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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활 보고서 현실 생활의 고민(성악가로서의 사생활)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나의 생활 보고서 현실 생활의 고민(성악가로서의 사생활) 나의生活報告書 現實生活의苦悶(聲樂家로서醫師生活)
종    류 수필 隨筆
필    자 이인선(문책재기자) 李寅善(文責在記者)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38-05 昭和十三年五月
면    수 253 253
기사
昨年十一月에 비로소 西大門네거리에, 「西大門病院」이라는 看板을 걸었읍니다. 勿論 나自身의 理想으로야醫師生活을 그리 願한것은 아니겠죠. 그러나現實과 環境이 나를 이길로 모라넣는구뇨. 朝鮮의現實이란 참말 어찔수가없읍니다. 昨年봄에 처음 伊太利에서 나올때에는 그래두 적지않은抱負와 期待를가젔지오. 京城서 音樂會를 마치고 東京으로 건너가서 紀念音樂會를 한후에 다시 京城으로 오는途中 大阪朝日에 들렀드니 朝日新聞社事業部 主催로 大阪, 神戶名古屋, 京都等, 五大都市에서音樂會를 開催하고 그 音樂會를 마친후에는 어떤 機關을 많들어가지고 音樂人으로서 일을 하자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내게는 幸인지 不幸인지 突然이 支那事變이 勃發하게되때 日本全國은 물끓듯하고 따라서 音樂會라는것은 全혀 一般의 關心에서 멀리 떠나게 되였읍니다. 이러고보니 事情이 딱하지않습니까? 父母의遺産이나 많이타고난 팔자좋은 身勢라면 몰우지만은 그런惠澤을 가지지못한 나이라 노래를 불우고 機器를 戱弄한들 이朝鮮現實에 있어서 어디 입으로 밥이 드러감니까
그래서 이病院을 내고 밥버리를 시작한것입니다그러나 나는 朝鮮서 醫學校를 卒業하고三年間 開業한일두있고 또는 伊太利에 가서두 聲樂을 工夫하는 한便에 「미라노」王立大學에서 틈틈이 醫學두硏究하고 온터이라 「메쓰」를 드는데 그리 서투루지두 않고 또는 그리 趣味없지두 않습니다. 그러나 제일 괴로운것은 첫재 時間이 없어서 죽겠구려. 이 病院이란 한번 開業을 한以上에는 언제 患者가 올는지 몰우는터이라 恒常病院에 박혀있어야하고 또는 밤중에 자다가두 불려가야합니다. 一便으로 생각하면 참말괴로운 職業이지요. 그리고 찾어오는사람들이 愉快하고 明朗한 사람들이 않이오 늘아푸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라 이런사람을 늘 對하니 그리 氣分이 좋다고는 못하겠죠. 그러나 이 醫師業이란 그리 失敗가없는 事業이라 그것많은 마음에 든든합니다.
그런데 나의日常生活말슴입니까? 아침 여덜時에 일어나서 밤, 열한時頃에 자는데 하루에 大約二十여名式 患者를 對합니다. 그리고 밤여덜시 頃에는 많은志願者中에서 가장素質이 있다고 생각하는사람으로 五六名을 擇하여가지고 그들에게 聲樂을 가라칩니다. 이時間이야말로 나의 가장 즐거운 時間입니다. 그때는 愉快이 노래를불우며 아름다운 한마리 새가되여 蒼空을 헤매는듯이 지냅니다.
그리고 이外에 나에게 오는 患者中에 내藥을먹고 나의治療를 받은후에 快復되는 사람이 있는것을 볼때에는 나는 營業的見地를 떠나 人間的으로 적지아니한 愉快를 느낌니다.
그런데 將來抱負말습입니까? 期會만 있으면 「스테지」에 서겠읍니다. 朝鮮에는 亦是 醫療機關두 不充分하지않은 音樂界는 더 甚하니까요 말하자면 音樂界는 處女地와 마찬가지오 너무두 할일이 많어니까 어디서부터 손을 대여야 할까하는 形便입니다.

첫재 朝鮮에 音樂學校하나두 없으니 이것은 朝鮮의 羞恥입니다. 梨花專門안에 音樂科가 있다고하지만은 이것은 女子에만 限한것이니 男子의 나갈門은 꽉 막킨셈입니다. 내가 東京갔을때에 들은이야기 지만은 東京에가있는 學生中에 六七割이 모다 聲樂工夫하는 學生이라는 말을 들었읍니다. 音樂熱이 여간이 안임을 넉넉이 짐작할수있지않습니까 그러나 朝鮮에는 事情이 이러하니 갑갑한일이 안입니까? 요새 中學校니 專門學校니하고 敎育事業에 돈을 寄附하는 財産家가 次次 느러가는 모양인데 내생각으로는 그들이 이音樂方面에두 좀 着眼하여 주었으면하고 바랍니다. 그렇다면 나두 발을벗고 音樂機關을 세워가지고 한번 活躍해보겠읍니다. 이처름 「메쓰」와 藥냄속에서 그날그날을 지내는것이 어찌나의 本意겠읍니까?
저번 어떤이가 君은 醫師보다 音樂生活이 趣味있지아느냐고? 하두군요. 누가 趣味를 몰라서 이일을 합니까? 첫재 伊太利名曲만을 모아서 歌曲集하나 發行하랴는것두 亦是 돈문제로 못하고 있읍니다. 말하자면 이病院두 어떤 好意있는분이 돈몇千圓 빌려주어서 빗을 얻어가지고 經營하는中이니까요. 몬저 돈을 뫃아가지고 좀 出發을 하겠습니다.

생각하면 朝鮮이란 音樂家가 발을 부치기엔 매우 索漠한곳이니까요. 말이 났으니말이지 요새 獨逸서 工夫하든 安炳昭君과 其他 李愛內氏와 또는 美洲에가있든 安益泰氏等 錚錚한 音樂家가 歸國한다고 消息을 傳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들두 歸國하면 어느財閥이 後援하여주지않는以上 生活이 문제일것입니다. 音樂家나 누구나 몬저 먹어야하는 터이니까 참말 現實의 苦悶을 느끼지않을수가 없읍니다.

(文責在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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