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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감격 안고 환향하는 피아니스트 이애내―도구 3인의 호화 에필로그―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5년 전의 감격 안고 환향하는 피아니스트 이애내―도구 3인의 호화 에필로그― 五年前의感激안고 還鄕하는피아니스트李愛內―渡歐三人의豪華에피로그―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 +++
출처정보 김해당 金海棠
연    도 1938-07 昭和十三年七月
면    수 54 54
기사
이애내-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이 이름을……
그러면 다섯해전 소화구년사월초열흘날밤 공회당에 벌려진 감격의 하루밤을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우리들의 테너- 이인선(李寅善) 바요리니스트 안병소(安炳玿) 그리고 이애내 이세분의 도구고별음악회(渡歐告別音樂會)를 여러분은 잊지않으셨을것입니다.
그날밤-봄비 고요히 나리던 그밤. 슈벨트의 자장가를 부르던 이인선씨는 이태리로 그리고 뿌르호의 협주곡을 타던 안병소씨와 리스트의 헝가리안광상곡을탄 우리 이애내씨는 독일 베르링(伯林)으로 각각 앞날을 약속하고 떠났던것을 여러분은 생각해내실것입니다.
그리고 작년 여름 이인선씨의 환향독창회를 오직박수와 감격으로 맞아주셨고 또 이번에 환향한 안병소씨의독주회를 반갑게 맞이시는 동시에 남은 한사람 이애내를 여러분은 응당 궁금해 하실것입니다.
일직이 하와이 호놀루루에서 이지성(李枝盛)씨의 넷재 따님으로 태어나 그곳에서어린시절을 보내고 고향서울에와서 숙명(淑明)에배우고 신호여학원(神戶女學院)음악부고등과를 우수한성적으로 마친분입니다.
그의 타고난 재질과 천품은 숙명시대에도 나타났었으나 신호여학원 시대에는 더한껏 발휘되어 모스크바 음악대학 교수로있던 매담 후지에프의 수제자로 고임을한몸에 받았으며 그의 졸업독주회는 눈높은 과서음악게를 놀래게하야 조선에서는 그의 이름조차 서두에 쓴것처럼 소개를 하여야 짐작되지만 관서음악팬으로 그의 이름을 모르는이가 없는터입니다.
그러나 그의 대망(大望)은 이에 끝이지않고 맹연히불타올라 고국에서의 고별연주회를 마치자 황황히 청운의큰뜻을 품고 음악가의메카 베르링으로 떠났던것입니다.
베르링에 도착한그는 독일의 최고학부 베르링국립음악대학에 어렵지않게 입학하였습니다. 이 대학에 입학되는 사람은 독일서도 이미 상상한 연주가의 대접을 받는터인데 그곳에 어렵지않게 우리 안병소씨와 함께 두분이 모다 합격된것은 영예스러운 일이라고 할것입니다.
입학당시 시험을 맡아본선생은
『손이 자유스러우며 연주법이 또한 무리가없고 엑스푸레슌에대하야도 깊은곳이 있으며 곡을 소홀하게 취급하지않고 끝까지 인상깊게타는것은 참으로 특장이다』
라고 그를 칭찬하야 마지않았습니다. 대학에서는 피아노과 주임교수 쿨트 ‧ 뵈르나씨의 지도를 꾸준히받아왔는바 교수역시 그를 늘 칭찬하야
『그의 무서운 열심은 참으로 놀랠만하다. 모든것이나 날이 진보한다. 테크닉이정확한것은 물론 톤이 또한 아름답고 좋다』
라하였습니다. 사실로 그의 성격은 쾌활하고 명낭한중에근하고 끈기차게 끝까지 버티는 좋은장점을 타고난재질과함께 가지고있는분입니다.
학교시간 이외의 시간전부가 밤중까지 공부시간 연구시간인것이 그의 스케쥴 입니다. 오년동안 그것이 꾸준한데는 그를 아는이 치고 놀래지 않는이가없습니다.
부지런과 규률을 가장엄수한다는 독일사람들이 놀랠만하다면 우리는 그의결심과 의지와 그리고 정렬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것입니다.
밤낮으로 쓰고 읽고 타고-일분간이라도 쉬지않는 그입니다. 더구나 작곡(作曲)을 연구하자 그의스케쥴은 더욱 엄격하야 그의연습시간에 손이오면 연습시간이니 가주시면 좋겠다-- 고 서슴지않고 그의 방문밖에다 몇시까지는 면회를못합니다고 종이표를 붙여놓고 공부를하는그입니다. 그에게는 오직 한마음 대성(大成)이 있고 대성의 앞에는 청춘도 향낙도 잊고나가는 정렬이 있을뿐입니다. 그러한 지성은 이제 성과를 맺어 졸업의 영예를 질머지고 환향의날을 며칠 앞으로 갖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가한가지 빼놀수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소위 『라스트‧헤비』를 다하던 그는 불행히지난 십이월말에 유행성감기에 붓들려십여일이나 자리에누어 고생을 하던나머지 인후염으로 수술을 두차례식이나 받게되어 달장간을 병원침상우에서 보낸것입니다.
만리타향에서 졸업을앞두고 병원침대우에 정신잃고 누어있는 그광경은 얼른 우리가 상상할 수없는 애통지극한 극적광경이었습니다.
다섯해동안 건강하던 그가 이 최후의순간에 병석에 쓸어진다는것은 산 비극이오 동시에 그에게는 큰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수술후의 경과가 양호하야 이월초에는 다시 전날에 지지않는 열정을 붓안고 키-를두다리는 몸이 되었습니다.
이로인하야 그의 졸업작곡과 연주회는 부득이 연기되어서 이봄 오월중으로 환향하려던 예정은 몇달 늦어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들리는 소식은 명예스러운 졸업장을받고 이 여름으로 고향에 금의환향을 하게되었다고합니다
그리고 고국 부모 산하와동포……그의 가슴에는 만감(萬感)이 교교(交交)할것입니다.
금년들어 우리악단은 여러 명성(明星)을 맞이하였습니다 그중에도 더욱이 우리여성들로 그이들을 드날리는것은 무척 유쾌한 일입니다.
임상히여사를 비롯하야 유부용양과 채선엽여사를 맞이하였으며 이제 또다시 여류 피아니스트 이애내양을 맞게되는것은 참으로 경하스럽고 경하스러운일입니다. 동시에오년전 우리에게 감격의 고별연주회를 열어주었던 세분이 이제모다 아름다운 영예의열매를맺어준것을 감사하며 더욱 원로에 고국을향하야 떠나올 이애내양의 건강과평안을빌어마지않으며 돌아올 그날을 손꼽아기다리는바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세분의 감격의 음악회가 서울에열려질날이 있기를 바라는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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