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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성 화류계 금석 성쇠기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대경성 화류계 금석 성쇠기 大京城花柳界今昔盛衰記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무호낭인 無號浪人
출처정보 중앙 中央
연    도 1935-02 昭和十年二月
면    수 84 [84]
기사
五百名妓生이 다섯券番에난호여 밤마다 밤마다紅燈綠酒에 旗亭을꽃답게하니 大京城의밤거리는 妓生태인 人力車가香氣를풍기기에바뿌다 花柳界의盛衰는 그都市 그社會의景氣! 不景氣를如實히말하는 파로메-타이다 五百名美姬의油頭紛面이 아양과秋波를發散하는 大京城이여 歲月이좋와젔다기로 무슨不平이있을가보냐

京城에妓生이늘기始作하고 花柳界가豐盛豐盛하야지기始作한것은 所謂無夫妓가생긴 뒤부터이다 妓生을다리고노는데 資格이있고 節次가있어 까딱잘못하다가는 뼈도추리기어려운辱이나보게되고 제돈가지고도 마음껏써보지못하든 舊韓國時代로말하면 妓生이늘냐해야늘도리가없었다 大院君의豪挾으로一時妓生들이 날개를펴보았다하나 그도只今에比하면 이야기거리도 되지못한다 妓生들이하나둘 零落해가매 그들도하는수없이新時代의 風潮를좇아 新制度를펴지않으면 지내갈수없기에이르니 하는수없이 創設된것이 漢城組合 (나종에券番) 이었다이것을 所謂有夫妓生組合이라고했었다 有夫妓組合에對하야 새로히無夫妓組合이생기니 이것이곧오늘의 朝鮮券番의前身인茶洞組合이다 이茶洞組合은 故宋병준伯의後援으로平壤妓生들이中心이되여 組織된것이니 妓生豐年은 이때부터들기始作을해가지고 大正六年頃에이르러 그絶頂에達한거이다.

組合이생기고 妓生房에노는 節次가깨지고 외입하는法이스러지니 이제는 아모라도料理집에가 돈만내면 妓生을불너놀게되였으며 妓生되는資格을뭇지않게되니 行廊어멈의망내딸이라도 뜻만있으면 빨내방망이를내던지고 양금채를잡을수있는 만만한世上이되고마렀다.
世上이아모리亡했기로 江놈이다 妓生을다리고노라!
漢江富豪의아든님한분이 妓生노리터지는 김에 얼나좋구나 妓生모리를해가지고다니는꼴을보고 어느늙은別監한분이悲鳴 을吐했다 그러나 그야말로 時代에뒤떠러진분의 잠꼬대소리以上의 값없는嘆息이었다.
어쩌면 歌舞라고는 땅김도못하는계집
애들이妓生이라고 나슨단말이요
平壤서올나온 벙어리妓生을보고 기가마켜서 어느老妓는 앙 가심을썼다 그러나 收入으로 人氣로 그사람들이돌이어 優秀한地位를차지하게되니 十年積功을하야 名妓되기를꿈꾸든 그의가슴이야 얼마나 쓸쓸하였을것이랴

妓生노릇을 아모나마음대로 할수있게되었다는 所聞이나자 地方에서 一躍洛陽의 名花가되고자모도여드는 妓生이뒤가끊이지않었고 妓生외입은돈만가지면 마음대로할수있다는통에 地方외입장이들이 또한땅파러라논파러라!돈을맨드러가지고 京城으로集中케되니 마치 큰貯水池의 水門이나열닌듯이 妓生과외입장이들이 서울로서울로몰려들기를始作한것이다 이로因하야 料理집이늘고 高利貸金業者가橫行을하야 父死後出給이라는 票를받고 三割引四割引의빗을주는者까지 생기기에이른것이었다 大正初期에 한참성풍하든 花柳界는 다시 大正八年에이르러 萬歲事件의 影響을받어 기우러지기를 始作해가지고 요사히에와서는 量은많으나 質은나저지고 總收入은많으나 個人別로보와 뛰어난收入을얻지못하는 至境에 이르러
큰돈잡겠다고 妓生되는년은 속못차리는년이외다.
소리가 그네들의입에서 나아오기에이르렀다 女學生風의妓生! 洋式에드러맞는妓生!流行歌나부르고 딴쓰나하는妓生 이런存在가귀염을받고 돈좋와하는妓生보다 戀愛잘하는妓生이일흠이나게되니 대관절 어느겨를에돈을뫃을수있으랴 妓生에게사랑을吹込한짓구진친구야말를 오입장이의救世主요 妓生어머니에게百年원수되기를 면치못할것이다 五百名妓의버는收入이 前日黃金時代에 百名이버는收入엌 百愛잘하는게 當局者의말이다 所謂봉이없어젔다 봉이모도몇마리나있었는지모르나 先다 기를 면치모조리잡어족치고 이제는겨우 『닭』이나 『비들기』축이 이구석저구석끼웠하는 퍼득퍼득날개짓을하니 신에붙을리가있나 게다가 돈냥 이나가진외입장이라도
사랑을하자
돈이야기는 악마들이나하느니라
敎會에가서나 드를줄아렀든說敎를 느러놓으니
돈을주시요
소리가차마나오지를않는다 이리하야오늘의 花柳界는 黃金時代를거처서 한풀 기우러가지고있는形便에있으니 마치씀바구할미꽃은 다날거바리고 금잔디만 나란이푸르러있는 늦인봄의 草原과도같은늣김이있는것이다 花柳界의 今昔盛衰의자최를 여긔서부터 더드머올나가찾기로하자

