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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의 무용과 포부를 듣는 최승희, 함화진, 송석하 정담회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최승희의 무용과 포부를 듣는 최승희, 함화진, 송석하 정담회 崔承喜의 舞踊과抱負를듯는 崔承喜,咸和鎭,宋錫夏鼎談會
종    류 좌담 座談
필    자 이갑섭 李甲燮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41-05 昭和十六年五月
면    수 250 250
기사
[사진1․2․3] 咸和鎭․宋錫夏․崔承喜

-三月三十日 半島호텔에서-

李 바뿌신데 이렇게들 와주셔서 感謝합니다. 崔承喜씨가 舞踊를 世界에 紹介하고 돌아오신것을 機會로 朝鮮樂의 最高權威이신 咸先生과 그러고 또 宋先生, 이 세분을 모시고 暫時동안 이야기해줍시사 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아모 제한은 하지않겠습니다. 自由롭게 얘기해주십시요 時間도 바뿌신것 같으니 即時 始作하기로 하겠습니다.
崔承喜 (웃는다)
宋錫夏 언제 東京에오셨죠.
崔承喜 十二月五日에왔습니다 滿三年째에 돌아온셈이죠, 昭和十二年인가요 十二月末에떠나서 昨年 十二月初에 돌아왔으니가 꼭 滿三年되는셈이지요.
宋錫夏 十二 十三 十四(손으로꼽으며) 그렇게군요.
咸和鎭 西洋가셔서 民俗舞踊 鄕土舞踊를 主로하셨겠지요?
崔承喜 프로그람을 대개 세종목으로 나우었었에요 저는 원악 朝鮮舞踊에는 조헤가 엳습니다마는 첫째는 現在에도 남어있고, 재래도 해오든鄕土舞踊 民間舞踊等을 다시 舞臺化시킨것이고요 둘째는 테-마는 朝鮮것인데 現在에는 舞踊化되지 않은것을 제想像力으로 (이메지네이숀)으로 이렇겠다하고만든것 그러고 또하나는 全東洋的인것 즉 內地, 支那, 朝鮮, 印度, 에있는것에서 얻은印象이나 感想을 가지고 만든것 대개 그렀습니다. 그러니가 全東洋的인 舞踊, 鄕土舞踊, 宮廷舞踊, 民俗舞踊 그런것을 기초로하고 創作한것 또 한가지는 例를들면 초립동이니 天下大將軍이니 하는것이면 초립동이는 초립동이의 까부는 느낌이라든지 天下大將軍의 『感じ』를 이메지네이숀으로 現表하는것이지요 이런것으로 이번에 西洋에서 했는데 그사람들은 처음보는데도 불구하고 잘알어요 印度춤보다 朝鮮춤을 그사람들에게 알기가 쉬운 모양이에요 朝鮮춤이라 는것은대개가 흥에겨워서―다시말하면 感情的이 아니에요 喜怒哀樂의感은 코스모폴리탄한것이니까요 國際的으로 共通되죠?
咸和鎭 그렇겠죠.
崔承喜 西班牙舞踊하고 露西亞舞은 世界的으로 有名하고 포퓰라한것인데요 이것이 포퓰라하게된것은 흥에겨워하는 感情的인 要素가 많은까닭이죠, 이런點에서 朝鮮춤도 西班牙춤이나 露西亞춤에 넉넉히 따러갈수가 있겠세요 저는 硏究도 부족하고 아직 미숙하니까 그렇지만 점더 훌률한 사람만 있다면 確實히 쎈서이슌을 일으킬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中에서 『보살춤』이라든지 「傳統的리즘」이라든지 퍽 평판이 좋았세요 보살춤이라는것은 下體는 그대로 두고 主로 손과 上體를 놀리는 것인데요 上體만 가지고 하는것에는 西洋사람은 東洋사람보다 훨신 못합니다. 그래서 보살춤이 問題도됐고 評判도 좋았세요.
咸和鎭 獨逸에도 가셨든가요?
崔承喜 南獨逸은 갔어도 北쪽은 못갔습니다.
咸和鎭 瑞西에는
崔承喜 안갔세요. 佛蘭西, 白耳義, 和蘭等에主로 公演을 가섰습니다.
