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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문화 문제 특집―농민과 민요―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농촌문화 문제 특집―농민과 민요― 農村文化問題特輯―農民과 民謠―
종    류 논문 論文
필    자 김사엽 金思燁
출처정보 조광 朝光
연    도 1941-04 昭和十六年四月
면    수 162 162
기사
六堂이 일즉이 「民謠는朝鮮民衆文學의最大分野이며 朝鮮은民謠를通해서만 文學國이라」고 說破한바와같이 人口의八割을占據하는 農民大衆의民謠에서 우리는 조곰도假飾없는 思想感情乃至想像等의 內面生活의 告白을 엿들을수있으며 이는 또한 詩의 正意에서오는 質朴, 敦厚한內容을 豊富히담아있어 難澁한漢詩漢文에서는 到底히맛볼 수 없는 文學的價値를 發見할 수 있다. 이는다시 文學上의 優越性뿐만아니라 詠歌의 對象이 花鳥風月, 人倫冠婚, 葬祭, 政事百般에亘하야있어 가장端的으로 그들의過法生活狀態를 腦裏에彷彿케할수있는 効得이있는 것이다.
이제暫時 貧弱한筆者의 民謠囊中에서 特히農民의勞働謠만을 抄出하야 그들의 生活感情의 一端을 讀者와함께考究해보고저한다.

一, 勞働民謠
1. 農歌考
正月의立春雨水, 二月의驚蟄春分지나서부터 山間㵎壑에永雪은 녹아나리고 平郊廣野에雲物이 變해올 때 하마벌서 淸明殺雨節氣되여 百花피여나고 堂前에雙제비 옛집을찾아들면 農夫의一年苦役도 바야흐로始作된다 넓은田野에 소몰고밭가는農夫 입에서는 어느듯農夫歌의 嫋嫋한 曲調가 흘러나온다.
天地開闢後에
牛首聖君이 誕生하사
農事法을 創始하니
萬民의 衣食住는
神農氏의 恩澤이라
어허 여허 상다뒤요」
여보우리 農夫님네
勞苦를 避할소냐
어허 여허 상사뒤요」
春省耕秋省斂은
聖上의 恩澤이요
晝于芽 宵索綯는
農民의 勤勞로다
어허 여허 상사뒤요」
젊어서 못배우면
늙어서 後悔나고
春夏에 不勤하면
秋收에 後悔나네
어허 여허 상사뒤요」
農功을 旣旣歇하고
官租를 畢畢納하여
農夫生計 稍安하다
어허 여허 상사뒤요」(全南務安郡)
農夫歌는 嶺南一帶의 「모싱기노래」(移秧歌)와같이 가장普遍的으로 불리워저있고, 그生命도 오래임을 알 수 있다. 假令春香傳에 李夢龍이 壯元及第하야 이어 全羅道御史를除授 書吏輩를引率코 任實구홧들近處를當到한 句段에引用한 農夫歌를 보면
... .. 어여로 상사뒤요, 千里乾坤 太平時에 道德높은 우리 聖君 康衢煙月 童謠듯던 堯님군 聖德이라 어여로 상사뒤요.
神農氏 내신따부 千秋萬代 遺傳하니 어이아니 높우던가. 어여로 상사뒤요.
夏萬氏 어진님군 九年洪水 다사리고 어여로 상사뒤요.
殷王成湯 어진님군 太旱七年 當하였네, 어이라 상사뒤요.
이農事 지어내여 우리聖君 貢稅後에, 남은穀食 작만하야 仰事父母아니하며, 下育妻子 하니할가 어여라 상사뒤요.
百草를심어 四時를 짐작하니 唯信한게 百草로다. 어여라 상사뒤요.
靑雲功名 좋은호강 이業을當할소냐, 어여라 상사뒤야.
南田北畓 旣耕하야 含飽皷腹 하여보세 얼럴럴 상사뒤요.」(趙潤濟 校註 春香傳)
原歌는傳치않으나 亦是農夫歌인 듯 推測되는것에 於于野談에 揭載된 노래「萬一내 오래전부터 이리도마음이 괴로웠드라면, 내몸이 온전치를못했으리라. 내마음의근심은, 슬픔의실마리, 이실마리가 엉키고뭉치여 풀려고해도 끝을못찾아」
이것은 壬辰役時에 支那將軍楊鎬가 京畿道靑坡를 지나갈지음에 그때마침 밭에서農夫가 除草하면서 부르던노래를듣고 其時接伴官이던 李鰲城에게 그뜻을무르니 이같이 飜譯하였다한다. 이보다 조곰오랜例로는 成俔의 慵齋叢話(卷六)中에
有僧容體倭小, 一足微躄, 每居長安(中略)叉作歌搖身而唱曰. 此生此生一間茅屋心可樂. 此生此生. 懸鶉百結亦不惡. 閻羅使者若來迓. 雖欲住世那可得.........曲節似農歌. 兒曹隨行.」
이文中에 似農歌의農歌라는것을 읽을때 그 當時도벌서 前揭와같은類의農夫歌가 盛行되여있었음을 짐작할수있다. 그런데 前揭의民謠의後斂인 「얼널널상사뒤요」或은 「이여로상사뒤요」따위는 全羅道에서 流行되는 「山有花歌」의後斂과같으며 이山有花歌에對하여는 增補文獻備考藝文攷歌曲類中에 이는百濟時의노래라고 적히여있다. 아모러나 農夫歌는 農事法의 歷史가 悠久한만큼 相當히 오랜生命을갖이고 있으리라고믿는다.
大體로民謠는 民話보다 앞서서存在하였고 따라 强烈한 集團的인或은個別的情感의 刹那의 回顧라고볼때 또는 이야기나 詩의源泉이 國民生活의 最深의源泉에서 發하였다고볼때 우리는 이 農夫歌의變遷에서 그世代의農民의理想, 嗜好, 情緖等을 짐작할수있다.
李朝五百年間의 儒敎道德에 依한 統制로因하야 各種의民俗이 儒敎文化의 精神을 吸收한 中에도 民謠에있어서는 婦謠에서보다 男謠에있어서 가장多分히 이思想이 젖어있음을 알수 있다.
2. 모숭기노래(移秧歌)
民謠의 道에있어서는 內部的思想, 音樂的素質의兩面이 遊戱的인것보다는 그들의生活自體에서 넘처흘러나온노래가 第三者로하여곰 더욱 眞實感을 이르키게하고 感動을줌이 큰것인데 前揭農夫歌에서는 大槪가敎訓的인言辭, 어색한渶文句로 얽어서 眞味를 느낄수가없다.
이제도리켜 南鮮一帶에서 傳唱되는노래가운데 地方的多樸性, 含蓄, 諷刺, 滑稽가 서로얼키여 至今토록 口傳된 雅謠로 모숭기노래(移秧歌)가있다. 五六月移秧時가되면 男女老少가 水畓에 一字形으로늘어서서 各己한줌씩 모를 한손에들고 모를꼽아나가면서 이노래를 酬唱한다.
처음에 한便에서 앞소리로 「이물끼저물끼 헐어놓고 主人네 兩班어디갔노」하면 저便에서 이를받아서 「무내점복손에들고 妾의房에놀러갔네」라는 兩班階級이나 有産者의 無爲徒食輩를 嘲弄하는노래에서 始作하야 客色의노래가 哀切한曲調로 불리워저서 하로終日繼續된다.
해돋았네 해돋았네
東海東天 해돋았네
梅花日月이 돌아오는데
이슬털줄 모르는가(以上朝飯 前에부름)
서월이라 왕대밭에
금비둙이 알을낳네
그알을 내줬으면
今年科擧 내할 것을」

