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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스튜디오 영화의 평화스러운 마을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의정부 스튜디오 영화의 평화스러운 마을 議政府스타듸오 映畵의平和스러운마을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일기자 一記者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9-04 昭和十四年四月
면    수 164 (164)
기사
[사진] 의정부 스튜디오
[사진] 音樂室錄音室
春園의「無情」보려
映畵藝術의 産業化를 目標로하야 有史以來의 手工業的 그方法을 깨치고 本格的인 映畵의 企業會社 五十萬餘의 朝鮮映畵株式會社가 創立되어 世間에 注視의巨彈을덙 기는 벌서 再昨年九月일이엇다.
그동안 朝映은 우리文壇의 巨星春園 李光洙氏의 「無情」을 映畵化하면서 서울近郊議政府의 西域에 朝鮮에선 첫번인것이 勿論이지만 日本內地에 比等하여도 決코損色이없다고하는 말하자면 朝鮮의 하리웃드를 創設中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그計劃을 公表한지 一年 朝映의議政府撮影所는 드듸어 一般팬의 待望을 한몸에안고 落成되었다.

白雲속을하이킹하며
記者는 이렇게새로 建設된 그 스타듸오를 參觀하야 讀者여러분에게 報告하려고 미리 朝映京城本社宣傳課에 諒解를求하여 두었다가 大寒을 그대로 물니친二十三日 正午 朔風을안고 東京城驛에서 京元線列車를 잡어탓다.
列車는 四十分만에 議政府驛에 머물너선다. 이곳에서 朝映스타듸오는 西方二粁쯤되는 山間에있었다.
거기까지는 朝映에서도 將次現在로케-숀에 使用하고있는 大型뻐쓰를 一日數次式定時로 運轉할豫算이라고하나 아직까지는 개솔링 統制策으로 因하야 當分間은 馬車라도 두어본다는것이었다.
그러므로 記者는 驛前에서 K會社의 택씨라도 굴닐가하다가 일껏參觀의 面目을띈 行次라 그리멀지도 않은路程인상싶어 하이킹 셈잡고-徒步로 나섯다.
沿路엔 갓내린 白雪이田園의氣分을 말없이풍겨주었고 왼便쪽엔 갓세운 電熱柱가 아웅소리를내며 羅列하여섰다.
다시보매 이 電熱柱는 그스타듸오까지 導入된 朝映撮影所專用電熱柱로 那綜에들은 말이지만 百十五本의電柱로 그施設費用이 每本에 百餘圓이라하니 놀내지않을수 없는 일이다. (眞寫은音樂室錄音室)

