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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계 거성의 수기―회고와 전망―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극계 거성의 수기―회고와 전망― 劇界巨星의手記―回顧와展望―
종    류 수기 手記
필    자 최상덕 崔象德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41-03 昭和十六年三月
면    수 178 (178)
기사
第一劇場 經營主 崔象德
[그림]정자와 풍경
巴人兄
내가 文壇的으로 杜門不出한지도 오랫나부이. 每日申報에「마음의봄」을 東洋劇場設計建築餘暇에連載하느라고 땀을뽑고 그뒤에 故金復鎭兄에게 졸니여 中央日報紙上에「戀愛非常線」을連載하여 龍頭蛇尾의 失敗를한뒤로는 只今 三千里誌上에 붓을드는것이 처음인가부이.
그러매로 挽近四五年間에는 雜誌나 新聞에 寄稿한번 한적없어 거의 그들과 絶緣狀態에 있는同時에 나의 文債는 完全히 時効消滅이었네.
그런데 某日에 三千里社記者의 襲擊을 받아 이글을 草하지 아니치못하게되었네. 글이래야 이것이 무슨글이 되겟나. 題目이 말하는바와같이 演劇장사치로의 橫說竪說에 지나지못하겠지. 劇界의 回顧와 展望이라하였으나 여기에 對한 正確한 文献이나 參考資料가 完備치못한지라 따라서 이글의 正確을 期하기는 어렵고 다만 어림한 漫談에 지나지못함을 兄과 또는 이글을 읽으실 大方諸賢에게 먼저 陳謝하여두네.
一,回顧
巴人兄
나의 見之聞之하여 얻은바 回顧에依하면 朝鮮의 演劇始初는「굿」(무당노리)에서 始發한것이 아닌가하네. 只今도 湖南嶺南等地를가면 劇團이 들어온것을「굿패가 들었다」는둥「이번에는 무슨굿을가지고왔느냐」는둥의 衆言을 어느程度의 根據가 있는것으로 보기때문일세. 따라서「굿」의 訛傳이「극」이 되고「극」의 漢字化가「劇」이 아닌지? 이것이 抑說이면 깨끗이 取消함세.
閑話休題하고 舊派時代를 빼고 所謂 新派時代 即 背景과 舞臺를 形成하여 現實問題를 取扱한 演劇時代를 回顧한다면 林聖九, 金陶山一派의 演劇으로부터 圓覺社의 劇運動을 거처서 李基世一派의 革新團, 尹白南一派의 民衆劇團, 金小浪馬豪政一派의 聚星座, 東京留學生들이 서둘는 螢雪會(이것은 新劇의 始祖라할런지)를 高漢承 金永八等이 主宰한것 後로 뚜렸이 朝鮮演劇史上의 一頁를 그린것에 土月會를 이즐수없는가하네. 土月會는 아다시피 朴春崗의 一生을 賭한것이래도 過言이 아니어서 아즉도 劇界에서 발을씻지못하고있는 現在의 大小劇人들이 들락날락한곳이 아닌가. 이土月會가 많지않은 物質이나마 있는대로를 터러밧치고 그들 劇人의 精力을 짜낼대로 짜내고 氣盡脈盡하여 解散을 不得已할때에 그나마 朴春崗의 아쉽고 서운한남어지에 土月會의 灰燼을 글거 모아서 後續된것이라할까 或은 朴春崗個人의 再出發的演劇事業이라고 할 太陽劇場, 이와前後하여 池斗漢, 卞基鍾等의 主宰로된 朝鮮演劇舍, 金容圭, 沈影, 徐月影等의 同人制로된 春秋劇場, 文秀一의 演劇市場, 朴昌鉉主宰 團成社直屬으로된 新舞臺等이 兩後竹筍으로誕生되어 夭折하고 막냉이로 誕生한 金肇盛의 藝苑座만이 남아있는 這間에 朝鮮劇界의 異彩的存在로써 色다른 演劇行動을 우리들에게 보여준 劇團이 있었으니 曰 劇藝術硏究會가 그것일세. 略稱하여 劇硏은 徐恒錫, 柳致眞, 李軒求, 咸大勳等 當時 海外文學派의 稱을받는 少壯文人等의 協力으로된 新劇團體가 아니었었나. 다른劇團이 朝鮮劇場으로 優美舘으로 舞臺를 차자 出演할때에 劇硏은 公會堂에서 孤壘를 지키며 公演을 가지지 않었었나.
