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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의 제문제―이동백 한성준 대담―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가무의 제문제―이동백 한성준 대담― 歌舞의 諸問題―李東白 韓成俊 對談―
종    류 대담 對談
필    자 +++ +++
출처정보 춘추 春秋
연    도 1941-03 昭和十六年三月
면    수 147 (147)
기사
[사진] (向해서右便이李東白氏. 左便이韓成俊氏)

朝鮮의 歌舞는 우리가 가진 자랑의 하나다. 이렇다 할 的確한 傳授機關이 없었으면서도 아름다운우리의 傳統은 여러 百年을 두고 깍이는일 없이 가시는 일 없이 오늘까지 네려왔다. 그러나 우리 歌舞의 今後를 생각할 때 泰然할수 없음은 누구에게 있어서나 一般이리라. 그것은 우리 歌舞의 산 標本으로 된 여러 名手들이 한 사람 가고 두 사람 사라저 只今은 歌에 李東白氏, 舞에 韓成俊氏가 各各 기둥(柱)을 이루고 있을뿐이다. 그러나 그들마저 老朽해 앞날이 焦操해짐을 어찌할수없다. 그래 本社에서는 이 兩氏를 一席에 對面케 하고 胸襟을 털어 놓고 주고 받는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記者] 名唱과 名鼓手 두분이 만나섰으니한자리 벌리고 싶겠습니다그려.
[韓] 허긴 李通政 兄님 모시고 북을 친지도 퍽 오램니다.
[李] 어떤 때는 갑작이 목이 터지게 한번불러 보고 싶은적이 있지. 이럴때마다 韓叅奉이나 옆에 있었으면 하고 생각이 나데더군다나 시골 山속에 파무처 있으랴니깐 孤寂한 때가 더 자저집데다. 그렇다고 늙은 사람이 樵童처럼 목청을 돋아 소리 할수도없고. 이런것은 무슨 기뿌고 슬푸고 고적해서 우러나는 心情 이라는 것 보담도 내가 죽는 同時에 내 노래도 죽는다는걸 생각 하면 그것이 원통해서 그런가봐. 韓參奉도 그렇겠지?
[韓] 그렇다뿐이겠습니까. 더군다나 兄님의 소리는 兄님 個人의 것이아니라 朝鮮의 單하나뿐인 名唱인데.
[李] 아니 무슨 내가 소리를 잘 한대서 하는 말이 아녀. 年齡이란 속일수 없어 늙으면 죽는거지만 소리만은 남어있으면 허겠단 말이지이. 런 心情이야 소리하는 사람치고 다가졌겠지.
[韓] 그렇니까 流聲機 소리판이 있어서 後世에 傳할수 있잔습니까.
[李] 허허- 그것이야 機械가 하는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인가. 그것은 生生한 맛이 없거던. 우리 無識해서 알순 없지만 生氣가 없는 것은 藝術이라 할수없을것이요.
[韓] (기침이 나오자)밤새 感氣가들었군. 兄님 늙으니까 할수없습디다 걸핏만 해도 病줄이 잡히고.
[李] 아 韓叅奉은 아직 七十도 못됐는데 난 八十을 턱 앞에 바래보고 있잔소? 허긴 몸이 탈나 藥房을 가면 하잔케 알읍디다. 늙으니까 트집 잡니라고 病이 생기는데 뭘 그러느냐구. 사람은 늙으면 그저 “小人 물러갑니다”하고 가야 헌다나. 것도 그럴듯한 소리야 허허.
[記者] 우리 알기론 鼓手보다 名唱되기가 더 어려울 텐데 흔이 “一鼓手 二名唱”이라 허잔습니까.
[韓] 어느것이 어렵다고 따저서 말할수 야없지요. 鼓手가 정말 잘 하는지 어쩐지는 名唱이나 알어 주지 다른 사람이야 어데 알어 줍니까. 알고 싶어도 그럴 才操가 없죠. 그러기에 名唱은 後世까지 이름이 傳해지지만 鼓手야 이름이 傳해집니까. 저의 先生님인 朴順祚氏야 世上을 놀래게한 名鼓手였지만 當時의 名唱들처럼 어디 알려저 있습니까.
