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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명우 군상—생각나는 사람․보고 싶은 사람—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사라진 명우 군상—생각나는 사람․보고 싶은 사람— 사라진名優群像—생각나는사람․보고싶은사람—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나웅 羅雄
출처정보 삼천리 三千里
연    도 1938-11 昭和十三年十一月
면    수 147 (147)
기사
영고성쇠와 류전무상함이 인생의상(常)이라하되 영화게—더구나 조선영화인과같이 그변전이 심한곳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영화창시이래 거러온길을더드머볼때 그리멀지않은 행정가운데 얼마나 많은 남녀배우들이 나왔다 사러젔는가, 열매는커녕 피여보지도못하고 시드러버린 불우한사람은 그수를 헤일수없을것이나. 그가운대는 영화란 맘모스에 매혹되여 아모런 사려도없이 나왔다가 타락한사람도 있으리라 그러나 일면에는 진실한 예술적량심과 원대한 포부를안고 나왔다가 자기의 예술적욕망을 채울바이없어 분연히 길을 밧군사람도 있을것이고 닥처오는 뭇괴로움을 이기지못하야 할수없이 물러가때를기다리며 부즈런히 준비를하는사람도 있을것이다 하여간 이사람들이 세인의조소와 비방이란 명예롭지못한 선물을 바더들고 쓰라린상처와 비분한가슴을 안고 사러진것이 사실이다.
자고로 무슨일에나 창시시대에있어 선구자적역활을하는사람은 언제나 세인의 냉소와 뭇괴로움을 이겨나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초창기에 희생이된 그네들에게도선구자란 명예로운 일흠을 부처줄만한 아량이 있어야할줄안다. 이것은 조선의 영화적 현실을 좀넓고 높은 시야에서 바라보랴는 사람은 누구나 그네들에게 리해깊은 동정을 나릴수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나간시대와는 다른의미에서 창시자의 괴로움을안고 지나간영화인이 닥거논지반우에서서 굵다란 획을 것고 뛰여나 광휘있는 예술을 창조하랴는 오늘의 영화인은 지나간날의 영화인의 괴로움을 삺여 그실패의원인을 차짐으로써 오늘의 괴로움을 뜻있는 괴로움으로 잡어올닐수 있으리라교 생각한다. 오늘의 영화인이 이전의 굴레바퀴를 되푸리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러진 영화인의 발자취를 삺여봄이 필요할줄안다.
나는 여기서 사러진영화인의 발자취를 일일히 검토하랴는것은아니다. 내가 첬재그것을 시험할만한감도 못되거니와 그럴만한 아모런 준비도 갓지못하였다 다만 편즙자의 청대로 스크린에서 사러진 영화인가운데서 생각나는사람, 보고싶은사람들의 편모를 머리에 떠오르는대로스켓취해보랴한다.
영화감독으로 생각나는분은 李慶孫⦁故沈薰⦁黃雲 제씨가 있으나 여기서는 남녀배우에만 한하기로하자.
故羅雲奎 벌서 故란冠字를 붙이는가하면 사러볼랴고 일해볼랴고 안타까운가슴을안고 동분서주하든 그의모양이 더한층 새로웁게 사러온다. 그와같이 기구한반생을 거러온 사람도 없을것이다. 그는 이시대가낳은 방랑아요 풍운아이였다. 그는 일생을 통해서 한시라도 안주하고 만족할만한 업적이 없었다. 그리 쓰라린 체험담은 허무적이고체험적인 사렴에 사로잡히게하였다. 그것을 그는 영화예술로 읊으랴하였다. 누구보다도 예술적인 머리보다 정치적인 두뢰를가진 그가 처음 느낀 것은 기형적으로 발전하는조선영화게를 어떻게 조절을해서 사업적으로 지탕해나가게 만들가한것이다. 그리하야 그의작품은 누구보다도 경비를 드리지않었다 뿐만아니라 주위의인간들이 그를 그렇게만들었다 여기에서 예술의 파탄을 낳게하였고 그로하여금 장단없는춤을 추게하였다. 그때 예술가로서의 그의마음이 얼마나 공허하였겠으며 괴로웠으랴! 그의진의를 모르는 주위인간들은 그를 욕하고 조소하였다. 그러나 그는 잠잠히 거러나갔다. 침묵이 승리를가저온다는 진리를 굿게믿었든까닭이다. 그러나 이외로 영화의진전이 지지한것을 본 그는 감추었든 예술적량심과 욕망을 사업과 마초기에는 너머나머-ㄴ 시일을 요할것과 또 그시일까지 기다리다가는 자기의 예술적감정이 마비되고 질식할것을 깨닷고 분연히 종래의가젔든 흥행사적지위를떠나 일개의 단순한 예술가로서 작품을 제작하랴하였다. 이때는 벌서 身病이 뼈속까지 숨여들었고 의사도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선고를나렸다. 그러나 불타오르는 욕망과 굿건한 의지의힘은「五夢女」를 끗냈으나 사람의몸은 무쇠도아니였고 강철도 아니였다. 그여코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마즈막숨이 다할때까지도 영화예술을 말했다. 그이야말로 영화에서 사렀고 영화로죽었다.
