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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단 월평―2월 24일 부민관에서 열린 정상원자 여사의 피아노 독주회는―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악단 월평―2월 24일 부민관에서 열린 정상원자 여사의 피아노 독주회는― 樂壇月評―二月二十四日 府民舘에서 열린 井上園子女史의 피아노獨奏會는―
종    류 비평 批評
필    자 계정식 桂貞植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41-05 昭和十六年五月
면    수 245 245
기사
二月二十四日 府民舘에서 열린 井上園子女史의 피아노獨奏會는 우리京城樂壇에서 活躍하는 피아니스트에게나 아직 學習하고있는 젊은洋琴家들에게나 一般好樂家들에게 多大한刺戟과 激勵를주었다. 東京樂壇에서 第一流大家로써 一線에서 奪鬪하고있느니만큼 우리들의期待가 컷다고보며 그의演奏는 우리의期待에 過히 어그러짐이 없었다고까지 生覺된다. 曲目에있어서 最初의曲이 빼-트호휜曲이었다. 이曲은 作者의個性을 發揮하는圓熟기를 지나 第三期인 末期의作品一◯六番이다. 이曲은內的表現을 强調하기爲하여 從來의 形式을 重要視하던 쏘나타形式을 脫出한 自由스런 構造로된 曲이다. 우리半島에서 빼-트호휜作品의 演奏가있다면 大槪가作者의第一期 即젊은 빼-트호휜의曲이많었고 그時期를 넘어간圓熟期의曲은 듣기가 稀少하였다. 井上氏가 末期作品을들려준것은 吾等의귀에새롭고 利益한點이많다. 이曲에서 超個性的神秘性을 鑑賞할수있은것은 우리樂壇發展에 影響이많다고본다. 그다음으로는 피아노의 詩人쇼팽-作品과 尾高氏의小曲이며 最終曲으로는 리-스트의 「헝가리․랍소듸-第六番」으로 獨奏會는 끗막었다. 이曲은 랍소듸-中에서도 가장 一般의人氣를 받고있는것으로 「레오 시로다」가 三年前에 亦是 府民舘에서 最終曲目으로 拍手喝采中에서 끝막은曲이었다.
井上氏의演奏는 大體로 纖細하고 깨끗한印象을주며 그는 强弱의明白한것과 페달使用의 能한 點을 所有하고있다. 特히 쏘나-타曲에있어서 特效를내었다. 變奏曲으로 構成된樂章안단-테 몰토 칸타빌레 에드 에스프레시보-主題의 沈著性과 平然性은 特히感動力이있었다. 主題를 變奏한(바리아치온-)도 各各其特性을 發揮시켰다. 바리아치온-六回後에 最結部는 다시처음主題인 敬虔한祈禱와같은 칸타빌레의 천천한노래로 끝막기까지 井上氏는 全體演奏가 奔放한 自曲進行이없고 節度가 있었던까닭에 全曲에精神을 把握할수가있었다.
다음曲은 쇼팽小曲等이었는데 여기에는 圓舞曲이 가장獨特한 效果를 내었는데 그理由는 테포 루바-토에있었다. 即뷘-ㄹ츠奏法으로 彈卷한까닭이다 이奏法은 東洋서는 듣기힘든것이다 演奏者는 年少時부터 뷘-봘츠의本바닥인곳에서 듣고배워서 이미 自己의 것으로만든 所爲이다 다른 쇼팽曲에는 多少粗雜한點이 없지않다 無理한奏法이 音型까지 破壞하였다는點도 附言하여둔다 쇼팽曲에있어서도 全體로 너무 强力的演奏로 들렸다. 좀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奏法이 希望된다.
尾高氏의 피아-노小曲等은 他曲보다 異彩를보여주었다. 氏는 樂想을 자아내려고한 努力이 其小曲中에 나타나고있다. 氏의勞作에 敬意를表한다 그러나 그作品이 完壁에 가까운가하면 아직 「프라게?」表를 부치지않을수가없다. 何故요하면 作曲內容이 아직內的確實性이없고 決定的인무엇을 찾으려고 彷徨中에있는 過渡期作品으로 보인다. 創作은 無理를要求치않고 傳統을無視하지않는것이다. 그러므로 獨逸表現派作曲家들의 無限한 創作의 欲求만을 中心삼고 活動하는態度는 只今 全혀消滅되고 말아버렸다. 過渡期作品은 準備課程에있으므로 正路를찾기爲하여 必然的으로 해메는途中物이다. 앞날을 期待할뿐이다. 井上氏의 尾高氏作品演奏는 다른曲보다 比較的 內的感興이 적었다고본다. 時日의 關係도 있었는지모르겠지만 그와같은 解譯으로서 聽衆의 感動은 不可能라고 生覺된다
最終曲으로 리스트의 「匈牙利 랍소듸第六番」은 好樂家들에게는 實演으로나 或은 레코-드를通하여 熟知하는曲이다. 이曲에對한 聽衆의鑑賞力이他曲보다 細密할것이다. 此曲의演奏은 大體로 훌늉했으나 마즈막 終結部의 特히無理한强奏로써 曲의連絡을 正堂치못하게 했고 節制에서 벗난感이있다. 좀더 節度가있는 演奏가 되었으면 하고바란다.
