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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보낸 최승희 편지—뉴욕에서 고국 자매에게—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미국에서 보낸 최승희 편지—뉴욕에서 고국 자매에게— 米國에서보낸崔承喜便紙—紐育에서故國姊妹에게—
종    류 편지 便紙
필    자 +++ +++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40-05 昭和十五年五月
면    수 156 (156)
기사
[사진] 최승희 공연 포스터
巴里서大戰를겪고
昨年正月, 뉴―욕에서 巴里에 到着하고본즉 歐洲政局의 不安의 餘波를 받어서 歐洲의 全콘사―트界는 平常時 約半分以下의公演總數밖에 안되었으나 그렇지만 中山都市는 除外하고 巴里와같은 中心地만은 如前히 相當한 活氣를 띠고있기때문에 名國公演을無事히 마치게 되었고 이윽고 危機가 切迫해온 八月中旬께도 巴里사람들과같이 우리들도 戰爭이 이러나지않으리라 생각하고 海岸地公演을하고 凱旋門附近의 내 스타지오에서 가을의 레파트리를 꾸미고있었습니다. 巴里사람이 누구나 죄다 오―래 不安한 雰圍氣에 익숙해왔던까닭인지 샨제리제市든지 또는 크랜드․부르바―드나 몬파르나스가 죄다 例前대로 繁昌했고 海岸名勝地도 戰爭은 잊은듯 相當히 번화했습니다. 다만 新聞뉴―쓰와 또 적은映畵舘앞에 붙은 라디오뉴―쓰때문에 얼마큼 緊張한듯했습니다.
八月末에 이르러선 정말 싸움이 버러지려는듯, 大使舘에서도 避難하라고 했으나 나는 곧 巴里를 떠나고싶은 마음이 생기지않아서 그대로 있었는데 이윽고 巴里의밤이 아주 暗黑世界가 되어 연거퍼 動員會이 내린다 各아파―트에선 짐을 옮긴다 야단법석임으로 終前대로 스타지오에서 춤공부를 하고있으면서도 不安해서 견딜수없었습니다. 急히 코스침과 舞臺의必要品만 먼저 바노城女主人한태까지 옮기게되었습니다.
城엔 每日같이 避難해오는 二十名가까히 되는 佛蘭西婦人들과 短語밖에 모르는 佛蘭西말로 겨우 意思를 通하면서 날마다 라디오에만 귀를 기우리며 있었읍니다마는 마음속으로는 戰爭이 올것같지않게도 생각되었습니다.이것은 九月中旬께부터 바르칸各國을 스타―트하여 가을의 各國巡演契約에 未練이 있었든까닭인지 모르나 어째든 佛蘭西를 떠나는것은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저녁床을 받고 얼마 안되어서 입니다. 라디오에서 정말 戰爭開始의 宣言을傳하고 「마르세유」의 노래가 들리자 기착을 하고 섰든 佛蘭西婦人들이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가운데서 나는 혼자 感慨無量했습니다. 戰爭이 시작된以上 나는 어떻게하지않으면 안됨으로 大使舘과의打合, 되는 마네―저와의 뒤始末때문에 바노城을 每日 아침 일즉나와서 밤늦게야 바노城에 도라오군 했는데 어쨋든 交通機關이 停頓되어 있음으로 웬만침 運이 좋은날이면 택씨를 탈수가없어서 友人의車를 빌려서 탔습니다. 그렇게 못하는날엔 텅비인 巴里스타지오에 도라가서 싸이렌에 不安을 느끼며, 한밤을 지내는일이 있었습니다.
