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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가려는 왕수복 가희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이태리 가려는 왕수복 가희 伊太利가려는 王壽福歌姬
종    류 대담 對談
필    자 +++ +++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9-07 昭和十四年七月
면    수 118 (118)
기사
삼월삼진날도 갓가워 대동강까練光亭에 느러진 수양버들에도 연두색 푸른닢이 달니기시작한다. 그리보니 그런가 대동강물빛도더맑고 더붉엊지는어느날………………

평양 新昌里라면 바로 妓生學校있는 동리라 시름없이 나붓기는 강가 버들가지에 夕陽遊客의 발자곡이 저절노 가비워 짐을 늣기면서 나는 그 신창리의 아담한 골목을 도라 곱게 단청칠한 문깐에섰다. 여기가 한때는 레코―드게에 그연연한 노래로서장안 士女를울려 王者의位에 君臨하엿고 지금은 동경에드러가 歌謠修業에 一心精進하고 있는 미쓰 王壽福氏의 집이다. 어머님 소상으로 일년만에 나온氏를 나는그 房에서 마지할수있었다.
房안에는 等身大의 體鏡이 노였고 書架우엔 伊太利의原書몇卷과「風と共に去りぬ」의 小說等멫冊이있어 이女主人公의 敎養의놉흠를 보이고있섯다.

讀書와 그의思想의變化

나는 驚異의 눈으로 그의 裕福스럽게 생긴얼골을 처다보며 이 색시의 머리를 打診키로 했다.
「이 風と共に去りぬ를 보서요」
「네 첫卷을 이미 東京서 보았고 그下卷을 이번 가지고 나와서 틈틈이 보고잇서요」
「米國 讀書社會에서는 크게 歡迎받었다하나 이것이 이宅 이書架에 까지 실닐줄은 참으로 놀납고도깁분 일인데요」
「웨요 우리는 보아서 안되나요 호호호 그아메리까의 南北戰爭에取材한것이 퍽으나 마음을끄러요 文體도 斬新하고 描寫도 조쿠요」
「또 무얼 읽었어요?」
「규―리夫人傳」
英米에서 五十萬部가팔였고 十七個國語로 번역되었고 東京서도 벌서 二十版인가 三十版째인가 나온다는 이有名한 作品을 實은 나는아직 보지못하였다. 그런데 미쓰王은 벌서 通讀하였다한다 붓그러운일이다.
「그러케 조흔 作品이든가요」
하는 물음에 그는 고개를 살네살네 흔들면서
「小說이아녀요 小說이라기보다, 한偉大한女性의 傳記얘요 그런데 小說以上으로 사람의 마음을흔들어요 읽는사람을 感激케해요 作者도 有名한 小說家가 쓴것이 아니라 쿠―리夫人의 따님인「에―브」라는 女子가 썼 서요 그저 眞實하게 점잔케썼는데」
「內容은?」
「오늘날 科學文明에큰革命을 이르킨 저라디움이 있지않어요 그라디움을 發見하기까지의 쿠―리夫人의 눈물겨운 努力를 그린것이야요 쿠―리夫人은 가난한집에 태어났대요 그래서 시골 구석에서 家庭敎師로있다가 巴里에나와 苦學生이되었다가 天才物理學者와結婚하여 온갓 고생끗헤 라지움原素를 發見하지요 그러다가 男便은죽고 저는 戰爭이터지자 從軍看護婦로 도라다니고이努力속에서이苦難속에서재天分을 完成하는 그거룩한 女性의 記錄인데여기에서 어더지는것이 참으로만터군요」
「그리고는 또 다른 讀書는」
「지이드의 「좁은門」그리고는 릿날것이나 터스터 엡스키―것을 좀 읽어요 「罪와罰」같은것도 그러나 읽기는하지만 무에 아러야지요 호호호!」
「그러면 朝鮮것은?」
「春園先生의「愛愁의彼岸」을 昨年東京갈때에 鮮于一扇에게서 빌어가지고 갔다가 最近에다보앗는데 요지간「사랑」을 보고십흔 생각이나요」

