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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 창파에 투신 정사한 옛날의 성악가 윤심덕의 관상평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현해 창파에 투신 정사한 옛날의 성악가 윤심덕의 관상평 玄海蒼波에投信情死한 옛날의聲樂家 尹心悳의觀相評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 +++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38-11 昭和十三年十一月
면    수 113 113
기사
情死直前豫言한一句 ․ 『水深波濶莫親蛟龍』도奇妙

記者는 먼저 骨相學者 吳介石氏가 말하는 尹心悳孃의 情死裏面史를 紹介하기전에 當時 世上에 報道되였든바 該情死事件의 全貌를紹介하고저한다.

事件의發端

때는 지금부터 十三年前으로 기여올라간다. 十三年前-다시말하면 大正十五年八月五日, 都下의 各新聞紙는 一大센세어쉬널한 記事를 揭載하였으니

美聲의主人尹心悳孃
靑年文士와投身情死!
關釜連絡船德壽丸이對馬島앞을航
行하는中 마조얼싸고뛰여들어

이와같은 標題밑에 新聞紙가 保導하고 있는것을 綜合해보건대 八月三日午後 十一時에 下關을出帆한 關釜連絡船 德壽丸이 四日午前四時頃 對馬島앞을航行하든中 突然 甲板위 欄干으로부터 萬頃蒼波푸른물겸에 아깝지않게 몸을내던진 한쌍의 靑春男女가 있었으니 그는 一等船客의 洋裝美人과 靑年紳士의 兩人이었다.
德壽丸은 卽時航行을 멈추고 附近一帶를 探索해보았으나 屍體는 아침내 發見치못하였는데 船客名薄를 調査해본 結果 男子는 木浦府北橋洞사는 金水山(三○)이오 女子는 京城西大門町一丁目七十三番地 尹水仙(三一)이라고 記錄되여있었으매 遺留品으로는 女子의 紙匣에 現金 一百四十圓과 其他裝飾品등이 있었고 男子의것으로는 現金二十四圓과 金時計가 있을뿐이다.
그들은 投身할때 두사람이 마조안고 바다로 떠러저 버린것으로 情死한 原因에 對해서는 아직 未詳이나 尹水仙은 지난 七月十六日에 그의 同生 尹聖德二六)이가 「피아노」硏究次로 米國으로 떠나는것을 橫濱까지전송을갔든것이며 金水山은 尹水仙이가 橫濱에간지 四日만에 그르 쪼차갔다가 두사람이 맞나본後에 歸國하든 길이라는바 朝鮮사람의 連絡船情死는 이번이 처음이며 假名 尹水仙, 金水山의 正體는 두말도할것없이 當時의 人氣聲樂家 尹心悳 그사람과 早稻田大學英文科出身이며 木浦府의富豪 金成圭의次男 金祐鎭그사람이다.
以上이 尹心悳孃과 金祐鎭君의 情死事件의 發端이다 그러면 蒼海玄海灘에 젊은몸을 던저버린 尹孃의 波瀾많은 그의 情的生活을 어떠했든가……妖星처럼 우리樂壇에 나타나기前에 그는벌서 金祐鎭君과 꿈같은 속삭임을 속삭이었다.

門閥과黃金을박차고!

