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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음악사의 몇 개 문헌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조선음악사의 몇 개 문헌 朝鮮音樂史의 몇個文獻
종    류 논문 論文
필    자 홍이섭 洪以燮
출처정보 문장 文章
연    도 1941-03 昭和十六年三月
면    수 95 (95)
기사
朝鮮音樂의 古代的 痕跡은 일찍이 陳壽 三國志 魏書 東夷傳의 몇節에 散見되는 바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곧 朝鮮音樂의 起源을 찾는다든지, 그 全貌를 云謂할 수는 없다. 箕子가 朝鮮에 百工技藝를 齎來했다는 傳說을 고대로 믿어 音樂의 淵源을 그에 잡는 다든지함은 더욱 엄창난 虛構로써, 考古學上 何等의 證左가 없다.
우리 音樂史硏究의 第一頁는 文獻의 正當한 科學的 批判에서 出發케 될될것이다. 音樂 發達 過程에 社會的 經濟는 社會的 心理를 通해서 影響한다는, 이 社會心理는 音樂이 影響을주는 環境을 맨들어 낸다 한다. 거기서 制約될뿐 아니라, 이 音樂을 形成하는 環境을 맨드는데 依해서도 制約된다 한다. 여기 音樂이 받는 社會的 運命이 적지아니하므로 여기에서 批判의 第一 對象은 아모래도 文獻이다.
音樂史의 硏究에 있어, 音樂學的으로 美學的 哲學的인 解說과, 音響學에서 物理學的 硏究, 樂器의 考古學的 究明 또는 歌謠의 文學史的, 舞踊의 演劇學的으로 그 歷史의 考究가 必要할것이나 이 綜合的 方法은 到底이 個人的인 硏究에선 期할수 없다. 이런 處地에서 于先 必要한것은 한 歷史學徒로써, 音樂史의 諸文獻을 가장 正當한 批判아래에서 分析함일것이다. 일찍이 古典學者들의 손에서도 史料의 蒐集이란 名目쯤으로도 行하였었을것이 아즉까지 無人地境임은 世界的인 朝鮮音樂이란 榮譽에 얼마쭘 汚點이라 하겠다. 거기에는 獨占的인 知識欲만을 享有시키고 떠나간 이도 있고, 그렇지않으면 刻苦勉勵했지만 뜻이 이루어지지 못함이 아닌가도 한다. 단 一言 半句라도 이 方面의 勞作이 있으면 同好의 學究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을 바라 마지않음에서, 一般的으로 알려진 朝鮮音樂史의 몇個의 文獻을 그 表題名만이라도 抄記해 볼랸다. 學的인 文獻錄으로써는 아즉 天壤의 隔離가 있음을 認定치 않을수 없다.
朝鮮史의 硏究文獻中 古代史에 關한 것을 支那에서 求함과같이, 音樂史의 古代的인 史料도 支那로 돌아가게 된다. 基本的인 支那의 正史가 간직하는 그것의 가장 主要하고 價値있는 것은 무엇보다 陳壽의 三國志 魏書 東夷傳中의 諸記錄과, 時代의 「隋書」, 「北史」, 「舊唐書」, 「唐書」等일 것이다. 이에 關한 第一 簡便한 冊子로는 朝鮮總督府 朝鮮史 第一編 第三卷 「支那史料」中의 附錄에 嵬集된 各史書의 朝鮮關係 諸傳의 記錄일 것이다.
그에서 朝鮮音樂關係의 諸記錄을 抄錄한대도 그 分量 不過 數頁이나, 朝鮮古代音樂史를 構成할 基本的인 文獻이다. 그 中 最古한 三國志는 우리 古代社會의 唯一한 文獻으로, 그것이 記錄될때는 大畧 西紀 二八五年頃이요 撰著者 陳壽가의 原典으로써 依據한 資料는 魚豢의 魏前畧이었으니, 魚豢은 西紀 二四◯年代사람이다. 이로 보아 西紀 三世紀以의 朝鮮을 窺視할만 하다.