第一篇 옛날花柳界風景

옛날의花柳界!한참妓生이貴할때에는單일곱명이있을때도 있었다한다.
高宗때에이르러 大院君이 妓生외입장이를두던을하게되니 외입장이의豪氣 妓生의志操는高調되여 藥房에二十二人 尙醫院에 十九人이라는 最高記錄을 이루게되었다. 本是나라에서 妓生을두시게된것은 宮中에서심부름식히시자는것과 歌舞를御覽하시자는게 目的이었는지라 制度가 極히嚴正해서 한치한푼의그릇을 許하지않었으니 그럼으로 妓生宰相이라는 말까지난것이다.
×
妓生은尙醫院에所屬되여 五日交代로宮中에番을든다. 그럼그네들의하는일은 무엇인가 그네들은 尙醫院에서 침놋는法 看護하는法을배운다 簡易醫術을배호는한便으로는歌舞를練磨한다 歌舞는 宴席에서 御前에서쓰지만 그러면 醫術은배워무엇하느냐 녯날의漢醫에게 診察을받을 때 兩班집婦女들은 내외를하는關係上 명주수건으로손을싸고 미다지틈으로 손만내민다 그러면 醫師는겨우 면주수건틈으로 손끝을너허 脈을집허서 藥方文을내어왔다 私家에서도이렀커든 宮中에서 一國의皇后되시는어른이 미령하시게되면 도저히 사내醫師를가까히할수없음으로 이번에는 명주수건으로손을차고 脈을집는것도不敬하다해서 실로 앵줄을동이고 그줄을 門박으로 꺼러내서 醫師는 그 『실』의움즉임을살펴갖이고 藥方文을내게된다 이러고보니 當時醫師로보아서 요사히의注射以上의 卽效를보고있든 침을놋는데야 어찌손을대지않고는 아니되겠으며 몸을두스르지않으면아니될때에 큰일이나겠으니까 尙醫院을두어서 醫女를기르시게된것이요 尙醫院에서 年功을닥근妓生은 곧 宮中에設置한藥房에 일홈을거러 一躍至尊에 가까히뫼시게되는榮光을입는것이다 그럼으로妓生의 祖宗은藥房妓生이요 藥房妓生은 尙醫院出身이라야된다 그럼으로 藥房妓生은 尙醫院妓生더러허게를하고 尙醫院妓生은 또그지차되는 惠月署妓生이나 工曹妓生들에게 허게를해서 그階級과等位가 分明해있었다.
×
惠月署와 工曹에서妓生을두게된것은 大院君의豪협을좋와함을긔화로 억지로까닭을부처 妓生을늘인것이니 그數도 적지않다 한참 많을때에는 八十名까지 있었다한다 宮中에들면 至尊을뫼시는 그들도番이나서 집에도라오면 妓生노릇을하지않으면 아니되었다 그때의妓生에는 모조리 『서방』이라는게있었다 그리하야 假令金一先이라는別監이 春桃라는妓生을다리고살면 妓生의姓은부르지도않고
金一先의春桃
라부르고지냈다 妓生서방이되여 오입장이로활개찟하는 別監이나 그러치않으면宰相家의 청직이들도 외입경위와 사내다운데 目標를두고노든사람들이라 決코 구접스러운 돈튀정이나 구역나는배 장을부리는 求景은하지를못하는판이었다 그때의妓生집에는 놀러가는사람의 資格이作定되여 兩班이아니면 드나들지못하였으며 아모리 드높은兩班이라도 외입경위에 틀닌짓을하면 뭇매를마저도 어듸다가呼訴를못하는판이었다 여긔에대한이야기가있으니 이제로부터 四十余年前일이라고한다 김진복金進士이라하면 오입장이의最高權威로 雲峴大監과 雌雄을다토는 豪傑이었다 그때의藥房妓生으로月仙이라는 美妓가있었는대 漢江富者외입장이가 항상그才色을흠모하나 지체가江사람이라 敢히 맛날도리가없어서 가슴을 조히든끝에 생각다못하야 金進士를찾어보고嘆願을하였다 金進士역시그에게 同情하는마음이드러 하로는넌짓이 月仙이를불러 아모도모르게 江富者와하로노라주면 謝禮는千金을아끼지않겠다고귀틈을했다 그러나 月仙은 그자리에서 正色을하며
그렇게千金이탐이나시거든 進士님좋와하시는妓生이나 부치십시오
하고발바당으로 避身을해와버렸다 이所聞이나자
月仙이는名妓라
는소리가長安에들리게된것이다 千金이라면 只今의 千圓이아니다 그때돈千兩이면하늘이안다는큰돈이다 그러나 돈에눈이어두어志操를팔수없다는 그氣品이야말로 沈順愛가들으면 부끄러워 낯도들지 못할高潔한맞이있지않은가
모든움직임이 하나에서열까지
사나희다운 외입장이
지조있는 기생
이라야되는판이다 기생들은말한마듸 의복한가지 몸짓한번을 마음대로 해보지를못한다.
기생물한그릇주게
외입장이가 정중이입을여렀다

