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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가정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즐거운 나의 가정 즐거운나의家庭
종    류 수필 隨筆
필    자 박경희 朴景嬉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40-10 昭和十五年十月
면    수 158 (158)
기사
[사진] 音樂家 朴景嬉氏

(전략)
나의즐거운家庭記
音樂家 朴 景 嬉

家庭이란 누구에게도 따뜻한 慰安處며 社會의 거치러운물결을 막어내는 한波止場인가 生覺된다. 이가운데 있는동안 人生航路의 平和를 느끼며 安全感을맛본다.
나도 例外없이 人生에게준, 이 따뜻한 繕物을받은 한사람으로 이平凡한 現實가운데서 無限한 기쁨을느끼고있다.
束縛과 桎梏가 家庭의 代名詞며 家庭의門이란 女性에게 한번가면, 다시 못나오는 永遠히 閉鎖된門이라고 하든것은, 벌써 過去의風俗記에 不過하다. 現代에 있어서는 家庭生活과 社會生活은 決코 矛盾된兩面이아니고, 統一된 한面이라고 나는 믿는다. 家庭은 社會에서 流離된 孤島가아니며 健全한社會生活의基礎가된다.
나는 家庭을 讚美하는 가운대서音樂的探究慾이 더一層 織烈하여짐을 느끼고있다. 相互의 理解와 信賴가 새精進을 刺戟하는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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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東의一角! 退役軍人과『사라리맨』이 옹기종이 뭏여있는 그사이에 우리집 유리窓문도 반짝이고있다. 붉은 鍊瓦와 灰色콩쿠리-트로 外形만은 지엇지만은 其實은노래 靑空에나오는 작은집이다. 發聲練習을하면 이웃집 꼬맹이들이 울타리밑에서 처다볼만큼 別로 넓은庭園도가지지않었다. 近處사람은 아침일곱시만되면 두부장사의 喇叭소리와함께 出勤하는 『랏슈아와』의 勤勞人뿐이다. 室內에는 이렇다할만한 裝飾도없으나, 내가 오래치른피아노와東京日比谷公會堂에서 받은 첫舞臺의 記念銀盃가놓여있다. 一個月만지내면 첫돌이되는 우리집 寶卿이가삐삐!하며 피아노를 뚜드리고 놀때에 나는 반짝이는 太陽이 가슴속에서 빛이는것과같다.
지난겨울 媤家에갔다오느라고, 너무긴旅行을 하기때문에, 다녀와서 百日咳에 걸려서 文字그대로 百日間기침을 하는데는 사는生覺이없었다 몇일밤을 안자고, 재우느라고 자장가를 불렀더니 電軍에서나 學校에서 無時로 자장가가 저절로 입으로 나와서 혼이났다. 習慣이란 異常한것인줄 새삼스러히 깨닫게 되었다.
生後七箇月에 벌써 浸入된 病魔와激烈한鬪爭을 百日間이나 繼續하여 苦痛을느끼며 듣지못하른 病名을 醫師가작고 말할때에, 처음當하는 經驗이라 奇蹟을바랄뿐이었었다 呼吸이漸漸 困難하여지고 熱이 甚하여 水分만작고 찾는것을볼때, 다만눈을감고 祈禱를 繼續하였다. 百日이지나 어느듯 모진겨울이 다지나고 따뜻한 봄볕이찾어올때에 이웃집 婦人들이 아이들을업고 獎忠壇에 꽃求景하러갈때에 우리 寶卿이도 人生의 첫試鍊인病을 擊退시컷고 기어다니기 始作하였다. 나도百日間의 緊張이一時에 풀어지며 무슨 異蹟을한것과같고 勝利를 얻은듯한 感이났었다. 只今은 앉아서, 짝짜꿍 곤지곤지도 잘하고 外出할때는머리를 끄떡이며 『꿋빠이』도한다.
果然 人生의마음이란 깊은 鑛脈과같이파면 팔수록 寶物이나오듯이 一年, 二年歲月이 흘러갈수록 以前에 보히지않고 느끼어지지않튼 潛在된 感情과 愛情이 솟아나오며 生活의 기쁨을 느끼게한다.
學校의 하루는 滋味는있으나 大端바쁘다, 더욱이 가르치는 課目이聲樂이니까, 훨신 疲勞할때도많다. 聲樂이란 배우기도 어렵지마는 가르치기도 大端히어려운것이다. 배우는사람과 가르치는사람의 神經作用이一致되여야함으로, 때로는 나自身苦痛을 느끼는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집에 찾아오는 硏究生들은 다-素質이 豊富하기때문에 負擔이 가벼워지며 不知不識間에 進步되는것을보면 마음이 愉快하여진다.
每日 習慣的으로 바쁘기때문에 音樂會나 다른 求景도 좀처럼 가기가어렵다. 더욱이 閑暇한旅行같은것을 生覺도못한다 五月初旬에 京都에갔을때 皇后陛下御妹大谷智子御裏方께옵서音樂會를 들으시고 其翌日御殿에오라는 말슴이계시어 想像하기어려운 곳에서 朝鮮衣裳으로 나의노래를『토-키』化할때에도늘걱정되는것은 『토-키』場面보다도 집에있는꼬맹이 生覺으로 가득하였다.
結婚前의 理想은 異國의뜬 구름과같아서 가벼운不安과 힘없는 焦慮가 늘 따라다녔으나, 結婚後 家庭에 들어온後의 希望은 建築과같아서, 緻密하여지고 健全性을 띠어진듯한 感이난다.
白耳義詩人 벨한-의妻는 有名한畵家이었으나結婚後 그림그리기를中止하였다는 有名한 이야기가있지마는 美術家로서 詩人男便과 같이併行하여힘썼다면 더-理想的이였을줄안다.
有名한 큐-리夫人의 이야기는 家庭生活과 社會生活의 調和가如何히幸福을 招來한다는것을 模範할必要가있다.
나는 아즉 社會의幼年兵도 못되나 그의協力과 理解아래에 좀더 自我向上에 努力하고저한다.
그는 米國에서 돌아온後, 大學院에 籍을두고 語學과 法律을 硏究하고있다.
以上의 記錄이 家庭記로서는 適合하다고 할수는없으나 最近에느낀바를 그대로 적은대不過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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