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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상 명부인 열전―제8회 메나리 노래의 주인공 정녀 박향낭―
구분 표준화 정보 원문정보
기사제목 조선사상 명부인 열전―제8회 메나리 노래의 주인공 정녀 박향낭― 朝鮮史上 名夫人列傳―第八囘 메나리노래의주인공 貞女朴香娘(뎡녀박향랑)―
종    류 기사 記事
필    자 차상찬 車相瓚
출처정보 가정지우 家庭之友
연    도 1938-03 昭和十三年三月
면    수 8 8
기사
락동강(洛東江)에 어름이 풀니고 금오산(金烏山)에 잔듸풀이 파릇파릇하게 새속입이 돗처나올가되면 다정다한한 남족나라의 젊은녀자들은 바구니를 여페고 둘식 셋식 을지여 산으로 들로 나물을캐러가게됨니다 그들은 나물을캐다가 한 봄바람에 제흥이 제절로 나거나 혹은 어려운 시집사리에 부댁기는 서름과 그리운 친정어머니의 생각이 간절하게 나오게되면 하염업는 눈물을 흘니다가 구슬푼 목소리로 메나리(山有花)라는 노래를 흔이 부름니다
봄철에 그런여자들의 노래하는 소리를들으면 제아모리 길을 밧비가는 행인이라도 발을멈추고 듯다가 한 한줄긔의 동정의 눈물을 흘니게됨니다 이메나리노래는 그사실과 곡조도 물론 구슬푸거니와 그출처를 상고하야보면 참으로 눈물겨운 애화가 숨어잇습니다

◇ ◇

시대는 바로 녯날 숙종대왕(肅宗大王)시대엿습니다 경상북도 선산군 상형곡(慶北善山郡上荊谷=지금의 귀미면형곡동 (龜尾面荊谷洞)= 이란 동리에는 박자신(朴自申)이란 사람의 이잇섯스니 이름은 향랑(香娘)임니다 그녀자는 어려서부터 용모가 단정하고 성질이 고정하고도 착하야 비록 자긔의동모들과 놀에도 실업슨말을 함부로하지안코 남자들과는 가티놀지도 안흐니 동리사람들이 모도 칭찬을 하엿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이 어려서 그모친이 도라가고 계모시하에서 자라게되엿습니다 그의 계모는 원래 성질이 패악하야 항상 그를 학대하되 양순한 향랑은 조곰도 반항을 하지안코 그저 숭순할름이엿습니다 향랑은 방년이 십칠세에 그동리에사는 림천순(林天順)의아들 림칠봉(林七奉)에게로 시집을가니 그 칠봉의 나희는 겨우 열네살이여서 아모 분수도 모르는중에 성질이 한 괴패하야 처음부터 향랑을 원수와가티 미워하고 박대하엿습니다 향랑은 친정에서도 계모에게 박대를밧다가 시집을 가서 소위 남편에게도 한 그런박대를 밧게되니 그신세야말로 참으로 가련하엿습니다 그러나 향랑은 조곰도 비관하지안코 그저 그남편이 아즉 나히 어린탓으로 그러거니하고 여러가지 곤난을 참으며 그남편의 장성하기만 기다릴이엿습니다
그러나 그남편은 한살이라도 더먹으면 더먹을사록 행패가 더욱심하야저서 날마다 향랑을 리고 욕질을 하며 별별 학대를 다하다가 최후에는 구축지하니 향랑은 할수업시 그의친정으로 가게되엿습니다