대답이끝나자마자 물을드려왔다 그물이만일냉수라야지 따듯한물을 위해서자시라고 숭늉을 내놋는날에는 그기생은 그자리에서 숙늉벼락을맞게된다.
기생 내가언제배가곱흐댔나 밥찌꺼기가 왼일이야 아니꼽고 배지못한년다보겠구나
험구가나기시작을하면 기름이나리고 진땀이빠지고만다.
×
기생이만일 문의놓은비단옷을입고 금패물을갖이못하였다면 또시비가난다
이년아 주제중뽈나게 금패물도없는년 이문의노흔옷이라니 당치않다
호령이나리는날이면 그옷은 갈갈이끼찌고 마는날이다.
×
기생의집에서 청둥화루나 장작이쌓였으면 시비가난다.
이년아 외입장이쌈부처놓고 화로안담 이에 장작찜질하는 구경이나하랴고이따위것을 모도 느러놓았으냐
당장에 벼락이나린다 오입장이들이 방안에가득히앉었으면 피차에 사나희노릇을하랴고 경위닷홈 호긔닷홈이 끝나지를않고 그러다가는 반드시 매질이난다 한달에도 몇번식 依例히이러나는싸홈판에다가 장작이니 재떠리니 청둥화투이니 노와두는것은 마치 戰場에다가 武器를느러놋는거나 다름이없다는것이다 그럼으로 妓生집에는 질화로한개 목재떠리한개 나무는반드시닢나무를때고 妓生은 세간을작만해야 밤낮박살이나겠으니까 대속고리에다가 出入衣服을넣어서 천장밑에거러놓았다가 쌈만나면 그것이나떼가지고 逃亡을하게되었으니 얼마나妓生노릇하기가 힘이들었으랴.
×
金패물이없으면 紋놓은비단옷을입지못하고金패물이없으면 銀비녀에 紋을아로삭여꼿지도못한다 이것은그때 그네들에게는 鐵則이었다 그때에妓生의 四節衣服가음을보면
一月 숙수·국사 七月 은조사
二月 관사 八月 생수
三月 여의사·길상사 九月 순인
四月 숙인 十月 여의사·길상사
五月 생수 十一月 숙수·국사
六月 당황나 十二月 모번단
妓生이철을찾어서옷을입지못하면 낯을들고 門前에나스지를못한다 萬一 호사한동모妓生의옷을宴席에서 만저보거나 패물을부러운드시바라만보아도
妓生 추접스럽게 못입으면 못입은대로있을게지 구축축하게 남의옷만저보는것은머야
소리가난다 그때의妓生生活은마치 仁聞學의修女와도같은 무시무시한경위와 規律에 매여있었다는것이다.
그러함으로 아모리妓生이라도
잡년! 구축축한년! 덜떠러진년!
소리를듯는날이면 妓生노릇은 막음하는날이었다 요사히같이 오입장이가 돌이어妓生의보비위를해서야 어는밋친사람이 사나희중에도 사나희가내로라하고 큰소리치고 외입을할마음이나먹겠는가 그代身名妓가되는데도 人物이곱다거나才操가좋다는것이必要치않은것은 아니였겠었지만 그것보다도 志操와言行이읏듬가는것은 勿論이었다.
妓生房에서는 別監이上座에앉는다 別監만들어스면 滿座한외입장이는죽은듯이 잠잠하여질만치 別監의勢力은크다 藥房妓는 대개別監이다리고산다 그럼으로 妓生을다리고사지않는別監을 호라비別監이라부른다 妓生房에 놀러다니는別監은 호라비別監들뿐이다 妓生다리고사는 別監들은 自己가妓生서방이라는 關係上다른妓生房에도 出入을사양하게되는것이다 別監에도上下가있어 上下를가려서 아래목으로느러앉어놀게된다 『비취』라는十六歲의어린妓生이새로나서매오똑똑하다는 소문이났다 호래비別監들이 놀러갔다 上座에들어앉어서 수작을할때에 손아래別監이 연해 妓生말을식히니 비취가 말대답을제법잘하는지라 손위別監이 물그럼이보며
別 妓生 매오똑똑하다
妓 똑똑히 보아주시니까 똑똑하옵지요 손아래別監이곧말뒤를이워
別 흥 내 담배대만한妓生이 매오영리한데
하였다 이소리를들은 손위別監은낯빛을고치며
別 이사람아 아모리妓生을야짭아보아도 분수가있지 키가 담배대기리밖에는못된다니 當한말인가 妓生일어서서 저담배때와 키를좀대보와라 萬一조금이라도 키가큰날 이면 손아래別監은番드는길로 큰게맞을줄아라라.
이소리를들은 『비취』는낯빛이파래젔다 아모리키가적다하기로 담배때보다클것은事實이오萬一 키카크기만하면 손아래別監은 上官에게매를맞겠으니 이럴수도없고 저럴수도없다.
別 아! 어서 키를대보아라
소리가커젔다 비취는 가만히일어서 別監이세워놓고 기다리는방한복판으로 나아가 담배때와 키를대었다.
意外!
비취의키와 담배때의키는 一分도틀리지않게 똑같았다 房中은겨우숨을돌렸다 손위別監도깔깔웃으며
別 허참똑같고나 내가실수했다 고만두어라
일은여긔에끝났으나 그날밤으로 비취가名妓라는 소문이높았다
왜?
비취의키는 決코그렇게적은키는 아니었다 다만비취는 림긔응변으로 허리를굽히고다리를오무려 담배때키와 똑같이맨든것이다 이光景을본 손위別監도그의奇智에 感服하야 속은줄알면서도
실수했다 고만두어라
소리를했든것이다
×
嘉禮가계시거나 北宮에서 西宮으로移御를하시거나할때에는 반드시그行列. 妓生이끼운다 그때의妓生은곧 只今의衛生班과같은資格으로 行列에끼우는것이었으나 그 『호사』에이르러서는 世上에妓生으로났다가 한번끼우지못하면 妓生된보람이없을만한 光榮으로알어왔다 花草馬에다가 고흔안장을 언저서 비단으로 아래우를감은 馬夫를앞세우고 唐衣잎고전우쓰고 眼鏡을버텨쓰고 나스는 맵시라니 그야말로 꽃과같고 나비같이 곱고빛났든것이다 그러나여긔한번끼우랴면 돈이넘우드는터이라 돈없는妓生은 뜻은있어도 차비를못차려 걱정을하게되면 오입장이들이 돈을거두어 내세우는일도있다 이와같이 宮中에들어가서는 國婢의重任을같고 나아와서는 경위와豪挾의 鍊磨를받는것이곧 옛날의妓生사리이었다.