이야기는 또한번 過去로 기여올라간다. -그때로부터 三年前, 즉 大正十三年여름이었다.
東京 早稻田大學 英文科에 在籍하고있는 金祐鎭君은 여름放學을 利用하야 故鄕인 木浦로돌아왔으나 東京서 사괴인 尹心悳의 幻影을 잊을길없어 그는 이번機會에 尹心悳孃과 그의오빠되는 尹基成氏와 尹聖德孃-이세사람을 自己 싀골집으로 請하야 音樂會를 열었으니 이것이 그들 두사람사이에 싹트기始作하든 愛情의 싹을 한칭더 북도두어주었다. 두사람은 木浦에서 港口의 哀愁를 마음것 즐기며 오가는 情話는 三更을 잊은듯이 綿綿하여 끝일줄을 몰랐다고.
그후 두사람의 情은 나날이 깊어가고 그이듬해 즉大正十四年 봄 早犬英文科를 卒業한 金祐鎭君은 藝術에 뜻을 두고 京城과 東京으로 돌아다니며 所謂 新劇運動에 熱中하든바 一生을 藝術에바치겠다고 굳게굳게 맹세하였다.
그러나 싀골집 늙은父母는 藝術이란 그누구의 잠고대냐고 頑固한 反意를품고 百方으로 돌아다니며 아들의 하고저하는바를 妨害하기를 마지않었으나 이미 確乎한 主見을 가지고 나선 그인지라 좀체로 初意를 挫折치않었다.
그러나 이로말미아마 그는 항상 家庭에對하여 不滿을 가젔으며 사랑하는 尹心悳孃을 생각하는 한편 그이 本宅에는 父母가定해준 안해와 그사이에 나흔 어린애가 男妹나있다.
父母는 그래도 처음에는 藝術그것만을 爲하야 돌아다니는줄 알었든것이 날이가고 달이올수록 自己아들과 尹孃의 사이를 짐작하게되자 家庭風波를 豫防코저 그들의 사이를 막고저하였으니 그렇지않어도 不滿을 가진 家庭인지라 父母가 計劃的으로 自己네 사랑을 방害코저하는 氣色을 알아차린 金祐鎭은 父母와 最后의 談判을하고 街頭에서 굶어죽는限이 있더라도 다시는歸家치않으라는 말을 남겨놓고 瓢然히 집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아들이 집을 떠날때 아버지는 잘가라는 말한마디안하였으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마즈막으로 집을떠나는 아들에게 數千圓을 슬그머니 쥐여주었다한다.
이리하야 그돈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온 金祐鎭은尹孃과더부러 授恩町 奧田寫眞館二層을 빌려가지고 얼마간을 지나다가 바로 六月九日, 朝鮮最終의 因山이 擧行될것을 하루앞두고 이를 拜觀할생각도 없이 尹孃에 말대로 그날밤 열시五十分車로 京城을 떠나 東京을向하였으니 이때부터 두사람 사이에는 世上이豫測키어려운 그어떤密約이나 있지않었든가?………

土月會에入會한尹心悳

여기서 이야기를 또한번 바꿔야겠다. 尹心悳과 金祐鎭이가 손에손을 마조잡고 東京가기前에 있어서의 尹心悳孃의 生活을 어따했는가?……가 궁금하기때문이다
尹心悳은 먼저 東京서 金祐鎭과 사괴이기後에 하르빈을 단녀온 事實이있으니 尹孃이 어째서, 무엇때문에 하르빈까지 갔다왔는가하는 그裏面史는 當時 어떤 新聞에도 揭載되지 않었었다.
이事實에對해서는 이記事 맨나종에 吳介石의 입으로 비로서 說明될터이니 궁금하겠으나 讀者여! 잠간만기다려주기바라며 여기서는 尹心悳이가 黃金町 어떤 內地人旅舘에서 金祐鎭과 달콤한 生活을하다가 突然 그의姿熊를 土月會舞臺에 나타내기까지의 經路를 紹介하여보련다.
하로에도 數百番이나 世上사람의 입술에 오르나리는 尹孃은 一時 樂壇에서도 자최를 감추고 있더니만 十三年 正月에 突然 樂壇를떠다 劇界의 한사람으로 土月會舞臺우에 나타나게되였으니 세상사람의 興味는 또다시 尹孃의 一擧一止를 보살피게 되었다.
그러면 尹孃이 별안간 俳優로 轉向하게된原因은 어데있든고?………
當時 土月會는 地方巡禮를 마치고 서운로 돌아와서 女俳優問題로 한참이나 紛紏를 거듭하다가 드디여 卜惠淑氏를 내보내고 適當한 女俳優를 物色中이든바 어떤날土月會幹部이든 朴勝喜氏께 한장의 書信이 날러들어왔다.
그편지의 內容은 이러하다
×
(前略) 맞나보면 아실듯합니다. 이사람은 오래前부터 舞臺藝術을憧憬하여 될수만있으면 꼭한번 舞臺生活을 하고저하는 사람입니다. 이런사람이라도 萬一 쓸떼가 있다면 한번 저를 찾어주시요. 그러면 그때에 자세한 말슴을 하겠읍니다. 「果して妾は誰でせろか?……」 (下略)