咸和鎭 前에 桂貞植氏가 獨逸서 學位論文을 쓰겠다고할때 西洋音樂에다가 朝鮮音樂을 연결시키겠다는것이 論文의 主題였는데 朝鮮音樂을 參考로 하겠으니 레코-드를 보내달래서 보낸적이 있었지요 그러니가 瑞典이나 獨逸같은데서는 或 짐작하는 사람이 있었을는지도 모르지요.
宋錫夏 『엑켈스』라는사람이 朝鮮音樂을 發表한적이 있었지요.
咸和鎭 아, 그것은 論文입니다. 그사람은 發表도하고 講演도했습니다. 李玉職에와서 樂器도 구경하고 듣기도하고 硏究도 많이했습니다. 至今 그사람의 論文이 伯林大學博物舘에 있다드군요.
宋錫夏 또 『모우리스, 쿠-랑』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咸和鎭 그사람의 論文을 國語로 번역한것을 읽어봤는데 모순이 많이있습디다. 여러해 연구는했는데……
宋錫夏 和蘭公使館의 通譯官으로 『크릭크』란사람이 있었는데 朝鮮音樂을 참잘아는사람이겠죠 漢文을 여간 잘하는것이 안예요 琴에다 箴을 漢文으로 썼는데 참 잘썼세요 朝鮮사람은 딸치못할것입니다.
咸和鎭 나이도 어렸죠.
宋錫夏 三十가량 됐을가요. [사진] 좌담회 모습(송석하)
李甲燮 이것은 아주 通俗的인 質問입니다마는 저는 이런생각을 해요 崔女史의춤이 정말 그사람들이 理解하고 그러는것인지 또는 好氣心으로 그러는지 그런 疑心을 갖게됩니다.
崔承喜 네, 그런말을 가끔 듣는데요 거기에對해서는 저는 當事者니만큼 생각도 많이해보고 注意도하고있습니다 처음에 東京서 公演을하든때 大端히 평판이 좋았지요 그때 저도 이것이 신기하니까 好氣心으로서 그런것인가 아닌가 생각도하고 一般으로도 그렇게 생각도했든것 같어요 好氣心으로 그랬다면 앞으로 二回, 三回할수록 評判이 나뻐질것이고 評判이 좋아진다면 眞價가있는것이라고 생각했세요 그림도 처음볼때에는 좋든것이 두번 세번 작고보면 싫어지는것이 있지 않어요. 그래서 진중히 해야겠다고 朝鮮에 나올때마다 鳳山탈춤이니 「산대도감」이니 各地鄕土舞踊等을보고 미숙하나마 퍽애를 썼세요 그랬드니 二回, 三回, 四回, 다 評判이 좋았세요 그것음보고 好氣心이 아니라는 것을 저도 自信을 얻었습니다.
西洋서도 大衆들속에는 好氣心으로 보는사람이 얼마간 있겠지요 그러나 舞踊愛好家나 批評家들은 「안나, 파브로바」니 「이사도라, 당캉」이니 「아루헨티-나」이니하는 世界一流의 舞踊家들의 춤을 늘 봐와서 新奇하다는게 없을게죠 各國舞踊家의 衣裝이나 테크닉은 달르지만 舞踊家가 가진 소질을 뽑어낼수 있지않겠에요? 그것을 가지고 批判하니가 好氣心같은것은 問題가 되지않어요 西班牙舞踊家와 저와를 比較해서 評을 하니까요! 그런데서 決코 『珍奇』한것만이 아니라는 自信을 얻었습니다.