◇ ◇

누구나 물론하고 시집을갓다가 살지못하고 친정으로 겨간다면 소위 소박덕이라고해서 자긔의 친어머니라도 대술이녁이지안는것이 례사이거던 황차 평소부터 학대를심히하던 계모잇는친정으로가게되니 그천시하고 학대하는말이야 엇지 형언할수잇겟습니 조곰만잘못하야도 의례 시집갓다가 겨온년이라하고 욕질을하며 머리채를잡아고 함부로 리니 그의 머리털은 마치 몽당비 모양으로 다저버리고 왼몸에는 매마진 자리가 푸릇푸릇하야 구렁이 감은것가탓습니다 그러나 그의아버지는 무능하고도 후처에 저서 그것을 억제치못하고 그대로두니 그의삼촌이 그를 불상이녁이고 자긔집으로다려다 두게되엿습니다 그로부터 몃달동안은 향랑이 그삼촌의 한 애정미테서 잘지냇스나 한가지 난관의일이생겻스니 그것은 그의 삼촌이향랑을 다른곳으로 개가를 식히랴는것이엿다 그것은 몰론 그삼촌이 향랑의신세를 불상이녁이는 동정에서 나온일로 일이어니와 한편으로는 향랑이 인물도 상당하게 생기고 성질과여러가지범백이 관계치안흐니 어돈이 잇는자에게다 팔아먹으랴는 야심이한 잇는닭이엿다 그의삼촌은 향랑을보고 리해를저가며 여러번 개가하기를 권유하얏스나 원래에 마음이 철석가티 단단한 향랑은 그의말을절대로 거절하니 자긔삼촌도 처음에는 그를 동정하고 불상이녁엿스나 향랑이자긔의말을 거역하는데 반감이생겨서 최후에는 축출지하니 향랑은다시 갈곳이업서서 이리생각 저리생각하다가 다시결심하고 시가로 가게되엿습니다 그러나 그에는 그남편되는자의 학대가 더한층 심하야 일시를 견딀수가업게되니 향랑은 자긔시부모에게청하되 집한간만변통하야주면 독신으로라도 일생을지내겟다고 하엿습니다 그러나그시부모는 그것도 할수업다하고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던지 그러치안으면 자결이라도 하라고하엿습니다

◇ ◇

일이 그와가티되고보니 향랑은 아주이세상을 비관하고 최후에는 물에 저죽어서 자긔의절개나 직히자하고 오태산 (吳泰山=洛東江下流에잇는山임니다) 아래로 나려가다가 다시생각하되 『내가 물에저죽더라도 아모흔적도업시 그대로죽는다면 남들이 알기를 내가 다른곳으로 시집을간줄로오해하야 루명을쓰기쉬울터인즉 누구에게나 나의표적을 한아 남겨주고 죽겟다』하고 그곳으로 나무하러온 이웃집소녀에게 자긔의 월자 (月子다리지) 와 치마 집신싹둥을주며 자긔집에다 전해달나하고 노래한곡조를 가르처주며 말하되 『네가 부듸이노래를 잘배워두엇다가 이후이곳으로 나무를하러오던지 나물을 캐러오거던 내생각을하고 이노래를 불너주면 나죽은고혼이라도 반갑게듯겟다』하고 그말과노래를 마친뒤에 자긔의 입엇던 옷을버서서 얼골을 가리우고 그만물속으로 여나리니 향랑은 이십세의 방년을 일긔로하고 가엽게 수중고혼이 되고말엇습니다 그 그노래는 산유화(山有花) 라하는 유명한노래로 명남일대에는 지금것 전해 나려오는 애처러운 노래인데 그사의는 대강이러합니다
『天何高遠, 地何曠漢, 天地雖大, 一身難托, 寧投此淵, 葬於魚腹』

意 譯

하늘이 놉고 멀며
은 어이 넓고 큰가

하늘이 크다 해도
내몸한아 갈곳 업네

차라리 이물에 저죽어
고기밥이 되고저라

그리고 그에 선산부사조귀산 (善山府使趙龜祥)은 그사실을크게 가상이녁여 향랑의전긔(專記)을지여 포상하고 그의  여러 사람들은 시와노래를지여 이세상에 전하게되엿습니다

=紙面關係로자서히쓰지못한것을 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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