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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에서 본 고조선인의 연애관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가사에서 본 고조선인의 연애관 歌詞에서본古朝鮮人의戀愛觀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김태준 金台俊
출처정보 사해공론 四海公論
연    도 1938-08 昭和十三年八月
면    수 90 90
기사
西洋은 아즉 그만두고라도 中國의詩三百篇이라든지 日本의萬葉集이라든지를 읽을적에 古代中國人과 日本人의情緖的生活을 볼수가 있지만 그러면무엇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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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 新羅 高麗時代의 노래를 살펴봄으로써 노래속에 나타난 當時人의情緖的生活 特히戀愛觀같은것을 엿볼수가있다.
新羅시절의노래로서 傳하는 唯一한로맨틕한노래는 薯童요다.
이야기는 이러타,
百濟의王子 薯童이 新羅王녀 善花公主가 才色이 當世第一이라는 말을듯고 薯童-감저쟝수사나희로紛裝하고 新羅서울慶州로왔어 종노네거리에서 감자장사노릇을하면서 사실인즉 그근처의아희들에게 감자를만히멕여 買收해갓고
「善花公主님은 남몰으게 얼려두고 낮이면 안고간다……」
라는 노래를지여 읊게하엿다, 돈주며 읊는노래라 이노래는 大流行을하였다.
그소식이 宮禁에達하자 新羅王은 大怒해서 公主를 내쪼찻다,
公主는 하는수없이 九重宮궐을 뛰여나와서 지향업는길을 나서자 맛침 행길가에 기다리고있는 薯童아희가 툭튀여나왔어 自己紹介를하고 함께가자고하엿다
이한쌍 제비는 百濟로도라왓서 서童은 末通大王이되고 善花는 王后가되엿다,
實로 國際的로맨스라 事實도업는 無稽한이야기가 이처럼 僧侶들의손에 假作된데는 놀라지않을수가없다
虛謊한 이야기잘하기는 엇쨋든僧侶가 第一이다.
新羅시절만해도 남녀間의風紀가 오늘날과같이 기가막히게 嚴格하게 規定되지않엇다, 그들 所謂上流社會에 三從之道니 七去之惡이니 夫婦有別이니하는 封建的성格의 嚴肅한禮儀가 글로읽기우고는 있으되 이나라의習慣으로 骨이되고 肉이되여 浸透되지는않었다.
都彌와 溫達의 이야기같은것은 얼마든지 있었을것이다, 但거긔에는 노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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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들의 부르든 사랑의노래는 어떤것이있는가?
나는 高麗時代의 戀歌 「滿殿春」 一曲을 그代表로 들겟다.
一, 어름우에 댓닙자리보아 님과나와 얼어죽을망정 어름우에 댓닙자리보아 님과나와 얼어죽을망졍 情든오늘밤 더듸새우시라 더듸새우시라
二, 耿耿孤枕上에 어느잠이오리오 西窓을여러하니 桃花-發하두다 桃花는시름없이 笑春風하얏다 笑春風하엿다,
三, 넉시라도님을한테 녀닛景너기다니 넉시라도님을한테 녀닛景너기다니 뉘러시니있가 뉘러시니있가
四, 올하올하아련비올하 여흘란어듸두고 소헤자라온다 소콧얼면 여흘도죠흐니 여흘도죠흐니
五, 南山에자리보아 玉山을벼여누어 錦繡山니불안해 사香각시를 안아누어 南山에자리보아 玉山을벼여누어 錦繡山니불안에 사香각시를안아누어 藥든가삼을맛초압사이다 맛초압사이다 아소님하 遠代平生에 여힌살오라압세
解 第一節은 金守淐의 漢譯과같이
十月層氷上 寒凝竹葉서
與君寧凍死 遮莫五更難
第二節은 解譯할것도없고 「여러하니」는 「보아라하니」의 하니와같다
第三節 未詳
第四節 「아련비올」은 원왕의古語‧ 여흘은瀨灘‧ 소는深潭
第五節 遠代平生에 離別하지말자는뜻,
高麗의戀歌는 「가시리」 「動動曲」 「雙花曲」 「履상曲」 「西京別曲」等等 相當히 많으되 通틀어 滿殿春만큼 圓熟한表現을 한것이없고 읊으면 읊으사록 浩蕩하게 무르녹는 快感을주어 사람을알지못하게 歌樂정으로 끌고간다
李朝의戀歌는 여기에比하면 아무래도 서투른것이 左右의耳目을 忌憚하는 쥰巡하態度가있고 그러치안으면 度를지나처 猥설鄙薄한것이 많다, 이것은 確實히 高麗歌詞를 닑는者가 驚歎의눈을 부릅뜨지 않고는 닑을수없는바이다,
西京別曲에서 「아즐가 ×××××× 위 두어렁셩~ 다링디리」라는 후렴을 빼고 便宜上 要約하야 닑어보면
「一, 西京이 서울히마르는
닷곤대 쇼셩경고마른
여해므논질삼뵈바리시고
괴시란대우러곰좃니노이다
二, 구슬이 바희예디신달
긴힛단그츠리있가나는
즈믄해를외오곰너신달
信있단그츠리잇가나는
三, 大同江너븐디몰라서
배내여노흔다, 샤공아,
네가시럼난디몰라셔
녈배예연즌다 샤공아
대동강건넌편고즐여
배타들면것고리이다나는」
(解) 第一節은 紡績하든것이라도 내버리고 사랑하는님을 따러가겟다는것
第二節은 朴齊賢의 漢譯
「縱然岩石落珠무 앵무固應無斷時‧
與郞千載相離別 一点단心不可移」
第三節은
未詳

이 高麗時代의노래는 李朝에들어 多數한儒學者들의排斥을바더왔다.
特히 「成宗大王」같으신어룬도 자조 經연에서 高麗歌詞가 本半 「남녀相悅之詞」라고왔서 排斥하엿다.

남녀相悅之詞라고해서 排斥하기로말하면 詩三百篇은勿論이요 中國의 玉台新泳 韓악‧徐희氏流의 香구文學은 永 存在할수가 없을것이다.

하나 高麗의歌詞는 말하자면 聖人의 「樂而不요」이라든格이다 芳香이있고 風味가高尙하면서도 훨신 自由自在한 放蕩한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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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조선에서도 李朝의 유敎政治의 착호에束박되기전에는 日常生活에 感情의拘束이적었다, 남녀間의歡悅도 李朝以後처럼 曲直을不問하고 罪惡視하며 蛇감視하지는않었다.
그들은 남녀間의연애도 平凡한茶飯事로 取扱하엿다,

어데서든지 어느때든지 즐거운일이있으면 춤추고 노래하엿다, 그노래는 豊富한情緖의 發露의表現이엿다.
骨董品장사가 高麗磁器한개를 앞에놓고 感嘆詞를 쓰거나 行脚僧이 石窟암에갓서 驚嘆하는 것은 그藝術의美에 感觸되기 때문이다.
或은 옛날觀音像의 乳房을흘겨보고 그 한줄기두줄기의 히微한線에서 눈을옴겨가면서 입을딱벌니는이도있다.
이들은 要컨대 前無後無한 古代藝術의 圓熟한魅力이없이는 不可能한일이다
나는 이때의노래一篇을 高麗磁器의 殘片에 譬하고 싶다.
(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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