이논뱀이 모를숨어
잎이너무 壯하도다
우리父母 山所등에
솔을심어 亭子로다.
(男唱)
手巾아手巾아 밤보手巾아
님의님주시든 밤보手巾아
手巾아귀가 떨어지면
님의情도 떨어지네
(靑少年唱)
우내야안개 갖은골에
處女들이 난질간다
明紬手巾 목두리하고
總角들이 뒤따르네
(少年唱)
사래야길고 광찬밭에
木花따는 저處女야
密陽아 삼낭아 궁노숲에
연밥따는 저수자야
蓮밥줄밥 내따줄게
요내품에 잠들거라
잠자기야 어렵지않지만
蓮밥따기 늦어가네

새별같은 저밭골에
반달마중 떠나오네
네가무슨 반달이고
初生달이 반달이지(點心밥이고 옴을보고)

尙州咸昌 공갈못에
蓮밥따는 저處女야
連밥줄밥 내따줄게
이내말슴 들고따소

파랑부채 靑道袍야
꽃을보고 지내치나
꽃아꽃아 설어마라
明春三月 다시보자(漆谷郡石積面)
3. 사승가(績麻歌)
以上은主로 勞働에關한 民謠中特히男子들이 부르는것만을 보아왔으나 다시도리켜 婦女子들의 이方面의노래를 들어보기로하자.
婦女는 過法에있어서 社會的으로는 男尊女卑의地位에處하였고 家庭的으로는 歪曲된 家庭主義制度下에舅姑의軋轢속에 浮沈하야 所謂 「文書없는종」이되여서 한平生을 苦難의길을 밟아가지않으면 안되였었다 그러므로 문득 그들의입에서 흘러나오는노래는 그모도가 哀楚傷心의 嗟嘆辭아님이없었고 實로 多淚多哀하야 聽者로하여곰 同情의눈물을 자아내게하였다.
「仕舅姑, 奉祭祠, 接賓客, 針線紡織」
이 네가지는 그들이 宿命的으로 雙肩에 질머진 責務이며 그들의 行動의 自由를禁하는 輊■와도같았다.
이들의노래中에서 그由來함이 가장오랜 옛날에屬하야 今日까지 남아있는노래에 사승가(績麻歌)가있다 이노래는 新羅儒理時代에 宮中으로부터 六部女子에게 績麻를獎勵한遺風이 幾千年後인 오늘에와서도 依然히남아있어 所謂 乙夜織麻라는 美風이 慶北安東醴泉等地에는 더욱이盛行되고있다. 陰七月中旬에서부터八月中旬까지 民間婦女가 多數히 一定한處所에 集合해서 둘너삼을삼는데 그때에 서로 酬唱하는노래가 곧 「사승가」이다 밤맟도록 老少婦女子가모여앉아 마당한가운데 모닥불을 피워놓고 삼삼으면서 소리가지런히 노래를주고받는光景은 神秘럽기도한 一幅의 活畫같기도하고 新羅때의會蘇曲을 聯想시키게한다.
一, 寧海盈德긴삼가리(가리, 꼭지)
眞寶靑松관솔가지
우리아배관솔패고
우리올배관솔놓고
이내나는비비치고
우리형님나리치고
밤새도록삼고나니
엿손가리반을추겨
닷손가리반남었네

安東洞里열늬洞里(이것은 며누리가삼을 잘못삼어서 시누이가 남으래는말)
洞內마다송사가자
암만없이 訟事가면(이것은 잘못하고도 며누리가 自己親家의 勢力을 자랑하는 것)
네이기나나이기지
우리아배吏房戶長
우리올배 東萊府使
골방妓生얼同生아
恒首別監얼三寸에
너이기나나이기지.

二, 달은벌서다젔는대(以下 새벽에 삼삼으면서 하는노래)
닭은어이또우는가
잔말많은시어머니
이내잠을또깨우네
眞寶靑松긴삼가리
寧海盈德관솔가지
너캉나캉왠情많어
아침저녁따라드나
「새벽질삼지기는년(이것은俗談)
사발옷만입더란다」

二. 娛樂的民謠
