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문헌
검색 > 문헌 > 기사
구미에서 귀국한 최승희에게 보내는 편지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구미에서 귀국한 최승희에게 보내는 편지 歐米에서歸國한崔承喜에게보내는便紙
종    류 편지 便紙
필    자 석영․손기정․이서구․김연실․김소영․박기채․심영 夕影․孫基禎․李瑞求․金蓮實․金素英․朴基采․沈影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41-03 昭和十六年三月
면    수 94 (94)
기사
[사진] 최승희
「방아타령」, 「鳳山탈춤」等 東方半島의 흙냄새가 풍기는 朝鮮舞踊을들고서꽃의舞臺인 倫敦, 巴里, 紐育, 等地에 舞踊行脚을 끝내고 도라온 崔女士에게 우리의 期待는크다 女士는 이제 世界藝術의精粹와 그香臭를 滿喫하고 도라와서 장차 크나큰 建設이있으려니와, 우리는 이제 各界有志의 期待의 글을 請하여 女士에게 보내노라.

半島에도라오시라
夕 影
崔承喜가 歸國하였음으로써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이고 해야만하는가
崔氏가 舞臺에서 춤을출 때에는 한舞姬에 지나지않으나 그가 家庭에 있어서는 主婦일것이니 그의 家長이있어 그안해에게 對한 말이 있을것이므로 구태여 내가 한女子에게 對하여 어디를갔건, 돌아오건 무슨말이 있을것이냐마는 三千里社에서 그에게 무슨말이고 誌上을 通하여 해달라는 말은 必然코 舞姬로써의 崔氏에게 하라는 말일것이다.
崔氏가 어렸을때 하도 貴엽길래 그노랑머리를 쓰다듬던일과 그눈이 하-도 맑기에 모델이되어 그림을 그리자고하여 얼굴이빨개서 줄다름질처서 우리집을 나가던일과 石井漠氏를 따라 갈때에 그家庭 그가나온 女學校에서 女子가 춤이 머냐고 問題가 적지안어 京城驛을 떠나기 그前夜까지에 悲劇같은것 그외에 記憶나는일이 있으나 그런 옛 이야기를 쓴다는것은 도리혀 웃우운일이니 그것은 그當者가 더잘알것이오 그의 自敍傳에도 있은법하여 그런것을 말한다면 쑥스러울뿐이다.
내가 내이야기를 남에게 이야기하는것이나 그사람의 이야기를 다른사람이 그사람에게 이야기 하는것같이 어리석은 일은 없을것이다.
그리고 그가 外地로 舞踊行脚하던 그途中에일은 新聞으로나 그外에 그의 親戚에들어서 안바있으니 지금에 새삼스럽게 各地에서 絶讃을 博得한 그舞踊을 내눈으로는 보지도않고 어찌 禮讃이나마 할수있으랴.
그렇지않으면 그의 肉體의 美라던지 그의 個人生活에對한 이야기를 꺼내자면 그런失禮가 또없을것이니 그러면 무슨말을 그에게 보내야만하나 婦德이라던지 親戚間 ―그보담도 孝行같은것은 내말보담 얼마던지 太古로부터 높은이들이 말을 많이 한바있으니 그런것은 崔氏가 冊子로도 많이 읽었을것이요 언제인가 어떤 큰 雜誌에 崔氏의 女性으로써의 模範的인 點을 들어서 쓴 그런글을 본듯싶으니 그러면 그에게 女性으로써의 그를 禮讃하는 말을 다시금 나같은 사람이 어색한 글로써 보낼것인가?
그렇다면 過去에 내가 본 그의 舞踊을가지고 좋았다거나 나뻣다거나 批評하는 態度로 몃줄이라도 써서 보낼것인가 그러나 그것도 안될말이니 나는 舞踊을 보는사람이요 評論하는사람은 아니다.
내가 十有餘年을 新聞社生活을 하는동안 내손에 가위를들고 그의 舞踊포-즈寫眞을 이리오리고저리오려서 新聞演藝面에 發表하였던것과 내가 出版部로넘어가 朝光과女性을 編輯하엿을때 그의寫眞을「옵셋트」印刷로 朝鮮서는 처음인 豪華版으로 寫眞畵報를 꾸며 볼랴고 印刷所사람과 싸호던 이야기나 해볼까.
그러나 그것도 안된다 그는 그때에 이미 쩌낼리쯤 우에 있어서도 利器었으니 그의人氣 뒤에 숨은 秘話쯤은 아무런 價値가없는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우수운 옛 이야기로 하나쯤 할것이있으니 어느때 그가 주지않는 寫眞을 애써 내가 請했든가 그렇지않으면 그가「이번寫眞은 어떤가보시요」하고 갔다주는 寫眞이었던가 그記憶은 희미하나 그 舞踊題名도묻지않고 받어두었다가 新聞에 낼때는 시메끼리時間에 몰리고 또 그가 있는곳을 알수없어서 내自意로 題名을붙여서 工場에 내여보낸것이 活字化되어 發表되니 이것이 問題가 되었던 모양으로「나마이끼」하다고 (傳하는 사람의말이겠으나)不快해서 나를 비웃드라는 말을듣고 나는 無色해서 혼자 빙그레 웃은때가 있었다.
이때일은 崔承喜가 團成社舞臺에서 주먹춤을 추던 그 바로뒷일인가 그랫다 그러면 지금에 내가 誠意에서된 그때 내 失手에 對한 사과를 지금에 글로 代身해서 해볼까.
