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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전의 조선 군악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1000년 전의 조선 군악 千年前의朝鮮軍樂
종    류 논문 論文
필    자 안확 安廓
출처정보 조선(조선문) 朝鮮(朝鮮文)
연    도 1930-01 昭和五年一月
면    수 48 (48)
기사
[악보] 自山譯作 皇風樂 其六 (王의行進曲)

千年前의朝鮮軍樂
安廓

『一』
去番甲午年에 米人 『알넨』 氏의特別한請에依하야 朝鮮의宮中樂人十數人을米國博覽會에出演식힌일이잇다 그것이 當時의評判이되여 朝鮮樂은東洋的古樂의價値가잇다하는稱頌이四面에퍼젓고 最近數年來로는더욱此를硏究하는者가輩出하야 昨年博覽會에도한此를演奏하야 一大人氣를傳하다 그러틋名譽가잇슴에좃차 朝鮮樂의眞狀을査實코자하는 學者가漸々許多해진貌樣이다 그런데吾人이時方이것을 探考하자면 初頭에그曲調를聽取함이緊한바 方今李王職雅樂部에서實奏하는曲調는幾種인지 爲先그品目을採探할것이다보건대同樂部에保存한曲目은 壽齊天之曲이니 萬派停息之曲이니하는名目은數十曲이된다 그러나그는虛文의名稱으로서 由來不分明한것이요 實地에나가서調査해보면 實狀古曲의 品目은十二種밧게안되는바니 그異常한名稱은古曲의眞狀을稀迷케함에不過한것이다 故로今에그虛名을헤치고 曲調其物의元名을探査하여 從來의分類法에依하야區別하면雅樂, 唐樂, 鄕樂三種으로分支되나니

現存朝鮮樂曲
┍ 雅 樂 = 文廟曲‥‥一 種
| 唐 樂 = 鼓吹曲‥‥七 種
┕ 鄕 樂 ┍ 舞蹈曲‥‥二 種
┕ 歌 曲‥‥二 種

雅樂은支那本土의樂인대 世宗이祭樂百四十四曲, 朝會樂三百十二曲合四百五十餘曲을演作 (世宗實錄百三十六卷) 하얏더니 그는到今하야모조리散亡하고 明의制度에屬한文廟祭曲一種만남아잇다 唐樂은支那의俗樂으로서新羅時代로부터數多한品目이잇더니 今에는鼓吹曲七種만잇다 鄕樂은朝鮮本來의樂曲인대 此亦古來로多種이잇더니 只今에는겨우 四種만殘餘한것이다.
旣爲散失한것은已無介論이오 現存한右十二曲에對하야 其性質을考究하면 다各其獨特한價値가잇슬것이다 然이나 其中에品目이多種되는鼓吹曲은 古來로聲勢가大端하든바로서 後世殘亡한中에도 오히려多數로遺存한것이다이 鼓吹曲은何뇨하면 本來兵事에使用하든軍樂이라 故로듯기에매우快活한聲調가여잇서 趣味를부칠만한것이라 故로余가今番에開論코자하는것은 곳軍樂鼓吹曲의始根을詳考함에잇다.

『二』
本來君王은文武大權을總攬하는主體인대 萬一君王이御動御止함에잇서々는 依例히兵式을取하나니 故로君王이移御하고擧動할時는 반듯이軍樂을奏하는法이라 그軍樂의制度는 軍樂을奏하는境遇에隨하야 殿樂과行樂二種으로區分하되 殿樂은御座殿閣의位置에좃차 殿庭殿後二方에排列하고 行樂은城內行進, 野外行進二方의排列로組織하니

軍樂隊의組織
┍ 殿樂 ┍ 殿庭
| ┕ 殿後
┕ 行樂 ┍ 城內
┕ 野外

이作隊의制度는 五禮儀樂學軌範等冊에詳語한바로서 그組織의形式은左와如하다.

