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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등야화―노래 뒤에 숨은 설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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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한등야화―노래 뒤에 숨은 설움(3)― 寒燈夜話―노래 뒤에 숨은 설음(三)―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 +++
출처정보 매일신보 每日新報
연    도 1930-11-26 昭和五年十一月二十六日
면    수 2 (二)
기사
―노래 뒤에 숨은 설음(三)
◇ 朝鮮音律과 歌手의 情落은
社會의 冷情이 最大한 原因 ◇
國唱歌手의 古今錄
음악(音樂)은 자연(自然)의 노래이다 라서 새가 우는 소리 벽력(霹靂)이 치는 소리 개가 짓는 소리도 다 음악의 일종이니 일만가지 생물의 령장(靈長)이요  만물지중(萬物之中)에 오인이 최귀(吾人最貴)하다는 인류(人類)에 잇서서야 엇지 음악이 업슬 수 잇스랴 언고로 인류의 생활이 잇는 곳에는 반다시 그의 종족을 대표할 만한 음악이 잇스니 서양(西洋)에는 서양음악이 동양에는 동양음악이 각々구별되어 잇는 것이 즉 그것이다

근래의 조선에는 『피아노』 『이올린』 『하~모니』 『많도링』 등의 가지가지 긔악(器樂)과 『소푸라노』 『테너~』 등의 성악(聲樂)이 크게 류행된다 그러나 이것은 다 각기 서양사람(西洋人)의 생활과 풍속에서 울어나온 순수한 서양음악이기 문에 그들 서양사람을 울니고 웃기기에는 적합한 음악일지언정 사천여 년의 긴 력사(歷史)를 가지고 순동양적(純東洋的)의 고유한 인습(因襲)이 유전되여 잇는 우리 조선사람의 심금(心琴)을 울리는 음악은 결코 되지 못한다

혹 그중에는 예술(藝術)에는 국경(國境)이 업다는 말과 맛찬가지로 서양음악이면서도 더러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 아주 업는 것은 안이다 혹 어느  서양서 유명한 모々 음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면 우리로서도 알 수 업게 억개가 읏슥거리고 가슴이 울렁거림을 금할 수가 업슬만큼 크나큰 감흥(感興)과 충동(衝動)을 바들 가 잇다 그러나 그 감흥이라는 것은 우리가 조선명창(名唱)의 『륙자바기』와 『소상팔경』 등을 듯는 의 것과는 결코  가튼 것이 안이니 가량 우리의 조선명창의 조흔 노래를 듯는 의 감흥을 십여 분의 것이라 하면 서양 음악가의 그것은 한해야 겨우 칠팔 분의 감흥 박게는 되지 못한다고 할 수가 잇다 그것은 무슨 닭일?
결국 서양음악이 우리의 흉금을 십여 분으로 움즈기지 못하는 것은 그들 서양 사람의 생활과 우리 조선사람의 생활이 근본적으로 합치되지 안는 문이니 우리가 그들의 음악을 흡족하게 리해하지 못하는 거와가치 그들 서양사람이 조선음악의 참다운 맛을 도저히 리해치 못할 것은 역시 맛찬가지이다

그럿컨만 근래의 조선의 일부 사람들은 알고서 그러는지 는 몰으고서 그러는지 덥허 놋코 서양음악에 도취(陶醉)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래서 서양류(西洋流)의 음악회에서는 알지도 못하는 서양노래에 손바닭이 압흐도록 재청삼청(再請三請)을 하면서도 순 조선식의 음악회에서 가수(歌手)가 연단에서 팔을 내고 『구구천변일륜홍!』 등을 불으면 와하고 아주 우습다는 듯시 갑자기 소란한 우슴판을 만들고 만다
『예술에는 국경이 업다』니 구태여 서양음악을 배척할 필요는 업지만은 그러타고  수천 년의 긴 력사(歷史)가 남겨 논 자랑할만한 우리의 고유한 음악을 일부러 배척할 필요는 업지 안치 안흔가?

이가치 서양음악을 맹목적(盲目的)으로 숭상하는 반면에 조선음악을 여지 업시 천대하는 풍조는 간접적으로 조선의 국창가수(國唱歌手)를 여지업시 륜락의 구덩이로 타락케하는 크나큰 도화선(導火線)이 되고 마럿스니 그들 명창가수의 참담한 생활을 생각할 에 우리는  일반 사회의 냉정(冷情)을 문책하지 안을 수 업다

『나의 조부(祖父)가 되는 성옥(成玉)씨와 나의 부친(父親)이 되는 정근(貞根)씨는 다가티 명창으로써 유명하던 분인데 그중에도 조부서는 불과 삼십여 세에 요절(夭折)은 하섯지마는 진양조(盡量調)라는 조선음악에 일즉이 업던 음률(音律)를 발명하여서 일세를 풍미하엿스며 근대명창이라는 『황호룡』 『최승학』 『리동백』씨 등은 모다 나의 부친 되는 정근씨의 제자들임니다 그런데 전긔 진량조가 세상에 퍼진데는 한 재미잇는 이야기가 잇습니다 즉 진량조를 창안한 이는 우리 조부이나 그 분은 그 곡조를 만들자마자 불행히 세상을 나섯슴으로 세상에서는 전혀 이 곡조를 몰낫섯던 것인데 그 후 『송광록』이라는 조부의 고수(鼓手)가 나도 명창이 한 번 되여 보겟다고 오 년 동안이나 제주도(濟州道)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제주도와 목포(木浦) 사히의 선중(船中)에서 만경창파(萬頃蒼波)를 바라보며 생각나는 대로 감개무량한 회포를 을푼 노래가 소상팔경(瀟湘八景)으로 이것을 듯고 잇던 수십명 선원들은 다가티 눈물을 흘니며 울엇다 합니다 그런데 이 소상팔경의 곡조가 『진량조』이엿슴으로 진량조는 갑자기 세상에서 유명해젓습니다 그러니 진량조를 발명한 이는 나의 조부이요  그것을 세상에 퍼진 이는 『송광록』씨라 하겟지요』
이것은 명창 김창룡(金昌龍) 가수의 고백이거니와 지나간 날 조선의 국창들이 발버 온 가지가지 노력의 흔적을 돌아 보면 실로 감개무량(感慨無量)한 회포를 금할 수가 업다(사진은 김창룡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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