西大門町一丁目七三
尹 理 多
×
이와같은 편지를바든 朴勝喜氏는 尹理多가 과연 누구인지 알수가없었다. 그는 이상히 생각하면서 찾어가보니 意外에도 그는 世上에서 궁금히 역이든 尹心悳孃이아니였든가?
이리하야 女俳優에 좋리든 土月會는 長安에 人氣를 獨占하고있는 尹孃을 躇躊치않고 入會시켰다.
이리하야 彼此에 契約은 成立되였으나 尹孃의 父母는 反對하야 尹孃은 꾀를내여 大邱에있는 一家집으로 간다고하고 다른데 旅舘을잡고 거기서 土月會에를 단녔든것이다.
그러나 그날 저녁 尹心悳이가 土月會에入會하였다는 新聞記事를보자 그의아버지는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어 飮食을全폐하였으며 그의어머니와 그의親舊들은 그를잡고저하야 光舞臺엘十餘日동안이 찾어갔으나 그럴적마다 尹孃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싸매고 뒷문으로 살짝 빠저버리곤하였든것이다.
이리하야 尹心孃은 드디여 土月會舞臺에 올라서게되였다. 舞臺를 나와 旅館으로 돌아오면 愛人金祐鎭이가 기다리고있다가 그를 반겨준다. 이때가 그들에있어서는 가장 즐겨왔을것이다.
그후 尹孃은 土月會를 脫退하고 새로히 몇몇이서 「白鳥會」를 組織하게된것은 來年에 金祐鎭이가 數十萬에 큰資本을 가지고 이方面으로 나서겠다는것을 믿고 한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來年이 오기전에 東京으로 건너가고말었다.

自作自唱인死의讚美

그런데 金祐鎭과 尹心孃이의 사랑이 이처럼 熱烈한것은 勿論 雙方이 다같이 사랑한것이기때문이나 金祐鎭君이 尹孃에게 반한것보다도 더한칭 尹이 金에게마음이쏠리였다.
그러나 때로는 自己의 身勢가 매우 괴롭고 自己와 處地가 퍽이나 危殆한것을 깨닷자 將來에對한 煩惱가 없을수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잠간 先後가 바꾸어지지많은 맨처음 東京서 尹孃이 金祐鎭을 사괴일때 尹孃얖에 나타난 男子는 결코 金祐鎭한사람만이 아니였든것이다. 이亦是 東京某大學에단니는 男子 또한사람이 있었다. 그는平壤所生으로서 金敎植氏의아들이다.
그러나 尹孃은 金祐鎭을 골랐다. 後者는 前者보다도 尹孃의 慾望을 채우는 한가지 條件이 더있기 때문이다. 金祐鎭은 木浦의大富豪다.
그것은 하여튼 同生尹聖德이가 留學次로 米國을 가게된것은 金祐鎭과 尹心悳이가 떠나기 한달前이었다.
그런데 尹孃이 불이야불이야 東京을 가게된것은 同生의 정송두할겸 大阪 日東蓄音機會社에 「레코-드」를 넣고 同生을 떠내보낸후 얼마동안 놀다오겠다는 理由였으나 實은 金祐鎭과 東京서 자미있는 세月을 보내보겠다는것이다.
그는 東京서 金祐鎭과 얼마동안을 자미있게 살다가 大阪 日東蓄音機會社로가서 그前에는 「誕生의기쁨」이라는 노래를 爲始하야 數種의 기쁨의 노래를 吹込하였으나 그때만은 「死의讚美」라는 哀曲을 애끌는 노래로 불렀는데 兄의 노래를 伴奏하든 同生 聖悳孃은 平素에 듣지못하든 兄의애처로운 노래에 不知不識中에 눈물을 흘렸다한다.
이제 尹心悳孃의 自作自唱인 「死의讚美」를 다시한번 讀者諸君에게 紹介하마.