殿庭鼓吹
樂師二人 樂工五十人
唐琵琶 피리 唐笛 洞 簫 洞 簫 奚琴
唐琵琶 피리 唐笛 月 琴 鄕琵琶 橫吹
方 響 피리 玄琴 伽倻琴 牙 箏 橫吹
唐琵琶 杖鼓 杖鼓 杖 鼓 杖 鼓 橫吹

唐琵琶 杖鼓 杖鼓 杖 鼓 杖 鼓 橫吹
方 響 피리 玄琴 伽倻琴 大 箏 橫吹
唐琵琶 피리 唐笛 月 琴 鄕琵琶 橫吹
唐琵琶 피리 唐笛 洞 簫 洞 簫 奚琴
殿後鼓吹
樂師一人 樂工十八人
唐琵琶 洞簫 唐笛 杖鼓
피리 橫吹 杖鼓
拍 方 響 피리 橫吹 大鼓
피리 橫吹 杖鼓
唐琵琶 洞簫 唐笛 杖鼓
殿庭樂을作又止할時는 樂師가知委하고 殿後樂을作又止함에는 傳命司謁의通知에依하는規定으로된것이라 行樂은王의動駕를中心으로하야 駕前駕後에排列하니 其組織은左와如하다.

前部軍樂隊
┍ 空手 唐笛 唐笛 唐琵琶 唐琵琶 唐琵琶
| 空手 杖鼓 洞 簫 橫 吹 橫 吹
┞ 空手 杖鼓 杖鼓 洞 簫 피 리 橫 吹
┞ 空手 擔 擔 洞 簫 피 리 피 리
┞ 擔 方響 擔 敎坊鼓
┞ 空手 擔 擔 洞 簫 피 리 피 리
┞ 空手 杖鼓 杖鼓 洞 簫 피 러 橫 吹
| 空手 杖鼓 洞 簫 橫 吹 橫 吹
┕ 空手 唐笛 唐笛 唐琵琶 唐琵琶 唐琵琶

後部의排列은前部順序를反對로行하고 世子宮에는後部樂隊가업다 特히宣傳官의軍令 (鳴金二下에大吹打하여라) 하는發令으로써 奏樂을行하는것이라 此等軍樂에要用하는樂曲이卽鼓吹曲이니 그曲調의品目을大別하면左와如하다.

軍樂鼓吹曲
┍ 與民樂
┞ 步虛子
┞ 洛陽春
┞ 慢
┞ 令
┕ 吹 打

其中吹打一曲은野外行進曲이요 其外五曲은城內又는殿樂에通用하는것이다 此等樂曲의出處는果然 어데잇든것인지 이것을詳考함에는 여러가지史乘에憑하야覈得할지로되 自來音樂의源流에關한文籍이 몹시空疏하고매우稀貴하야 其始根의的確한材料를求하기가至難한일이다 그런데世宗實錄卷百三十八에
國朝鼓吹樂曰受寶籙夢金尺勤天庭受明命皆各主一事未足以形容祖宗功德之盛大締造之艱難世宗因鼓吹樂及鄕樂創爲新樂曰定大業保太平發祥鳳來儀云々.
에依하면 李朝初에이믜鼓吹曲이잇든바 世宗이그것을引用하야 定大業保太平發祥等을制定하섯다하니 時方지 宗廟에祭樂으로用하는定大業保太平曲은 卽世宗이새로歌詞를 制定하야 以前鼓吹曲에用한것이分明한일이다 한 惺翁覆瓿藁卷二十四(許筠文集)에(星湖僿說卷四同)
高麗初樂官倣唐時夾階正樂之音作皇風樂而樂章煩王氏始興
之功德凡國王大朝會行幸必奏之及國初命詞臣製龍飛御天謌
五卷取上七章下三章爲與民樂々因皇風樂腔節而協歌之‥‥
依한즉 與民等이란것도鼓吹樂되는同時에 李朝初의鼓吹曲이란것은全部高麗皇風樂을用한것이分明하다 그皇風樂의淵源을말하면 卽唐의鼓吹曲을그대로引用하되 오직歌詞만變作한것이다 그러나唐의鼓吹曲은一種이안이오 여러가지로서 鹵簿에使用한것인대 高麗史與服志條에보면 高麗時의 鹵簿는
敎 坊 樂 官 一 百 人
安國伎雜伎 八 十 人
高 昌 伎 十 六 人
天 竺 伎 十 八 人
宴 樂 伎 四 十 人
吹 角 軍 二 十 人
吹 螺 軍 二十四人
등이잇는바 隋唐의儀仗과相同한組織이라 고로거긔奏하든 樂曲은 一體唐의鼓吹曲됨이無疑하다 그皇風樂이라改名한 唐의鼓吹曲은 高麗一代를通하야使用되다가 李朝에來及하야 다시歌詞만變改하고 曲調는古物을그대로襲用한것이라 故로今日鼓吹曲七種은 모도高麗皇風樂인同時 其出處는遠히唐의軍樂에서移入된것이라할것이다.

