야서, 樂師于勒을命하야, 十二曲을지엇섯다. 그後에, 國亂이일어나, 于勒은樂器를가지고, 新羅에들어오니, 는新羅眞興王라, 王은이를바다서 國原에安置하고, 階古·注知·萬德三人으로, 于勒에게배우게하얏다. 于勒은, 三人의所能대로, 階古에게는琴敎를가라치고, 注知에게는歌敎, 萬德에게는舞業을가라처, 各々그業을傳하얏다한다. 三人이 傳業한後에, 이는, 繁且淫하야, 正雅치못하다하야 約하야, 五曲으로改作하얏다. 于勒이, 처음에이말을듯고, 大怒하얏드니, 그五種의樂曲을 들은後에 樂而不流하고, 哀而不悲하니, 可히正音이라하야, 嘆服하얏다한다. 그後漸々流行하야, 大業이되야, 河臨調·嫩竹調合하야一百八十五曲이, 잇섯다한다 只今傳하는曲名에, 于勒所製의十二曲이잇스니
下加羅都, 上加羅都, 寶伎, 達己, 思勿, 勿慧, 下奇物, 師子伎, 居烈, 沙八兮, 爾赦, 上奇物
이것이오, 이外에, 泥文所製의, 烏·鼠·鶉三曲이傳하니, 이泥文이라하는이는, 누구인것을, 三國史記樂志에, 는말하지안니하엿스나, 同史記眞興王 十二年條에
十二年春正月改元開國, 三月王巡守次, 娘城聞于勒及其弟子尼文知音樂, 特喚之王駐河臨宮令奏其樂, 二人各製新歌奏之云々
이라한것이잇스니, 이尼文인듯하다. 그러면, 于勒·尼文은同時代의사람이니, 그들의지은樂曲은, 果然 엇더한것이잇섯든가, 먼저도말한바와갓치, 三國史記樂志에, 加耶國嘉實王이
所謂諸國方言各異聲音, 豈可一哉, 乃命樂師省熱縣人于勒造十二曲
이라하니, 支那影響을밧지안이한, 純全히, 朝鮮固有性을發揮한, 歌曲이엇섯는듯하다. 泥文所製의三曲도, 한于勒의歌曲과다름이업슬것이니, 이것은 모다純朝鮮의歌曲이요, 加耶琴그것이, 支那의影響을바닷슬지모르나, 何如튼, 朝鮮이나은樂器로, 今日지傳하야온다.
三竹도그起源은, 新羅時代라하나, 이에關한記錄이업스니, 엇던사람의所作인지는모르나, 三國史記는古記를引用하야, 神文王에, 東海中에, 忽然히, 模樣이龜頭와갓흔一小山이낫타나, 그우헤, 一竿竹이낫섯다. 나제는分離하야, 둘이되고, 밤에는 合하야, 하나가되니, 王이, 이를비어서笛를만들어 萬波息笛라불넛다. 이竹笛는, 神奇한點이잇서, 三國遺事에
吹此笛則兵退病愈, 旱雨雨晴, 風雲波平.
이라하얏다. 即造化가無窮하야, 兵病을물니칠수잇고風雨를마음대로하는樂器라함이니, 그럼으로, 이를國寶라하야, 깁히감추엇다한다. 그런데三竹笛에는平調·黃鍾調·二雅調·越調·般涉調·出調·俊調七調가잇서, 大笒三百二十四曲, 中笒二百四十五曲少笒二百九十八曲이잇섯다한다.
新羅에는, 右記한以外에도, 만흔歌舞가잇섯스니 以下이에對하야, 說明을하기前에, 먼저, 數種의文獻에, 散在하야잇는, 歌舞의이름과, 그年代를表示하야보자.