그가 좀더 살수있었고 그에게 좀더넉넉한 일거리를주었드라면 위대한 예술을 창조할수있었을것이고 그와길을같이한 조선영화사의 한페지를 찬연히 물드러노았을것이다.
朱仁奎 남성적인 듬즉한 체구와 억세이고도 부드러운음성과 굿세인 의지의 소유자다 「아리랑」이래 소위 악역으로만 나왔으나 그의연기는 조선뿐만아니라 외국에서도 찻기어려운 따이나먹한선과 특이한 성격을 가츠었다 아즉도 영화배우가 아닐한 꿈에 잠겨있을때 그는 벌서 일개의력인 사회인으로서의 영화인이란것을 깨닷고 개혁의봉화를 들었다. 오늘의 젠네레이쉰이 자기를 살리기위해서는 무엇을할까하는 의욕에불타오르는 그에게는 영화가 만족을 주지못하였다. 고향인 함흥으로나려가 함마까지쥐였다 그러자 불행이 여러해를 령오의 몸이되였다가 근자에 했빛을 다시 대하게되였다니 몸인들 건강하랴! 그들즉한체구가 그대로 남었는지 궁금하다. 다시 스크-린에서 그의 용자를 대할날이 있을지그것은 미지의 장래의일이다.
金靜淑. 조선의 여배우가 아즉도 드무렀을때 고전분투하든분의 하나이다. 스크-린에 나타난 그는 그리 어여뿌지도 않었고 특별한 연기도 없었든것갔다 말하자면평범한것갓다. 그러나 보면볼사록 그평범한가운데는 아지못할 힘을 감초고있다. 깊이 간즉한 열정을 연소시킬때을 기다리는 평범이다. 그의용모에서는 동양적이고 섬섬하고 전아한 선과 애수적정조가 흐른다. 그가 좀더 형상의 창조란점에 진실한 류의가 있었고 또 감독자가 그의성격을 잘리용할수있었드라면 외국의 포라네그리와같은 연기를 발휘했을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즉도 영화를 생각하고있는지! 하여간 괴로웁든 지난날의 영화게를 질머지고 나왔다는 의미에서 경의를 표하고 건재를 빈다.
河小陽. 벌서 八年전 尹逢春씨와 괴로움을 나노흐고 있었을때다. 소위 찬영회사건이 이러나 尹씨와 내가 밤길을 거르며 찬영회의 규탄대책을 의논하고 있었을때그가 尹씨의 신변을 념려하야 밤길을 찾어나왔다. 말을드르니 그날 尹씨와 이분은 조반도 못지었다한다. 尹씨는 그러한 기색을 조곰도 나타내지않고 피로한얼골에 늘 쾌활한 우숨을 지어가며 격려해주었다. 또 河씨도 자기를 있고 尹씨와 우리를 넘려해주는 정경을볼때 나의 눈자위는 더워왔다. 그날밤 헤여질때 외로히 골목길을 도라나가는 그의뒤ㅅ모양이 아즉도 내머리에서 사러지지않는다. 그는 말이적었고 크게웃는것을 못보았다. 언제나 그의입설에는 안온한 미소가떠돌았다. 그미소는 세상의 쓰라림을 다맛본사람만이 가질수있는 어떤 안정된 느낌을준다.
그러나 때는 흘러갓다. 이것도 벌서 옛이야기인가하면 새삼스럽게 가슴이 무거워진다.
咸春霞. 진지한 태도로 나왓다가 영화에 실망을 느끼고 물러간분의 하나다. 출연한영화로는「僧房悲曲」 「노래하는시절」등이있다. 섬섬한 체질과 성그러운 눈동자는 맑고 고요한 사색적기질을 가진시인의 풍격을 약여케한다 조선영화게에 부닥기기에는너머나 신경이 가늘고 날카로웠든가싶다. 영화게를 떠나 신문사로 드러간후 영화를 아주 이저버린듯이 소식이 없드니 최근 소식통에 드르면 지금도 부즈런히 준비를하면서 기회를 기다린다하니 다시스크린-에서 맞날날을 손꼽아기다리기로하자.