『三』
一層進하야鼓吹曲의本源을拔索하면 唐의軍樂曲이 最初何에서發生한것인가 이것을한번檢討할必要가잇슬것이다 支那의軍樂鼓吹는其源이 매우古昔에屬한것이니 漢劉恕의 外記에
黃帝命岐伯作鼓吹鐃角靈鞞神鉦以揚德建武.
라하고 宋書樂誌에
鼓吹盖短簫鐃歌蔡邕曰軍樂也黃帝岐伯所作以揚德建武勸士諷敵也.
等文句에準據하면 黃帝가蚩尤과戰爭할時에 軍氣를威張키爲하야 鼓吹樂을始作하얏다하는데 其出處는시럽시四千年前之事라하겟다 그러나太古의鼓吹는 엇던音曲의旋律이具備치안코 오직軍威를鼓動키에適當한噪音을發함에不過하엿슬것이다 後漢書禮儀誌에보면 漢明帝時에樂制를四品으로 定하되 三은黃門鼓吹오 四는短簫鐃歌라하니 漢의鼓吹曲에잇서는 二十二曲의歌詞及其音曲이具備하매 自此로는鼓吹曲의規模가 完成한貌樣이다 魏時에는漢曲의十二篇만用하고 晋時에는다시元制二十二曲을復用하야 祖宗의功德을述하고 隋에及하야는其組織이完備할새 亦是漢代名稱을改作하야 自國祖宗의功德을頌歌하며 各其等級에좃차鼓吹樂人의數爻도質定하며其隊制는 棡鼓 · 鐃歌 · 大橫吹 · 小橫吹의 四部로摩練하엿다.
漢 時
朱 鷺
思悲翁
艾如張
上之囘
擁 雜
戰城南
巫山高
上 陵
將進酒
君馬黃
芳 樹
有所思
稚子班
聖人出
上 邪
臨高臺
遠如期
石留行
務 成
元 雲
黃雀行
釣 竿

晉 時
靈之祥
實受命
征遼東
實輔政
時多難
景龍飛
平玉衡
統百揆
因時運
金靈運
天 序
惟庸蜀
於穆皇
春振旅
承運期
夏苗田
秋獼田
順天道
唐 堯
元 雲
伯 益
釣 竿

隋 時
水德謝
出水東
戰韓陵
殄關隴
滅山胡
立武定
戰芒山
禽蕭明
破候景
定汝潁
克淮南
嗣丕基
聖道洽
受魏禪
平瀚海
服江南
刑罰中
遠夷至
嘉瑞臻
成禮樂
唐時의鼓吹部는五部로制하엿는대 一, 鼓吹 二, 羽葆 三, 鐃歌 四, 大橫吹 五, 小橫吹等으로서 總七十五曲을 用하엿다 其後宋元明淸의各代를歷來하야도 軍樂의制는前代의것을襲用하엿다 그런데唐以後의曲調는 其來歷이昭詳치못하나 自來古曲을그대로두고 歌詞曲名만變改한 痕跡에 準憑하야서는 唐以後의調子도別樣變律이엄다 故로李朝時에高麗初의皇風樂을襲用햇다는 前文許筠說에準的하건대 現今에殘餘한鼓吹曲은 적어도千年前의調子를그대로墨守하야傳한것이無疑하다하겟다.