東京曲 未詳
兜率歌 儒理王代
會蘇曲 同
辛熱樂 同
突阿樂 脫解王代
枝阿樂 婆娑王代
思內一作詩惱樂 奈解王代
笳舞 奈密王代
憂息樂 訥祗王代
鵄述嶺曲 同
碓樂 慈悲王代
怛切歌 炤智王代
竿引 智大路(智證)王代
美知樂 法興王代
徒領歌 眞興王代
捺絃引 眞平王代 僧人淡水作
思內奇物樂 未詳 原郞徒作
內知 未詳 日上郡樂也
白實 未詳 ■梁郡樂也
德思內 未詳 河西郡樂也
右南思內道 未詳 同伐郡樂也
祀中 未詳 北限郡樂也
太平歌 眞德女王代 眞德女王作
陽山歌 太宗王代
無㝵歌舞 同
宮庭栢 孝成王代
玄琴抱曲 景文王代
大道曲 同
問聲曲 同
處容歌舞 憲康王代
御舞祥審 憲康王代
都波歌 同
三代目(歌集) 眞聖女王代
繁花曲 景哀王代
黃昌郞舞 未詳
利見臺歌 未詳
木州歌 未詳
半登山曲 未詳
加耶舞 未詳
等이다. 以上의것은, 그大槪가, 오늘날, 그內容을 傳하지못하는것이니, 間或其中에, 樂學軌範갓흔데에도, 실녀잇서, 幾分이라도, 그內容을, 窺視할수잇스나, 到底히, 新羅當時의正軆를, 차자볼수업다 三國史記에도, 所載의十八曲에對하야
此皆鄕人喜樂之所曲作也, 而聲器之數, 歌舞之容, 不傳於後世
라하얏스니, 三國史記撰修當時에, 벌서, 그內容이 消滅되엿다고볼것이다. 그러나, 그러타고, 永々히 그性質을몰을것은안이다. 諸文獻에, 幾分이라도, 그內容에對하야, 엿볼만한記錄이잇스니, 以下그記錄을주어모아서, 지만잇는 이歌舞에, 幾分이라도살을붓처보자.
[東京曲] 이는그所作年代개未詳하나, 文獻備考에, 新羅國民이, 昇平日久하고, 政化醇美하야서, 太平之樂을부른것이, 이노래라하얏스니, 그時의한民謠나俗謠이엇슬것이다.
[兜率歌] 이에對하야는, 三國史記儒理王五年條에, 王이國內를, 巡行하시다가, 한老嫗가, 饑凍에 견듸지못하는것을보고, 몸이우헤잇서, 百姓을, 養育치못하고, 老幼로하야금, 이地境에니르게함은, 내罪라하야, 곳, 御衣를버서, 덥퍼주고, 飮食을주어먹인後에, 有司에命하야, 鰥寡·孤獨·老病等自活하지못하는者를, 調査하야서, 衣服과飮食을供給하얏다. 이所聞이, 隣國에지, 들어가, 百姓이듯고모히는者가, 날로만하, 民俗이歡康하야서, 이노래를지엇다한다. 只今그原文의句節을, 引用하면
是年民俗歡康始製兜率歌, 此歌樂之始也
라하야, 兜率歌로, 新羅歌樂의처음이라하엿다. 儒理王五年은, 西紀二八年, 只今부터約一千九百年前이니, 이것이, 新羅歌樂의처음일지도, 몰른다. 그러나, 이것은, 엇든形式的歌樂을말하는것이지, 一般國民의自然的노래를, 말한것은안일것이다.
[會蘇曲] 이것도, 亦是儒理王代의所作이니, 儒理王九年(西紀三二)에, 六部의國民을半分하야서, 王女二人으로, 各部內女子를거느리고, 七月望日로부터 每日일즉이, 六部의에모이어, 서로競爭的으로, 밤지, 紡績을하얏다. 이러케하기, 八月望日지 일으러, 그功의多少를考察하야서, 負者는, 酒食을 내여, 勝者에謝意를表하고, 歌舞百戱가演出되엿다 이負家의一女子가, 이러나, 춤추며嘆하기를, 會蘇へ라하얏다. 그音이, 哀雅하야서, 後人이, 그 音을, 그려서, 이노래를, 지엇다한다.
