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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요의 특질과 그 장래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조선민요의 특질과 그 장래 朝鮮民謠의特質과其將來
종    류 논문 論文
필    자 김동환 金東煥
출처정보 조선지광 朝鮮之光 
연    도 1929-01 昭和四年一月
면    수 72 (72)
기사

大體 朝鮮民謠는 누가지엇스며 누가불러왓는가 卽엇더한社會層의손에依하야 建設되고 支持되어왓는가 하는歷史的意義와 그民謠가 朝鮮文化의創造에對하야 얼마나한 作用을하여왓는가하는 社會的評價를求하는것이 우리民謠의 特質을決定하는 二大要素가 되겟다.
勿論 民謠라하는以上 그것은字義대로 文藝的 敎養이업는 民衆일지라도 저절로 發露하는思想感情을 自然에나人事에對하야純朴하게 노래한것이리라 民衆이지어 民衆自身이 불러온것이라고 一律로斷定할수잇스나 가튼性質의것이든 時調, 鄕歌等過去의 歌謠文學의實例를보면 民衆은멋도 모르고춤만추엇고 실상制作한便에는 생각이드러잇서 極히不純하엿든 記憶을가지고잇슴으로果然民謠만에이르러는 그리치안엇든가함을 몬저저볼必要가잇서 그러함이다.

그러면 朝鮮民謠는 누가지어서 누가불러왓는가? 이對答은 實例로써함이 便하리라 只今부터 六十年前景福宮을지을에 서로相克하는 두가지 노래가 同時에 世上에도라다녓스니 한가지는宏大한王宮을 築造하는것을 저는 勞役한푼어치아니드리고 도로혀建築의功을 가로찬수잇는 貴族 官吏, 學者, 豪富等特殊階級의 입으로부터 浮華한文字와 卑屈한內容을써서 한갓 大君主의偉業을 讃歎하는, 마치 周文王의 靈臺靈沼築造時에 ■始勿■하시나 庶民子來라하는式의 阿諛的心情으로부터나온 詩歌요 다른한가지는 荷酷한工役과 收歛에우는 八道役軍들입으로부터直接忠實하게흘러나온 아리랑及景福宮타령들이라.
卽 前者는 雅요 頌이요 時調라일홈하는것이며 後者는 그가곳民謠라 民謠는實로 이와가치有閑階級이 自己의藝術的武器로 時調와漢詩를 들고나실에 그와對抗하기爲하야 政治的社會的 不利한 地位에노인 民衆의一團이 自己階級의擁護로 들고나선武器이나 이로보건데 民謠는眞實로被壓迫群自身이지어서 純全히 自身이불러온것이라고볼것이다.
이러한例야 何必景福宮工事役에만限하라 國家나 個人이 가장喜悲哀樂의 情에튼 李朝遷都時나 君主의 綅替가甚하든三國時代나 壬辰胡亂等外敵內亂이잣든近世나 엇재든 政治的社會的大事變이 이러날마다 治者■■은 반드시鄕歌와 時調와漢詩를들고나서며 民衆들은 오직「장나리 노래」나「강강수월래」나「녹두녹두의노래」가튼 民謠俗謠, 童謠等을가지고 康衢에나타낫든것이다. 비록 이노래속에 間或 宮廷詩人이나 政治家들이석기어 制作한바잇섯다할지라도 그것은 맑스 엥겔스가 貴族出身이면서 新興社會的勢力에 몸을던저 無産階級文化를創造하여노트시 그분들도 被治者群과 손을맛잡고 下層社會의慘苦에 눈물을흘려가며 지어부른노래이니 生活態度가 民衆과一致하는以上 그노래는 民衆自己의노래의延長이라고볼것이다.
이와가티 朝鮮民謠는 恒常被治者群, 被壓迫群의 노래라는데서 그特色을차즐수잇고 價値를 決定할수잇스니 於是乎 우리들은朝鮮民謠에對하야 獨特한定義를 내릴수잇다.
그것은 世界各國에서 民謠를 모와 言語及宗敎를가티하는 一民族사이에 醱酵하는 共通的思想感情의 노래라할널지몰라도 우리民謠만은民族이라는 名稱으로指稱되는 一言語族, 一血統族에 그單位를들것이아니라 實로 民族性又는 鄕土性과는 ■리케 密接한關係가업는, 다만社會的條件을가티하엿다는 虐待밧는社會民衆의一團의 共通한노래라고하는것이다.
이斷定은 朝鮮民謠의 價値를決定하는데 重大한礎石이될이라民謠將來의命脈을 判斷하는데重要한標子가 되리라고생각한다.