第二篇 오늘花柳界風景

오늘의花柳界! 누구나다 잘알것이다! 그러나 서울의花柳界를모르는분에게 이야기하는세음치고 몇가지적어보랴고한다.

오늘의妓生은 그네에게서 特長을찾으면 職業化하였다는것이다 꿈쩍해도돈이요 덜석해도돈타령만하든 黃金時代와때가다른지라큰돈을잡거나 法에없는돈을글거뫃으랴는게아니라 時間費로살어가자는 職業的意識이날카라워진데있다 그럼으로 十年前妓生 모양으로 외입장이를 집에다가몇달식묵혀가며 땅팔니기만기다린다든지 아버지가찾어갈때만기다려 한목몇千圓몇萬圓식먹자는 생각보다는 돌이어 每日밤 노름에나잘나가 時間費나한푼이라도 더벌겠다는게大勢인것같다 인제는큰돈을쓰랴야 쑬돈이없다 술사람이없는데야 어찌하랴 있드라도 턱없이많이내노라고하지를않으니 숫제時間費나 또박또박받어모는게 第一이라는생각이들게된것도 無理는아닐것이다.

또한가지는 『카페』의進出이다 女給의洪水이다 一圓의팁만주면 몇時間式술따르고 무릅에앉고 못익이는체하고키쓰도받어주는 女給을두고 누가애써서 한時間에一圓三十錢式주고 그우에人力車삭까지드려서 주짜빼고드러오는 妓生아씨를 모시고 놀랴고 하겠느냐
그래도女給과는달느지요 歌舞가있지않소
하는이도있을는지모르나 請컨대 요사히의 노름깨나다니는 妓生들을뫃아놓고 그들의 經歷을調査해보라 춤工夫노래工夫를제법똑똑이했다는 妓生이몇사람이나되겠는가
이애 時調한마디해라
섯부르게 請을했다가는
퀴퀴하게 그까짓 다썩은소리를 누구더러 하라고 하시오
핀잔쯤은例事로나올것이다 기껏마음내켜야 레코-트에서 배혼 流行歌나몇마디을프고 춤이나추려면 蓄音機를드려오래서
「오늘밤에 사랑해주서요」
짜쓰나틀고 社交춤이나추자고 가슴에안겨 들다가
망측스럽게 이게무슨짓이냐
고正色을해보라! 반듯이
아조葉錢이로군!
입을빗죽! 어깨를읏슥! 그꼴이라니 손님이妓生에게돈을받고 불려와서 노는가싶은황송한생각도들게될것이다 洋머리에 구쓰신고 料理집出入을하는妓生도생겼다나는
學校에다니다가 今時에妓生이되었으니 소리는시키시지도마시오
미리발뺌을하고들어서는妓生도있다.
소리는무슨소리를시키오 이야기나자미있게하고놉시다.
입심으로 돈을벌랴는 女丈夫도있다 그야말로요사이의妓生을 뫃아놓고본다면 果然妓生 다운妓生이몇名이나있겠는가 그야말로 행랑엄마의딸!女學生미끄러진것! 카페에서뛰어든것! 시집갔다난봉난것等等別別種類의 女性이다많을것이다 自古로 三代가妓生이면 妓生門閥로는으뜸이라는 소리가있다 妓生의딸이妓生이되면 歌舞는어려서부터싫여도착실히 배왔을것이라는데서 나온소리다 요사이의 妓生券番은純營利主義에지나지안는거다 어듸서무엇을하다왔든지 歌舞야있든없든 어쨋든妓生만느는게대견해서 아무나받아드리는弊風이있어서 이같이妓生의터전은 어지러워지고 낮어지고만것이다.