[辛熱樂] 亦是, 儒理王代所作이니, 三國史記樂志에
辛熱舞, 監四人, 琴尺一人, 舞尺二人, 歌尺三人이라하는記錄이잇스니, 監, 琴尺, 舞尺, 歌尺이라는것은, 엇더한것인지모르나, 同書에「羅時樂工皆謂之尺」이라하는말을보면, 이辛熱樂을演奏하자면 監四人과, 奏樂하는者一人과, 춤추는者二人, 노래 부르는者三人이든다는말인듯하다. 그러면, 이樂을, 演出할에는, 一定한樂工의排置가잇고, 所定한規定밋테, 奏演하얏는것이니, 이는李朝樂學軌範의歌舞戱와도, 갓튼點이만히잇다. 그러면, 李朝의 그것도, 新羅에起源한것이오, 新羅의그것은, 一種 演劇의起源일것이다. 말한김에, 여긔에, 이와갓흔 新羅歌舞의演奏一般을, 㕘考로다음에表示하면, 政明王九年辛新材設酺奏樂에
笳舞 監六人, 笳尺二人, 舞尺一人
下辛熱舞 監四人, 琴尺一人, 舞尺二人, 歌尺三人
思內舞 監三人, 琴尺一人, 舞尺二人, 歌尺二人
韓岐舞 監三人, 琴尺一人, 舞尺二人
上辛熱舞 監三人, 琴尺一人, 舞尺二人, 歌尺二人
少京舞 監三人, 琴尺一人, 舞尺一人, 歌尺三人
美知舞 監四人, 琴尺一人, 舞尺二人
哀莊王八年奏樂에
思內 琴舞尺四人, 靑衣琴尺一人, 亦衣歌尺五人
碓琴舞 舞尺赤衣, 琴尺靑衣
等의記事가, 三國史記樂志에, 보인다.
[憂息樂] 이는訥祗王時作이니, 實聖王元年에, 奈勿王子末期欣이, 倭國에人質이되여가고, 十一年에末期欣의兄卜好가, 高句麗에, 人質이되엿다. 訥祗王이即位하여서, 二弟를보고저, 孔懷의情을禁치못하야, 辯士를보내, 다려오고자하얏다. 이에 朴堤上이가, 當選이되여서, 高句麗에가, 卜好를다려오고, 倭國에이르러, 末期欣을내보냇다. 王이 크게, 깁버하야, 六部의百姓을모와, 大宴을열고, 王이스사로, 노래를지어, 그을피엇다하는것이, 곳, 이憂息曲이다.
[鵄述嶺曲] 우에말한바, 朴堤上은, 其實倭國에 들어가, 末期欣이는, 還國을식혓스나, 自己는도라오지못하고, 無慘히도, 倭王에붓들녀, 殺害를當하고말앗다. 이의慘境은, 참말로, 일을수업는悲境이엇섯고, 母國을生覺하는忠誠이, 는것이다. (中略)
이와갓치, 朴堤上이, 無慘히, 外國孤魂이되여, 도라오지안이하니, 그妻가悲慕함을이기지못하야, 三娘을다리고, 鵄述嶺에올나가, 倭國을바라보며, 慟哭하다가, 이世上을낫다한다. 그리하야鵄述嶺 神母가되고, 이를불너노래한것이, 곳, 鵄述嶺曲이라한다. 只今은, 그內容이傳치아니하야, 엇더한것인것을, 아지못하겟스나, 以上말로미루어보아, 熱情的悲曲이엇슬것이, 想像된다.
[碓樂] 이는慈悲王時사람百結先生의作이라하니 先生의傳記는, 三國史記列傳에? 詳細한것이잇스나 先生은집이가난하야, 옷이러저, 마듸へ매저서 懸鶉와갓해서, 그사람들이, 百結先生이라불넛다한다. 先生은, 富貴를慾心하지안이하고, 日常琴을 히롱하야서, 喜怒悲歡과不平之事를, 풀엇다한다. 어느해, 歲暮가臨迫하야, 隣近洞里에는, 正初의飮食을, 장만하느라고, 방아는소리가, 奔走하얏다 그妻가그소리를듯고, 다른집들은, 모도穀食이잇서 방아를는데, 우리집은, 아무것도업스니, 엇지할고하야, 嘆息을마지안이하엿다. 先生이, 泰然히, 하는말이, 死生은命이잇고, 富貴는하날에잇스니, 人爲로엇지, 이를拒追하리요하고, 琴을퉁겨, 방아소리를내여, 스사로慰勞하얏다하는것이, 이碓樂이다增補文獻備考에, 東都樂府에, 이것이傳하엿다하나이를보지못하얏스니, 엇던것인지모르겟다.
[怛切歌] 增補文獻備考에, 炤知王十年에, 못에서, 射琴匣이라는異事가잇섯고, 龍馬鼠豕의變怪가잇서 (이事實는三國遺事에도보임) 年年正月上辰 上亥·上子·上午에는, 百事를忌하고, 動作을, 마음대로하지안이하야, 國俗에이四日로怛切이라하고 東部都府에, 怛切曲이잇섯다한다.