그러나 그것도 안될말이다 一個平凡한 쩌낼리스트의 손장난이 그때 崔承喜에게 실없은 사람으로 보혔을뿐이다.
쩌날리스트들이 反省할點이 여기에 있다.
所謂 自由主義時代 新聞의 惡弊, 내가 스사로 그런過誤를 저지른것같아서 지금도 後悔莫甚이지만, 뭇턱대고 추켜세우는點─個人의 遊戱道具가 아니요 公器를가지고 비록 그사람의 將來를바라보는點이 있다하드래도 冷情이 생각해야 할것은 自己興奮, 自己陶醉로해서 針小棒大의 記載 나딴에는 新聞記者時代에 文化方面에 있어서 助長하고 싶어한것이 도리여 그個人의 將來를 그릇치게 한바가없었는가 하고 新聞社를 떠난지도 五六年이나 되는 지금에 내가 문뜩문뜩 反省이되는때가 많다.
映畵界, 音樂界, 其他方面의 사람을 지금도 맞날수가 있음으로 더욱 여기에 刺戟이되는바요 지금의 新聞記者들이 또한 그런體驗을 가져서는 안될것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지금의 記者들은 그런 사람들의 指導的立場에 서지 않으면 안될것이다.
이런말을 하는것이 決코 崔氏를두고 하는말이 아니다. 崔氏는 그때 쩌낼리즘에 利用되었든지 쩌낼리즘을 利用하였든지 그는 目的地까지가고 만것이다. 다만 이崔氏를 比肩하여 有形無形의 走馬燈같이 지나간 무리들이 있었음으로 하는말이요. 또 내 自身의 過去가 回想되어서 하는 말이다.
여기서 崔氏가 舞踊行脚을 마치고 도라옴에 그壯擧를 질거웁게 아는바도 엣날에 내가 쩌낼리스트로서 더욱이 그의 큰 成功을 바란것은 그가 나의親友의누의었다는것이 그보담도 그는 내족하딸의 어렸을때 동무요 또 그가 어려서 우리집에도 늘 놀러오는─아는터수인 까닭도 있었을것으로 안다.
歲月은 흘러갔다. 그흘러간 긴─歲月에 나는 한가지도 이룬것이없다. 그러나 崔氏는 世界에 발자최를 남겨놓고 왔다. 女子의 몸으로는 놀라운일이 아닐수없다.
그 끈기있는 성벽! 그努力! 이것만으로도 그를 當할 女子가 없을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그 肉體的인點에 그는 天惠가 있다고 보지만 그 옛날에 열일곱살이라던때에도 지금 아이들의 열두어살 밖에 안되어보이던 작은體軀가 不過 一二年에 그렇게 크게 成熟하였다는것이 놀라웠으니 여기에는 아무래도 石井漠氏의 숨은 努力이 크다 이런것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그體軀는 둘재쳐놓고 그의 舞踊家로써의 오늘 있게된것이 石井漠氏의 恩助이다. 이것은 아므關係없는 나보담도 崔氏 自身이 더깊이 생각하고 있을것이지만 崔氏가 歸國하여 첫번 新聞記者를 맞났을때에 한말
「돈을 많이버렀느냐구요? 여러분이 생각한것과는 딴판이에요」
그가 말한것을 뜯어생각하면 그런 말일것이다.
나는 이말에 그가「매네-져-」뒤에서 얻은 常識的인 語奪가아닌가하여 퍽 그感覺이 銳利하여젔음을 알고 그가 外地에서 各處에서 常讃을 받었을때마다
「모두가 恩師石井漠氏의 힘이 뒤에숨은 것입니다」
하였을것으로 米國에서 도라온길로 이恩師의 宅부터 訪問했을것이요 알몸둥이로 石井漠氏의 門下로 간생각을 해서 石井漠氏가 舞踊界에 큰 事業을한다면 앞으로 숨은 큰助力이 있을 것으로믿는다.
그것도 그것이려니와 이제와서는 餘生이길다 할수없는 石井漠氏의 門下로 다시 들어가서 옛날의 溫情을 復舊하여 스승과함게 舞踊으로써 國民的인일에 叅加하지않으면 안될것이니 歸國하여갈길이 그것이요 그길이 바른 길인줄 생각했을것이다.
그들 出世시킨이는 勿論 石井漠氏가 또한 그러나 그를 지금이날이 있도록 기른것은 大衆도된다. 이大衆은 이나라의 賢明한國民들이다 그러면 國家에받힐것이 무엇인가도 생각 해보아야할것이다.
몃해동안 外地에서 東洋女子인 그가 얼마나 謙遜해젔는가도 알고싶다.
이제 太平洋을 건너 왔을때는 이미 매네-져-를 앞세우는 일은 끝났다고 본다. 다만 銃後의 女性으로써 崔承喜가 있을뿐이다 여기서 더욱 崔承喜가 빛나야만되겠다.
내가하랴던 말은 決局 이것이였는듯싶다. 舞踊에對해서는 崔氏만 아렀으면 그만이요 崔氏는 우리에게 새롭고 좋은 춤만보혀주었으면 좋을것이니 舞踊自體에 對해서는 專門批評家도 있을것이므로 거기에는 開口를 할생각조차 없다. 다만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한마디 했으면 그만이요 그가 듣고싶은 말도 그말이었으리라고 믿는다. 좀긴-말을 하고싶었으나 遠路의 疲勞를 생각해서 이만하고 더욱 빛나는 未來를 갖기를 바라며 이붓을놓는게 좋을것이다.