1. 쾌지나칭칭노-네
勞動民謠가 勞作에따르는 精神的疲勞를輕減시켜 일의 能率을높이는데 必要한것이라면 一方一段의 勞務가끝을막고 休息할때나 或은農節中間의 名節時에 興겨워부르는 娛樂的인民謠는 至今까지의 心身休息에 對한慰勞가될뿐아니라 將次할일에對한 意氣를鼓舞하는데 또한 없지못할것이라고볼수있다. 논매기가完了하야 한해農事도 半고개를넘어설때나 雨風順調하야 八月에도 嘉俳節에는 벌서新穀이 나올무렵이되면 農夫의기쁨은 비길데없다.
馬韓 常以五月下種訖, 祭鬼神, 群聚歌舞飮酒, 晝夜無休, 其舞, 數十人俱起相隨, 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有似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之(魏志東夷傳)
濊 常用十月祭天, 晝夜飮酒歌舞, 名之爲舞天(同前)
이와같은例는 至今도農村에서 볼수있다. 歌舞飮酒의歌는 어떠한內容의노래인지알수없으나 至今와서 傳하는노래中에 가장特色있는것은 「쾌지나칭칭노-네」의노래다. 이는簡單한樂器의伴奏가 있을時도있으나 大槪는 그저손에손을 서로맞쥐고 圓舞하며노래하는것이 普通이다. 먼저한사람앞잽이가 先唱하면 多衆이 이에따라 「쾌지나칭칭노-네」라고唱和한다.
靑天하날엔별도많다
이내가슴엔수심도많네
江邊돌이떡같으면
우는애기다달래고
漢江물이술같으면
우리 同侔待接하지
二八靑春少年들아
白髮보고반절마라
일는양은설잔에도
시는양이더욱설다
꺼문머리白髮되고
히든갈은黃金되내
살아生前놀아보세
횐머리야먹칠하고
이빠진대박씨박고
찔래꺽어손에들고
아해당에놀러간다
山用草木젊어오고
우리님은白髮되네(軍威郡孝令面)
2. 儀式歌, 地神밟기
遊戱的娛樂的인노래에서 한걸음나아가 民間의信仰에서 發生된노래 즉 儀式歌는 그數爻가 比較的적으나 이中에 특히最近까지 流行되던노래로 「地神밟기」노래가있다. 陰正月보름前後하야 洞內靑少年輩가 一隊가되여서 簡單한樂器로 鉦, 小鼓, 大鼓, 長鼓等을 울리면서 士大夫, 廣大, 砲手등 各色의服裝을입고 家家戶戶를巡訪하야 「어허로 지신아!」하는 呪聲에서 始作하야 다음과같은 노래를부르면서 大門, 뜰, 부엌, 장독, 노죽, 馬廐, 방아실, 井, 後苑等으로 돌아다니면서 地神을 鎭撫시키는것이다. 紙面關係로 歌謠의一端을紹介하면 이러하다
主人主人門여소나그내손님들어간다
애이여로地神아 地神地神누르자
山明水麗로좋은곳 이집터를닦아내여
東海는靑龍이오 西海는白虎로다
南朱雀北向門은 左右로옹위하고
四通五達본을받아좋은날을가려내여
立柱上梁하려할제城主지동비였네
앞집에金大木아 뒷집에朴大木아
一자大工골라내여연장망태둘러메고
뒷동산지치달라上上峰으로올라가서
東西四方살펴보니맛참토끼하는말이
이山은잔山이라 城主材木없사오니
江原道라金剛山이天下에名山이라
그山을가옵시와 城主材木求하소서
그말을나이녀겨 江原道올라간다
아름답다묘한나무웃둥치는비여다가
하나님전시전하고뿌렁통은비여다가
나라님전시전하고작은나무잣다듬어
이집城主세웠네」