[李] 事實 소리하는 사람에겐 鼓手처럼 고마운 사람이 없습니다. 북채가 잘 가고 잘 못 가는데 따라 興이 左右되죠. 興이 안 나면 제 아무리 萬古 名唱이라도 소리가 잘될理 없지. 이런건 부르는 우리보담도 韓叅奉이 잘 알거여. 唱榜을 하기 約 二十번이나 되고 그뒤로 金昌煥, 朴基洪, 宋萬甲, 丁貞烈, 金昌龍의 鼓手를 되맡잔었나베 俗談에 부처님 살찌고 안찌기는 石手匠이 손에 달렸다듯이 名唱의 聲價도 鼓手에 달렸다고도 할수 있어 韓叅奉 그렇잔우?
[韓] 아-니 兄님이 절 옆에 놓고鼓手를 치켜 올리니 자리가 어째 거북해집니다. 그러나 어찌 鼓手를名昌보다 났게 여기겠습니까. 더구나 名唱쯤 되면 그 호화스런거야 참燦爛하죠. 兄님의 장기(長技)인 飛鳥歌中에도 뻐국이 소리를 내면 꼭정말 뻐국이가 머리 맡에서 우는것같은데. 그런實感이 있어야만 맛도나는게지. 以往말이 났으니 말이지兄님의 先生님인 李捺致先生 以後로야 飛鳥歌론 兄님이 獨步지요.
[李] 허허 이렇게 서로 추어 올리기만 하다간 공연한 거짓 말까지도 나오겠는걸. 나히 關係인진 모르나 只今은 나를 名唱이라구 待遇해 주지만 난 只今보다도 젊어서 소리工夫하니라구 苦生하든 때가 그립소. 아마 韓叅奉도 그럴른지 모를게요. 어려서 漢文 工夫하라니까 매 맞기 싫어서 逃亡다니고 자나 깨나 배우고 싶은건 노래뿐이고. 집안 사람 몰래 逃亡해서 山 밑에다 움집을 짓고 工夫하든 일, 더군다나 달이나 밝고한 밤 혼자 있는 목청을 다 내 소리를 허고나면 어떻게 맘이 시원한지. 하루 밤은 金世宗先生이, 인제 名唱 하나가 나오게 됐다. 인제 길이 바로 잡혔으니 꼭고대로만 나가라 하시며 아조 조와허시겠죠. 이때가 스무살 때입니다. 그後 晉州로 옮은後 釜山, 馬山, 昌原으로 돌아다니며 소리하든때가 한창 늘을 때든가봐.
[韓] 그때부터 兄님의 名聲은 굉장하게 올라가잔었습니까.
[李] 글쎄 遠近에서 이름을 알기는 했든가봐. 이 德澤에 客死 죽엄을 할번했다가 살어 난 일도 있었오. 昌原에서 어머님이 作故했을 적에 내 從弟와 모시를 가지고 가다가酒幕에서 强盜떼를 만났었는데 李東白이라구 허니까 『아 그런가. 동히몰랐군』하고 노아줍데다. 이때 내 從弟 말대로 本名을 댔기에 잘 됐지 내 생각대로 우물 쭈물했었드람 목숨 하나 간데없이 될번했어.
[韓] 처음 올라 오셔서 맨 먼저 소리 하신데가 어댑니까.
[李] 昌原에서 官奴 金聖表를 鼓手로 데리고 와서 荼房골 趙炳澤 영감 사랑에서 한 것이 처음일것이요. 난 멋좀 먹어야 겠으니까 韓叅奉이 좀 이야기 허시오. 젊었을 때 이야길.
[韓] 어렸을 때 이야기라고 뭐 별것있니요 어렸을때부터 長短치는것과 춤추는 것은 滋味도 부쳤으려니와天才라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 十六才때부터는 進士 級士를 모시고 서울을다니면서 북도 치고 춤도 추고, 여러 가지 才操도 부렸습니다.
[李] 韓叅奉은 요즘와서 북보다도朝鮮舞踊을 더 歡迎 받는가부지?
[韓] 歡迎을 받는다는것보다도 外國人 內地人 할것없이 朝鮮춤에 대한 好奇心이 늘어가는가붑디다. 그러자니 自然 내한테와서 朝鮮춤을 배워가게 되지요.