이지음에 朝鮮演劇界에 劃期的의 크다란事實이 버러젔으니 그것은 西大門밖게 演劇을 常設로 하는 東洋劇場의 出現이었네. 故洪淳彦과 나는 基地를 찾고 따이나마이트를 터트리고 그야말로 □□□有를 낳는 必死의 努力으로 된것이 只今의 東洋劇場일세.
[사진]豪華船公演「支那의街」一場面
昭和十年十一月에 東洋劇場이 落成開舘이 될때에 그副産物로 劇團 靑春座, 東劇座 喜劇座의 三胎生이가 誕生되어 京城에서는 前例에없는 晝夜興行의 演劇이 常說되고 地方에도 제법 完備된 裝置와 劇本을 가지고 巡演을 하게되어 演劇黃金時代를 現顯한것이 事實이였네. 東劇이 朝鮮演劇史上에 그런 한페지를 이즐수는 없을것일세. 이것으로 演劇의 企業化가 試鍊된것도 嚴然한 事實이며 俳優를 筆頭로 演劇從業者들이 어느程度의 生活均衡乃至安定을 얻은것도 가리지못할 事實이라고 생각하네. 이렇게 東劇을 母胎로하여 誕生된 三胎生이中에 喜劇座만은 發育不全으로 襁褓에서 죽고 東劇座가 成人이될때에는 劇團豪華船이라 改名하여 靑春座, 豪華船의 姉妹는 아즉도 東劇을 牙城으로하여 健在中일세.
이 東劇을 基地로하여 부러휩쓰는 演劇黃金風에 刺㦸되어 誕生하였다가 없어진 劇團으로 中央舞臺, 浪漫座, 協同藝術座等을 이즐수가없네. 이들은 純企業的인乃至 營利本位의 東劇의 興行劇或은 商業劇에도 反對를 하는同時에 劇硏의 新劇에도 同感을 갖지못하는 所謂中間劇的演劇行動을取한것을 特記하여둠세. 그리고 우리들의 벗 延鶴年이 中央舞臺를 主宰中 巡業途中에 病魔에 걸니여 演劇事業에 殉하여 靑年會舘에서 中央舞臺의 發起로 演劇葬을 지낸것이 아즉도 우리들의 記憶에 새롭지않은가. 나는 이글을 쓰며 世苦에 부댓기여 얼마동안 이졌던 故友를 생각하고 마음으로 우네.
여기에 한줄 빼지못할 事實이 있으니 即 大勢에 順應하여 劇硏이 解消된것일세.
劇硏이 解消된 섭섭함에 反하여 劇團高協이 생긴것은 자못 기뿐일이였네. 高協은 高麗映畵社를 背景으로하여 沈影, 朱仁圭, 等諸氏의 協力下에 誕生되여 그들의 熱과 誠으로 實踐의功을 쌓고 있다고보네.
그다음으로는 劇團阿娘의 存在를 말할 順序인듯하이.
阿娘은 東洋劇場이 賣渡되고 經營者가 바뀌는통에 東劇을 脫退한 演出, 裝置, 演技者들을 中心으로하여 結成된 劇團으로 質로 量으로 健實한 努力을 쌓고있다고보네.
이밖게 地方에서 地方으로 不避風雨하고 꾸준한 努力으로 經營되고있는 劇團으로 黃金座, 演劇號外에 數個劇團을 詳述할責務를 느끼나 締切時間때문에 長提치못함은 遺憾일세.
以上이 劇界를 回想하여 今日에 至하는 槪略일세.
그리하여 이劇團들은 新體制下에 感하는바있어 大同團結하여 演劇協會를 結成하여 國策에 順應하여 이半島에도 演劇文化의 新紀元이 그들의 努力으로 지어질것을 믿으며 붓을 놓네.
(妄筆을 多謝하며 아울러 以上 列擧된 諸氏의 尊稱을 省略한것을 併謝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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