死 의 讚 美

曠漠한 荒野에 달리는人生아
너의가는곳 그어대냐
쓸쓸한世上 險惡한苦海에
너는무엇을 찾으러가느냐

눈물로된 이世上이
나죽으면 그만일까
幸福찾는 人生들아
너찾는것 괴름이다

웃는꽃과 우는새가
그運命이 모도같으니
生의熱中인 可憐한人生
너는칼우에 춤추는者이다.

虛榮에빠저서 날뛰는人生아
너속혔음을 네가아느냐
根本世上은 너에게虛無니
너죽은뒤에 世上은없도다

玄 海 灘 의 情 鬼

尹心悳이가 「死의讚美」를 吹込한 이튼날 東京있든 金祐鎭이가 大阪으로 尹孃을 찾어와서 尹孃兄弟가 投宿하고있는 岡春旅舘에서 尹孃과 하로밤을 묵은後에 金祐鎭과 尹心悳은 同生 聖德孃이 出帆하는것도 보지않고 下關을 向하야出發하였다.
그런데 尹孃이 大阪을 떠날때 日東蓄音機會社에있는 內田氏에게 이야기하기를 自己는 돈도 쓸데없고 衣服도 必要치않는 樂園國으로 가는旅行을 하겠다는말을하였다한다.
同生과의 作別도 하지않고 愛人과 죽엄의길을 떠나는 尹孃이 連絡船 德壽丸을 타기는 八月三日午後 한時였다. 數많은 乘客속에 이와같은 「로맨쓰」를 지어놀 사람이 있을것은 누구나 몰랐을것이다. 아득한 水平線에 남실남실 넘어가는 새벽달이다.
네時頃에 甲板을 巡視하든 給仕가 一等船室零號의문이 열렸음으로 이상해서 드려다본則 사람은 없고 行具만 놓인곳에 「뾰이에게」라고 씨인 簡單한 종히조각이 보이었다.
內容은 「미안하나 우리의行具는 집으로 보내주시요」라는것이다.
이리하야 意外의 일이 생겼음으로 乘組員들은 물론 一般乘客들까지도 크게 놀래 騷動을일으켰으나 앞에서 말한바와같이 그들의 屍體는 永遠히 찾을길이 없었다
以上이 尹心悳孃의 情死事件의 顚末이다. 이만큼 紹介하야 稀薄해진 諸君의 記憶을 새롭게하였으니 이제부터 骨相學者 吳介石死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尹孃의얼골엔天桃花!