伊太利를그리워하며

「노래는 많이 精進되였어요」
「藝術에는 더구나 音樂에는 天分이 있어야하는데 제가무에才操가 있어야지요 그러나 이태동안 發聲法이며 많이 배웠어요」
「正式으로 音樂學校를 다니서요」
「처음에는 다니다가 지금은有名한 女敎師의 個人敎授를받고있어요 저선생님도 아실걸요 메리트라라구요 蔡善葉氏도 이분門下에서 배운이지요 內地人女子인데 伊太利의 有名한詩人 메리라토氏에게 시집가서 伊太利에 오래가있다가 男便을死別하고 도라와서 上野音樂學校서 敎鞭을잡은분인데 藤原義江이나 三浦環氏보다 그敎授法이 조타고 全國에서 치는이야요 그리고 퍽으나 人情味가있는 中年夫人이여요 이번에도 自己가關西地方으로 旅行할터이니 이달(四月)스무날까지만 천천히故鄕서 놀다가 도라오래요」
「그이한테서 배울것을 다배워가지고는? 조선에 나오겠어요」
「元來 처음에 포리돌―과 因緣을 끈고 東京뛰여드러간것은 한十年 工夫하려 決心했든탓이지요 그런데 인제겨우 三年도못되었으니 벌서 나오겠어요 좀더工夫하지요」
「伊太利로?」
「늘 꿈으론 憧憬하고있어요 메리라도先生도 한번 꼭가라고 그래요 그러나 學費를 누가줌니까 伊太利에 가있자면 爲替關係로 한달에 五六百圓은 든대요 生活費에 그러케 많이 드는것이아니라 그곳 音樂敎授에게서 個人敎授를 받어야한다는데 한시간에 二十圓씩이래요 一週日에 세時間은 받어야할터이니 授業料만 벌서 얼마임니까 가고 싶은생각이야 불붓듯 이러나지만 學資가 망연하담니다그려」
「日前大版朝日記事에보니까 崔承喜氏가 舞踊을 通하여 조선藝術을 世界에빗내게하드시 壽福氏도 音樂을通하여 그중에도 朝鮮獨特의 民謠를通하여 조선예술을크게 빗내고 십다하섯는데」
「녜 그러케 생각하여요 제가崔承喜氏모양으로 天分만 있다면 그러케 하고십허요 안되더래도 그러케되려고 정성만은 다하려해요 조선民謠가 좀 좃습니까 진실로 예전에는 멋도모르고 남하는 숭내로 한곡조 두곡조불너왔지만 지금에 音樂이무었인지 發聲法이 엇던것인지 한두가지 아러가면서 도리켜생각하니 진실로 조선民謠는 優秀한 로켈칼라를 가진偉大한 藝術品 이에요 그것을 인제야 저는 發見했서요 다만 이것을 在來것대로 그양두어야 소용없지요 이것을 洋樂調로 編曲도 고처하고 西洋音樂의 發聲法으로 불너야 世界的레벨에오를 한獨特한音樂이될것으로 아러요 그러기에 民謠를살니자면 뛰여난編曲者와 그리고 새發聲法으로 부르는 歌人이 있어야하겠어요」
「드른즉 昨年가을 東京軍人會舘에서壽福氏가 오래간만에 沈黙을깨트리고 노래를불너 絶讚을 받었다더니 그때 亦朝鮮民謠를 불느섰든가요」
「녜 지금말슴한양으로 조선民謠를 洋樂發聲法에 쪼차 첫試驗으로 불너봣더니 多幸히 歡迎을받었어요 내가 부른노래는 伊太利노래몃가지와 그리고 아조 녯날調인「아리랑」이었지요」
「가령 洋樂調로 編曲과唱法을한다면 이「아리랑」以外엔 얻은 民謠를 具體的으로 생각하여보았어요」
「三南서부르는 農樂의 一種인 저 農夫歌의 그「얼널너상사뒤」하는 그멜로디라든지 梁山道의 後念이란다든지 모도다 어느나라 民謠에서도 찻기어려운 부드러움과 조선멋이 드러있지 안슴니까」
그러면서 미쓰王은 고은목청을 고요히노아 몃가지의 멜로디를들너준다 果然 놀납게도 아름답다 이것이면 녯노래라고 돌보지안튼 新體 民衆에게도 絶大한 好評을 받을것같다.
「民謠를 살리는것이 그民衆의傳統的音樂을 살니는 첫길인줄아러요 메토라리 先生도 늘 그런말슴을하여요 제 鄕土에서 나허진 노래를가지고 世界的聲樂家가되라고요 아모리 伊太利말로 잘부른대야 伊太利사람이야 따를길 있겠느냐고요 그뿐더러 제鄕土것이아니면 정말의 生命의音樂」이 생길수없다고는 저는이 말슴이 모도다올타고 믿어요」
「조흔말슴이군요 아모조록 成功하서요 조선民謠을 세계的으로 살녀노코 나오서요」
「감사합니다 저는東京서도별로交際도않고 또 演奏會같은데 나와달나고 여러번 請을받지만은 모도다 避하고 오직 이길에自信이 서질때까지 一路精進하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情熱的인눈에서는 藝術家群에게서만 發見되는 예智와 聰明과 興奮의빗이빗나고있었다 밤열시 이러케 늣도록까지나는 孃의 이약이에 尊敬의 머리를 가지고 듯다가 나왔다 이뒷날 半島樂壇에놉흔 새사람 한분을얻은것이 甚히滿足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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