대개 五日間씩 公演을 했는데요 처음날에는 『トツツキニクイ』, 사괼수가없다고들 그래드군요 두번보고 세번보면 비로소 알수가있다고 理解할수가 있다고 해요 『프로』는 나중으로 갈수록 좋지않은데도 不拘하고 나중푸로가 좋다고하는것을 보면 新奇해서뿐이 아닐것입니다. 衣裝이나 테크닉은 달러도 그舞踊家의 소질이라든지 創作力이라든지 그런것을 보니가제가 이번에 『하리아이』가 생긴것도 그때문이고 많이參考도됐고 工夫도 많이 됐습니다. [사진] 최승희
宋錫夏 崔先生은 처음의出發이 西洋무용이셨다가 그뒤에 東洋舞踊으로 가시지않었습니까? 저는 崔先生이 대단히 영리하시다고 봅니다. 제가 東京에있을때 學生時代부터 石井漠氏의 舞踊를 보았는데요 그사람뿐이아니라 대체로 西洋舞踊의 보방에 지나지 않드군요 東洋사람은 肉體的으로도 到底히 西洋사람에게 딸을수가 없고, 그러니가 그들의모방과 貧弱한肉體的 條件을가지고 外國으로 간다면 勿論 成功할수없을뿐아니라 國內에서도 곧 『이끼쓰마루』해버리드군요 거기에 比하면 崔承喜氏는 영리한方法을 취하셨습니다. 춤이라는것은 말할것도 없이 素質이있어야되는데 素質이있어도 自己것을 만들지못하면 舞踊美도 나타나지않고 무용도 되지않지요.
咸和鎭 춤은 精神作用이 主題가 되는것이지요 이根本精神은 언제든지 잃지 않습니다. 十年, 二十年 내려오는 동안에 이름이바뀌고 拍子도 바뀌고했으나 根本은 變치않는것입니다. 춤에는 拍子가 主張이되지요 拍子가 맞지 않으면 춤의美도 나타나지 않고 춤도되지 않습니다. 춤에 무슨 정해논 式이라는것이 있나요 우리가 좋은 글이나 좋은 樂音을 들으면 저절로 흥에겨워지고 주먹이 쥐여지고 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썩 잘주는 춤이라면 老幼를 불구하고 어느나라 사람이 보든지 좋다고 할겝니다. 西洋사람들이 李玉職雅樂을 와서듣고 感想을 이야기하는것을 들으면 다 좋다고들하는데 그것이 단순히 『오베까』로 아첨으로 그러는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좋다고한단말예요 崔承喜氏의 춤도 專門家들이 보면 아무리 처음보는것일지라도 그춤의 精神이 어떻고 伴奏가 어떻다는것을 알테니까―朝鮮音樂의반주는 自然히 어깨가 으쓰거려지고한다는것을 알테니까 崔承喜氏의 춤도 환영을 받었을줄압니다
宋錫夏 춤에는 民族마다 버릇이있세요 손하나를 들든가 발하나를 들어도 그 民族마다 버릇이 있습니다. 舞風이라는것이 있세요.
崔承喜 民俗舞踊이라는것은 그나라사람이 아니면 自然스럽지가 않어요, 西班牙舞踊은 世界에 有名한것이지만 아무가해도 西班牙舞踊의 미묘하고 델리케-트한곳은 表現하지못한대요 그렇지만 西班牙女子가 하면 설사 춤은 서툴러도 잘表現한다니까요. 그런點으로 봐서 東洋사람이 西洋舞踊을 한다는것은 어려운問題가 아닌가해요 至今까지 저도 西洋舞踊을 해왔는데요 인제부터는 東洋舞踊에 全力을 할생각입니다. 그러나 至今까지 西洋舞踊을 했든것은 저한테 퍽 유용했다고 생각되요 至今 朝鮮의舞踊이라는것은 始作도없고 끝도 없는것이 많지않어요? 좋기는 좋으면서 『마도마라나이』한것 한個의 춤으로서 完成되지않은것도있죠. 그것만을 가지고는 藝術作品이라고할수없는것 前에는 좋았으나 至今은 衰해서 없어진것이있죠! 이런것들을 가지고 새로히 創作을해서 舞臺化시키는데 많이 도음이되었습니다. 제가 배운 西洋舞踊을 朝鮮舞踊에 어울려서 만들려고하니가 一種의 創作이지요 西洋舞踊을 배웠다는것은 여러가지로 有效했세요 至今까지해본 경험으로 테-마는 어떠한 테-마를 잡어야 民衆을 끌수있다는것도 아렀구요.
宋錫夏 桂貞植氏가 第一回獨奏會때 바이오링으로 朝鮮의 타령을 했는데 西洋타령이되고말드군요 아무리 잘배웠다해도 그렇게하면 농담이됩니다. 民俗藝術은 그地方에서 自然히 우리나서 되는것이죠 朝鮮의民俗舞踊도 南鮮 北鮮이 다르고 南鮮사람이 北鮮사람의 델리케-트한곳은 表現을 못하니까니요 애달배기춤이라는것은固城이달르고 晋州가 달으고 馬山이 달으고 다 조끔씩 달음니다.