井上氏는 演奏家로써 東洋서는 斷然一流피아니스트로 꼽지않으면 안될存在이다. 歐羅巴의 有名한 피아니스트와 比較해보아도 過히 損色이 없으리만큼 氏의彈法이 確定되었다. 氏의 演奏가 깨끗하고 訓練이있으나 한가지不足한點-다른外國大家들이 所有하고있는 「안슐락」의 神秘性이 없다 피아-노의 「안슐락」技巧라는것은 聲樂家가 自然이 타고난音聲과 같은것이며 絃樂家에 있어서는 情熱의톤-이다 그러므로 能熟한 演奏라고는하여도 그의피아노튼에는 熱의昧가 不足하게들린다 「안슐락」에 주는感은 어느程度까지 冷한印衆을 우리에게주고있다. 그것은 學習으로는 限度가 있는것이고 피아노的天票품이 이妙技를 支配하고있다해도 過言이아니다.
三月十三日로부터 十五日까지 府民舘에열린 콜럼비아樂劇團上演中 여러가지 프로그람은 보았으나 그中 音樂的 價値가있다고 보는것은 우리半島傳來童話 「콩쥐․팟쥐」를 選擇하여 歌謠劇化한것이다.
音樂藝術에있어서 「樂劇」이라는것과 「오페라」라는것은 區別하지않으면 아니된다. 오페라는 外國語니깐 樂劇으로 번역해서쓴다. 이것은 斷然 誤解다. 歷史的見地에서 보건대 오페라는 音樂自體가 中心이 되고 言語가 從이되여서 作曲이 된것이고 樂劇은 언어가 中心이되여서 創作이된것이다. 다시말하면 오페라는 音樂과歌詞가 密接한關係가없더라는 大成功할音樂劇이다. 樂劇은詩와音樂이 融合되는 때에라야 樂劇이라고한다. 좀過히 말한다면 音樂은 詩를 살리기爲하여 付與된役割을 演出하는것이다. 即音樂이 從이요 詩는 主이다. 이와같은藝術觀은 希臘全盛時代에 演劇에對한觀察이었다. 그後 十七世紀 「플로렌츠」에서 音樂레네쌍쓰時代에 同一한觀이있었고 (即歌劇初創時) 其後 伊太利오페라全盛時代에는 이藝術觀은 좀停滯되었다가 다시 「끌룩」 「리햐르드․봐그네르」에 이르러서 이思想이 中興되었다. 結局 兩對立된藝術觀이 여러世紀를通하여 爭鬪하였다.
今番 콜럼비아樂劇團의 「콩쥐․팟쥐」의試演은 文字그대로 오페라가아니고 樂劇에가갑다.
우리樂界에있어서 處女作인 만큼 歐羅巴의오페라나 樂劇의域에達하지못한것만은 不可避의 事實이나 半島各方面의權威者諸氏를 網羅하여 作成된 作品인만치 「무직-드라마」의 域에 들어설수있는 劃期的作品이라고 나는생각한다. 音樂과詩의融合이라던가 構成의整備는 全體의均衡을 圓滿히하고있다. 이런意味에서 「콩쥐․팟쥐」는 樂劇의特色을 들어내고있다. 上演中 遺憾된것은 出演者의大體로의 解釋不足이다. 또한가지 筆者의귀에 거슬린것은 下幕하였을때에 純朝鮮노래로써의 女性獨唱은 朝鮮멜로디를 現代化한 音樂及伴奏에 너무 全體樣式에 버서나는거시라고 生覺된다. 勿論 劇進行中의 說明노래이지만은 너무도 不調和의 感이없지않다. 그것을 어떻게 다른方法으로 硏究할수없을가한다. 今番出演者는 대개가 콜럼비아 傳屬歌手인것같다. 그들에게 餘裕를 많이주면 좀더 잘하게할수있다고 느낀다 그렇지않으면 좀더 洗練된歌手에게 맡겨서 其效果를 몇倍 더내게 할수있지않을가한다. 指揮는 한사람 適任者를 定하여 管絃樂, 合唱, 舞臺를 統一支配하게하는것이 더 「앙쌈블」에 價値가 날것이다. 管絃樂器를 많이使用하여 場面을 좀더 潤澤케할수있지않을까한다. 大衆에게 歡迎을 받고 人氣를낼수있는것은 「쟈스」나 「流行歌」뿐만 안니라는것이 今番樂劇으로 認識하게되었다. 今後로도 이런朝鮮古有한資料를 많이 抽出하여 옛날을回想케하는 現代化한樂劇이 많이나오기를 바란다.
앞으로 이것이 發展하여 不遠間에獨逸 「바이로이트」에있는 바그네르 劇場에서못하지않는 劇場이 建設되여 우리 貧弱한 精神生活에 豊富한糧食을 주기를 바라고 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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