어느날밤 늦어서의 일입니다. 城에 가지않으면 안될일이 생겨서 겨우 自動車를 얻어타고 바노城으로 가는데 한四十된 運轉手와 여러가지 戰爭이야기를 하다가, 당신은 웨 戰爭에 나가지않느냐고 한즉 事實은 來日 아침에 出征하는데 四人의家族때문에 밤늦게까지 일하는것이라고하면서 別로 걱정하는 기색도없이 웃어가며 이야기 하는것이었습니다. 마는 나는 來日 出征할사람이면 하루밤이나마 家族들과 徐徐히 離別의晩餐이래도 해야할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돌면서 戰爭의暗澹함을 느꼈습니다. 車에서내리면서 메모리로서 내舞踊판푸렡을 주니까, 戰爭이 끝나고 살어온다면 반드시 내舞踊會에 오겠노라고했습니다. 언제던 다시한번 巴里公演을 하게된다면 꼭 그사람을 만나보리라고 마음에 생각하고있습니다.
두번째로渡米하여서
로―마까지 直行하는 汽車가 없었으려니와 몸이 너무 疲勞함으로 「마르세유」에 下車하여 總領事舘에 인사를 간즉 伊太利도 언제 叅戰할지 모르고 또 그우에 伊太利에서의 在留民을 태운 箱根丸이 來日「마르세유」에 入營한다는말을 듣고 또 마음이 뒤숭숭해서 그야말로 목숨이 아까웠든지 구지 보르드―에서 伊太利에 가려고 「마르세유」까지 와서 伊太利行의 勇氣를 잃고 가을의 歐洲公演이란건 全然 버리고 箱根丸에 올랐습니다.
배가 「마르세유」에서 英國에 이르러선 印度洋經由의 코-스를 變更하여 뉴-욕經由가 되었음으로 이왕 뉴-욕에 가는以上 數個月 뉴-욕에 있다가 歸國하려했으나 아메리카入國의 비사를 갖지못했고 또 아메리카․마네-져로부터 昨春부터 公演申請을받었으나 나는 今春까진 歐洲公演의 豫定이였음으로 今秋로 延期해온關係上 公演契約도없이 戰爭때문에 밀려온것을 果然 公演許可를 해줄런지 疑問임으로 그대로 뉴-욕에서 五日間 놀고 歸國하려고 파나마로 向했읍니다. 그랬는데 파나마에가는 道中 뉴-욕 마네-져로부터 公演이可能할것같다는 通知가와서 파나마에서 큐-바․푸로리다를 지나서 뉴-욕에 왔읍니다. 파나마에서 一年에한번있다는 鬪牛를보고 큐-바에서 룸바를보고 푸로리다의아름다운 海岸을 본것이 무엇보다 좋은記憶입니다.
큐-바는 情熱的 룸바이發源地임으로 一週間쯤 하바나에있으면서 本格的룸바를 보았는데 아메리카 其他에서 보든것하고는 얼마간 달른 粗朴한 보다도 情慾的인것을느꼈읍니다. 이러한 舞踊材料가 나이트․캬바레-의求景꺼리로서만 끝인다는것은 아까운일이라 생각했읍니다.
벌서 巴里를 떠나 五個月가까히 되었읍니다. 매우 安定된 巴里 雰圍氣와 그多彩한 藝術家를 낳은 藝術의傳統은 어떻게 되었을지? 歐洲各地에서 내가 만난 많은 藝術家들은 지금 어디 있을 것인지 이 크다란 때(時)의 흐름앞에 그藝術의殿堂은 파묻첬는지도 모르겠읍니다.