[李] 西洋까지 가서 朝鮮춤으로 歡迎을 받었다는 崔承喜와 趙澤元氏들도 韓叅奉한테 배웠단 말이 있드군.
[韓] 勿論 배웠습니다. 崔承喜는 서울서도 배웠으려니와 東京까지 가서 晝夜로 열나흘 동안을 가르켰고 趙澤元이는 二十日동안 가르켰지오 그런데 朝鮮사람은 先生을 先生으로 알어주는일이 퍽 적은갑습데다. 崔氏나 趙氏로말하드래도 朝鮮춤이라는건 全部를 내한테서 解得했지만 도모지 그런 氣色을 안보일랴고 애를 쓰는가바. 이런걸보면 西洋사람이나 內地사람은 엉뚱히달르거든 伊藤貞子라고 西洋女子인데 內地人과 結婚했답데다. 이 女子는 世界 열여달 나라를 돌아 다니면서 舞踊을 하고 다닌일도 있고 그런데 내한테 朝鮮춤을 배워가기도 했지요. 배웠다야 여러날 배운것도 아닌데 요전 公演일로 내가 東京에 갔을 때 아 伊藤貞子가 朝鮮옷을 입고 東京驛까지 마중을 나오잔었겠습니까. 그러고 每日 旅舘에 와서 놀기도하고 先生도 先生이려니와 서로 말을 通할줄 모르는데 이렇게 허기란 장히 어려울게요. 바로얼마前에도 東京에 있는 東寶映畵會社의 女俳優 두사람이 와서 춤을 배우고 갔습니다. [사진] 寫眞은 朝鮮舞踊의 光景
[李] 서로 말도 모르는데 가르키고 배울려면 苦生되지않을까?
[韓] 그게 妙하단 말여요. 말은 彼此 깜깜속이지만 내가 장단만 처주면 그걸알고 춤을 춘단말이오. 거 才操란건 다르기도 하겠지만 그 長短에 技術이라는것도 妙하다는걸더깨달었습니다. 내가 한번 춤을 추어보이고 長短을 처주면 척척 맞추어서 춘단말여요. 거참 神奇합데다 그런데 이왕 춤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朝鮮춤을 앞으로 많이 改良하면 世界 어느나라의 춤에다 比할게 아닐겁니다. 朝鮮춤에는 슬픔춤도 없고 무서운 춤도 없어요. 아마 이것은 춤이 오랫동안 宮中안에서만 發達되여온 關係인지도 모르지요.
[李] 광대나 鼓手 할것없이 第一호화스러웠을때가 언제라고 할고.
[韓] 그야 圓覺社(皇室劇塲) 時節이겠지요.
[李] 나도 그래. 그때는 정말 비록 상놈대접은 받었으나 노래부르고춤출만했었지 「純宗」을 한 대청에모시고 놀기까지 했었으니까.
[韓] 그때 金인호가 두껍이 재조넘다가 바로 「純宗」무릎에가 떨어지자 기쁘게웃으시겠지. 그 光景이지금도 눈에 선하니 생각 됩니다그려 그當時 兄님은 「純宗」의 귀염을相當히 받었을걸요. 圓覺社에서 兄님이소리할때면 「純宗」께서 電話통을 귀에 대시고 듣기까지 하셨으니까.
[李] 그때 唱劇調로 春香傳을 했지만 그規模가 지금보다도 훨씬 컸고 또 소리를 들을줄아는 사람이 많잔었오? 그러니 舞臺에 오르는사람도 저절로 興이 났지.
[韓] 그때 일로 또 생각되는건 왜그 原州監事의 暴政을 唱劇으로 한것아닙니까?
[李] 오라 나 亦 圓覺社 이야기만하면 그것이 곧 생각되거던. 허허허
[記者] 혼자 들 웃지만 말고 자세한 이야길 좀 허시구려.
[李] 합죠. 原州 사는 良民 한 사람이 鄭監事한테 어굴하게 맞어 죽은 것을 圓覺社에서 上演했는데 鄭監事의 後孫들이 上演中止運動을하고 야단이였지요. 그때 被殺된 良民을 金昌煥氏가 냈는데 舞臺에서 죽어 나올라치면 손님들 中에서 葉錢을 목에 걸어 주고 人氣가 굉장했었지요.