[太平歌] 이는眞德王이, 自製한것으로, 唐帝에 바친 純漢文노래다. 三國遺事에, 그歌詞가잇스니 이를引用하야보면
大唐開洪業, 巍々皇猷昌, 止戈戎威定, 修文契百王, 統天崇雨施, 理物軆含章, 深仁諧日月, 撫運邁虞唐, 幡旗何赫々, 錚々何鍠々, 外夷達命者, 剪履破天殃, 淳風疑幽現, 遐邇競呈祥, 四時和玉燭, 七曜巡方々, 維嶽降輔宰, 維帝任忠良. 五三成一德, 昭我唐家皇
이다. 보는바와갓치, 퍽固有性을일코, 支那思想을 吸收하엿다. 우리는일로보아, 이에와서는, 新羅도相當히漢學을輸入하고, 佛敎를輸入하야, 漸次自國固有思想이稀薄하야지고, 支那崇拜의思想이, 擡頭하야서, 新羅固有의歌舞도, 적지안은, 그影響을 바닷다고, 볼것이다.
[陽山歌] 이에關하야는, 여러곳에서보이나, 大槪가一致하니, 여긔에적힌것을綜合하야보면, 結局안에와갓치된다. 即金歆運이라는新羅貴骨이, 百濟를 처들어가, 陽山에서, 크게百濟를破擊하얏스나, 百濟는, 밤을타서, 도로掩襲을하야왓다. 百濟軍은, 自己나라이니, 地勢도잘알앗스나, 新羅軍은 모도가설엇다. 아서, 破擊當할것은定한일이엇섯다. 그리하야, 엇던사람이 歆運에게말하기를, 賊起暗中하고, 呎尺을分辨치못하니, 죽어도아는者가업슬것이다. 하물며, 公은新羅貴骨이니, 萬若敵手에 죽으면, 敵에게는多幸한일이나, 우리에게는恥辱이니, 避하는것이좃켓다하니, 歆運이말하기를 大丈夫한번몸을許해서, 國家에밧쳣스면, 엇지사람이, 알고아지못함을, 헤아리겟느냐하며, 칼을여, 압흘가리는從者를물니치고, 突進하야서, 數人을죽이고죽엇다. 이를본다른사람들도, 크게激勵되여서, 歆運갓흔이가, 죽는바에야, 우린들사라무엇하리오 하고, 한, 敵陣에여들어가, 죽어바렷다한다. 그리하야, 그사람이, 이를哀傷하야서, 이陽山歌를지엇다한다.
[無㝵歌舞] 이는新罷元曉로브터始作된者이니, 元曉는아는바와갓치, 新羅時代의名僧이다. 傳說에 依하면, 元曉大師가, 太宗王女에, 장가들어서, 薛聦을나엇다한다. 그가한번失戒한後에는, 俗服을가라입고, 노래를부르며, 市井으로, 도라다녓다한다 三國遺事로부터그原文을引用하면, 卷四元曉不覊에
曉旣失戒生聦, 己後易俗服, 自號小姓居士, 偶得優人舞弄大瓠, 其狀瑰奇, 因其形製爲道具, 以華嚴經一切無㝵人一道出先生死命名曰㝵, 仍作歌流于世, 甞持此千村萬落且歌且舞, 化詠而歸, 使桑樞瓮牖玃猴之輩, 皆識佛陀之號, 咸作南無之稱曉之化大矣哉.
라하엿고, 李仁志破閑集에는
亦有山人貫休作偈云, 揮雙袖所以斷二障, 三擧足所以越三界, 皆以眞理比之, 僕亦見其舞作讃, 腹若秋蟬, 頸如夏鼈, 其曲所以從人, 其虛所容物, 不見窒相密石, 勿見笑於葵壺, 韓湘以之藏世界, 莊叟以之泛江湖
라하엿스니, 幾分그內容은, 窺視할수잇다. 高麗樂志에
出自西域, 其歌詞, 多用佛語, 且雜以方言
이라하엿고, 樂學軌範에도, 同一한文句가잇스니, 그歌詞는, 漢文이안이고, 朝鮮말로, 되엿다는것도 알겟다. 그런데, 이歌舞는, 新羅에始作되야, 高麗를通해서李朝지, 流傳하야온것이니, 李朝에와서는 엄침이, 劇化하여저왓다.