文藝峰等大스타-맛나다

視野雪景의 風色을 滿喫하면서 牛步로 걸은걸음이건만 驛前을떠난지 三十分만에 山瀑이 소리업시 떨어지는 淸渓의谷間에 宮殿같은 三棟의白堊舘이 나타난다.
實로 想像以外로 그建築이 美術에가차운것 그리고 雄壯한데놀내지 않을수없었다.
眞實로 映畵를爲하야 努力하는 여러藝術家들에겐 비로소 새境地가 열엿나싶으리만침 無限히 부러웠다.
新年祭를 지냇는가 正門軒燈우엔 締繩이 아직남었다. 그門을들어서기 바쁘게 左便 「NO I」이라고 큼직하게쓴 집속에서 굳을노는 깡멩이치듯이 요란한 朝鮮古樂소리 들여나온다.
아마무슨場面의 錄音이라도 있는모양 事務室에 名刺을내었드니 미리本社側에서 通知가있었든가揭示板에는 三千里社特派員來所豫定이라고 벌서 씨워저있다.
그 事務室언 白鐵氏安夕影氏等이 무슨 脚本인가 한참 鳩首朗讀中이었고 시방朝鮮天地에 女王처럼君臨하고있는 文藝峰女史가 그가主演한 作品「새出發」의 錄音練習을 할요량인가 脚本을야웅 야웅읽고있었다.
記者는 製作者에案內를 받어마침 「無情」의 錄音中에있다는 아우레코-드室을 特別參觀할수있었다.
그室正門앞에는 「赤燈時는 作業中이니 何人을不拘로 入室拒絶」이라고 森嚴한碑가 달였다.
記者를 案內하는분은 暫時그點燈이꺼지기를 지체하는듯이 머물너섯드니 이윽고 그 門깐위에 달닌불이 꺼지면서 요란한벨소리가 울닌다.
「자 이젠다 되었읍니다」하고 그분이 문을연다.
鐵門과같은 두터운門이 두벌式이다.
마치 무슨 金庫門짝같은 두터이로 아마 한자마금式 이나 할게다.
이 錄音室은 이같이 鐵壁같은 防音裝置로서 外室의소리라고는 파리숨결만큼 한것까지도 않들니도록 되었다는것이다.
이제暫時 그안의모양을 아나운쓰해보자면 內室壁은 그렇게두터운壁인데도 不拘코 조선毛布와 綿布로 두경式의長幕을첫고 방안中央에하-얀 映寫幕이 걸였는데그것이바로 錄音하기爲하야 그림을 빛이는 스크링이라는 것이다.
只今 春園의「無情」 朴基采氏監督으로된다는 그映畵의 錄音中이었다.
主演의 女俳優들과 金一海 그리고 劇硏座에서 應援出演을했다는 金復鎭女史와 姜貞愛女史 李化三君 그리고 主演한 李白水君 等이 숫불을 에워쌋고 休息中이었다.
이때마침 윗層錄音室에서 무슨 相談인가하고 있든 朴監督氏가記者의 앞으로왔다.
「매우 受苦하심니다」
「千萬에요 이렇게 와주서서」
그는 매우상양하게 記者에게人事를하면서 다음房音樂室를 求景시켜주었다.
그房은 또한 約六十餘坪의 홀-로 地下階段까지 百餘名의 코-로스隊와 三四十名의樂士를 收容할수있다고 하는것이다.
시방도 二十餘名의樂士와 三十餘名의코-로 스隊가 움작이고있는터이었는데「無情」中에 나오는 李亨植과 金善馨의 結婚式場面에 들어가는 音樂때문이라는 것이며 樂士들中에는 記者가 平素에낯닉은 바이올닝의 文學準君이랄지安聖敎君等이 섞겨서 매우愉快히進行하고있는 貌樣이었다.
피아노와 올갠等 어느새 이렇게 작만했을가 疑心되리만침 樂器가 제법으로 늘어저있어 果然 이만침되면 한개의 作品으로하야 日本內地로 드나들면서 비싼車費와 技術값을虛費하는 그런缺點을 淸算하고 充分히朝鮮人의 손으로 해나갈수있을것을 이會社가 矯矢로 작만한것을 壯하다할것이었다
이렇게 朴氏의 仔詳한說明을듯고있는동안 찌-하고 요란한벨소리가 나드니 音樂室까지 通한映寫幕위에「靜肅」이란 붉은 燈이 켜진다 朴基菜氏가 奔走히監督이자리로 돌아가면서 「그럼 여기서 잠간求景해주십시오」한다.
市塲에 내놓기前에 그作品을公開하여보게 하여주는 德澤을 記者는 無限히感謝하면서 숨을 죽이고 映寫幕에 注視.

桂月花의自殺塲面

다시「準備」란불이 켜지드니 사진이 빛인다. 아-참 이場面은 義妓桂月花가 自殺하기前 瞬間이었다 나타나는 寫眞에맟워서 俳優들은 한숨도쉬고 말도하고 느끼여울기도하고-또-音樂室에선 가야금의 伴奏를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二三分間 방안엔 다시 天井燈이켜지고 「OK」란붉은 燈과한가지로 찍-찍-하고 두번소리친다.