『四』
朝鮮서鼓吹曲을들어보기도 시럽시古代의事로서 高麗以前에이미잇섯스니 後漢書東裔傳에
順帝永和元年扶餘王來朝帝作黃門鼓吹角抵以遣之.
란史實에依하면 距今二千年前扶餘時代부터 支那鼓吹이樂聲을得聞하엿든것이다 三國史記金庾信傳에보면 王이其葬式에際하야 鼓吹樂百人을送賜하섯다하니 新羅時에도이미 軍樂設備가잇든것을斟酌할수잇다 百濟古爾王條에보면 宗廟祭享에鼓吹樂을奏하엿다하니 百濟에서도벌서此樂을使用한것이分明하다 그러나其時代의史蹟이疎略함으로써 其樂曲의由來는알수업고 高麗의皇風樂도亦是其內容의眞狀을알기가어렵다 그러나唐의軍樂을引用햇다는것만은 前文의考證에藉하야알수잇고 李朝初에高麗古樂을襲用한것도 前文의證據로써斟酌할것이다 그런데前文世宗實錄에 宗廟樂의 根底라는 國朝鼓吹樂의 受寶籙, 夢金尺, 覲天庭, 受明命等 四篇의所自出은何뇨? 太祖實錄二年七月條에보면 鄭道傳이宗廟歌曲을製하야 王에奏稟하고祭享에用한일이잇는바 夢金尺 · 受寶籙 · 納氏歌 · 窮獸奔 · 靖東方曲의五篇이잇스니 此를三峰集에對照하면 鄭道傳의作이確實하고 覲天庭 · 受明命의二篇은 太宗實錄二年六月條에보이는바 河崙의作이다.
本來鄭道傳은 麗末에太常博士의職責에잇서 樂器를新造하며 한明에往來하야그音樂을視察하고 音樂整理의事를 擔任한일이잇섯다 李朝革命後에는 慣習都監判事가되야 一般禮制를詳定함에在하니 一般音樂도其手로整理된것이다 故로同實錄四年九月條에 太祖는써하되
宗廟之禮皆卿等所定加賜道傳金飾角帶一腰曰今聞雅樂知卿功不細矣.
라한것을보면 鄭氏의音樂上大功을立한일이完然한事實이다 그런데鄭氏가歌曲五篇을作함에는 國家創建時에안저한일이다 故로何暇에新意匠新樂想을내여 새로作曲할겨를이잇섯스리요 前代整理의任에잇서 熟聞熟知하든것 又는前代樂工이臨時로實奏키容易한것 等을取하엿슬것은 推測키容易한일이다 樂學軌範에잇는受寶籙等의樂譜는 世宗實錄百三十八에잇는바 世宗의改作에屬한것이어니와 其最初의鄭의 作曲은前述함과갓치 이미容易한方法을取하야 高麗皇風樂을襲用한것이完然하니 故로國朝初의鼓吹曲이란것은 許筠의說과갓치高麗의것이라하기可하다.
第三項에列擧한바支那歷代의鼓吹曲은 스々로二品됨을斟酌할수잇스니 이는舊唐書音樂誌에
列于殿庭者爲鼓吹從行鼓吹爲騎吹漢代有黃門鼓吹……漢
有鼓吹短簫鐃歌皆軍中馬上道路所奏通謂之鼓吹.
라함에依하야도可知라 卽古來의鼓吹曲은祖宗의功德을頌歌하야殿庭이나祭享에使用한것이其一種이니 宋史樂誌에도作鼓吹曲以歌祖宗功德이라하엿다.
現今宗廟樂의定大業十一章, 保太平十一章合二十二章의歌詞도 亦是李朝祖宗의功德을讚頌한것이요 與民樂도亦然하다 故로今日傳하여오는宗廟樂, 與民樂二篇의內容은 支那歷代의恒套인第一種의鼓吹樂歌를模倣할것이니 其樂曲에잇서도 許筠의說과갓치 勿論古曲을襲用하엿슬것은不問可知의일이다.
第二種은行樂인바路上에서奏하는것이니 唐書衞儀誌에鼓吹曲五種을列擧하얏는대 其中에小橫吹曲九篇은
漁 陽 雞 子 驚 鼓
三 鳴 合 節 覆 參
步 鼓 南 陽 單 搖
으로서 嚴■에用하는것이오 其中一曲은上馬用이라하다 陳賜樂書橫吹條에는 唐의大橫吹三十四曲을列錄한中에
懽樂樹 空中蓮 賀六渾
三曲은馬上■嚴用이라하엿다 現今樂部에서實奏하는鼓吹曲은 第二項에列擧하엿거니와 其中의一曲은馬上樂으로用하는것이니 卽吹打가그것이다 이吹打曲은 唐의上馬樂에 該當한것인듯하다 其曲名은各異하야 互相係關이업는듯하나 古來樂名이歷代를序하야 變改하는例套에依하면異名됨이그다지異常할것이업다 故로其名稱과其音律이多少變調됨이잇슬지라로 其根底인즉唐의鼓吹曲에本한바 그것을遠히 今日지傳하게된것이다.