이년아 所謂妓生년치고 노래한마듸못하는년이어듸잇니
손님이꾸지람 이나한번해보는날이면
온 身勢가亡해서 妓生노릇이라도좀해먹겠다고 나섰드니 별아이꼬운놈에게 『년』소리 까지 듯네 여보당신의 時間費 아니받고 가면고만이구료
낯빛이 붉으락 푸르락해가지고 事務室로 나아가 버리고말것이다.
저런天下에 건방진년!
호령을대받아했다가는
이놈아 누구더러욕이냐
마주덤빌것은 묻지않어알일이니 어느누가 敢히妓生아씨를꾸짖어보며 버릇을가르켜보겠는가 노래못하는것을 부끄러히알았으면 처음부터 妓生이될생각을먹었을리가없으니 그들이뻔뻔스러이구는것을 뒤늦게 가릴것도없지나않을가한다.

그럼누가 花柳界를이모양을맨들어놓았는가 누가妓生의값을 이렇드시 낯후어놓았는가 비록世態가바꾸인만큼 모던妓生도必要하고 歌舞보다도 人物이나 몸을팔기를 爲主하는妓生이 생기는것도 막을수는없는일이라하겠으나 그래도 妓生다운妓生의根據는남아있어야하지않겠는가 朝鮮의 『춤』朝鮮의 『노래』를 이어가야할責務가妓生에게있다하면 어찌寒心치않겠는가 京城妓生 南道妓生 西道妓生의 세勢力이京城의集中되여 彼此에겼고틀고 손님닷홈 써비스닷홈하는이판에 어느틈에노래를배호며 춤을배호랴 요사히 절문손님들의目的은 오직 妓生의 얼골에있다! 얼골만고흐면第一이다 하로밤의노리개가되여주면 感謝하다 妓生에게미처서쫓아다니는 절문이들의꼬락신이를본사람은 요사히 妓生道의나저진原因이 妓生그들에게있지않고 소위귀먹어리외입장이들에게있는줄을잘알게될것이다.
소리못하는妓生을 벙어리妓生이라한다 소리들을줄모르는외입장이를 귀먹어리 외입 장이라 한다.
손님이귀가먹었으니 妓生이벙어리인들상관이있겠는가.
노래나한마듸할가요
妓生이 마음이빗두로꼬처 同情을하면고만 손을설네설네 흔들며
아서아서 남이자미나게 이야기하는데
平壤서갓올러온 털복숭아만한妓生을아래목에다가파무더놓고 무슨이야기인지 속은거리고있다. 요사히의 외입장이는 이렇게놀면 만족해하는귀먹어리 肉體道의勇士들뿐이다 興이니멋이니 하는수작은솔개에게 채워바렸다는드시 妓生이라고보면 今時의 그입살을노리고 그가슴을였보고나종에는
죽여주 살여주
하니 누가妓生노릇을못할것이며 소리식히는손님을 돌이어글르게역이는게 무엇이이상하랴

그나그뿐이겠는가
南原서妓生이하나올라왔는데 歌舞가똑똑하다는데......
소리가나면 반가워하는사람은 放送局演藝部뿐이요 궁금해하는이는레코-드會社 文藝部員에지나지않을것이요 萬一
요사히 ○○女學校다니다가 무슨事情이 있어서妓生이된 아이가있는데 참 똑똑하고숫북이데 소리가나는날이면 그야말로 너나할것없이 아우성소리를치고 덤벼들것이다 이같은판에서 志操는다무엇이며 豪氣는어듸다쓰고
妓生 버릇좀배라
소리는 누가敢히하겠는가 더욱이일본내지손님들이 朝鮮妓生을만히찾는 關係上券番에서朝鮮소리는못가릇켜도 일본내지노래는先生을안치고가릇킨다 국어 을할줄안다는 그것한가지로 일본내지손님專門의 노름을받어 돈萬兩이나 몽거린妓生이있으니 이것이야말따나朝鮮에서나드를이야기일것이다 目下의形勢로는 京城의花柳界는 平壤妓生이리-드하고있다고볼수가있다 그네들은 사람이맑고아양이무르녹고 손님의하자는일이싫든좋든드러가며 어쨌든돈버는게수이다 몸동이니밋천이니 밋천아끼고무슨돈을벌겠는가 悲壯한奉仕主義의 信徒가되여있는이만콤 손님들이즐겨서부른다 요사히도뒤를이워 서울로서울로 올나오는平壤妓生은 올라만오면 노름구녁을뚤코이러스니 이통에 서울妓生들은 사람이 너모염치를차리고 성미가팔팔하고 참을성이없서서 마츰내제고장의 노름을뺏기고 적은都市로遠征을나아가는 딱한事情을격고있다 妓生의길이이같이 땅에 떠러지매 나종에는 新町娼妓로있든 美人이妓生으로 나오는至境에이르렀다.
인제는 妓生과娼妓와同席이되였군
嘆聲을發하는사람은 나깨나먹은妓生들-나젊은妓生들은 주먹을쥐고 加入을反對하였으나
그럼너의들은娼妓보다 낳은點이무엇이냐 志操나歌舞로써견우어보아라
소리가나매 그들은 그자리에주저안저서다시아모소리를못하였으니 그네들은 自己네가 娼妓보다特히이點이 妓生답소! 하고 내세우랴야 노래를배왔나 춤을배왔나!고만다시는아모소리를못한일이있으니 이것으로써 京城의妓生의값이 얼마나 헐하야진 것을알수있다 이에對하야한마듸할것은 妓生을모조리 없애바리거나 그렇지도못하겠거든 警察當局과 妓生券番과 聯絡을해서 妓生의資格審査會를두어 妓生노릇을할만한歌舞와身分이있는사람만을골나 許可를해주지안코는 妓生다온妓生을 차저보기어려워지고말것이다.