舞踊祭를보고
最近 뉴-욕 콘싸-트界는 많은 音樂家 舞踊家들이 相當히 盛大하게하고있읍니다 巴里, 론던, 뉴-욕의 콘싸-트界는 서로 交流되어있었으나 이번戰爭때문에 巴里론던이 中止狀態에있는以上 이뉴-욕이 오직 唯一의 콘싸-트藝術中心的國際市場이 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뉴-욕의 콘싸-트界의 盛大한것은 아메리카自身이 가진 콘싸-트藝術의盛大를 意味하는것이아니고 오히려 歐洲及海外에 藝術家의一時的借用에 지나지않고 다시말하면 海外의콘싸-트界의 「出張所」로서의 盛大한것이라고할것입니다 어쨋든 藝術的傳統이 아직 어리고 그우에 精神的인것보다 物質的追求에만 憤忙했든 아메리카요, 쨔즈音樂과 탶땐쓰의氾濫하는 場所인까닭에 콘싸-트 藝術을 길러내기에 必要한觀客層이라할만한것이 어느特殊한層을 除하고선 一般으로 鑑賞力이 무척 低級하고 批評家까지도 全혀 觀客層에 盲從하게되는 폐단이있음으로 海外로부터 優秀한 藝術家를 대려오드래도 그것을 批評的으로 攝取하며 거기서 아메리카自身의것을 生産식힐힘이 없지않은가고 생각합니다.
하나 아메리카舞踊界를 보드래도 最近엔 지금까지의 支配的地位를 示하고있는 海外로부터의 舞踊家와競爭하여 아메리카自身의 舞踊家를 길러낼려고하는傾向이 强해오는것같습니다.
最近 뉴-욕에서 舞踊公演을하고있는中 「바레-르쓰」클트․요-쓰의 「요-스바레-」알헨테이니-터의 「스파닛쥬․안산불」 쟈바의舞踊家의 테피쟈의그르-브, 마느에라․데르리오와 아메리카에서 난 마르타․그라햄을 先頭로해서 드로시이․핸푸레이․한야․호룸․챨-쓰․와이드만․마ㄹ가리-타․마라키․뎃드․쬰․센트․데니쓰等 거기에 最近에組織된 포킨․보름․앤톤․드-린等을 中心으로한 「바레-․테아터-」와 또 「바레-캬라반」等이 主要한것일것입니다.
나는 뉴-욕에와서 十二月二十八日 센트․제-ㅁ쓰劇場에서 歐洲에서 도라와서의最初의 「뉴-욕」第四回채 舞踊發表會를 盛況裡에 마치고 去크리스마스씨-즌에 一週間가량 「말타․그라함」及 그그릎과 「바케-카라반」 쏠로․딴서-로선 마르가리-터․마라키」와 나와 四人의舞踊家가 叅加하여 「舞踊祭」를 主催하고 各自따로 舞踊發表會를 했는데 나는 第二夜에했읍니다. 獨逸에서 크로이쓰베르그도 叅加하게되어 바루내 公演하기前夜에할豫定이였으나 英國의 부로카-트때문에 못오고 말었읍니다.
나는 歐洲에서 發表한 레파토리를 中心하여 十回의푸로그람으로했는데 매우 好評을 받었읍니다. 이「舞踊祭」는 一九三九年 最後를 裝飾하는 興味있는모임으로 뉴-욕舞踊愛好者에게 一種 舞踊的 데몬스트레온이요 젊은 아메리카舞踊界에 많은 反響과 剌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後 뉴-욕에선 二月十七日 第五回公演을 아카데미劇場에서 콜럼비아大學主催로 舞踊시리-즈의 一夜를 가지게되었읍니다. 今年 콜럼비아大學舞踊시리-즈는 全部 四回의舞踊公演을 作定하고 第一夜가 스페인舞踊의 알헨테이니―터 第二夜도 亦是스페인舞踊의마르가리-터․마라키 第三夜가 내公演 第四夜가 바레-․딴서-의 아구나데밀이였읍니다. 이 아카데미劇場에서의 公演後 二月十二日 시카코에있는 싯픽劇場에서의 舞踊公演을 떠나게되었읍니다. 여기에 舞踊씨-즌이 四月에 끝이게되므로 될수있는대로 얼는 아메리카公演을 마치고 하로바삐 歸國하려고합니다.
海外에와서 벌서 二年을 지냈읍니다. 멀지않어서 여러분의 얼굴을 對할 것을 즐거움으로 알고있습니다.
(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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