東洋藝術의精華를
孫 基 禎
東洋의 藝術이 오는 世界를 支配할것은 門外漢의 눈으로도 잘알고 있습니다. 崔女史의 이번 歐米巡演은 말하면 우리 前哨隊의 世界的活動을 意味합니다. 나는 오직 東洋藝術의 多幸을 爲하여 삼가崔女史에게 敬意를 表합니다.

母性에도라오시라
李 瑞 求
어려운길, 두로두로 잘다녀 오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애기가 바갑고 대견하시겠지요.
엄마를보고도 낯이서러 비쓸비쓸 뒷거름을 칠때 아마 가슴이 뭉클하고 눈이 뜨거우셨을줄 압니다.
그 기분, 그 심경을가지고 앞으로 춤을 추어주십시요.

崔承喜언니를맛는마음
金 蓮 實
수고햇수 장하외다

東洋 어느구석에 배긴지도 아지못하는 이땅의 舞踊藝術이 언니의 몸을 통하여 全世界에 알여젔다는것을 生覺하면 감격이사못치오 간곳마다 무수한군중이 꽃다발을 들고 맞이해겟군요.
호화로운 스테-지에서 뛰는 언니의 몸은 藝術의 극치를 발휘하고도 남을것이 있었을것이요.
오-예술의힘! 상상만해도 손바닥이 깨어지도록 치구싶수.
언니는 조선을 세게에알린 보배, 장하고 장하외다.
도라오셨다니, 반갑수 하잘것없는 저의 꽃다발이나 받어주우.

朝鮮的인舞踊으로
金 素 英
아직 眼面쫓아없는 저로서 무엇을 쓴다는것은 너무나 주저없은것같이 生覺됩니다 마는 女史를 尊敬하며 아껴하는 마음은 남에 지지않을만치 갖었스므로 두어자 歸朝인사와 아울너 쓰겠습니다. 海外에 가서서 朝鮮舞踊을 자랑하셨음은 우리네 藝術을 하는 사람에 進路를 開拓하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또 도라오셨으니 우리네들이 參考될만한 가장 朝鮮的이요 새로운 作品을 보여주시기 바람니다. 하로바삐 舞臺에 女史를 情답게 맞나보고싶습니다.