第三篇 時流에빗긴花柳界

世上에 눈빨은사람은 平壤妓生이다 世上이바꼬여서 妓生制度가어지러워지고 옛날같이 말성스럽지않어질눈치를보자 그네들은 後援者를求해가지고 곧 無夫妓組合을뫃았다 이것이곳 大正券番의前身이요只今朝鮮券番으로된 茶洞組合이곧그것이었다 이때껏妓生들에게눌리고 외입경우에막혀서 妓生房을기웃거리기만하던 외입장이들이洪水같이밀려들어부어라마시자 논팔아라 밭팔아라!하는통에 朝鮮의富者는 다-亡하나부다싶든 大正六七年頃 외입장이浮浪者사태가나서 석달에 三十萬圓을썼느니 하로에千圓을썼느니하고 야단이났던것이다 이판에도 마음맑은서울妓生은 돈맛도못보고 南山골샌님格으로 별르고만있었다 茶洞組合에몰렸던南鮮 西鮮妓生들이 돈打鈴을할때는 世上이 어찌나어수룩했든지
父死後出給
이라는證票를써놓고 富者집아들들이高利代金業者들에게 돈을얻어쓸수가있었다 그代身 票에萬圓이면 六七千圓밖에는 못얻어쓴다 그돈이나마 空것같이 찾어다가 물쓰듯하였으니 여긔서부터 花柳界의 古習은 자최조차없어지고 妓生들은
돈이있는놈이면 누구든지좋다
主義로덤비고 오입장이들은
歌舞는두었다보자 人物이첫재이다.
主義로平壤妓生만찾게되니 平壤監事되기를 一生에 所願하든 老人들에게는꿈에도생각될수없는 꽃다발이다 平壤妓生은 平壤가서나 볼줄알았던 그들의눈앞에말잘듣고 싹싹한美妓가 百年情이나든드시 생글생글웃고안겨드니 오장인들못빼주며 육부인들아낄까보냐 이리하야한참동안 京城은 平壤妓生의 天地가되여있었다.

妓生을 우리가再認識하게되기는 다시말하면「나도사람이요」! 소리를지르고「朝鮮의妓生은이렇다」는 활개짓을社會에내세보기는 高宗國葬때이다 그들은一齊히素服을입고 大漢門앞에伏地哀哭을하야 世上을놀래었다.
妓生이라고 업수히여길것이아니다 妓生들도제법이다
는소리가나기를始作하였다 料理집에를가도素服을입고가고 學生손님을맞나면
여보시요 지금이 어떤때이라고 工夫는아니하시고 놀러만다니시요
눈물겨운忠勸을하야 華客을쫓는妓生도 생겼다.
갈돕만주!갈돕만주!
겨울밤에 외치고다니는 苦學生들의 만주를 사주는 同情者中에 꽃같은妓生이많다는소문이난것도 大正 八九年頃일이다 이리하야 萬歲事件이일어나자 妓生의存在는 새로운色彩를 靑年들의가슴에 비끼워주게되고말았다.
妓生도工夫를해야한다
妓生도結婚을해야한다
마치妓生이라는 딴나라에 따로사든겨레가 새로운生涯나憧憬하는듯이 이것도합시다! 저것도합시다! 말이많고 熱이높아지게되었다.
그거妓生으로는 奇特한계집이다.
고東京으로留學을보내는 志士도나타났다.
나는죽어도 뜻있는靑年과 結婚을해서 살아보겠다.
고니를악물고斷髮을해가며 愛人의품으로다라나는 女丈夫도나스게되여 그야말로 革新의바람은 花柳界를 휩쓰러내니 딸의몸둥이를 마치 돈미천으로만믿고바라든 妓生어머니의 長嘆息은끊일날이없이되고말았다 妓生名士가나고 妓生慈善家가나고 妓生留學生이나고 妓生夫人이 생기니 이때까지 妓生은 사나이들의 등꼴을빼는毒蟲이라고 咀呪하든社會에서 多少의 同情을보내게되매 妓生自身들도이때껏손님의주머니를터러서 살어왔으나 그렇게도 하기가거북하게되어바리고말았다 이로因하야 妓生의이름은높아젔으나 주머니속살림은점점가부여워저가기에이르고말았다.

사랑하는사람과 같이사는데 몸값이당하겠소
몸값없이 살림을들어가는妓生이났다 이때껏 단벌妓生노릇을할때에는
살림을떼시랴면 몸값을무러주서야지요
妓生이내놓든것을
妓生에게도人格을주오 우리도남같은사랑을할수있는 當當한一個女性이요
소리를지르고나슨體面에 몸값소리를할수가있겠는가 萬一어름어름몸값이나 달라는날이면 당장에 얼굴에침을배앝으며
예끼 더러운년 亦是妓生이었고나
소리를지르며 百年을契約한 사내는가버리고말것이다 이로因하야 돈이나벌면 第一이다는主義를갖인 지차妓生들까지 受難을하야 玄桂玉 姜香蘭 丁琴竹等等몇몇名妓를내놓은外에는 大體로花柳界는 景氣가기우러지기始作을하였다.