『五』
名稱은何如間에實地에就하야 古今樂譜를比較하면 그만 쉽게알것이나 唐의樂譜가而今에는散亡하엿다 故로其眞狀은論하기는至難한일이다 然이나古樂의聲調를말한것에憑하야比較할진대 應倘斟酌이나설것이다 古今樂錄과陳賜樂書橫吹條와晋書樂誌에보면
張騫入西城傳其法於長安唯得摩阿兜勒一曲李延年因之更造
新聲二十八解乘輿以爲武樂後漢以給邊將萬人將軍得之.
라하엿다 卽鼓吹曲은漢時에張博望이西域에서始入하얏는대 其後李延年이餘存曲摩阿兜勒一篇을演하야二十八曲을作한것이다하엿다 그런즉鼓吹曲은西域卽中亞細亞等地의 佛樂의 調子인가하는疑心이잇다 그러나오직西域音만오로된것이안이니 唐書禮樂誌에
鼓吹軍中樂馬上奏之……後魏樂府初有北歌亦曰眞人歌都
代時命宮人朝夕歌之周隋始與西凉樂雜奏至唐存者五十三章….
이라함에依하면 北音과西音이混同됨을알수잇고 遼史樂誌에도亦是
漢唐之盛文事多西音是爲大樂散樂武事皆北音是爲鼓吹橫吹樂.
西音과北音의混成됨을說罷하엿다.
此等文證에依하건대鼓吹曲이란것은古代의多少變遷이잇든 것이니 其音律의性質은西域律格으로된것이요(佛敎六十四, 五號參照) 其音調는北方卽鮮卑北狄等의聲調를帶한것이다.
그런데 그北方音調가엇더하냐한즉 吳王世貞의百川學海에 말한바
何元郞云北人之曲以九宮統之‥‥凡曲北字多而調促々處見
筋南字少而調緩々處見眼北則辭情多而聲情少南則辭情少而聲情多北力在絃南力在板北宜和歌南宜獨奏北氣易粗南氣易弱此吾論曲三昧語.
라함과갓치 北曲은高音이요促急하야 同時에悲壯의氣가洋溢하는것이다.
故로古來文士가鼓吹曲을聽하고 文을作함에는어데던지悲壯하다하엿다.
高 趣 賦 晉 陸 機
及其悲唱流音彷徨依違合歡難嚼弄乍數乍稀音躑躅於脣吻舌
將舒而復廻鼓砰々以輕投簫嘈々而微吟詠悲翁之流思怨高臺
之難顧穹谷以含哀仰歸雲而落音節應氣而舒卷響隨風而浮沈…….
唐의李德裕의鼓吹賦에도 亦是悲壯함을言하엿다 今에朝鮮鼓吹曲을聽하면 恰似彼等의評說과符合함을可知나 玆에一曲을洋樂譜標로譯作하야보건대

[악보] 自山譯作 皇風樂 其六 (王의行進曲)