咸和鎭 民俗舞踊은 배우고 아리키고하는것없어도 그地方이면 그地方의鄕土色을 나타냄니다. 朝鮮안에서도 地方地方이 다 달으죠.
宋錫夏 在來의것이라도 모방의 끄치지않고 自己의 것으로 만드는사람이 나종까지 남는사람입니다.
崔承喜 西班牙에 『아르헨티-나』라는 有名한舞踊家가 있는데요 世界的으로 有名합니다. 그사람의춤이 外國에가서는 어디서든지 환영을 받지만 西班牙로가면 그사람의 舞踊은 邪道라고 순수한 西班牙의 舞踊이 아니라는 비난을 받는대요. 저도 그런 念慮가 없지 않습니다. 원악이 硏究時日도 짧은데다가 朝鮮에는 材料도 적고 그런關係上 제 想像力으로만 하는純粹한것이니까 여기서들 제舞踊을 보시고 이것은 朝鮮춤이 아니라 하실지도 모르고! 저도 각오는하고있습니다마는 제생각으로는 國內의 누구가 보아도 좋다고하고 世界의 어느나라 사람이 보아도 좋다고하게되기가 제所願예요 前에는 末消化된 西洋舞踊테그닉도 많이 混入되여있었습니다마는 이번公演에는 그런것은없습니다. 이번에 보시고 어디가 不足한지 기탄없는 意見을 말씀해주세요 材料가 있으면 材料도 제공해주시고……
咸和鎭 이번公演을 끝맡이시고 어디로가십니까.
崔承喜 四月下旬까지 朝鮮에있다가 滿洲로갔다가 九州를지나서 東京으로도라 가겠습니다. 北京에는 다음機會에 가겠세요.
宋錫夏 崔先生은 至今이 제일 흥도나실겝니다. 至今까지는 한習作時代였지만 지금은 그것을지나서 나가실길도 짐작이 나셨겠고……
崔承喜 舞踊한지 十五年째 됩니다마는 外國가서 제 밟어나갈使命을 깨달었세요 以後의 理想으로는 朝鮮舞踊을 土臺로하고 힘이자라는대로 全東洋的인것도 해볼려고 합니다. 佛敎藝術도 좀더硏究하고 印度舞踊 日本鄕土舞踊 流球舞踊같은것도 손을 대보겠습니다 朝鮮舞踊만으로는 스케일이 적으니까요?
宋錫夏 世界的으로 나가셨으니 끝가지 世界的으로 나가셔이지……
沙里院에 누어시만 추는사람이 있었지요? 천목이라는 사람이죠 보셨습니까?
崔承喜 네, 그게 第一재미있드군요 저도 이번에 그것을基礎로해서맨든 假面舞踊라는것을 합니다.
宋錫夏 瑞典의 「베르그망」이라는 사람이와서 보고 좋다고 稱讚을 하드군요 『휴리쓰게』도 가리켜달라고하고…… 거기에는 그사람 하나밖엔 없습니다
崔承喜 누었다가 일어나는것이 퍽 自然스럽드군요.
宋錫夏 누었다가 일어나는 時間사히가 大端히 깁니다. 언젠가 한번 時計를 끄내서 세보니가 누었다가 兩손을 띨때까지 꼭 二十分입니다. 보는사람은 긴것을 모르고 보게되죠 방울소리와 꼭마지면서 춤이넘어갑니다.
咸和鎭 이번公演은 遺憾없이 準備가 되었나요.
崔承喜 音樂을 걱정하고있습니다.
宋錫夏 技術이 나뻐도 춤의 『고쓰』를 잘아는 사람이어야 되요 音樂은 잘몰라도 춤에는 마칠줄아는 사람예죠
崔承喜 歌舞伎座에서 朝鮮樂으로 伴奏를했드니 어떤사람은 귀에 익지않어서 서투르다고 洋樂으로으로해달라고하는 사람도있고 또 朝鮮樂의 몇가지를가지고 伴奏를하는것이 씸포니․오우케스트라로 한것보다도 몇倍났다고 單純한속에 미묘한 하-모니는 如何한 우케스트라의 比가아니라고 極讚을 하는사람도 있었세요 音樂이 춤을 딸어간다고해요.