萬歲以後에 妓生들의大敵은『女學생난봉』들이었다.
마음에없는안해를 父母의强壓에못이기여 맞이해사는靑年아 손목을잡고일어나자!그 리하야 斷然히 이苦痛가운대서우리白身을救해내자
이같은부르짖음가운대에 離婚의悲劇은뒤를이어일어나고 集會의自出를얻은 靑年男女들은 팔을걷고 몰려다니는통에 戀愛의불작란은到處에일어나 한사람 두사람 몸을 그릇처 그늘속의落花들뿐이었다 强制結婚이施行되는德에 家庭不和로妓生에게慰安을求하는손님이 모조리 새로운살림을한다고 女學生을求하러다니게되었다.
女學生하고 사랑을하는데는 돈안들고 좋다
소리가나기始作하니 風紀는날로어지러워가게만되고 女學校는다니다가만 女子가길에나서도 익히 女學生이戀愛하러다닌다! 고 수근거리게되니 學校다니는딸을둔父兄의누가 낯을찡기지않었으랴
女學生妾을얻는게第一이야 學識있고얌전하고 뜯기지않고
이소리가나며부터 妓生의 살림들어갈길의 八割은 所謂『트레머리』들에게 값싸게가로잘리고말았다.
大正年代를트레머리에게 蠶食을當해오던妓生들에게 昭和年代에이르러 또다시大敵이나타났으니 그것은카페요 女給들이다. 여보게新式으로놀세 카페로가서 女給하고노지 고릿탑작직은하게妓生은 다무엇인가 소리에 손님의五割以上은카페에뺏기고말았다 이至境을當한妓生들은하는수없이 女學生노릇도해보았다 카페女給흉내도내보았다 그야말로 苦心慘澹이다 그러나이것도모다가 時勢이다 流行이바꾸이고 노는사람들의 目標가옴겨가는것을 누가能히막을것이냐
김일득 (살림들어갔다든가) 유금도 리춘홍 문금자 박산옥 박점홍 김새홍 리은홍等 等
요사이한참불리는기생을 갖아놓고 그들의生活 그들의차림차림을살피면 반듯이 十分의四는 女給風이요 十分의四는 女學生風이요 十分의二는 女俳優의風이보여있음을알리라 이것이곧오늘의妓生의 標本이다 妓生이면서도 妓生같지않어야 팔리는 世上이된것이다 風流郞들의惡趣味도여긔에이르러서는 열었든입을다물기어려우나 이또한 大勢이니하는수있으랴

第四篇 別監에서券番

世上이바꼬이자 別監制가 없어지게되니 妓生을다리고있든 別監들이 어디다가依支할곳이없이되고마렀다 그리하야 그네들이 모도여가지고 뫃은뫃임이漢城券番이다 지금에는 有夫妓라고는 자최를보기어렵게되고오직當時에別監으로있든이들이 지금도券番의指導者가되여잇는것이 漢城券番의한特色이다.
그래도漢城券番인데!
하는소리를 그네들틈에서가끔듣는다 그理由는곳 傳統을이어가진 券番이라는뜻을말하는바이다 다음에는 朝鮮券番이니 別監들中의호래비別監들이 後援을하야 妓生書房들의有夫妓組合인 漢城組合이生기는데對抗하야 無夫妓組合이라는 看板을걸고 平壤妓生을中心으로하야 組織된것이니 宋병준伯爵을背景으로 氣勢를도드기에이르러오늘의 朝鮮券番이된것이니 이券番에는 斯界의元老河圭一氏가있는것이 한자랑이라하겠다 다음에는故趙重應子爵의 後援을힘입어 「시궁골」(笠井町)「상패」라고 花柳界에서第一賤待를받든 娼婦들에게 妓生이라는名稱을주어 組合許可가나니 그것이 所謂新彰券番으로 오늘의新町에있는 漢城座數組合의前身으로 當時「시궁골상패」들은 어찌나좋았든지 趙子爵의恩惠를갚는다고 一週日에한번식 찬우무골 (永樂町) 에있든趙子爵집에가서 춤을추고 노래를하기까지하였었다 다음에嶺南妓生끼리 뫃이자하여서 漢南券番이 새로생기고 京城券番이생기고 大亢券番이라고 요사히또다시생겨 目下京城에는
大亢券番
京城券番
漢南券番
朝鮮券番
漢城券番
의다섯券番이있다 妓生의時間費는한時間에一圓三十錢으로 妓生의손에는 每時間九十七錢五厘의實收入이있고 그남어지는料理집과券番에서 手數料로받으며 妓生들은母月五圓式의營業稅를 京城府에받친다