[宮庭相] 增補文猷備考에, 孝成王이, 潜邸하야 잇슬에, 金信忠이란사람과갓치놀며질기엇다. 어느날栢樹下에서, 바둑을두다가, 栢樹를두고, 後日 서로잇지안키를盟誓하얏다. 그後얼마안니하야서, 王이即位하얏다. 그리하야, 功臣을가려祿을주고, 信忠은잇고말엇다. 이에信忠이, 怨을품고, 노래를 지어栢樹에붓칫다. 그리하엿드니, 栢樹는급작히죽고말엇다. 이말을들은, 孝成王은크게놀내, 곳불너서爵祿을주니, 柏樹도다시蘇生하엿다한다. 이宮庭柏은即信忠이가, 柏樹에부친것이니, 三國遺事第五信忠掛冠, 이노래가記載하야잇다. 只今그노래만을引用하면
物化好支柏史, 秋察尸不冬爾屋支墮米, 汝於多支行齊敎因隱, 仰頓隱面矣改衣賜乎隱冬矣也, 月羅理影支古理因淵之叱. 行尸浪, 阿叱沙矣以支如支 貌史沙叱望阿乃世理都, 一三叱逸烏隱第也 (後句亡)
[處容歌舞] 이는 新羅歌舞에서안이라, 新羅·高麗·李朝를通하야, 가장代表的歌舜舞라할만하니 조금, 詳細한說明을하야보자, 三國遺事第二卷, 處容郞, 望海寺條에
第四十九憲康大王之代, 自市師至海內, 比屋連墻 無一草屋, 笙歌不絶道路, 風雨調於四時, 於是大王遊開雲浦, 王將還駕, 晝歇於□邊, 急雲霧冥噎, 迷失道路, 恠聞左右, 日官奏云, 此東海龍所變也, 宜行勝事以解之, 於是勅有司爲龍刱佛寺近境, 施令己出, 雲開霧散, 因名開雲浦, 東海龍喜, 乃率七子現於駕前讃德猷舞奏樂, 其一子隨駕入京, 輔佐王政, 名曰處容, 王以美女妻之欲留其意, 又賜級于職, 其妻甚美, 疫神欽慕之, 變爲人夜至其家竊與之宿, 處容自外至其家, 見寢有二人, 乃唱歌作舞而退
라하는것이잇스니, 이것이, 處容舞의起源이다. 그 後, 이處容舞에對하야는, 種々의文献에, 散在하야 잇슴을, 볼수잇스니, 果京雜記二卷古蹟條에
月明巷, 在金城南, 新羅憲康王遊鶴城, 至開雲浦 忽有一人奇形詭服諸王前歌舞讃德, 從王入京, 自號處容, 每月夜歌舞於市, 竟不知所在, 時以爲神 其歌舞處後人名爲月明巷, 因作處容舞, 處容舞, 假面以戱
라잇서, 假面以戱라하얏스니, 假面을使用하얏는듯하고 高麗末李崇仁陶隱集에, 十一月十七日夜切益 新羅處容歌를듯고, 聲調가悲壯하야, 사람으로하야금, 感動케하는배가잇서지은詩에
夜久新羅曲, 停盃其聽三, 聲音傳舊譜, 氣像想當時, 落月城頭近, 悲風樹梢嘶, 無端懷抱惡, 功益亦何爲
라는것이잇다. 이에聲音傳舊譜, 氣像想當時라하얏스니, 高麗末지도, 얼마금, 新羅그當時의本色을 낫타낸듯하다. 慵齋叢話에
音樂處容之戱, 肇自新羅憲康王時, 有神人出自海 中始現於開雲浦, 來入王都, 其爲人, 奇偉倜儻, 如歌舞, 益齊詩所謂貝齒頳顔歌夜月, 鳶肩紫袖舞春風者也
라한것도, 얼마금, 그遺風을살필수잇다, 다음李朝에와서도, 亦是處容歌舞가잇섯스니, 世宗大王이 그曲折로, 歌詞를改撰하야, 鳳凰吟이라하고, 朝廷正樂으로하엿다하며, 世祖大王은, 더욱, 그制度을 增補하야서, 大合樂而奏之하얏다하니, 이것이, 곳 今日傳하는, 樂學軌範의鶴·蓮花臺·處容舞合說이라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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