[韓] 兄님에게 한가지 섭섭한게 있습니다. 兄님이 살어게시는 동안後代를 이을만한 弟子들을 많이 만들어 내야겠는데 퍽 寂寂한 것 같어서 그래요.
[李] 나 亦 韓叅奉처럼 弟子를 많이 둘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왜 없겠오. 그러나 내가 性急한 탓인지는 모르되 弟子를 꾸준히 길러 내지지가 않소그려. 나는 무엇보다도 목소리부터 내 脾胃에 맞게 내야만 가르켜 주고싶은데 그렇게 내는 사람이 없구려. 韓叅奉처럼 북이라든지 舞踊은 말로 얼마든지 고처서가르킬수 있지만 이놈의 목소리라는건 人力으론 안 되는갑데다. 내 목소리는 平凡해도 어렵다고 생각하오.
[韓] 건 그렇죠.
[李] 그만한 功이 들어서 그런가바. 글씨 쓰는걸만 바도 나야 無識해잘모르지만 그래도 눈으로 보아서 李完用大監의 글씨가 좀 이쁘고 잘되었오? 허지만 秋史 글씨라는걸 보면 사내답고 그것이 씩씩해서 좋든군. 그리고 글씨란 것이 本是 그래야할것 같기도 해. 소리란것도 이것과 꼭 마찬가지지 뭐요. 사내가 부르는 노래란건 亦是 사내 다워야하지. 노래가 사내다울랴면 그 목소리가 사내다워야 하고. 그렇다고 목소리가 까다라워선 또 못 쓴단말야. 平凡한 것이 좋으나 또 고것이 그냥 平凡해 버려선 못 써. 平凡하면서도 거게 色다른 맛이 있어야그목소리가 값이 나간단 말요. 허허 韓叅奉은 이런것쯤은 잘 알고 있는데 내 잔 소릴 너무 늘어 놓았군.
[韓] 천만에요. 모다 오른 말이죠.
[李] 또 잔 소리가 나옵니다만 목소리란 上, 中, 下의 소리가 分明하고 男聲 女聲의 區別을 똑똑이 하야죠. 그리고 배우는 사람에게 늘 注意시키는게지만 목소리를 꼭 五行대로 허얀단 말요. 金聲은 쇠소리니깐 쩡그랑 소리가나야 하고 木聲은 나무 패듯 와짓끈해야하고 水聲은 잔잔하여 平平한 맛이 있어야 하고 火聲은 불이 확 나듯 高喊치는 맛이 있어야 하고 土聲은 땅과같이 목소리가 두터운 맛을 주어야 한단말요.
[韓] 李先生의 下聲은 다들뽀가 다울린다구 허잔습니까.
[李] 그런데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나만이 소리 할줄 안대서가 아니라 소리의 眞價를 알어 주는 사람이없어서 폭폭허니깐 한단말요. 소리도 實感이 있어야 한단 것은 高低 長短이 소리 內容과 合致되어야 해. 例를들면 春香이가 李道令 떠나는 直前에 우는것과 떠난 後 혼자 房안에 앉어서 우는 것이 全혀 달러야하거던. 떠나기 前엔 多少 소리를 높여서 울겠지만 떠난 後 혼자 앉어서 우는것은 새살부리는 調로 가늘게 우는것이 實感이 있잖겠오?
[韓] 兄님 난 이런 計劃을 가지고있습니다. 朝鮮 소리나 춤을 後世까지 正確하게 傳하자면 映畵의 힘을 빌어야겠습데다. 그래 只今 어느會社와 計劃이 順調로 나가는 中입니다만 이것이 꼭 必要할 것 같습니다.
[李] 韓叅奉 거 생각 잘 했오.