咸和鎭 伴奏者에 適當한 사람만있으면 專屬으로 두실意向이 계십니까?
崔承喜 네, 앞으로 十年은 더할생각이니까요 제가 舞踊生活을 할때까지 손을 맞잡고 할만한 사람이있으면 하겠에요 朝鮮音樂을 世界的으로 進出시키고 싶다는 野心도 있으니까요 (웃는다) 朝鮮音樂을 爲해서 一身을 바치겠다는 사람이있으면 언제까지든지 함께 硏究하겠습니다.
李甲變 앞으로 十年는더 繼續하신다면 그뒤에 崔女史의藝術를 매낄만한 弟子를 發見하셨습니까. 그런사람이 있에요? 弟子도 양성하고 계십니까?
崔承喜 (웃으며) 弟子養成보다 제가 硏究할것이 澤山같어서요 무어 그럴 여유가 있어야지요.
咸和鎭 門下生은 없으십니까?
崔承喜 前에는 四五十名 두어 봤섰죠 後繼者를 養成하겠다는 意味로 하나 둘 뽑어가지고 가리켜봤는데……여러가지 지장이 많어서요 그러나 有望한아이만있으면 이후래도 後繼者를養成하고자합니다. 그리고 제 딸이나 조카딸속에서도 뽑어가지고 가르켜 볼려고도합니다. 저이들도 좋아도하니까……
咸和鎭 世襲을 생각하고 계십니다그려(一同笑)
崔承喜 『가부끼』(歌舞伎)에서 菊五郞니 하는사람의 五代目(고다이메)니 六代目(로꾸다이메)니 하지않어요? 저는 그것이 一理가있다고 봐요 나무애는 熱心으로 가리켜도 中間에 튕겨지면 大成되기前에 아무것도 안되니까요. 그러니가 제딸이나 조카딸들에게 가리키려고까지하는 생각이나지요 勿論끝까지 해보겠다는 希望者가 있다면 얼마든지 養成해보고자합니다.
咸和鎭 前에 國內省의 雅樂部엘갔는데요 그사람들더러 언제부터 했느냐고 무러보니가 어떤사람은 三百七十年이됐다고도하고 또 어떤사람은 三百年이라고도하고 自己들도 代數를몰은단말에요―七年卒業으로 樂士가됐는데老人은 받지안습니다.―그래 어째서 代數를 몰으느냐 물으니가 自己의 專門樂器에 비방이 있어서 그비방은 絶對로 남에게 가리키지않는대요 남에게는 普通것은 가리켜도 비방만은 子孫이 아니고는 안傳한대요 崔先生도 무슨 비방이 있으십니까?(一同笑)
崔承喜 글쎄요 제自身이 未熟하나마 十五年以上걸어온 舞踊家로서의 努力의 結果를 後輩에게 가르켜주려고 努力은합니다마은 어디如意하게 아니되느면요 저는 私的으로 舞踊生活을 秘決로써 未公開시킨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게親戚이거나 他人이거나 大成하는 希望이있는後배에게 傳하려합니다. 그러나 舞踊家로서 大成하기爲한 長時日의努力을 끗끗내 갖는사람이 드물어 걱정입니다.
咸和鎭 民俗的舞踊이라고 할까 하여간 여기에는 崔承喜氏가 世界的으로되었는데 그 才操를 애껴서야 되겠습니까? 一身의光榮만으로 생각마시고 뒤에오는사람들을 指導하셔야죠.
崔承喜 네, 원악 제가 미숙해서……가르킬 여유도없고…… 硏究도 不足해서……오늘도 두분 先生께 좋은말씀 가리켜 주십시사하고 왔습니다. 딴期會에 그건 듣기로하고……何如間 西洋서는 그程度로좋았을는지모르지만 여기서 先生님들이 보시고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사고 하지 않었에요……(記者를向하고) 모처럼 불러 주셨는데 변변한 말씀도 못드리고 私談만해서 未安합니다. 後日에 機會가있으면 다시 뵙기로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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