「그래 尹心悳이의 觀相을 보시였다는말이지요?」
「네 보았읍니다. 尹心悳은 平素부터 나를 사모하야 관상을 보아달라고 여러번 찾어왔었지요.」
「그래 觀相을 보니 어떻습디까?」
「天桃花살이 끼여서 世上사람에게 홰냥년(이것은 平安道사투린데 난봉난 계집을 이름)소리를 듣겠다고 그랬지요.」
「얼굴을보면 그런것을 다아십니까? 듣건대 女子를한번 보시면 男子關係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아신대니 참 신기합니다.」
「하여튼 나는 女學校寄宿舍出入을많이 했는데 그때부터 그는 나를 믿고 무슨 議論事가 있으면 나를찾어온답니다. 大體 尹心悳이가 金祐鎭과 얼리우기前에 벌써 李容汶이란 사나이의 妾노릇을 하였답니다.」
「그렇습니까!」
「李容汶이란 작자와 서울서 한뒤달동안 같이 살다가 新婚旅行을 함네하고 上海, 하르빈等地로 가서 얼마동안 살다가 돈이나 아마한 二三千圓 떼먹고 男子가그만 싫어젔으니까 그이를 떼버리노라구 東京엘 갔었던것입니다.」
「헤에, 그래요?」
「글세, 尹心悳이의 裏面史는 어느 新聞紙보다도 내가 잘 안다니까……그래 東京으로 건너가서 그기서 그만 三角戀愛가 다시 버러지지않었겠읍니까.」
「누구하구?」
「처음에는 東京某大學專門部에 다니는 사나인데, 平壤사람 李敎植이의 아들입니다. 지금 그의이름은 잊어서 알수없으나 하여튼 그이와 戀愛인지 뭔지가 되였는데 그때 李敎植이의 아들의 親舊인 金祐鎭이가 두사람사이에 나타났지요. 金祐鎭이란 南道사람인만큼 尹心悳이의를 脾胃를 살짝살짝마추는 바람에 尹心悳이의 마음은 그만 그리로 돌아가고말지 않었겠읍니까. 말하자면 처음사나이 李敎植의 아들은 요좀말로 말하면 純眞한사랑이나 金祐鎭의 사랑은 옛날로말하면 曺操의戀愛法이었지요, 알랑알랑하면서 뭐……살살녹여놓았지요.」
「曺操의戀愛法이라!」
「그렇지요. 그런데 한편 李敎植의 아들은 大學을 卒業한后 平壤으로 돌아가서 父母의 承諾까지받어놓았는데 요놈의 계집이 살짝 金祐鎭곁으로 돌아서고말었지요. 그도 그럴것이 金祐鎭으로말하면 木浦에서 安東金哥래서 名門이요 게다가 富豪의 次男이라 尹心悳인들 왜 마음이 음지기지않겠소. -그런데 한가지 무서운것은 尹心悳이가 奧田寫眞館二層에서 한참 苦生할때의 일이지요. 그 겨울에도 다다미房에서 밥을 해먹는다고 남비를 들고댕기면서 숫불에 부채질을하면서……참 그 꼴이야! 그런데 그가 한창 窮했을 때 朴勝喜에게 꾀서여 土月會에入社를했는데(한달에 二百圓契約으로요)그의 父母들이 잔뜩 화가나서 光舞台로가보니까 갑자기 舞台우에 물귀신같은것이 뛰어나오길래 보니까 그게자기딸이거던. 야이, 홰냉년 같으니 하고 방치를 가지고 舞台에 뛰여올라가 한참 두다려주지를 않었겠읍니까. 群衆은 와아하 떠들지요. 참 엉망진창이란 그를두구이름인지……하하하……」
「하하하………」

小不用大不用인一萬圓

「그런데 이것두 또 우서운일이지요. 金祐鎭이 아버지 金成圭는 아들이 早大英文科까지 卒業하고 藝術이니 뭐니하며 떠돌아다니는꼴이 하도 보기실어서 어느날 돈을 한萬圓쥐여주면서 너그렇게 돌아다니지만 말구 이돈을가지고 서울에올라가서 지금李王職에 내親舊가있는데 그이를 찾어가서 叅奉벼슬을 하나 얻어해보라고 하였읍니다」
「하하, 叅奉을요?」
「그러게 말이지요.」
新聞에는 金祐鎭이가 自己를 理解하지못하는 家庭을 박차고 나왔다하였으나 事實은 그의 아버지가 叅奉벼슬을 시킬려고 돈萬圓을 쥐여주며 上京하기를 勸했다한다.
「그래 어떻게 되였어요.」
「그래 아버지의 紹介書를가지고 上京하여 李王職에를 가보니 아, 이사람아, 지금時代가 어느때라고 大學까지 나온이가 叅奉벼슬을 하겠다고 그러는가고 코빵을 마젔으니 當然한 일이지요. 그는 그길로 尹心悳을 奧田寫眞館二層으로 찾어가서 자아, 이전 就職도 틀렸으니 이돈 一萬圓을 네게준다. 하고싶은대로 하라고 내매켰읍니다. 尹心悳이가 가만히 생각하니 一萬圓이란 돈은 實狀, 「小不用 大不用」格으로 도무지 쓸데가 없거던요.」
「어째 쓸데가없어요? 一萬圓이란 돈이면 相當하지않소.」
「하아, 尹心悳의말을 들어보소, 小不用 大不用이라 이돈을 적게쓰자니 二層다다미房에서 남비밥이나 끄려먹고 살기에는 너무 過分하고 또 그렇다고해서 尹心悳이가 理想하던 바를 實現하자면 꼬리든 萬圓쯤을 가지고는 到底히 어림두없지요. 萬圓쯤가지고는 洋屋한채 변변한것 못살테니 크게쓸래야 쓸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 그돈은 무엇에 썼읍니다.」
「하하, 尹心悳의 말이 참 재미있지요. 그럼 그 돈은 무엇에다 쓰야겠느냐고 金祐鎭이가 물었을때, 그는 아주 간사스러운 목소리로, 여보! 하고 불렀읍니다. 응? 하고 金이 얼굴을 들지않었겠소. 아, 여보! 이 萬圓이란 돈은 도무지 쓸데가 없으니 旣往, 내同生 聖德이가 米國으로 피아노 工夫를 갈려고 베르던 次이니 그를 米國留學이나 시킵시다. 이렇게 척 이야기를 끄내놓고보니 愛人의請이라 敢히 거역할배 못된다하야, 그럼 그르려무나 하고 尹心悳과 세사람이서 相議한結果, 米國으로 留學을 떠나게된것이지요.」
「아, 그렇게 된것입니까? 小不用大不用이니 내同生米國留學이나 시키자……」