結論
以上으로 農民民謠中에서 가장 代表作을引用하야 그大綱을 考察하였는데 全殷을通해서 內容的으로 두가지의共通思想을 把握할 수 있다. 처음하나는 享樂主義的思想이니 이는文學의分野에있어서도 볼수있는것이다. 人生의短命함 無常함에對한 觀念이 享樂思想으로變하야 醉眼矇朧한가운데 花鳥風月을즐기는 刹那에 人生의眞意가있다는 觀念이 뿌리깊이 박혀있어서 現實的인 儒敎思想보다도 차라리 逃避的인 道敎乃至佛敎의思想이 內在하여있음을 알수가있다.
「花無十日紅이오 저달도차면기우나니」라든가 「千年을살거나 萬年을살거나 죽음에들어서 老少가있나 千年을살거나 萬年을살거나 젊어서靑春에 놀아보자」(쾌지나칭칭노-네一節)와같은것이 모다 이事實을 裏蓄하고있다.
다음 한가지는 特히 男謠에있어서 볼수있는例이지마는 農民들이 儒敎文化의 洗禮를 받었음과 三冬間草堂에서즐기던 이얘기冊 또는 時調의影響을받아서 民謠의 表現上漢文文句를많이 引用하고 그중더러는 儒敎思想을 그대로 노래한것도 許多하다 「借問酒家何處在요 牧童遙指杏花村」따위는甚한例이지마는 其外라도
無情한게歲月이라
少年享樂기쁜들
徃徃히 달라가니
이아니 光陰인가
千金駿馬 잡아타고
長安大道 달리고저
萬古江山 좋은 景槪
다시한번 보고지거 (趙潤濟校註 春香傳中)
除草歌
길고긴 長阡밭에
木花따는 저處子야
어느듯 베틀나어
官服道服 지어보세
콩도심고 팥도심어
百穀成熱 한然後에
이것저것 걷우어서
祠堂薦新 한然後에
父母奉養 하옵시다
男던는 늘京城中央에서 流行되던 流行歌의影響을받어서 民謠의 歌調보다도 曲調가 더變形이많고 多樣性이豊富하다. 大體로嶺南은 雅淨하여 威壓的이고 湖南은 柔和하고 餘裕가있고 西道는 促迫哀楚傷心하며 京城은 淸和閑雅宮廷的이라함이 定論인듯하다. 다음 型態上으로 보아서는 四四調(濟州道는四五調)가 定型律이나 勞働民謠에있어서는 變調型이많다. 三五, 四六, 六四, 三三四等의 各變調가있어 婦謠의 柔軟한 單調에對하야 이는 男性의激趣, 奔放, 鼓舞等의氣分을 表示함에는 到底히定律에다가 促迫할수없음을 生覺할때 도리여 當然한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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