第五篇 돈잘쓴오입장이 -長安蕩財側面記-

돈잘쓴오입장이야 허구많다 그러나 일홈을날리고 멋드러지게 돈을푸러은놓오입장이를골라보자 이미世上을 떠난이도있고 生存한이도있으나 모도가 일홈을날리고 豪氣있게사나희답게 노든일이니 이제새삼스러히 숨길것도없다생각하야 다음줄로붓을옴긴다.
近年의오입장이의權威는 趙□□이라는이로 □□□□□□ □□□□□□ 勢力과金力을기우려 一時長安을휩쓰럿는데 모본단두르매기에뒤발막에 진솔보선이면 當時에 第一가는호사이엇다 趙□□은 언제든지 手下에따르는 親舊들에게까지 一齊히같은옷을해입혀서 처음보는 妓生이면 누가돈을 쓰러온사람인지 分間을못하게했대서 有名하다.
×
다음에 내세울분은 全羅富者의 아들로 아버지가죽는길로 방갓쓴채서울로뛰어올라온 金□□이라는이이다 이親舊는 三十萬圓을 一年이다못까서 톡톡터러바린분인데 그妓生시른自動車꽁문이에다가
그래도 그럴수없다
고 방갓을매달고다녔다 그래서 妓生시른自動車뒤에 방갓만달렷스면
익히 김□□이가 가는군
하기까지有名했엇다.
×
그다음에멋지게논親舊는 閔□□君이엇다 □□□□□□ 그□□□ 累萬의논문서를한손에쥐고 돈을쓰기始作했는데 마음이활달하고 경위가밝어 남의사정잘아는 오입장이었다 自家用自動車를산다 自動自行車를산다 漢江에 『모-다뽀-드』를사논다 大正五六年頃眼目으로는 모던뽀이의 氣勢를限것높여가며놀든친고였다.
×
다음에 큰돈쓴全羅道親舊로는 論山金□□이라는분으로 그는一朔동안에 三千石받는 논문서를곱게드러치운豪傑로 金剛山까지 自動車에妓生을실고 探勝을가기는이분이朝鮮의처음이었다.
×
徐□□君도 閔□□君과同期生으로 한참잘놀때에는 明月舘本店(只今泰和女子舘)에다가 軍樂隊를 끄러드려가지고 軍樂을잡히며 妓生노리를하엿다 閔□□의房에서軍樂소리가나면 徐□□의房에서도 반듯이軍樂소리가나게되야 노름노리競爭하는게한가지豪氣이었으니 이통에 □□君도三四十萬圓어치나 땅문서를 풀쑤어바리고마랐다.
×
十圓짜리 紙錢으로妓生코를씨껴서 내바렸다는 豪협男兒에崔□□君이며
내가돈을 못쓰면 누가쓴단말이요
마음잡으라는 忠告를하는 鍾路署長의앞에서 反問을해서 米國으로留學을가게되였다는□□□□□□□□□ 閔□□君도 米國가기前까지는 잘노든사람이었다 뒤를이어돈을쓴사람으로는 朴□□ 李□□ 李□□ 尹□□ 李□□ 尹□□ 林□□ 吉□□ 韓□□ 閔□□ 等等으로 林□□君은 □□□의□□□ 名妓白雲仙과의로맨쓰는 相當히 有名했으며 韓□□君은最近에 萬圓을드려朱 某라는妓生을作妾한豪傑이다 李□□는하로에漢江배노리에 八百圓을드렸다는 好漢이었으며 閔□□君은 □□□의젊은主人으로 百萬圓에갓가운財産을 十年안에모조리풀을쑤었는데 이렇다는標蹟하나남기지못하고쓴게特色이며 李□□는 돈을쓰되 남이알가모를가 돈을누가쓰는지 모르게 같이노는친고들이 낫이깍길갑아 애를써가며 노랐다고해서 아즉도 층찬이느러진친고이며 吉□□君은 □□□□의□□□ 旅行질기고 모양내고 樂器좋아하고 國際戀愛에 興味가깊어 가장洗鍊된新式오입장이의 巨頭의한사람이었으며 美人을많이갈어내기로는 朴□□君이一流이였고兩班자랑을해가며
내양반이 大院君만못하겟나
큰소리바람에 돈十萬圓이나 없샌친고로는 李□□君이있다 이들이돈을쓴年세는 大部分이 大正四五年붙어 九十年까지인데 特히注目햘點이있으며 이後로는이렇게 돈을 쓴사람도 이렇게 멋드러지게노라본사람도 없으니 이런意味에서 이時期를 花柳界의 景氣의 絶頂으로 보겠으며 고비를넘고나니 고만 다시꼼작할힘도精神도없다는것이 요사히의 오이장이들일것이다.

第六篇 돈모은妓生아씨 -流行妓點考-

돈잘번妓生이란 그리흔치못하다 요사히 金山에서돈을파다가쓰는분하나이 張錦香이란妓生을띄어드리드니 京城附에千圓寄附를 식혔다.
익히張錦香이가 아마돈벼락맞는가
하였드니 알고보니 그뿐이라고한다 千圓을 寄附하기에 十萬圓은생겼는가했드니 그렇지도못한모양이니 그러고보면 벼百石이나하는妓生까지도 돈모은妓生이라고할수밖에없다 그렇게친다면
崔蟾紅 崔春紅(春景園主人)金玉嬌 (天香園主人) 金珊瑚珠 李蘭玉 金三珠 李蘭香 宋 蓮花 朴芙蓉 吳小江 金翠紅 玄梅紅 朱山月(孫義庵夫人)
等이겠으며 大槪가남의夫人된이가많으니妓生적일홈으로容恕를바란다 昨年一年中에 第一노름채만이번妓生으로는 二大券番인 漢城朝鮮두券番에서 發表한바에依하면
漢城에 金珊瑚珠
朝鮮에 金月色
으로四千時間以上式버렀다하니 돈으로換算하면 五千圓돈이넘는다 道知事月給보다훨신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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