玄海灘投信은强制情死

「그것이 바루 大正十五年 六月九日에 因山을 하루앞두고 그가 東京으로 건너갔는데 서울을 떠나기 바루前에 尹孃이 나를 찾어와서, 자아, 나는 인제 金祐鎭을다리고 東京으로 건나갈려는데 先生님, 내運命이 果然 어떻게 되겠어요? 하고 묻길래 응, 水深波濶하니 莫親蛟龍하라- 물은 깊고 波濤는 높으니 蛟龍을 親치말라, 물옆으로 가서는 안되겠다는말을 하였읍지요. 그러나 그때의 尹心悳이가 내말을 듣고 渡東을 中止할 心境이야 어디 가젔겠읍니까. 그래 東京으로 가지를않었겠읍니까. 東京서 얼마있다가 大阪와서 「死의讚美」를 吹込하고 金祐鎭과 두리서 싫건 놀다가 거진 돈이 떠러젔으니까, 金은 木浦본宅에다 돈보내라는 電報를 첬지요. 아, 그랬더니 金祐鎭의 아버지 金成圭는 화를붙같이 내가지고, 죽일놈같으니, 돈萬圓을 쥐여줘서 叅奉벼슬을 하라고 서울로 올려보냈더니 叅奉벼슬은 안하고 大阪에는 무엇하러 가있어! 當場 때려죽일놈! 하고 호령합니다. 그러나 어디 어머니야 그렇겠읍니까 아비지 몰래 몇千圓 보내주었으나 그몇千圓이 얼마나 갑니까. 잠간동안에 다 써버리고 말었지요. 그래 尹心悳은 가만히 生覺해보니 제八字가 하도 不遇하고 기구해서 에이 이놈에 世上, 살아서 무엇하랴하고 다시 朝鮮으로 건너오는 길에 對馬島옆을 지날때, 여보! 우리 甲板으로 散步나 나갑시다 하고 金祐鎭을 끌고 나가서 그런줄도 모르고 멍하니 서있는 金祐鎭의 몸둥이를 꽉 껴안고 달빛이 어물거리는 바다속으로 뒤여들도 말었으니 이야말로 요좀말로 말하면 文字 그대로 强制情死지요.」
「小深波濶하니 莫親蛟龍하라!」
「그래서 그만 玄海灘의 물鬼神이 되고 만것이지요. 하여튼 金祐鎭이란놈은 當然한 罰을 받었지요. 글세 그렇지않소. 집에는 안해가 自己를 기다리고있겠다. 어린애 두리나 되겠다. 게다가 親舊의 愛人이던 尹心悳을 알랑알랑해서 빼가지고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읍니다. 너무 時間이 느젔어……오늘은 이만 失禮하고 다시 뵈옵겠읍니다」
窮밖에는 지튼黃昏이 소리없이 흐르고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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