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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룡
구분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이    름 김창룡 金昌龍
출처정보 조선창극사(서울:조선일보사출판부) 朝鮮唱劇史(京城:朝鮮日報社出版部)
필    자 정노식 魚鳥同室主人
연    도 1941 昭和十五年
연    수 210 二一○
인물
金昌龍 「중고제」
金昌龍은 巨今 六十八年前에 忠淸南道 舒川郡 橫山里에서 出生하였다. 七歲부터 그 父親 定根에게 판소리를 工夫하기 始作하여 十三歲에 이르러 多少 向方을 알게 되었다. 그 後 李捺致 手下에서 一年 間 指針을 받아서 비로소 소리는 자리가 자피었다. 그 後로는 훌로 鍊磨하다가 金昌煥 朴基洪 等 先輩와 從遊하여 見聞을 擴充하였다 三十二歲頃에 京城에 올라와서 延興社 創立에 努力하여 貢獻한바 不尠하였다 그리하여 唱法과 技倆은 熟達하였다. 最近에 宋萬甲 李東伯 丁貞烈 等과 提携하여 朝鮮聲樂硏究會에 參加하여 元老로써 音樂少壯輩 指導에 게울니 아니하며 種種 라디오 放送을 한다. 自家傳來의 法制를 繼承한 많금 古曲味가 多少있고 天品聲帶가 좋아서 몇일을 繼續 하드라도 傷하지 않는 점은 壯하다. 그 所長으로 蓄音機에 吹入된바 數種이 있거니와 赤壁歌에 長하고 沈淸歌 中 꽃타령이 特長이다. 赤壁歌 中 三顧草廬 場面 略干을 左揭하노라.
「堂堂한 劉皇叔은 身長七尺五寸이오 面如冠玉이오 自顧其耳 手垂過膝이라 烏帽紅袍 玉帶를 띠고 雙股釼 비껴차고 的盧馬上 두렸이 앉은 거동 帝王의 氣像이요. 關公 威儀 볼짝시면 身長九尺 面如重棗하고 丹鳳顔 臥蠶眉 二尺五寸 三角鬚 聲若洪種이라 靑巾 綠袍靑龍刀 비껴 들고 赤免馬上에 앉은 擧動 威風이 凜凜. 張翼德 威儀를 볼짝시면 곰의등 범의머리 먹장얼굴 雙고리눈 몸에 鸚鵡戰袍 머리에 綠巾 入蛇矛長鎗 눈 위에 솟게 집고 黑驄馬上에 앉은 거동 眞三國之猛將이로다. 安車 駟馬와 玄繐玉帛으로 禮單을 갗훈後 南陽隆中 찾어 갈제 이때는 建安入年 春正月이라 朔風은 凜凜하고 雨雪은 霏霏한대 千山鳥飛絶이오 萬徑人踪滅이라 險惡한 좁은 길로 行路하기 어려워라 南陽땅 돌아들어 臥龍岡 바라보니 景槪無窮 좋을시고 山不高而秀麗하고 水不深而澄淸이라 地不廣而平坦이오 林不多而茂盛이라 猿鶴은 相關하고 松竹은 交翠로다. 서로 재촉하여 襄陽草堂을 다다라 柴門을 두다리며 童子 불러 묻는 말삼 「先生이 게옵시냐」 童子 여짜외되 「先生께옵서 春䁘깊어 草堂에서 주무시나이다」 玄德이 이말 듣고 雲長과 翼德에게 分付하여 門밖에 세워 두고 緩々히 거려 들어가 階下에서서 기달리기를 오래하되 先生이 잠을 깨지 않는지라 張飛 大怒하여 이른말이 「저 선생이 이 같이 거만하뇨 一個 村夫子로써 우리 兄長을 이대지 忽待하니 無禮莫甚하도다 내 집뒤에 가 불을 놓아도 아니 일어나나 볼리라」하는지라. 雲長이 곁에 섰다가 翼德의 손을 더벅잡고 「賢弟여 天下大事를 할량이면 여간 소절을 생각하리오 再三 만류한지라. 이때 孔明先生이 게우 잠을 깨여 글을 읊어가로되 「草堂春䁘足하니 窓外日遲遲라 大夢誰先覺고 平生我自知라」 읊기를 罷한後에 童子 불러 묻는 말삼 俗客이 와게시냐 동자 여짜오되 「前日 두번 오섰든 劉皇叔께옵서 階下에 서서 기다린지 오래로소이다」 어찌 일즉 告치 아니하였나뇨 하고 孔明이 卽時 衣冠을 整齊하고 堂에 나려 玄德을 맞어 禮畢 座定後에 玄德이 눈을 들어 孔明을 잠간 보니 얼굴은 冠玉 같고 머리에 烏角綸巾을 쓰고 몸에 鶴裝衣를 입고 손에 白羽扇을 들었으니 隱隱한 風道와 飄飄한 氣骨은 萬古興亡之才를 胸中예 품었는듯. 玄德이 拜揖하고 愚備 先生을 뵈옵자 數三次 온 뜻은 다름아니오라 漢室이 傾頹하고 奸臣이 弄權하거늘 備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大義를 天下에 펴고자하나 兵微將寡하고 智識이 淺短하와 興復지 못하오니 願컨대 先生은 經濟之才를 품은지라 備를 爲하여 出山相助하사이다 孔明이 對答하되 亮은 본대 布衣寒士로 南陽에 밭 갈기와 江湖에 고기 낚기 平生에 일삼으니 功名이 꿈밖이오 또한 天下大事를 내 이어 감히 알리이까」 玄德이 배읍하고 다시 말삼하되 「先生 곧아니오면 蒼生을 이어하며 社稷을 어이하오리이까」 하고 하음 없는 눈물이 衣衿을 적시거날 孔明이 그精誠이 至極함을 보고 「尊敎如此하오니 尊意를 받을려니와 이제 曹操는 百萬兵을 거나려 挾天子 號令하니 닷투기 어려웁고 孫權은 江東에 雄據하여 地險民富하니 가히 圖謀치 못할지라 益州난 險塞하여 沃野千里에 天府之土요 荊州난 北據漢沔하고 西通巴蜀하니 可히用武할 땅이라 童子불러 型益圖를 내여오라 하여 壁上에 거러놓고 하는말이 賢主 이곳을 얻었으면 漢室을 可復이오 帝業을 可成이라 하고 아우 均을 불러 부탁하는말이 내 劉皇叔의 三顧之恩을 갚고자하여 아니가지 못하리니 너는 몸소 밭 가라 農業을 廢치말고 내 功成한後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東園의 저 猿鶴은 어나때에 다시보며 南陽의 묵은 山田 뉘라서 매어주리 머리에 烏角綸巾 몸에 鶴裝衣며 白羽扇 손에 들고 四輪車에 높이 앉어 辛野에 돌아오니 將不滿十이오 兵不滿千이라 臺上에 높이앉어 天下事를 議論한다」 云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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