旋律 (Tempo) 은高促하고 音調는東洋樂的으로보아悲壯함을알것이다.
本來朝鮮서는何曲을勿論하고 遲緩하며中音됨을主張하고 高促한것은大忌하는것이다 그러나此曲하야는悲壯하고活潑한風度가漲하니 이것이彼所謂北音의混同햇다는것의證據가 안인가하노니 故로現今의鼓吹曲은 設令古樂보다變音됨이 잇다할지라도 其裏面에는갓가와도千年前의古調影子가 潜在한것이라 可謂할것이다 그런데現存鼓吹曲은 上에말한바七種이나 令과近似한 解令 吹打와近似한路軍樂等을合하면其實은十種이되나니 其內容을約言하면 左表와如하다.
軍 樂 一 覽 表

行進曲 普通樂 祭樂
路軍樂 吹打 解令 令 慢 洛陽春 步虛子 與民樂 保太平 定大業 曲名
同 徵調 同 同 大石調 般涉調 大石調 大石調 徵調 羽調 調別
一 七 一 七 五 一 三 七 十一 十一 章數
七分 七分 三十分 二十分 七分 六分 十五分 一時十五分 十五分 十五分 行進時間

『六』
結論으로 軍樂隊의編制를말해둘必要가잇다 行進曲外의 他曲은宴樂舞劇에도所用되는것이다 故로그것을掌樂院樂師들도奏하며 御駕前後에는樂院樂師들이奏하는것이다 그러나元來軍樂을主掌하기는 各營門에軍樂師가로잇스니 조라치(吹螺赤) 又는吹手라通稱하는것이 곳 그것이다 이 軍樂隊를宮中에別班設置함이잇스매 此는宣傳官廳에屬하되 啓螺라는職員(宣傳官例兼)이統管하는것이다 各營門에잇는 軍樂師는 內吹(一云兼內吹), 細樂手의二班이잇는대
龍 御 營 二十五人
訓練都監 二十五人
御 營 廳 二十五人
禁 衛 營 二十五人
摠 戎 廳 十 三 人
其中宣傳官廳에選上入番하는數爻는 龍御營二十人 訓練都監二人 御營廳十四人 合三十六人으로摩練된것이니 樂長은都牌頭라稱하니라 一體樂隊는黃色戰服에草笠을쓰며 其所用樂器는內吹細樂手가各異하니左와如하다.
內 吹 部
胡 笛 銅 鈸 銅 角
螺 角 鉦 鼓
細樂手部
피 리 杖 鼓 橫 吹
奚 琴
그러나萬機要覽 (六)에는 行軍樂器를十三種이라하고 訓練都監吹手는三百五十八名이라하니 其制度는年來의變遷이잇는듯하다 그런데그樂師의等級은細樂手가卒業하야 內吹로昇次하는것이다 故로細樂手는各其都家가잇서 實習을 常課하니 此가卽細樂手都家라하는것이다 五營門에라五都家가잇는대 此五都家는自治機關이다 營門의監督을밧지안고 스々로句管할새 五都家에서는다시一人式選舉하야 都大房이란特別監督機關을排設하고 都牌頭卽樂長이摠管하다 都大房의經費는各都家가負擔하고 其外에全國巫黨을統率하니 全國巫黨의巫籍은都大房에서處置할새 거긔서收入金이不少하고 한巫人에關한政事를一切兼攝함으로써 勢力이大段하며 其定期會는一個月一囘로하야 軍樂師及巫女等에關한公事를處理하엿다.
以上의制度組織은 官文籍에업는것이요 其內容은査實하기不能하더니 昭和三年二月十六日 舊軍樂師인內吹의李鳳起(七十三歲), 李元根(六十二歲)二氏의談에依하야 斟酌한 것이다 古時의軍樂曲은
界面與民樂 빗가락與民樂
天 鵞 聲 曲 長 胡 笛 曲
別 步 虛 子 凱 旋 曲
닷 장 자 진 한 닙
慢 令
解 令 洛 陽
徵 角 調 昭 武 樂
길 軍 樂
等十五曲이잇다傳하나 散亡하야至今은實奏키不能하다한다 噫라! 一般音樂은이러케文獻外에서 諱之秘之로업서진것이數多하고 同時에曲調를訛誤하게傳하는것도더러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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