驚嘆할塲內設備

記者는 錄音室을나와서 마짐便 「N·O·I」이라고 씨워진 토-키-스테-지에 案內를 받었다. 이 스테-지는 建坪百四十餘坪으로 日本內地의 東寶會社나 松竹會社스테-지와 꼭같은 設計와坪數로서 朝鮮이第一로 자랑하는 建物이라는것이다.
츄러크 두臺는넉넉히 드나들번한 正門이左右로 열니자 무슨公設市塲같이 넓은通室! 이었다. 電氣技師에게 特히請하야 스휫치 두세개를 눌느매 그큰室內는 沈淸이찾어간 龍宮모양으로 四方에서 엉한이벙벙스러운 電氣가 一際히켜젔다.
들으매 이방에만 十二萬燭光이 켜진다는것으로 어떠한 夜更일지라도 대낮과같은 場面을 백일수있다는것이다.
한便에는 어떤셋드의 모양과時價萬餘圓이나 간다는 撮影機가결여있고 이室內에서 移動할 때 使用되는 移動車가 두臺式놓여있었다
이만한設備를 못갖어 過去二十餘年 朝鮮映畵人들은 얼마나울분한 努力을 한거심인가
이제 充分한 이 設備미테 强列한活動이 반듯이있을 것이다

十萬圓든자랑할殿堂

다시 스테-지를 나와 이撮影所中央에 方今工事에있는 雄壯스런 建物이있는데 이것은 二層洋舘으로 化學工塲이 될것이라는데 現像 洗燥 乾燥 普通寫眞室等이 되리라는것으로 不日 陽春을 期待려 完成되리라고 한다.
여기까지 案內를받은 記者는撮影所長室에서 吳榮錫所長을 맞나 이제부터는 變電室과 映寫室 錄音모니터-室等을낫낫이 求景하고 若干距離가진 所員合宿所로내려가면서
記 「이 스타듸오 總經費는얼 마나 들었습니까?」
吳 「約 十萬圓들었읍니다 그것도 物材가 多少헐할때 起工했으니까 지금같으면은 倍나될겝니다」
記 「지금 여게所員은 멫名이나됩니까」
吳 「事務室까지合처서 三十餘名임니다」
記 「그럼 本社와는 아조分離되게일을 進行하는 것입니까」
吳 「한會社인데 그럴수야 있겠읍니까 만일에對한 組織的處理의 方法上本社와 撮影所를區分하여 놓았을따름임니다」
이렇한 簡單한 인터부를 하면서 뚱뚱한 그분의뒤를 따라서 合宿所까지 當到하고보니 男軍女軍으로 나뉘여서 擲柶大會를 하는中이었다.
어느샌가 文藝峰 新進의方啓淳 그리고 姜貞愛, 金福鎭, 等諸孃이 몰여와서 굉장한陳을 첬다.
이勝負는 年初부터 의持久戰으로 負便이면은 勝便에對하야 모조리절을하고 그위에「소리」한節式불 너받친다고하는데 記者도興味있게 보고앉았다가 마침女軍이 大慘敗로 賠償절과 소리를내는것을 同情깊이 보았다.
한참만에 食事가 들어오 데이 밥은 撮影所안에 食堂이 設置되어 그곳에서 날너오는 것이라고한다
참 어데로 보든지 매우 平和스러운 藝術의동산이라는 感銘이 깊으다.
더욱히 吳所長은 今年의 抱負를 말슴하시는데 年六本製作의 强化와 將次이地帶에 朝映文化人의 村落을 建設코저 누구든지 建築費만갖고오면 家屋基地는 언제든지 無償으로 貸付하겠다고 하는것인바 山좋고 물맑고 藝術있는이地域에 아담한 別莊을 갖일 분없는가?
그새 벌서 黃昏이 이山間을헤염처든다 記者는 朝鮮에도 이제 한개의 藝術境地가 힘세게 開拓되어가고 있는것을 모름직이 기뻐하며뒷날 이고장에 참다운 우리 文化再建의 神助가 있기를 빌며 하직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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