朝鮮을사랑하라
朴 基 采
지금까지 하도新聞雜誌가 거짓宣傳을 잘하기때문에 이번에도 또거짓宣傳이나 아닌가하였더니 本誌에실린貴下의親書를 읽고나서야 정말 돌아오신줄아섰습니다.
歐洲大戰속에서 몸을 페하시던 이야기며 各國의印象같으이야기는次次紙上을通하여 듣고읽을機會가있을법하오니 여기서는 이궁굼한請일랑 사양하기로합니다.
무엇보다도 東洋의藝術使節로서 貴下의뜻깊은世界舞踊行脚을 無難히 마치시고 돌아오신것을 眞正으로 祝賀합니다.
崔女史!
먼길을 無事히 돌아오신 祝賀의말씀을 드렸으면 그뿐이겠으나 기왕붓을 든김에 貴下께 나의 느낀바를 한마디 드리고저합니다.
舞踊에對한知識이 淺薄할뿐만아니라 아즉것 貴下의舞踊을 鑑賞할機會를 갖지못한 내가 敢히 여기서 貴下의舞踊에對한 이야기를하려는것은아닙니다만 貴下가出演한映畵「半島の舞姬」와「大金剛山譜」란두개의스크링에서 貴下를對한印象입니다.
崔女史!
率直히말하면 映畵를 通하여 貴下의 藝術的良心을 評하고싶지는안습니다만 이번 또松竹과提携를하여 映畵를製作하신다는 所聞을듣고 너머商品化되는 貴下의藝術을아껴 생각하는바입니다.
차라리 貴下의藝術을 商品化시키려면「朝鮮을사랑」하는意味에서貧弱한朝鮮映畵界의發展과 朝鮮映畵의市場獲得을爲하여 朝鮮映畵에出演해주시라는것입니다.
이말이 貴下께 너머 지나친請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가 決코나個人의 貴下에게對한請이아니라 오로지 朝鮮사람의 全部가바라는바일것입니다.
그러면 끝으로 貴下의 健康과 아울러 하번歸朝公演 우리의期待에서 그러지지않을것을 믿으며붓을놓습니다.

崔承喜씨전
沈 影
어서돌아오십시오, 承喜씨가 橫濱으로돌아오섰다는 소식은 몇을전 여러新聞特電으로 알았고「三千里」紙上에도 故鄕에붗이는 편지를 보내섰드군요, 얼마나 딿은活躍과 좋은일들을 끝맟이고 오섰습니까, 承喜씨가 가시는 世界地圖위를 우리半島의 모든사람들은 언제든지 祝福과함께 것고있었습니다. 우리들을 자랑해 주고우리들을 代身한 즐거은 使節! 이렇게생각하고보면 나는황송하고죄송스럽기도함니다. 그렇나 承喜씨는 별서 우리들이 애끼고 사랑하는 寶貝인것임니다. 생각하면별서몃해가 흘러간 옛이얘기임니다만 내가 아즉演劇俳優가 되기以前 中學校를갖나오자, 舞踊家가될 요량으로 東京石井漠氏硏究所를찾어갓쓸때 그때硏究生으로있은承喜씨를 玄關에서맞난일, 그리고내가다시 演劇에로轉向하야 東京갔을때 그어느八疊의 삭을세房이생각남니다. 承喜씨는 내中學同窓인安漠君하고 結婚하야 그적은房이나마 그리고 貧困한中에 아름다운꿈을싫은, 生活을하고 게시였습니다. 나는 그때나 잇때나 무료하게도 承喜씨네 단락한 家庭을 襲擊하고 김치와 북어지깨를 고지소한일있었고, 그뿐만않이라 서울에 돌아와선 承喜씨 地方公演때제법名(?)舞臺監督으로 活動한것도 記憶됨니다 생각하면 오늘날에 承喜씨 榮光모양으로 내게도 半生을 通한 아름다운 追憶임니다.
承喜씨는 天分도 天分이려니와 언제든지 明朗했고 理智와 그리고 希望을 버리지않은 舊鬪를 잊지않었습니다. 지금 承喜씨에게 祝福의편지를쓰면서도 過去의承喜씨의 그부지런하든 모든일이 한가지한가지 感激되는것임니다 어서中央公演을 맟이고 이半島에도 돌아오서서 오래 그리워하든「팬」에게 즐거움을 난워주시기바람니다
어서 돌아오십시요
西鮮巡廻公演中
이메일주소 무단 수집거부 권리침해신고 문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