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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추 수필―미인과 영화―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청추 수필―미인과 영화― 淸秋隨筆―美人과映畵―
종    류 수필 隨筆
필    자 정현웅 鄭玄雄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8-11 昭和十三年十一月
면    수 200 (200)
기사
空冊을사느니 鉛筆을사느니하고 惡童들이 흔이쓰는 稚拙한陰謀를써가지고 아버지에게 잔돈을 搾取해서求景을 단인것이 普通學校三學年때니가 至今까지 十餘年間 映畵를보아온셈이다 이동안 活動寫眞에서 映畵로 토키-로 映畵自體에 여러가지 變遷과 非常한發展을 보아왔으나 또한 이동안 銀幕에 登塲한 多貌多色의 美人도 數없이보왔다 至今 얼른 머리에떠오르는 것만해도 大冒險連續活劇時代의 에라·호-ㄹ·파알·화잇·그레이스·가너-드等과같은 제처놓고라도 메-멜·노-만·아라·나지보마, 리리안킷쉬·포-라·네그리·그로리아 스완송 메리-필빈·루이스·부룩쓰·메-리·아스터·빌마·방키그라라·보우 ECC·EGC 登場한順序는 이것과달을지모르나 如何間이렇게 써놓고보니 그當時 쩌-너리슴이 特別이 떠드러서 귀에남어있는 이름以外에는 모다가 個性的인美貌를 담은 女俳優들이다類型的인 아카데믹한美人은 쉬웁게記憶에서 흐려지나 個性이强烈한容貌는 어느구석에 印象에 남어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러한 俳優를 좋아하느냐하면그러치는않다 좋아하는것과 印象에 남은것과는 問題가 스스로 다르다 내趣味로서는 도로혀 너무 個性이 明瞭한女俳優는 입에맛지 않는다 머-ㄹ리떠러저서 偶像과같이 感嘆은하나 人間的인親近한 感情은 到底히生길수없다 가르보 보다는 메-리필빈이좋고듸드리히 보다는 스티비 듀나가좋고 헵퍼언보다는 실비야 시드니가 좋다.
美貌에標準은 時代에따라 變遷한다.
僅僅 十餘年間 銀幕에나타났다가 사러진 無數한女俳優의 얼골에도 여러가지 變遷이 있었다.
以前에는 傳統的인審美的規律에適合하지않는 얼골은 絶對로美人이라고 認定하지않였다. 따라서美人의基準은 單純하었다. 勿論 個人이 美人을規定하는것에 얼마간 差異가있다는것은 옛이나至今이나 같었겠지만은 이것은 極히 小範圍의消極的인 趣味問題에 屬하는것이고 大局으로는 그標準이 單純하고狹小했다.
即 눈이나 코나 입이나 얼골의輪廓이나 肉體나가 傳統的인 審美的槪念에서 먼것은 美人이라고하지않었다 「미로의-너스」에 自己들을 比較도하고 노-마 샤-러보다 도로 레스델리오, 의허리통이 미로의-너스」에 각갑다고하였다.
따러서 시모-느, 시몽이나 캬사링 헵퍼언이 있어도 아모도 魅力있는女子라고 하지도않었고 美人이라고도 하지않었을것이요 映畵製作者들에게도 이러한 女子를 주서서 내세울만한 勇者는 없었다.
그러나 至今은 달러젔다 不均衡의美 데카당美性格美性的美等 等 여러가지야릇한美가 生겨在來의美的規律을 混亂多雜하게 만드러서 別々 特別製의새로운 美人이出現하게되였다 디드리히의 선잠깬것같은 얼골도 生기고 썩은枯木과같은 헵퍼언 도 나왔고 洋강아지 같은 시모-느 시몽을 가장 魅力있는 現代的인 새로운型態의美人이라 부르고 感嘆해 마지않는다.
시모-느 시몽 으로서는 맛당히 多幸한 時代에 난것을 感謝하여야 하겠고 시모-느 와같은 얼골을 갖은女性은 시모-느에對하야 또는 이러한 새로운 美의發見者에 對하여 感謝하여야 올타
前에도 시모-느와 같은 또는 헵퍼언과같은 女子는 確實이 있었을것이요 이러한女子들은 時代에 容納되지않는 自己의못생긴얼골을 歎息하고 憂鬱하게 그의一生을 맟었을 것어나 時代에 앞서난것이 그들의 幸運이였다.
말크·아레그레監督에게 發見되기以前에 시모-느만하드라도 自己의얼골이 後日 世界의美意識을轉換식힐만한 革命的인美라는것을 알길이없어 엑스트라 틈에끼야서 때때로 存在도아지못할 貧弱한役에出演하며 憂鬱한날을 보내고있든 可憐한 女性에 지내지못했든것이다.
何如間 이러한 새로운形態의美人의出現은 女性에 對한 審美的槪念을 根本的으로 轉換식이고 混亂식었다.
各民族 各國家에는 제各기 特徵을갖은아름다운얼골의標準이 라는것이있어서 (朝鮮에는 불면나를것같고 쥐면 꺼질것같은 細柳美人이다 美人薄命은이래서 된말이다) 그評價는時代에따라 조곰씩 變化하든것이 現代에이르러 科學文明의發達이 時間과空間의距離를 短縮식이는데따라 急速度로混亂해버렀다.
이科學文明中에서도 가장 現代女性(또는男性)들의 容貌의對한美意識을 어지럽게 해논것이 映畵다.
大體現代와같이 社會勢態가 端復雜多해지면 거기에따라 사람의 美的感情도 多端해지고 末稍的으로 된다 이것은 造型美術의歷史가 證明한다.
文藝復興時代의 다 빈치 라든지 미케란제로라든지 렘브란드 라든지 친드렐이라든지 이러한 壯大하고 森嚴한畵家는 現代에는 到底히 있을수가 없고 이들과 現代畵壇의巨峰인 피카소 이든 마티스 이든 루오울이든 드랑과 比較한다면 이것은 한오수케스트라의 한個의 樂器로 밖에 보이지않는다. 이것은 이들이 過去의大家와 本質的으로 적은것이아니라 時代가 이렇다. 時代의潮流가 이러하고 時代의性格이 이러한것이다.
이러한 時代的性格이 女子의 얼골에도및어서 個性이判然하지않은 類型的美人은 漸々 時代에서 魅力을 잃어버리고 至今까지에업든 特異한 末稍的美가 歡迎을 받게되였다. 映畵製作者와企業家들은 어와같은 時代의嗜好를 노리고 怪異한型態의美女를 찾어내갖이고 파-소나리티라는 렛델을 붙어 映畵獨特한誇大宣傳으로 市塲에 내보내면 이것이 곧 새로운型態의美人이되는것이오 가르보型 디드리히型 시오-느型이되여서 現代人의美意識에 새로운 짠르를 加하고 同時에 이것은 紐育에도 巴里에도 伯林에도 서울거리에까지도 國際流行이되는것이다. 그러니까 服裝과 함께 現代의美人을 만드러내는것은 映畵製作者다 以後에도 어떠한 새로운美人이 出現할지모르나 如何間 이러한 怪異한 型態의 美人이나오면 나올수록 美人의 境界線은 擴大한다.
따라서 어떠한 얼골을갖은 女子라도 自己의얼골의 自信을 갖게될것이니 이얼마큼 幸福한時代이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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