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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여우의 상견기―이향란과의 교우―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여우와 여우의 상견기―이향란과의 교우― 女優와女優의相見記―李香蘭과의交友―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김연실 金蓮實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40-05 昭和十五年五月
면    수 162 (162)
기사
[사진] 이향란
나있는데서 滿映撮影所에 가려면 넓은 舖道가 쭉 길에 빠저서 그길에 馬車를 달리는 맛이란 참 비길데없이 좋았습니다.
내가 滿映과 因緣을 맺게된것은 滿映 主催로 少女歌劇團비슷한것을 꾸려가지고 北京서 公演하게되든 때부터입니다. 新京서 이것이 퍽 人氣가 좋아서 오랫동안 公演을 하다가 지 좋여름에 드러서는 내게 그 歌劇團을 引率하고 北支第一線으로 皇軍慰問을 떠나라고 하는것이 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름철을 滿映에서 派遣한 形式으로하여 北支各戰線에 도라다니며 朝鮮노래와 舞踊을 한일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의노래와 춤이 그다지 변변한것은 못되였으나皇軍은 매우 感激을했든 모양으로 우리가 新京 도라온다음 北支各戰線皇軍으로부터 내게 感謝狀을보낸다 혹은 滿映에 다시 그런機會를 만드러주기를 바란다는등 어쨋든 우리一行이 도라온後 많은 편지가 오게되고보니 滿映으로서도 意外의大成功을 보게되였음에 滿足하였든지 나를 매우 所重히 해주는것같었습니다.
사람이란 自己를 좋다는사람을 싫어못한法인지 所重히 알어주는 사람이있는까닭에 나는 달이 밝거나 또는 마음이 되숭숭하면 馬車를 달려 滿映撮影所로 가군했습니다. (캇트는 李香蘭)
撮影所 바루 後側엔 寄宿舍가있었습니다. 그寄舍 뜰 앞에는 나무들이있어서 여름은 숲이 茂盛해서 좋고 가을엔 그 닢들이죄다 떠러저서 쓸쓸한것이 좋았습니다. 寄宿舍에 있는 俳優들은 勿論 故鄕과 父母를 떠러저와있는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나와같이 故鄕을 그리는 마음이 생기게되는때가 많은모양이였습니다. 그들과 나는 종종 그넓은 마당 나무아래서 긴 이야기에 時間가는줄 모르는일이 있었습니다.
李香蘭이와 알기도 바로 그때부터입니다. 朝鮮엔 아직 그이름이 알려안젔으나 滿洲에선 혼자人氣를 차지하고있는 李明이하고도 꽤 友意가 깊었습니다. 똑바로 말하면 香蘭인 李明에게 比해서 떠러지는 人物입니다. 日本말을 잘하고 또 外交가 態한탓으로 世上에 널리 알려젔지만, 얼굴에 죽은깨가 많고 빈약하고 살결이 매우 거츠러서 갓가히對하면 참 염증을 느낄만하게 생긴 얼굴이였습니다. 스크린엔 대단히 훌륭히 나오게되는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였습니다.
그러나 퍽 怜悧하고 총명한點이 滿洲에있는 모―든 女俳優를능가하기때문에 어디로가나 自己自身을 잘 조종할줄 알고 保護할줄 아렀습니다. 말이 나왓으니말이지만, 滿洲에있는 女俳優들은 퍽 無識했습니다. 처음보면 어떻게 아름다운지 아주 황홀할지경인데 단 十分도 이야기못해서 권태증이 생기고 염증이 생기는것은 그들의 敎養이 不足한탓이 아니라 할수 없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더욱히 俳優生活하는사람들에게 있어선 무었보다도 敎養이必要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굴이 잘난것으로 버티든때는 옛날이아닌가 생각합니다. 李春蘭이가 現在 滿洲와 朝鮮과 內地에까지 最高의人氣를 占領하고있는것은 香蘭이가 滿洲女俳優中에서 가장 많이아는까닭이아닌가 생각합니다. 얼골은 다른俳優에게 떠러지지만 香蘭이와 마조안저 이야기 하면 다른俳優들과 이야기할때처럼 不安을 안느낄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하는中에 情다움을 느끼게 되였습니다. 이것이 아마 魅力이라는것일겜니다. 훤히 잘난사람들과는 十分도 못되서 권태를 느끼고 염증을 느꼈으나 香蘭이와는 친하면 친해갈사록 情을 느끼는사이가 되였습니다. 그는 아직도 작구 커가려고 노력을했습니다. 音樂도 배우고 英語도 배우고 文學書籍도만이 읽는 모양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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