金蓮實. 영화게에서 물러간 많은 여배우가운대서 주지와 자존심을 상치지않고 일관한 길을 거러온사람은 이분일것이다. 한때는 그의 애련하고 맑은 자태가 스크린-에 나타날때마다 그인기는 비등하였다. 그때는 누구나 그를 행복된소녀로만 녁였을것이나 그는 결코 행복되지못하였다. 어려서 부모를 여이고 또기동같이믿든 큰오빠마저 세상을 떠난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연약한 두팔로 자기를 개척하고 또 어린동생을 공부시켜지금은 촬영기사로 활약한다고한다.
지금 그는 영화게를 떠나 다른방면에 있으나 그것은 영화도를 닥기위한 생활안정의 준비공작에 불과하다니 스크린-에서 다시 대할날도 멀지않을것갓다.
申一仙. 영화유사이래 처음되는 인기를 한몸에 담었든분이다. 당시에 여배우로서는 누구보다도 청초하고 순진하고 또 예술적재분을 겸비하였었다. 허나 어린그는장래를 신중히 생각할만한 배려가 없었든가싶다. 결혼생활로 드러가 여러해를 괴로움가운데서 지내다가 최근 다시 영화게로 나오게되였을때 이전과 다른이미에서 기대를 갖었었다. 용모와 재질뿐만아니라 인생의 신고미를 맛본 그에게심후미가있는 연기를 기다렸든것이다. 그러자또 방면을 전환하였다. 신고미뿐만아니라 더나아가 인간의 리면상도 살펴볼생각이낫든지 기생생활도 한동안하였다 자신은 어떠한 딱한 사정이 있다하드라도 한족 섭섭한마음을 금할수없다.
全玉. 여배우로서는 드문 특이한 용모와 재질을 가추운분이다. 선명하고 날카로운 륜곽과 신경을 갖었고예술적경험으로도 영화에서 무대로 또 가수로-꾸준한 련마를 닥근분이다. 그의 용모와 재질과 경험에 비초아보아 앞으로 토-키에 나온다면 그로숙하고 심후한맛은마치 외국여배우에 프리깃테헬름이나 아나베라와같은 연기를 볼수있을것갓다 스크린-에서 대한지도 오래였다. 그동안 숨은 연찬이 그만하니 그대로 물러갈것갓지않고 앞으로 기회를 기다리는것같으니 하로밧비나와 힘을나노아주었으면한다.
朱三孫. 본일홈을 大澤이라고한다. 낯서른 조선영화게에 발을 드려논지도 벌서십여년이나된다. 괴로운 영화게에서 아모런 불평도없이 함께 울고 함께우서왔다. 조신음식을먹고 조선옷을입고 조선말을하고 조선글을썼다. 고요하고 아름다운성격은 일반퐨뿐아니라 영화인사이에서도 사랑을 받었다. 그러나 시시각각으로 닥처오는 생활고를 어찌할수없어 □□□□ 물러갓다. 최근까지 □□남쪽어느지방에서 사진업을 한다드니요즈음에는 그소식조차없으니지금은 어떻게나 지내는지 몸이나 건강한지—이분이 앞으로 영화게에 다시나온다면 토-키에 어떻게 출연할수있을가가 문제다. 그러나 나는 이분의 예술적교양과 련마여하로서 출연할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조선영화는그내용의 재료채택으로나 배급망으로나 조선에만 국한할게 아니고 일본내지 만주등지까지도 배경으로하게될것이므로 그렇게될때 이분도 크게 활동할수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생각나는 사람이
(第百四十六頁繼續)
(第百五十二頁에서繼續)
많으나 이만성략하기로한다.
어떤사람은 위대한 예술은괴로움가운데서 비로소 창조된다하였고또 천재적예술가는 시대적부싯돌(煫石)에 스침으로 비로소 그섬광(閃石)을 이르킨다고하였다. 그러면괴로워도 이만저만한 괴로움이아닌 조선영화인은 반드시위대한예술을 내놓았을것인대그렇지못한것은 그괴로움을속물전인 괴로움가운데서 질식되고 마비되였을뿐이고 이것을 순수한 예술고(苦)로 순화시키고 미화시킬만한 예술가적 노력이없었다는것과 또 괴로움을 시대고라는 부싯돌에 스치랴는 광활한안게와노력이 없었다는것을 알수있다. 지나간 영화인의 괴로움과 오늘의 영화인의 괴로움의 질적차이는 여기에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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