朝鮮本士의 史料로는 金富軾 三國史記卷第三十二 「志第一樂」에서 樂工의 制와 樂器, 樂曲에 關한 얼마의 記事를 찾을수 있고, 아울러 僧一然의 三國遺事와 均如禪師傳의 鄕歌와 그에 關한 記錄을 音樂史에서 取扱할수 있다. 朝鮮音樂 全般을 窺知할 文獻으로는 東國文獻備考九○-一○八樂考와, 우리 音樂文獻上 唯一한 典據로 볼만한것은 成俔의 「樂學軌範」이다.
또 日本古代史의 諸文獻에서도 古代音樂의 史料를 取할수 있으며, 舞踊에 關해서는 더욱 貴重한 資料는 그에 據수밖에 없다. 이 方面의 史料的이며 文化史的인 作品으로 小中村淸矩의 「歌舞音樂略史」(岩波文庫296-297)를 들수있으며, 前揭 朝鮮史의 第一編 第二卷 「日本史料」編等은 主要한 資料라고 하겠다.
三國一統의 新羅의 文化를 繼承하며, 또 佛敎觀念의 輸入으로, 그 諸習浴과 儀式에서 온 佛敎音樂과 外國音樂인 宋樂과의 交涉이 있은 高麗代의 文獻으론 朝鮮音樂及 文學硏究上 莫大히 貴重한 鄭麟趾等撰인 高麗史卷七十-一 「志第二十四-五, 樂一-二」이며, 宋 徐兢 「高麗圖經」과 「東文撰」에서 音樂에 關한 文句를 찾을수 있고, 麗史 睿宗世家에서는 宋樂과의 交涉의 一段을 보힌다.
李氏朝 封建社會에 이르러선 佛敎觀念에 代行하는 儒學思想의 國敎化에 따라, 禮樂으로써의 雅樂의 整備에 따라, 世宗實錄一三六-四四樂譜, 世祖實錄四八-九樂譜가 있고, 代表的인것으론 먼저 말한 「樂學軌範」이 있으며 百科辭典이란 文獻備考의 樂考等이 있다. 禮論的인 丁茶山의 「樂書孤存十二卷」을 볼 수 있다. 外, 「小華外史」, 「星湖塞說」, 「芝峯類說」等 若干의 記錄을 보겠고, 「進饌儀軌」等의 書類도 없지 않으나, 大略하겠다.
다음에 朝鮮音樂에 關하여 現代的인 意味에서 論述된 論文及 著述을 若干들어 보겠다.
一, 津田左右吉 「高麗樂に就いての一二の臆說」(東洋學報三)
一, 田邊尙雄 東洋音樂史(雄山閣 東洋歷史講座欣收), 氏의 朝鮮音樂에 關한 論文으로 「朝鮮雅樂考」가 있으며, 日本地理風俗大系朝鮮編上卷과 平凡社大百科辭典十七卷中에 朝鮮音樂의 簡略한 紹介가있다.
一, 小倉進平 鄕歌及吏讀の硏究
一, 土田杏村 國文學の哲學的硏究 第三卷 「上代の歌謠」, 이 著述은 小倉博士의 解讀에 比할만한 勞作으로 鄕歌의 形式的 硏究의 唯一한 遺産이다.
一, 趙潤濟 朝鮮詩歌史大綱
一, 金台後 朝鮮歌謠集成 古歌編 第一輯
一, 中村榮孝 東洋歷史大辭典 第六卷中의 朝鮮音樂條
一, 宋錫夏 平凡社大百科辭典十七卷 朝鮮演劇音樂條, 또 氏의 「風山民俗舞踊考」(朝鮮日報五七四六-四九)가 있다.
一, 岩谷武市 「朝鮮樂制の變遷」(朝鮮一六三)
一, 內藤湖南 「宋樂と朝鮮樂との関係」(硏幾小錄) 內藤博士의 이 論文은 高麗音樂, 特히 宮庭의 燕饗樂이 唐宋의 俗樂을 輸入한것임을 論한것.