이미 우리民謠는 地理的傳統的關係를 가티할 朝鮮民族이라는 漠然한一團의 共通한노래가아니라 朝鮮人中에도 그一部分인 被治者며 生産者層인 特殊民衆의 노래라고 前提하엿다 라서 이러한 發生的見地로부터出發하야 在來의民謠를 살펴볼에 우리는 果然그곳에서다른나라 民謠에서 보는바와가튼 鄕土性이라거나 個人主義的保守的傾向보다도 社會的이요 集團的向上的인主潮를多分히發見할수잇다 더구나 朝鮮은過去에中國과交易이頻繁하야 制度, 學藝, 衣食住等各方面에 模倣을밧은일이不尠하고 더구나 文學方面에잇서서稗史小說이나 時調, 漢詩等에 그影響을입은바만흠에反하야 오직 民謠만은 純全히우리손에 發生되어 우리말과 우리情調를바더마이고서成育한것임을알수잇겟다
이제傳하여나려오는 數千首의多量의民謠中에서 그特質몃가지를 들추어보면
첫재 被壓迫群의 노래이니만치 集團的임을 指摘할수잇스니
「나는조와 나는조와 맘에맛는동무가나는조와」
아리랑-
「어제밤부든바람 싸힌눈이 다녹는다 어보아라 동무들아 밧갈시절 다왓다」 -농부가-
「돌실너가잔다 돌실너가잔다 영평바다에 우리 돌실너가잔다」 -배라기-
「을축삼원초삼일에 경복궁을짓느라고 회방에짓는소리라 남문을열고 바라를치니 게명산천이 화닥닥 밝어온다」 -경복궁타령-
等으로 자긔동무들을 불러서 노래로그感情을 統一하야 一大勢力을 이루려고用意한 자최가 렷하니 이것은노래는萬人의가슴에 불을부처놋는다는 歌謠의根本目的에어울니는것이다.
둘재는 民謠가보다 樂天的思想에 基調를두엇스니 假令戀愛의絶望的苦惱에直面하엿슬의노래나 別離의悲哀를 노래한것을볼지라도 情死나 自殺을아니하는朝鮮人性情이니만치 어네인지 悠々處之하는 大陸人的風度가보인다 이것이 國民性을 或 遊怠에엇슬넌지모르나 그래도저한갓울고불고하는 外國歌謠보다는 나으리라그밧게在來民謠를보면 愛慾의讃美가其極에 達하야甚히淫佚에흐른적이잇스나 그도輸入된다로운儒佛의化石的道德思想에 窒息한듯한 壓迫을밧을에 民衆들은 反動으로그道德律의破毁를企하야 녯날의 奔放하든野性에도라간것이니 辭說과調子가 粗雜하고 卑俗又는 露骨하엿슴이 不避한일이엇슬것이다.
셋재는 恒常生動하고잇는 社會的事實에서 題材를取하야 노래한것이니 假令東學亂時에 大事變을暗示하는「녹두노래」나 그밧게 閔后張嬪間의「장다리노래」나「강강수월래」나모다 當時의 社會的事件을 批評과諷刺함으로써 民衆의意思를 表現하는同時에 勇氣를鼓舞하는 要其로써왓섯다 라서 거기에는 隱語가만헛스며 더구나 大介는 不平意見을품은것으로 民謠의任務가저절로 躍如함을늣기게한다.
以上을 一括하건대 被治者群들은 民謠를媒介로 하야 恒常一團이되어 權力及資力階級에 對하려 하엿스며  儒佛의桎梏할道德律에反抗하야 奔放한原始人的情緖生活을 하엿스며 그리고 呼所無爲이든 自己의意思를表示하야 엇든作用을不絶히이르키려든 唯一의要器로 삼어온것이니 實로 朝鮮文化의創造에 民謠의 힘쓴 功勞는 不紗하다할것이다.

우리는 이에 時調는大體로 有閑階級의藝術이고 (이에對하여는 時調排擊小議라는 小論에서이미말한바잇다) 民謠는 今日의푸로레타리아前身인 被治者群의 藝術이라함을 닷게된다 (五行畧)
아니 벌서 從來의 民謠가 多少 時代的陶汰를當하고잇는 이즈음에이르러 새로운 生活意識에서 雨後竹筍가티 多數한民謠가 各地에 勃興하고잇는중에잇스니 나는 日前에 咸鏡道地方을 旅行하다가 길가에서「바티조흐면 신장로가되구요 년이엽부면 靑樓에팔닌다 에헤야」하는最近의民謠一節을 處々에서듯고 實로 今日의多數한社會民衆의 生活相을 그른句節과 눈물겨운 表現을通하야 보여줄에 벌서民謠復興은 理論을나서 實際化하고잇슴을 세삼스럽게 늣기엇다 이노래를 누가지엇는지아는가? 이러케 適切히表現되엇슬는 이境遇를當하고잇는 어느분의손으로된것이리라 作者이잇거나말거나 時代人心을움지기는 偉大한힘을가진 그노래는 벌서불길가티 퍼지어 坊々谷々의 特殊民衆의共鳴을밧고잇는 現狀이다
元來노래라는것. 一般文學도 그러치만은 人心이 瀑布모양으로 激動을칠에 더욱上나비가티 쏘다지는것이니 景福宮의例나 壬辰亂胡寇의 例로 다알것이라 이제가만히 우리現下의社會事情을살펴보면 人心은 喜怒哀樂의어느感情間에劇列히 치안을수업는境遇라 그는心情에서 그대로쏘다저나오는 粗雜한格調와 卑俗한內容을가진 詩歌를 民謠라할진대 누가 民謠의 勃興을 막으려하며 그에是非를부칠것이랴 이런말을한다고- 或은 民謠勃興그물건은 鄕土愛着熱的封建思想의 鼓吹라 할넌지모르나 그분은 朝鮮民謠의 發生方面的特質을 無視한 謬見이라아니할수업다
우리는 新詩는 技巧化하고 時調는너무高雅化하고漢詩는 難澁을極하고잇슬에 미덥즉한것은 오직野生的그대로의表現과內容을가진 民謠이라 朝鮮民謠의 文藝運動은 그가곳 우리들의 生活 運動과 密着不可離한 關係를가지고 잇는것임을 늣길에 더욱民謠의勃興에全力을 다하여야할것인가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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