[韓] 그리고 옛날 朝鮮 文武 百官의 衣服을 後世까지 傳하자면 朝鮮舞踊의 힘을 빌어야만 되지 달리는 到低히 안될것입니다. 이런 意味로보아서도 朝鮮歌舞의 映畵化가 絶對로 必要합니다. 그리고 歌舞를 實際로 傳하는데는 이것을 家庭 속으로 끓고 들어 가잔으면 안됩니다. 內地 固有의 歌舞와 器樂 같은 것은 良家 處女들이 시집가는 미천으로 그것을 배우지 않습니까. 現在 어느 上流家庭의 全家族이 저한테 다니며 북치는것과 主로 朝鮮춤을 배우고 있습니다. 男子는 마훈두 살이라는데 부인은 스물 대여섯 되어뵈구 아들 딸까지 함께 와서 熱心히 배웁니다. 범절이 모다 점잔하고 財産도 相當히 있는 모양입데다.
[李] 원체 그러야만 오래도록 傳할수 있지. 只今 李王職雅樂만을 보드라도 世界的으로 큰 자랑이라 허지만 그것이 宮中에서만 傳해왔기 때문에 普及이못되고 特別한 樂士가 世上을 떠나는 날이면 그만 後代가 끊치고 만단 말요. 韓叅奉 말처럼 歌舞의普及은 그것을 家庭 안으로 모셔드려야 해.
[韓] 그거야 제가 처음 하는 말도아니고 그 必要를 느끼면서도 實行은 躊躇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옛날부터 노래나 부르고 춤을 추는 사람을 賤待했으니까 누가 그걸 배울랴고 하겠습니까. 歌舞를 家庭으로끓어 드리랴면 먼저 그런 觀念을 고치는 것이 좋을겁니다.
[李] 거야 차차 그렇게 돼 가겠지.
[韓] 허긴 前보담은 훨씬 났지요. 歌舞하는 사람을 한 技術者로 待遇해주니까 그前보다 훨씬 납데다.
[李] 待遇가 났단 말이지? 韓叅奉은
[韓] 네 그렇죠.
[李] 그렇잖어. 그렇잖어. 前엔 쌍놈이라고 “해라” 하든걸 只今은 技術者라고 “하오” 하는 것이 待遇가 아닐게요. 그前 世上은 上下의 區別이 甚하긴 했지만 우리를 對하는데도 情이 있었지. 非單 上下關係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가情이 있었지. 아마 인심이 只今世上보담은 厚해서 그랬든가바. 그때名昌 소리만 듣게 되면 大監들의귀염과 사랑을 좀 받었나베. 그저 나는 待遇구 멋이구 間에 소리를 알어주는 사람 即 朝鮮歌舞를 알어 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 늘어 갔음 좋겠오. 아 韓叅奉도 춤을 출줄 아는사람앞에 나서야 춤을 추고 싶지 맹충이들 앞에서야 어디 신이 날게요 朝鮮歌舞를 普及시키는 方法은많은사람이 그것을 보고 들을줄 알어야해 放送局 先生님들이 比較的 朝鮮소리를 理解하겠지만 아직도 멀었어. 平時 때 放送하는 사람들의 選擇을 보면 알게 아뇨.
[韓] 허긴 그 先生들도 퍽 딱한갑데다. 新進을 獎勵하랴니까 이 사람도 시켜보고 저 사람도 시켜 보구 그럴게 아닙니까. 또 恒常 같은 사람만 시킬수도 없는 노릇이구.
[李] 韓叅奉 말도 옳긴 옳아. 그러나 朝鮮 소리를 좀 안다면 이 사람은 시키지 않을텐데 하는 사람이 間或 나온단 말야.
[韓] 그럼 그 사람이 放送局에 가서 무던히도 졸라 댔든게죠(웃는다)
[李] )웃고서) 그래서야 쓰나. (記者를 向해) 그리고 이 말은 꼭 좀 發表해 주십시오. 朝鮮 소리의 한가지 缺點은 歌詞가 恒常 옛날 것 뿐인겁니다. 앞으로 發達시키자면 有識한 분들이 歌詞를 좋은 것으로 많이 지어 내고 소리하는 사람은 이것을 힘 써서 불러야합니다. 그렇잖으면 소리의 種類의 數가 줄으면 줄었지 늘어 갈 理가 있겠습니까. 이 點만은 여러 先生님들이깊이 생각허서야 하겠습니다.
日時 一月二十四日
場所 天香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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