一, 「朝鮮」二六一 「假面劇踊劇」特輯號
一, 金在喆 朝鮮演劇史
또 朝鮮學者로써 現代的인 意味에서 朝鮮音樂史에 最初로 손을 대인 분은 아모래도 安廓氏이다. 다음의 自山님의 論文을 揭出해 보자.
一, 朝鮮歌謠史の槪觀(藝文十八, 一-二)
一, 朝鮮の音樂について(朝鮮二○二)
一, 朝鮮雅樂曲解題(朝鮮一八○)
一, 朝鮮雅樂に就て(朝鮮史學第三號)
一, 時調詩學(朝鮮日報出版部―朝光社), 自山님의 論述로는 外에도 『佛敎雜誌』誌上에 佛敎音樂에 關한 論文이 있다.
다음 貴重한 參考文獻으로는 李圭景의 五洲衍文長箋散稿 「俗樂辨證說」이 있다. 朴趾源의 熱河日記에는 西洋音樂 見聞記가 있다. 이는 朝鮮사람으로서는 最初의 西洋音樂 見聞이다. 일즉 崔南善氏의 『怪奇』誌에 抄譯 紹介된 바다.
朝鮮歌謠音樂 硏究에 있어 더욱 鄕歌의 바른 解讀은 內容의 硏究 및 形式的인 硏究에 가장 緊要하다. 이 方面의 勞作으론 朝鮮日報, 東亞日報 兩紙上과 靑邱學叢, 震檀學報等에 鄕歌, 麗謠의 解讀을 發表하신 梁柱東氏의 諸論文이 있으니, 이는 비단 文學史的 意義만이 아니라 音樂史的인 意義 한層더 깊은 것으로 그 集大된 著述이 하루 바삐 出世間됨을 바라 마지 않는다.
朝鮮聲樂 唱劇音樂史에 關한 것은 全혀 缺乏 狀態로 鄭魯湜氏의 朝鮮唱劇史가 있기는 하나, 史料的인 意味에서 한個 文獻으로 取扱은 한다해도, 書名 그대로 史的 硏究로써는 그 價値를 認定치 못할 非科學的인 노-트일 뿐이다.
좀더 整理하여 주신다면......
歐米에 朝鮮音樂이 紹介되기는 다음의 二書를 가지고 써다. 이 땅의 學者보다 앞서 努力한 두 異國의 學者님에게 感謝라도 할만 하다.
佛蘭西의 有名한 東洋學者요, 「朝鮮圖書解題」즉 「朝鮮의文獻」이란 尨大한 著書를 보내고, 支那古代音樂史論의 附編으로 朝鮮音樂의 支那音樂과의 關係를 論한 쿠-란의 著書를 보겠다. 그는 이 著作으로 學位를 얻었고, 後 算行本으로 出版도 했으며, 佛蘭西國立音樂學院의 音樂百科全書 第一部 第一册에 編取시키었다.
Maurice Courant, Essai historique sur la musique des Chinois, avec un appendice relative a la musique Coreenne. 1921, Paris
또 하나는 朝鮮에 宣敎師로 와서 朝鮮文化 硏究에 寄與한바 큰 에칼트氏의 「朝鮮音樂」이다.
And reas Eckardt, Koreanische Musik. (Mitteilungen der Deutschen Gesellscha fur Natur und Volkerkun de Ostasines, Bond ⅩⅩⅠⅤ. Teil B, Tokyo, Verlao von "Asia major" Leipzig.)
以上 아조 簡略하게 朝鮮音樂史의 文獻을 抄記해 보았을 따름이다. 以後 完全한 文獻及 史料集 或은 科學的인 史論等을 바랄뿐이요 또 各 部門의 專門家의 硏究가 있을것을 바라 마지 않으며, 粗雜한 이 一文을 한個의 노-트 삼아 적근 바이다. 逸脫이 甚한 杜撰의 이한篇이 或 잘못되어 이 方面의 大家의 눈에 띠어 그릇된 點에 是正을 받는 다면 多幸일까 하며 擱筆.
(辛巳․二月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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